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급한 기장의 외침. 빙글빙글 도는 세상. 경기 남부 상공 300미터. 내가 탄 응급의료 헬기 '아틀라스'가 추락하고 있었다. 피 냄새, 기름 냄새, 그리고 죽음의 냄새.
'환자는... 환자는 살려야 하는데.'
이송 중이던 10세 남아의 바이탈 모니터가 붉게 점멸했다. 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환자의 가슴 위로 몸을 웅크렸다. 충격에 대비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내 몸이 쿠션이 되길 바라는, 미련하고도 처절한 본능이었다.
콰아앙-!
그리고, 암전.
"...자님! 성자님!" "오오, 천지신명이시여. 부디 저희의 기도를 들으소서!"
시끄럽다. 지옥인가? 지옥치고는 향냄새가 너무 독한데. 아니, 백합 향기인가?
눈을 떴다. 차가운 수술실의 무영등도, 찌그러진 헬기 천장도 아니었다. 눈이 부실 정도로 화려한 크리스털 샹들리에가 내 머리 위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깨어나셨습니다! 3일 만에 성자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귀를 찢는 듯한 환호성. 나는 상체를 일으켰다. 푹신한 벨벳 침대. 그리고 내 주변을 둘러싼 수십 명의 흰 옷 입은 사람들. 그들의 눈빛은 정상이 아니었다. 광기. 순도 100%의 맹신.
"여기가... 어디야?"
내 목소리가 낯설었다. 거친 40대 외과 의사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기름칠한 듯 매끄러운 20대 미성의 목소리.
그때, 눈앞에 파란색 홀로그램 창이 '띠링' 소리와 함께 떠올랐다.
[시스템 동기화 완료] [플레이어: 천이환 (Lv.1)] [직업: 구원교 성자 (The Holy Son)] [현재 상태: 빙의 후유증 (전능 수치 1%)]
"...이게 뭐야?" 내가 헛것을 보나 싶어 허공을 휘젓자, 흰 정장을 입은 중년 남자가 감격에 겨운 표정으로 다가와 무릎을 꿇었다.
"성자님, 허공에 성호를 그리시는군요! 역시 죽음의 강을 건너 새로운 계시를 받아오신 겁니까!"
기억이 밀려들어왔다. 마치 다운로드되는 데이터처럼. 이 몸의 주인은 '천이환'. 대한민국을 뒤흔드는 거대 사이비 종교 '구원교(Salvation)' 교주 천무성의 외동아들. 술과 마약, 여자에 절어 살던 희대의 망나니.
그리고 나는, 대한민국 최고의 중증외상센터장이자 '미친개'로 불렸던 외과 의사 '강진혁'이었다.
'죽었는데... 사이비 교주 아들 몸에 들어왔다고? 심지어 게임 시스템까지 달고?'
상황 파악을 하기도 전, 사건이 터졌다.
"크으윽... 헉... 허억..."
기도를 올리던 신도들 무리 한가운데서 젊은 여자가 가슴을 부여잡고 쓰러졌다. "자매님!" "마귀다! 마귀가 기도를 방해하고 있어!"
주변 신도들이 쓰러진 여자를 돕기는커녕, 그녀를 둘러싸고 방언을 터트리며 소리를 질러댔다. 여자의 얼굴은 급격히 창백해지고(Cyanosis), 입술은 보라색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직업병이 발동했다. 나는 침대에서 뛰어내렸다. 비단 이불이 발에 걸리적거렸지만 거칠게 걷어찼다.
"비켜! 다들 물러서!"
내 일갈에 신도들이 홍해처럼 갈라졌다. 나는 쓰러진 여자에게 달려들어 상태를 확인했다. 목을 감싸 쥐는 손동작(Choking sign). 쌕쌕거리는 천명음(Stridor).
'기도 폐쇄. 떡이나 사탕 같은 게 걸렸어.'
"안수기도를 해야 합니다! 마귀를 쫓아내야..." 흰 정장의 남자가 여자의 머리를 누르려 했다.
"손 치워, 이 돌팔이 새끼야! 사람 죽일 셈이야?"
내 욕설에 좌중이 얼어붙었다. 고귀하신 성자님의 입에서 나온 쌍욕이라니. 하지만 알 바 아니었다. 내 눈앞에 있는 건 신도가 아니라 환자다. 그리고 지금, 골든아워가 지나가고 있다.
[돌발 퀘스트 발생!] - 퀘스트명: 첫 번째 어린 양을 구하라 - 내용: 기도 폐쇄 환자의 기도를 확보하십시오. - 제한 시간: 3분 - 실패 시: 환자 사망 및 신뢰도 하락 - 보상: 레벨 업, 스킬 [신의 손(Lv.1)] 개방
파란 창이 시야를 가렸다. 보상 따위는 나중 문제다. 나는 즉시 하임리히법을 시도하려 했다. 하지만...
"윽." 내 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천이환, 이 망할 몸뚱이는 근육이라곤 없는 약골이었다. 게다가 환자는 이미 의식을 잃어가며 축 늘어졌다. 이 상태로는 하임리히법이 불가능하다.
'방법은 하나뿐이다.' 윤상갑상막 절개술(Cricothyroidotomy). 목에 구멍을 뚫어 숨길을 낸다.
"칼! 칼 없어?" "서, 성자님? 칼이라뇨..."
나는 제단 위를 훑었다. 화려한 금촛대 옆에 놓인, 의식용으로 쓰는 작은 은장도가 보였다. 멸균? 그딴 걸 따질 시간이 없다. 나는 은장도를 집어 들고, 옆에 있던 비서의 재킷 주머니에서 볼펜을 뽑아냈다.
"이... 이 미천한 볼펜은 어찌..." "닥치고 있어!"
나는 볼펜을 분해해 대롱만 남겼다. 그리고 여자의 고개를 뒤로 젖혔다. 목 울대뼈 아래, 옴폭 들어간 곳. 윤상연골과 갑상연골 사이. 나는 단검 끝에 제단에 있던 독주(브랜디)를 부어 소독했다.
"움직이지 마. 움직이면 죽어."
나는 망설임 없이 단검을 꽂았다.
푸욱-!
"꺄아아악!" 신도들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검은 피가 솟구쳐 내 하얀 실크 잠옷을 적셨다. 비릿한 혈향이 백합 향을 덮었다. 익숙하고도 반가운, 전장의 냄새.
나는 칼날을 비틀어 구멍을 확보하고, 그 틈으로 볼펜 대롱을 쑤셔 넣었다.
"후욱-" 대롱을 통해 바람 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막혔던 숨통이 트였다. 여자의 가슴이 크게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보랏빛이던 입술에 서서히 붉은 혈색이 돌아왔다.
"하아... 살았다."
나는 바닥에 주저앉으며 피 묻은 손으로 이마를 닦았다. 긴장이 풀리자 헬기 추락의 고통인지, 빙의의 부작용인지 모를 두통이 밀려왔다.
그때, 시스템 창이 눈부시게 빛났다.
[퀘스트 완료!] [레벨이 올랐습니다! (Lv.1 -> Lv.2)] [업적 달성: '피의 세례'] [보상 스킬: <신의 손(Lv.1)>이 활성화됩니다. - 수술 시 손 떨림 보정 100%]
'손 떨림 보정? 이거 물건이네.' 외과 의사에게 이보다 더 좋은 스킬은 없다.
나는 숨을 고르며 고개를 들었다. 침묵하던 신도들이 하나둘씩 무릎을 꿇고 있었다. 공포에 질린 눈이 아니었다. 그것은 광기 어린 환희였다.
"보셨습니까? 성자님께서... 성자님께서 '성혈(聖血)'을 내어 죽은 자를 살리셨습니다!" "목을 뚫어 마귀를 쫓아내셨다!" "기적이다! 부활하신 성자님이 기적을 행하셨다!"
비서실장이라는 김 장로가 눈물을 펑펑 쏟으며 내 피 묻은 발끝에 입을 맞췄다. 나는 멍하니 그들을 내려다보았다.
'기도를 절개해서 기도를 확보한 건데... 이걸 기적이라고 부른다고?'
순간, 머릿속에 섬광 같은 아이디어가 스쳤다.
전생의 나는 '돈'이 없어서 환자를 잃었다. "예산이 없습니다, 센터장님." "헬기 띄울 기름값도 간당간당합니다." 지겹도록 들었던 병원 행정직들의 말.
그런데 여기는? 내 눈앞에 있는 헌금함에는 5만 원권 다발이 벽돌처럼 쌓여 있었다. 맹목적으로 나를 따르는 수만 명의 인력. 세무조사도 피해 간다는 종교 단체의 막대한 자금력.
만약. 이 미친 광신도 집단의 돈과 인력을 이용할 수 있다면? 대한민국, 아니 전 세계에서 가장 완벽하고 돈 걱정 없는 중증외상센터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시스템에... 돈에... 권력까지.'
나는 피 묻은 입술을 비틀어 웃었다. 사이비 교주의 아들이든, 지옥에서 온 사자든 상관없다. 환자를 살릴 수만 있다면, 나는 기꺼이 이 구역의 '메시아'가 되어주마.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피 묻은 은장도를 바닥에 툭 던지며 명령했다.
"장로." "예! 말씀만 하소서, 성자님!"
"병원 짓자."
"예...? 병원... 말씀이십니까?"
"그래. 아주 크고, 아름답고, 돈 지랄을 해도 티도 안 나는 그런 병원."
내 눈앞에 새로운 퀘스트 창이 떠올랐다.
[메인 퀘스트: 구원의 방주를 건조하라] - 목표: 외상센터 설립 (진행도 0%) - 보상: ???
이제부터 내 수술대는 이 거대한 사이비 왕국이다. 메스는 춤출 준비가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