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말씀이십니까?"
김 장로의 눈동자가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렸다. 그도 그럴 것이, 구원교의 핵심 교리는 '자연 치유'와 '기도를 통한 영생'이었다. 병원은 믿음이 부족한 자들이나 가는 불경한 곳이라 가르쳐오지 않았던가.
"성자님, 하오나 아버님께서 정하신 율법에는..."
"율법?" 나는 피 묻은 손을 들어 김 장로의 말을 끊었다. 손가락 끝에서 핏방울이 뚝, 하고 대리석 바닥으로 떨어졌다.
"방금 내가 보여준 게 율법이다."
나는 바닥에 누워 색색거리는 여신도를 턱짓으로 가리켰다. 목에는 여전히 볼펜 대롱이 꽂혀 있었다.
"저 자매, 지금 기도로 숨 쉬고 있나? 아니면 내가 뚫어놓은 구멍으로 숨 쉬고 있나?"
김 장로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팩트(Fact) 앞에서는 광신도도 할 말이 없는 법이다.
"기도로 마귀는 쫓았지만, 육체는 아직 전쟁터야. 이대로 두면 상처가 썩고, 세균이 침투한다. 마귀가 다시 들어올 틈을 주는 셈이지."
나는 짐짓 엄숙한 표정으로, 그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마귀' 타령을 섞어 의학적 소견을 내놓았다.
"그러니 저 자매를 당장 속세의 병원으로 이송해. 가서 항생제... 아니, '정화의 물'을 혈관에 주입하라고 해. 이건 성자로서의 명령이다."
"오오... 육체의 틈을 메워 마귀를 막는다니! 그런 깊은 뜻이!" 김 장로는 감동한 표정으로 무전기를 들었다. "보안팀! 엠뷸런스를 불러라! 아주 은밀하게!"
상황이 정리되자 긴장이 풀렸다. 다리에 힘이 풀려 휘청거리자 신도들이 기겁하며 달려들었다. "성자님!"
"됐어. 안내나 해."
김 장로의 부축을 받아 도착한 곳은 성자 전용 거처인 '천상관(天上館)'이었다. 이름값 한번 제대로 했다. 현관부터 깐깐한 내 눈을 의심케 할 정도로 호화로웠다. 바닥은 최고급 이탈리아 대리석, 벽에는 진품으로 보이는 명화들이 걸려 있었다.
'이 돈이면... 에크모(ECMO)가 몇 대야?'
직업병이 도졌다. 닥터 헬기 한 대 300억, 하이브리드 수술방 하나 30억. 머릿속 계산기가 미친 듯이 돌아갔다. 전생에는 헬기 기름값이 없어서 국회로 불려 다니며 굽신거렸는데, 여기는 벽지 대신 금박을 발라놓고 살고 있다니.
욕실로 들어서자 전신 거울이 나를 반겼다. 나는 피범벅이 된 실크 잠옷을 벗어던지고 거울 앞에 섰다.
"하..."
한숨이 절로 나왔다. 거울 속 남자는 잘생겼다. 너무 잘생겨서 문제였다. 희고 고운 피부, 아이돌 뺨치는 이목구비. 하지만 외과 의사의 눈으로 본 이 몸은 '부실 공사' 그 자체였다.
[경고: 근력 수치가 매우 낮습니다. (3/10)] [경고: 심폐 지구력이 부족합니다.]
시스템 창이 붉게 깜빡였다. "근육이라곤 없는 멸치라니. 이 팔뚝으로 CPR이나 제대로 하겠어?"
외상 외과는 체력전이다. 10시간 넘게 서서 뼈를 맞추고 장기를 꿰매려면, 지금 당장이라도 덤벨을 들어야 할 판이었다. 하지만 지금 더 급한 건 몸이 아니라 '장비'였다.
샤워를 마치고 나오자 김 장로가 대기하고 있었다. 나는 가운을 걸치며 소파에 앉아, 탁자 위에 놓인 포도 주스를—성혈이라 부르는—한 모금 마셨다.
"장로." "예, 성자님." "우리 교단, 돈 얼마나 있냐?"
"예?" "현금 말이야. 당장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돈."
김 장로는 3일 만에 깨어난 망나니 성자님의 급작스러운 재무 감사에 당황한 눈치였다. "공식 헌금 계좌에 약 2천억 원... 그리고 비자금으로 관리되는 현금이 5천억 원 정도 있습니다."
7천억. 나는 하마터면 주스를 뿜을 뻔했다. 경기 남부 권역외상센터 설립 예산이 얼마였더라? 몇백억 지원받으려고 보건복지부 공무원 바짓가랑이를 잡았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좋아." 나는 입꼬리를 올렸다. "그 돈, 이제부터 내가 쓴다."
"서, 성자님? 혹시 또 스포츠카를 수집하시려는..."
"아니."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김 장로의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쇼핑 목록 적어. 토씨 하나 틀리지 말고."
김 장로가 허둥지둥 수첩을 꺼냈다.
"지멘스(Siemens) 최신형 CT, MRI 각각 2대. 수술용 로봇 다빈치. 그리고 이동형 엑스레이, 초음파 기기... 최고 사양으로 싹 다 긁어와."
"네? 그, 기계들은..." "아,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거." 나는 창밖의 넓은 잔디밭을 가리켰다.
"저기 분수대 밀어버리고 헬기장(Heli-pad) 만들어. 헬기도 두 대 주문해. 기종은 아구스타웨스트랜드 AW-139. 내가 타던... 아니, 제일 튼튼한 놈으로."
김 장로의 턱이 빠질 듯 벌어졌다. "성자님! 저희 교단은 기계 문명을 배척하고 기도의 힘을..."
"언제까지 구식으로 갈 거야?" 내가 탁자를 쾅 내리치자 김 장로가 움찔했다.
"오늘 내가 보여준 기적이 뭐였지? 피를 보고, 살을 뚫었어. 그게 나의 방식이다. 신께서 나에게 '현대 의학'이라는 새로운 권능을 내리셨단 말이다."
나는 김 장로의 어깨를 툭툭 쳤다. "생각해 봐. 우리 신도들이 아프면 어디로 가지? 일반 병원에 가서 '기도하다 다쳤어요' 하면 미친 사람 취급받잖아. 우리만의 병원, 우리만의 성지(聖地)가 필요해."
"아..." "거기서 내가 기적을 행할 거야. 죽어가는 사람을 살려내면, 헌금은 지금보다 더 쏟아지겠지. 안 그래?"
김 장로의 눈빛이 탐욕으로 번들거렸다. 신앙심보다는 돈 냄새를 더 잘 맡는 위인이었다. "역시... 유학 다녀오시더니 경영 마인드가 남다르십니다! 성자님의 혜안에 무릎을 탁 칩니다!"
(유학은 개뿔, 미국 학회 갔다가 햄버거만 먹고 왔는데.) 나는 속으로 코웃음을 쳤지만 겉으로는 근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하드웨어는 해결됐고. 이제 소프트웨어를 깔아야지."
나는 미리 준비해둔 메모지를 김 장로에게 건넸다. "여기 적힌 사람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스카우트해 와."
[한국대병원 외상 외과 펠로우 정혁] [마취과 전문의 이지영] [수술실 수간호사 박미선]
전생에 나와 함께 지옥 같은 외상센터를 지켰던 전우들. 내가 죽고 나서 찬밥 신세가 되었을 게 뻔한, 실력은 확실하지만 성격 더러운 내 새끼들.
"돈은 달라는 대로 다 줘. 연봉 5배? 10배? 상관없어. 그리고..." 나는 잠시 뜸을 들였다.
"그들이 지금 병원에서 겪고 있는 골치 아픈 문제들—악성 민원, 징계 위기, 빚보증 같은 거. 우리 교단 법무팀이랑 '해결사'들 동원해서 싹 다 정리해 준다고 해."
"납치해 올까요?" 김 장로가 진지하게 물었다. 역시 이놈들은 사고방식이 글러 먹었다.
"정중하게 모셔와. 대신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해서."
"알겠습니다! 즉시 '천명 리쿠르팅 팀'을 가동하겠습니다!"
김 장로가 군대처럼 거수경례를 하고 방을 나갔다. 홀로 남은 나는 소파 깊숙이 몸을 묻었다. 창밖으로 붉은 노을이 지고 있었다. 전생에 헬기에서 바라보던 그 노을과 같았다.
'기다려라.'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이 더러운 돈으로, 세상에서 가장 완벽하고 깨끗한 수술방을 만들어 줄 테니까.'
그때, 테이블 위의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화면에 뜬 발신자 이름을 보자 등골이 서늘해졌다.
[아버지 (100일 기도 중)]
교주 천무성. 이 몸의 친부이자, 사이비 왕국의 주인. 나는 심호흡을 하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놈을 속여야 내가 산다.
"네, 아버지."
[이환아.]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소름 끼칠 정도로 인자했다. [네가... 기적을 행했다지?]
나는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가장 '효자'스럽고 가장 '광신도'다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기적이 아닙니다, 아버지. 그저... 아버지가 물려주신 이 '성스러운 피'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입니다."
[피라...] 낮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래. 이제야 깨달음을 얻었구나. 의술도 결국은 사람을 낚는 그물이지. 마음껏 펼쳐보거라.]
목소리가 급격히 차가워졌다. [단, 그 그물에 걸린 고기는 모두 나의 것이다. 명심해라.]
뚝. 전화가 끊어졌다.
나는 꺼진 화면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글쎄요. 그 고기들이 당신 뜻대로 움직여 줄까요?"
나는 다시 메모지를 꺼내 붉은 펜으로 덧붙여 썼다.
[추가 주문: 수술실 CCTV 24시간 녹화 장비 (내 전용 서버로 백업)]
전쟁은 이미 시작됐다. 메스는 춤출 준비가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