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원 위에 펼쳐진 왈츠, 그리고 바람의 노래
Heroes of Might & Magic 시리즈는 1995년부터 시작된 턴제 전략 게임의 전설이다. 그 중에서도 1999년 3DO Company가 발매한 세 번째 작품 HOMM3는 시리즈의 정점으로 평가받는다. 발매 후 25년이 지난 지금도 활발한 멀티플레이어 대회가 열리고, 수만 명의 팬들이 여전히 이 게임을 즐긴다. 완벽한 게임 밸런스, 중독성 있는 게임플레이, 그리고 Paul Anthony Romero의 잊을 수 없는 음악. 이 모든 것이 HOMM3를 불멸의 걸작으로 만들었다.
플레이어는 영웅을 이끌고 맵을 탐험하며 자원을 수집하고, 몬스터와 싸우고, 성을 발전시켜 군대를 모집한다. 전투는 육각형 타일 위에서 펼쳐지는 전술 전투로 진행되며, 각 유닛의 특성과 마법을 활용한 전략이 승부를 가른다.
HOMM3의 가장 큰 매력은 8개의 개성 넘치는 진영이다.
Castle - 그리핀과 대천사가 수호하는 인간의 왕국. 정통 중세 판타지의 영광을 담았다.
Rampart - 엘프와 드워프, 골드 드래곤이 사는 신비로운 숲. 자연과 마법이 조화를 이룬다.
Tower - 타이탄과 마법사들이 지배하는 설원의 도시. 지식과 마법의 극한을 추구한다.
Inferno - 악마와 대악마들이 불타는 용암 위에 세운 지옥. 파괴와 혼돈의 화신들.
Necropolis - 리치와 본 드래곤이 지배하는 죽음의 도시. 언데드 군단의 불멸의 행진.
Dungeon - 미노타우르와 블랙 드래곤이 숨어있는 지하 미궁. 어둠 속의 사악한 힘.
Stronghold - 베헤모스와 오크가 뛰노는 야만의 땅. 원시적 힘과 전투의 광기.
Fortress - 히드라와 리자드맨이 지키는 늪지대. 독과 질병, 그리고 생명력의 요새.
각 진영은 고유한 건축 양식과 유닛, 그리고 무엇보다 각자만의 색깔을 완벽하게 표현하는 테마 음악을 가지고 있다. Castle의 웅장한 팡파르, Necropolis의 불길한 오르간, Stronghold의 원시적인 북소리, Dungeon의 음산한 저음부. 8개의 진영, 8개의 서로 다른 세계관이 음악으로 생생하게 살아난다.
이번에는 그 중에서도 Tower - 설원 위에 우뚝 선 마법사들의 도시, 그리고 그곳에서 흐르는 왈츠에 대한 이야기다. 언젠가는 다른 진영들의 음악도 하나씩 들여다볼 예정이지만, 오늘은 Tower Theme가 지닌 독특한 매력에 빠져보자.
Tower 진영을 선택하면, 플레이어는 눈 덮인 산맥 위에 솟은 은빛 첨탑들을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그 순간 흐르기 시작하는 Tower Theme. Tower는 Antagarich 대륙에 위치한 Bracada 왕국의 중심지다. 수도인 하늘 도시 Celeste에는 Grand Vizier Gavin Magnus가 다스리는 Castle Lambent가 떠 있다. Bracada는 과거 Bracaduun 제국의 후예로, 마법사와 연금술사들의 나라다.
HOMM3의 상징과도 같은 타이탄이 지키는 이 요새. 게임을 대표하는 이 거대한 존재는 번개를 내뿜으며 전장을 압도한다. 타이탄과 함께 나가, 마법 골렘, 대마법사들이 설원의 도시를 수호한다.
차가운 산맥의 고립은 이곳 학자들에게 오히려 축복이었다. 세속의 소음에서 벗어나 오직 진리만을 추구할 수 있는 환경. 게임 속에서 Tower는 막강한 마법의 진영으로, 체인 라이트닝과 임플로전 같은 파괴적인 주문들이 전장의 판도를 뒤바꾼다.
설원의 마법 도시를 표현하는 음악으로 왜 하필 왈츠를 선택했을까? 작곡가 Paul Anthony Romero는 Tower의 이미지를 떠올렸을 때, 차가운 산 위에 홀로 선 첨탑과 그 주위를 감도는 바람이 보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 바람의 움직임이 3박자의 왈츠 리듬과 닮아있었다. 그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왈츠는 라흐마니노프의 Symphonic Dances 2악장과 Oscar Hammerstein의 'The Sweetest Sounds'에서 직접적인 영감을 받았습니다. 저는 라흐마니노프의 오케스트레이션을 사랑합니다. 특히 어둡고 러시아적인 선율 주위를 천국을 향해 나선형으로 상승하는 목관악기들을요.
그는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이 지닌 유령같은 매력에 완전히 사로잡혔다고 고백했다.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은 저에게 너무나 매혹적(haunting)이어서 더 듣고 싶었습니다. Tower Theme는 그와 유사한 러시아풍 왈츠를 쓸 수 있는 완벽한 기회였죠."
작곡가는 목관악기들의 상승하는 움직임을 이렇게 묘사했다. "매우 높은 탑 주위를 부는 바람처럼, 마치 보이지 않는 리본들 같아요." 이 시적인 표현은 Tower Theme에서 목관악기들이 실제로 그려내는 음향의 궤적을 설명한다. 바람이 첨탑을 감싸며 올라가듯, 선율도 하늘을 향해 나선을 그리며 상승한다.
Tower Theme를 들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눈송이들이 바람에 흩날리는 모습을. 빠르고 화려하게 흐르는 피치카토 음표들은 공중에서 춤추는 눈의 움직임을 그대로 담아낸다. 현악기의 트레몰로는 차가운 공기의 떨림을, 목관악기의 상승 패시지는 바람에 휘날리는 눈보라를 연상시킨다.
이 모든 것이 3박자 왈츠의 리듬 위에서 펼쳐진다. 마치 눈송이들이 원을 그리며 내려오듯, 음악도 부드럽게 회전하며 흐른다. 차갑지만 아름답고, 고독하지만 평화로운 설원의 정경이 음악 속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다른 진영들의 음악과 비교해보면 Tower Theme의 독특함이 더욱 두드러진다. Castle의 당당한 행진곡, Stronghold의 거친 전투 리듬, Necropolis의 음울한 단조 선율. 그 사이에서 Tower의 왈츠는 마치 다른 세계에서 온 듯 우아하고 신비롭다.
HOMM3의 모든 도시 테마 중에서 Tower Theme는 가장 길고 정교한 작품이다. 하나의 왈츠 멜로디가 변주곡 형식으로 전개되며, 처음의 서정적인 분위기는 점차 용감하고 전투적인 느낌으로 변모한다. 평화로운 마법 도시가 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가는 과정을 음악이 그려낸다. 러시아적 우수와 차가운 산악의 공기가 만나 Tower만의 독특한 정서를 빚어낸다. 라단조의 조성 위에서 펼쳐지는 이 음악은, 힘을 내재한 채 조용히 흐른다. 진정한 강자의 여유처럼.
변주곡 형식은 Tower 진영의 다양성도 반영한다. 인간 마법사부터 지니, 가고일, 골렘, 나가, 그리고 거대한 타이탄까지. 서로 다른 존재들이 하나의 목적 아래 모인 이 도시. 음악은 하나의 주제와 그 변주들로 이 복잡한 구성을 아우른다.
Tower 성에 들어설 때마다 흐르는 이 음악. 영웅을 고용하고, 건물을 짓고, 유닛을 모집하는 동안 Tower Theme는 플레이어와 함께 숨 쉰다. 필드를 탐험할 때나 전투 중에는 다른 음악이 흐르지만, Tower 성으로 돌아올 때마다 이 왈츠가 우리를 맞이한다.
어떤 이들은 타이탄을 처음 고용했을 때의 전율을, 어떤 이들은 마법 길드에서 새로운 주문을 배웠던 순간을 이 음악과 함께 기억한다. 성 화면에서 건물들을 하나씩 업그레이드하며, 다음 턴의 전략을 구상하던 그 시간들.
러시아의 우수, 뮤지컬의 감성, 그리고 판타지 게임의 상상력이 한데 어우러진 Tower Theme. 이 곡을 들을 때마다 우리는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 Tower 성 안에서 마나를 계산하고, 주문서를 고르고, 타이탄 양성소를 짓던 그 순간으로.
HOMM3의 8개 진영 음악은 모두 각자의 이야기를 품고 있다. 언젠가는 Necropolis의 어둠 속으로, Rampart의 숲속으로, 혹은 Inferno의 불길 속으로 들어가 볼 예정이다. 각 진영의 음악이 어떻게 그들의 정체성을 표현하는지, Paul Anthony Romero가 어떤 영감으로 이 음악들을 만들어냈는지. 그 이야기들도 하나씩 풀어볼 시간이 올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여기까지. 설원 위의 첨탑에서 흐르는 왈츠는 여전히 계속된다. 눈송이가 춤추듯, 시간이 멈춘 듯, 영원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