회사가 어떤 상태인지 정확하게 보려면 회계 장부를 봐야 합니다. 자산이 얼마나 쌓여 있는지, 돈이 어디로 흐르는지, 비용은 어디서 새고 이윤은 어디에 쌓이는지.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숫자를 조작하는 사람이 거짓말을 할 뿐.
그런데 천 년 전, 한반도에서 국가 규모의 회계 장부를 통째로 뒤집어엎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신임 CEO가 경쟁 파벌의 장부에서 핵심 자산을 강제로 지워버리고, 수익 구조를 만성 적자로 바꿔놓으며, 지하에 숨겨둔 비자금을 본사 금고로 끌어올린 사건. 956년, 고려 광종(光宗)이 단행한 노비안검법(奴婢按檢法)입니다.
이 글은 그 사건을 왕권 강화나 신분 해방이라는 익숙한 틀에서 꺼내, 대차대조표·손익계산서·현금흐름이라는 재무의 세 축으로 해부합니다. 재무적 시선을 빌리는 이유는, 그래야만 타격의 경로가 보이기 때문입니다. '광종이 호족을 꺾었다'는 결과는 역사책이 이미 알려줍니다. 그러나 한 장의 법령이 호족의 어떤 힘을 어떤 순서로 무너뜨렸는지, 그 충격이 자산에서 수익으로, 수익에서 현금으로, 현금에서 사병 해체와 권력 이동으로 이어지는 경로는 숫자를 따라가야만 드러납니다.
타격의 경로를 따라가려면 먼저 호족이 누구인지부터 알아야 합니다.
호족(豪族)은 고려 건국기에 각 지방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던 토착 세력가들입니다. 오늘날로 치면 지방 대기업의 오너 일가 정도에 해당합니다. 이들은 자기 영지 안에서 독자적인 군대를 보유하고, 세금을 거두고, 재판을 주관하는 사실상의 소왕국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태조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한 방식은 이 호족들을 무력으로 정복한 것과 거리가 멀었습니다. 각 지역 호족의 딸과 정략결혼을 하고, 그들의 기존 영지와 사병 보유권을 인정해 주는 대가로 명목상의 복종을 얻어내는 타협형 통합이었습니다. 《한권으로 읽는 고려왕조실록》에 따르면, 왕건은 29명의 부인을 두었는데 대다수가 유력 호족의 딸이었습니다. 현대적 용어로 바꾸면, 무력 정복이 아니라 지분을 나눠 가지는 합작 투자(Joint Venture)에 가까운 거래입니다.
문제는 이 거래의 결과물이었습니다. 통일 직후의 고려는 하나의 통합 왕국이 아니라, 각 지역 지사장(호족)들이 독자적인 자본(노비와 토지)과 사병을 거느리고 본사(왕실)와 동등한 발언권을 행사하는 이사회 중심의 연합체였습니다. CEO인 왕은 이 거대한 이사회의 눈치를 봐야 하는 상징적 존재에 가까웠습니다.
창업 군주인 왕건이 살아 있을 때는 개인적 카리스마로 이 느슨한 연합을 묶어두었으나, 왕건 사후 혜종과 정종 대에 이르러 호족들의 권력 투쟁이 노골화되며 국가는 파탄 직전으로 치닫습니다. 바로 이 위기의 한복판에서 네 번째 CEO로 등극한 인물이 광종입니다.
호족의 정체를 알았으니, 이제 이들의 주머니 사정을 들여다볼 차례입니다.
호족들이 후삼국 통일이라는 벤처 프로젝트에 참여한 대가로 배당받은 핵심 자산은 두 가지, 토지(공신전)와 사노비(私奴婢)였습니다. 이들은 전쟁 포로를 사유 노동력으로 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양인을 강압적으로 같은 신분에 떨어뜨리거나 장정 노비와 양인 여자의 결혼(양천교혼)을 강요해 그 수를 의도적으로 늘려나갔습니다.
그런데 이 사노비라는 자산은 현대의 어떤 자산과도 성격이 다릅니다.
첫째, 노비에게는 월급을 줄 필요가 없었습니다. 현대 기업에서 인건비는 매달 빠져나가는 큰 비용 항목인데, 호족에게는 그 항목이 0원입니다. 전쟁이나 강압으로 한 번 확보하면 대를 이어 재생산되는, 유지비가 거의 들지 않는 생산 설비였습니다. 둘째, 이들은 광대한 농장을 갈아 곡물을 쏟아내는 노동력이자, 유사시 무기를 들고 전장에 나가는 사적 군대였습니다. 셋째, 노비는 국가에 세금을 내지 않고 군역도 지지 않았습니다. 호족의 사적 금고에만 이익이 쌓이는 철저한 조세 사각지대를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정리하면, 호족은 직원 월급이 0원인 공장을 운영하면서 벌어들인 돈에 세금도 내지 않고 직원을 병사로도 쓸 수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10세기 한반도에서 이보다 탄탄한 재무 구조를 가진 조직은 왕실을 포함해 어디에도 없었을 겁니다. 솔직히 이 구조를 처음 뜯어보았을 때 감탄이 나왔습니다. 이 정도면 현대 기업의 관점에서도 공격하기 쉽지 않은 요새입니다.
광종이 이 구조를 방치하면 국왕은 영원히 호족의 바지사장으로 전락합니다. 그래서 광종은 이 재무제표를 체계적으로 부수기로 결심합니다. 자산을 지우고, 수익 구조를 무너뜨리고, 현금의 물줄기를 바꾸는 세 단계의 공격. 첫 번째 타깃은 호족들의 대차대조표였습니다.
기업의 건강을 진단할 때 제일 먼저 보는 서류가 대차대조표(재무상태표)입니다. 이 회사가 뭘 가지고 있고, 빚은 얼마이며, 순수하게 자기 돈은 얼마인지를 한눈에 보여주는 엑스레이 사진과 같습니다.
구조는 간단합니다. 왼쪽에 '자산'(가진 것)이 있고, 오른쪽에 '부채'(남에게 진 빚)와 '자기자본'(진짜 내 돈)이 있습니다. 이 양쪽은 반드시 같아야 합니다. 자산 = 부채 + 자기자본. 이것이 회계의 기본 공식입니다.
대차대조표를 무너뜨리려면 한 가지 도구가 필요합니다. 감액차손(손상차손, Impairment Charge)이라는 개념입니다. 이름은 어렵지만 원리는 간단합니다. 내가 1억에 산 기계가 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이 기계로 만든 제품이 세상에서 팔리지 않게 되었다고 합시다. 그러면 이 기계의 실제 가치는 1억이 아니라 0원에 가까워집니다. 이때 장부에서 가치 하락분을 손실로 인정하고 자산 금액을 깎아내리는 것, 그것이 감액차손입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월가의 금융회사들이 줄줄이 도산한 것도, 보유하고 있던 파생상품의 가치가 폭락하면서 이 감액차손이 눈덩이처럼 불어난 것이 원인이었습니다.
956년, 광종은 노비안검법을 전격 실시합니다. 억울하게 노비가 된 자들을 전수 조사하여 양인으로 해방시키는 법안입니다.
이것을 대차대조표의 기본 공식에 대입해 봅니다. 호족의 장부 왼쪽(자산)에서 미래의 돈을 벌어다 주던 핵심 자산 항목, 즉 노비의 법적 소유권이 일거에 무효화됩니다. 장부에 잡혀 있던 자산의 가치가 하루아침에 0원으로 감액차손 처리된 것과 같습니다.
왼쪽(자산)이 대규모로 증발하면, 오른쪽의 부채는 그대로 남아 있으니 공식을 맞추기 위해 '자기자본'(진짜 내 돈)이 곤두박질칩니다. 호족들이 순식간에 빚더미에 올라앉게 된 셈입니다. 핵심 자산이 사라지니 농장에서 나오던 수입이 말라붙고, 사병을 유지할 경제력도 연쇄적으로 무너집니다.
광종은 군대를 동원한 전면전 없이, 법률이라는 연필 한 자루로 장부의 핵심 자산 항목을 지워버림으로써 경쟁 파벌의 경제적 기반을 무너뜨렸습니다. 물론 현대 기업에서 감액차손은 시장 가치 하락이나 기술 진부화 같은 객관적 경제 요인으로 발생하는 반면, 광종의 조치는 시장의 변화 때문이 아니라 CEO가 국가 권력을 휘둘러 경쟁자의 자산을 인위적으로 0원으로 만든 정치적 행위였습니다. 자연재해로 공장이 무너진 것이 아니라, CEO가 직접 경쟁사의 공장에 불을 지른 격입니다.
대차대조표가 특정 시점의 스냅사진이라면, 손익계산서는 일정 기간 동안 얼마를 벌고 얼마를 썼는지를 보여주는 동영상입니다. 광종은 이 동영상의 내용도 바꿔놓습니다.
원가 우위(Cost Leadership)란 경쟁자보다 압도적으로 낮은 비용으로 물건을 만들어 초과 이윤을 누리는 전략을 뜻합니다. 같은 쌀 한 가마를 생산하는데, A 농장은 인건비가 0원이고 B 농장은 품삯을 줘야 한다면 A 농장의 이익률은 B를 압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노비안검법 이전의 호족이 바로 이 A 농장에 해당합니다.
원가관리회계에서는 생산량에 비례해 늘어나는 비용을 '변동원가', 생산량과 무관하게 일정하게 나가는 비용을 '고정원가'라 부릅니다. 호족의 노비 노동력은 곡물을 1가마 더 생산한다고 임금이 추가로 나가지 않으니 변동원가가 사실상 0원입니다. 매출에서 변동원가를 빼고 남는 돈, 즉 공헌이익이 매출과 거의 같아지는 극단적 구조입니다. 손익분기점만 넘기면 추가 수확량이 통째로 호족의 순이익으로 전환되는, 현대 경영자가 보면 침을 흘릴 만한 수익 모델이었습니다.
노비가 양인으로 해방되면서 이 구조가 뿌리째 흔들립니다.
남은 토지를 경작하려면 이제 품삯을 주고 양인을 고용하거나, 수확량의 절반을 소작료로 나눠야 합니다. 예전에는 0원이던 인건비가 정상 시장 가격으로 뛰어오른 것입니다. 회계 용어로 이것을 '대체원가의 급증'이라 합니다. 원래 공짜로 쓰던 자원을 잃어버렸을 때, 그것을 시장에서 다시 구하는 데 드는 값이 대체원가(Replacement Cost)입니다.
변동원가가 급증하면 공헌이익은 쪼그라듭니다. 호족들은 가문의 체면을 유지하고 사병을 먹여 살리는 데 막대한 고정 비용을 쓰고 있었는데, 쪼그라든 공헌이익으로는 이를 감당할 수 없게 됩니다. 직원 월급이 갑자기 0원에서 정상 수준으로 뛰면서, 장사를 하면 할수록 적자가 나는 구조가 된 것입니다.
이것을 영업레버리지(Operating Leverage)의 역습이라 부릅니다. 고정 비용 비중이 높은 조직은 잘 나갈 때는 이익이 폭발적으로 늘지만, 원가 구조가 무너지면 손실도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납니다. 막대한 토지와 가솔을 유지해야 하는 전형적인 고정비형 조직이었던 호족들은 노동력 상실이라는 한 번의 충격으로 심각한 적자 늪에 빠졌습니다.
다만 호족이 이것 때문에 완전히 파산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노동력은 잃었지만 토지는 여전히 호족의 소유였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직접 농사짓는 방식을 버리고, 해방된 양인에게 땅을 빌려주며 소작료를 받는 임대업으로 전환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현대로 치면 제조업 사장이 공장 문을 닫고 건물 임대를 시작한 격. 수익률은 뚝 떨어졌겠지만, 땅이 있는 한 완전히 망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결국 호족의 진짜 힘은 노비가 아니라 땅이었을 수도 있다는 점에서, 광종의 공격이 근본을 건드렸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여지가 있습니다.
자산을 지우고 수익 구조를 무너뜨린 데 이어, 광종의 칼날은 재무의 세 번째 축으로 향합니다. 돈이 실제로 어디서 어디로 흘러가느냐, 현금흐름입니다.
지하경제라는 말을 들어 보셨을 겁니다. 세무 당국의 레이더에 포착되지 않아 세금이 붙지 않는 숨은 경제활동, 신고되지 않은 현금 거래, 장부 밖으로 빠져나간 돈. 2001년 미국을 뒤흔든 엔론 사태가 대표적입니다. 엔론 경영진은 페이퍼 컴퍼니를 만들어 막대한 빚과 자산을 공식 장부에서 빼돌렸고, 이 '장부 밖 자산(부외 자산)'이 드러나면서 회사가 한순간에 무너졌습니다.
고려 초기의 호족들도 이런 부외 자산을 운용하고 있었습니다. 사노비는 국가에 세금을 내지 않고 군역도 지지 않는 사유재산이었으니, 이들이 만들어내는 곡물과 노동력은 국가의 호적이나 과세 대장에 전혀 잡히지 않는 거대한 지하경제였습니다. 국가(본사) 입장에서는 재정을 내부에서부터 좀먹는 암세포. 세무서가 거래를 파악하지 못하니 세금을 걷을 수 없고, 이 지하경제의 열매는 오직 소수 기득권의 주머니로만 향합니다.
정작 국가 전체는 만성적인 재정난에 시달리는데, 일선 지사장(호족)들은 장부 밖 거래를 통해 본사보다 더 큰 현금을 주무르고 있었습니다. 현대로 치면 가맹점이 매출의 절반을 현금으로 빼돌려 본사에 로열티를 내지 않는 상황과 비슷합니다.
노비안검법은 이 지하경제를 국가의 공식 시스템 안으로 끌어올린 양성화 조치였습니다. 법안의 이름인 '안검(按檢)' 자체가 '조사하고 검사한다'는 뜻으로, 현대의 금융실명제나 세무조사와 같은 메커니즘입니다.
국가가 직접 실사에 나서 노비들을 양인으로 해방시키자, 돈의 물줄기가 바뀝니다. 호족의 소유에서 풀려난 양인들은 이제 국가의 호적에 올라 직접 세금을 내고 군역을 집니다. 호족 개인의 금고로 몰래 향하던 현금의 파이프라인이 잘려 나가고, 그 물줄기가 국가의 조세 수입과 중앙 군사력으로 직결됩니다. 재무관리 용어로 바꾸면, 자회사(호족)들이 몰래 굴리던 장부 밖 자산을 모회사(고려 정부)가 강제 세무조사해서 국가 전체의 투명한 연결재무제표 안으로 통합시킨 작업이었습니다. 숨겨둔 통장을 전부 찾아내서 한 권의 가계부로 합쳐버린 것과 같습니다.
자산을 지우고, 수익을 무너뜨리고, 현금 물줄기를 바꿨습니다. 여기서 끝이면 좋겠지만 광종의 칼은 한 겹 더 깊이 들어갑니다. 수십 년간 국가가 모른 척 흘려보내고 있던 '보이지 않는 비용'까지 회수하겠다는 것.
기회비용(Opportunity Cost)은 경제학에서 빠지지 않는 핵심 개념입니다. 쉽게 풀면, 내가 A를 선택했기 때문에 포기해야 했던 B의 가치를 뜻합니다. 대학에 가는 대신 4년간 직장을 다녔다면 벌 수 있었을 임금, 그것이 대학 진학의 기회비용입니다. 장부에 찍히지는 않지만 의사결정을 할 때 반드시 따져봐야 하는 숨은 비용에 해당합니다.
뉴스에 종종 등장하는 조세 도피처(Tax Haven)라는 말도 여기서 연결됩니다. 세금을 매기지 않거나 극도로 낮은 세율로 자본을 끌어들여, 기업들이 마땅히 내야 할 세금을 피하게 만드는 나라나 제도를 뜻합니다. 글로벌 기업들이 카리브해의 작은 섬나라에 페이퍼 컴퍼니를 세우는 것이 전형적 사례입니다.
고려의 호족들에게 '노비'라는 신분 제도는 이 조세 도피처와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양인을 노비로 전락시키면 국가가 거둬야 할 세금과 군역이 호족의 사적 금고로 빨려 들어갑니다. 국왕의 입장에서 이 사노비 집단의 팽창은 뼈아픈 기회비용의 누적입니다. 이들이 양인으로 남아있었다면 국가는 막대한 세금을 거두고 강력한 중앙군을 키울 수 있었을 터. 광종이 즉위 초 7년간 호족들과 타협하며 노비제를 방치한 기간은, 정치적 안정을 대가로 천문학적 기회비용을 매년 지불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노비안검법은 이 조세 도피처를 국가 권력으로 폭파한 과세 정상화 조치였습니다. 장부 밖으로 사라졌던 인력들이 양인 호적에 등록되는 순간, 수십 년간 포기하고 있었던 잠재적 세수와 전투력이 실질적인 국가 자산으로 회수됩니다. 물론 현대 국가가 조세 도피처를 규제하는 것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점진적으로 진행되는 제도적 개선인 반면, 광종의 조치는 반역 세력의 자금줄을 물리적으로 끊기 위해 기획된 정치적 무기에 가까웠습니다. 현대의 '구글세 도입'과 천 년 전의 '노비 해방'은 목적지는 비슷해 보여도 운전 방식이 전혀 달랐습니다.
광종이 재무제표를 체계적으로 공격할 때, 가만히 당하고만 있는 주주는 없었습니다.
여기서 매몰원가(Sunk Cost)라는 개념이 등장합니다. 이미 써버려서 되돌릴 수 없는 돈을 말합니다. 영화표를 샀는데 영화가 재미없으면, 이미 낸 표 값이 아까워서라도 끝까지 앉아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합리적인 판단이라면, 표 값은 이미 돌려받을 수 없으니 깨끗이 잊고 나가서 남은 시간을 더 의미 있게 쓰는 것이 맞습니다. 이미 지출한 돈에 미련을 버리지 못해 잘못된 선택을 고수하는 것, 이것이 '매몰원가의 오류'입니다.
후삼국 통일 전쟁은 막대한 위험 자본이 투입된 거대한 벤처 프로젝트였습니다. 호족들은 이 합작 법인(고려)을 세우기 위해 사재를 털어 군대를 양성하고 목숨을 걸었습니다. 전리품으로 획득한 사노비는 그 투자에 대한 정당한 배당금이자 핵심 자산이었습니다. 이들에게 노비안검법은 CEO(광종)가 '당신들이 30년간 쏟아부은 전투 비용과 피를 아무런 보상 없이 매몰원가로 폐기하라'고 통보한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고려사》의 기록을 보면, 노비안검법이 반포되자 광종의 이복 누이이자 왕비인 대목왕후(大穆王后) 황보씨마저 나서서 법안 철회를 강력히 간쟁합니다. 고려 왕실 특유의 근친혼(족내혼) 관행에 따라 왕의 누이가 왕비를 겸하고 있었는데, 그 왕비가 친정(호족) 편을 들고 나온 것입니다. 광종은 이 간쟁을 싸늘하게 거절하고 뜻을 관철시켰습니다.
이때의 계산법은 이렇습니다. 호족들이 과거에 흘린 피와 공로는 이미 지나간 매몰원가. 이를 인정해주느라 사노비 집단을 방치하면 조세 기반이 무너지고 중앙군이 약해지는 재무적 파탄이 찾아옵니다. 그러니 과거의 상실감은 무시하고, 노비를 양인으로 전환했을 때 국가가 얻게 될 미래의 세수와 군역만을 계산하여 자산의 강제 상각을 밀어붙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호족의 관점에서 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그들의 반발을 매몰원가에 매달리는 비합리적 고집으로만 치부하기는 어렵습니다. 법을 소급 적용하여 초기 투자자들의 자본을 일방적으로 휴지조각으로 만든 것은 명백한 권력 남용이며, 대목왕후의 반발은 폭주하는 CEO를 견제하려던 이사회의 내부 통제 시스템이 작동한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구조조정이냐 약탈이냐, 그 경계는 천 년이 지난 지금도 모호합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광종의 구조조정은 깔끔한 성공담처럼 읽힙니다. 그러나 이야기에는 뒷장이 있습니다.
975년 광종이 죽자, 뒤를 이은 경종은 호족과 타협하며 아버지의 개혁 정책을 사실상 철회합니다. 이어 제6대 왕 성종 때인 982년, 유학자 최승로가 결정적인 상소를 올립니다. 해방된 노비들이 옛 주인을 헐뜯고 욕하며 싸움이 벌어지는 등 전통적인 신분 질서가 무너지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결국 987년, 성종은 노비환천법(奴婢還賤法)을 제정합니다. 해방된 노비 중 옛 주인을 경멸하는 자는 강제로 다시 노비로 환원하고, 양인이 되려 하면 매를 친 뒤 주인에게 돌려보내는 내용입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이 법의 실질적 배경에 대해 의미심장한 평가를 남겼습니다. 최승로가 내세운 사회 질서 논리보다는, 귀족들이 노비안검법으로 입은 인적·물적 손해를 되찾으려는 끈질긴 요구가 관철된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광종이 지워버린 장부가 31년 만에 원래대로 복원된 셈입니다.
조직생태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조직 관성(Organizational Inertia)이라 부릅니다. 한 번 형성된 권력 관계와 이해 구조를 가진 조직은, 아무리 강한 외부 충격이 가해져도 원래 상태로 돌아가려는 강력한 성향을 보인다는 것입니다. 스프링을 억지로 눌러도 손을 떼면 다시 튀어 오르는 것처럼, 기득권의 구조는 압력이 사라지면 원래 형태로 복원됩니다.
광종이라는 강력한 손이 스프링을 억지로 눌렀지만, 건국 초기부터 뿌리내린 호족 중심의 관성은 결국 깨지지 않았습니다. 기득권 이사회는 새로운 룰을 끝끝내 수용하지 않았고, 억눌려 있던 힘을 발동시켜 자신들의 핵심 자산(노비)을 되찾는 원상복구를 기어이 이뤄냅니다.
그렇다고 이것을 '결국 실패한 무리한 개혁'이라고만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노비환천법으로 법안 자체는 무력화되었지만, 광종이 호족들의 예봉을 한 번 꺾어놓았기에 고려 조정은 문신 관료 중심의 중앙집권 체제를 뼈대라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이후 과거제 출신 신진 세력과 호족 출신 관료가 결합한 문벌귀족이라는 새로운 지배층이 형성되어 고려 중기를 이끌게 됩니다. 노비안검법의 장부가 지워져도 과거제라는 장부는 살아남았고, 그 장부 위에 고려 500년의 관료제가 세워진 것입니다.
프롤로그에서 던진 문장으로 돌아갑니다.
회사가 어떤 상태인지 정확하게 보려면 회계 장부를 봐야 한다고 했습니다. 광종은 그것을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천 년 전의 인물이 장부의 급소를 이토록 정확히 찔렀다는 사실이, 이 글을 쓰는 내내 놀라웠습니다.
대차대조표에서 핵심 자산을 강제로 상각하고, 손익계산서에서 원가 우위를 박탈하며, 현금흐름에서 지하경제의 파이프라인을 끊어 본사로 돌렸습니다. 수십 년간 놓치고 있던 기회비용을 회수하고, 매몰원가에 매달리는 대주주들의 저항을 힘으로 밀어붙였습니다.
그러나 장부는 사람이 쓰는 것이고, 사람이 쓰는 장부는 사람이 되돌릴 수 있습니다. 광종이 지운 숫자를 31년 뒤 호족들이 다시 써 넣었다는 결말은, 권력 투쟁에서 장부를 바꾸는 것보다 장부를 쓰는 사람을 바꾸는 것이 더 어렵다는 교훈을 남깁니다.
천 년이 지난 오늘, 기업의 구조조정 현장에서도 같은 장면이 반복됩니다. CEO가 비효율적인 자산을 장부에서 지워도, 그 자산에 이해관계를 가진 주주들이 건재한 한 숫자는 다시 살아납니다. 광종의 사례는 장부를 바꾸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 장부를 바꾼 뒤 그것을 지켜낼 조직 문화까지 바꿔야 한다는 것을 천 년의 시차를 두고 보여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