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joy everyday like this! | 몰디브 #1
여행을 갈 때마다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 그중에서도 타지에 살고 있는 외국인을 볼 때면 그들은 어떻게 이 곳에 오게 되었을까. 왜 이 곳을 정착지로 선택했을까. 그런 사연들이 늘 궁금했어. 어쩌면 이 곳을 떠나 낯선 곳에서 살아보고 싶었던 나는 그들에게서 정답을 찾고 싶었던 건지도 몰라.
사실 몰디브로 떠나기로 한 건 정말 즉흥적이었어. 크로아티아 여행을 다녀온 지 6개월 만이었지. 그 해 여름 매튜와 난 바리스타 자격증을 딴 후 평일엔 회사로 주말엔 카페로 출근하는 이중생활을 해보기로 했어. 그런데 카페일을 시작한 지 2주밖에 되지 않았을 때 매튜가 갑작스레 미국출장을 떠나게 된 거야.
난 한국에서 회사와 카페로 출근하며 4개월이나 혼자 이중생활을 해야 했고 여름의 끝에 헤어진 우리가 다시 만났을 땐 겨울이 되어 있었어. 그렇게 분주한 일상을 살다 몇 달 만에 만난 우리에겐 휴식이 필요했어. 그래서 쉼을 위한 여행을 떠나기로 한거야.
어디를 갈까 결정하는 것은 어려웠지만 쉼이라는 단어의 끝에 몰디브를 떠올리는 건 어렵지 않았어. 그렇게 크리스마스를 이틀 앞둔 겨울 몰디브행 비행기를 탔어. 긴 비행이었지만 책 속에서만 봤던 그림 같은 풍경을 떠올리기만 해도 설렘으로 가슴이 터질 것 같았어.
12시간의 비행은 생각보다 피곤한 일이었지만 목적지는 기다림 마저도 기꺼이 즐길 수 있는 몰디브였지. 드디어 말레 공항에 내려 수상보트를 타고 20여분을 달려 진짜 몰디브에 닿았어. 그리고 그곳에 네가 있었어. 올후밸리에 살고 있는 유일한 중국인.
널 보자마자 생각했어. 넌 어떻게 이 곳에 오게 되었을까. 그리고 나른했던 어느 오후 너의 이야길 들을 수 있었지. 너의 중국 이름은 Wang Fei라고 했어. 고향이 우한이라는 얘기에 너와 같은 곳에서 태어난 내 친구의 이야기를 하기도 했었지.
그때 스물두 살이었던 너는 중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몰디브에 온 지 3개월이 되었다고 했어. 한 가지 일에 얽매이기엔 어린 나이라 생각했다는 넌 늘 바깥세상이 궁금했었다고 했지.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을까. 스스로가 원하는 삶에 대해 생각하고 그것을 선택한 네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어.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고 하지. 막연히 해외에서 일하고 싶다고 생각하던 그때 네 친구 중에 말레에서 일하고 있던 친구가 올후밸리 리조트를 소개해 주어 이 곳으로 오게 되었다고 했지. 중국인 투숙객이 점차 늘고 있던 그때 영어와 중국어를 모두 할 수 있는 네겐 더없이 좋은 기회였을거야.
이토록 아름다운 섬에서 산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부럽다고 이야기하는 내게 네가 말했지. "사실 처음 몰디브에 왔을 땐 행복하지 않았어. 여기서 일한 것은 나에게 첫 번째 해외 경험이었고, 한 번에 여러 외국인들과 일하는 것도 정말 낯설었어. 하지만 조금씩 익숙해지고 스스로 이곳에 마음을 열고 있음을 느꼈어. 그러면서 조금씩 발전하고 나아질 수 있었던 거야. 어쩌면 몰디브의 아름다운 풍경보다 그런 과정 속에 스스로 성장했다는 사실 자체가 날 행복하게 한 것 같아."
그래, 얼마나 낯설었을까? 그때 넌 겨우 스물둘이었는데. 나도 너처럼 해외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 또 살아보고 싶다는 꿈을 꾸었었어. 하지만 난 실천에 옮기지 못했어. 익숙한 곳을 떠나 낯선 곳으로 홀로 떠난다는 것이 두려웠지. 그런데 넌 그걸 해냈던 거야. 너의 이야기를 들으며 매튜와 난 감탄사를 연발했었지. 정말 대단하다고 말이야.
그 꿈 같았던 섬에서 우리가 뭘 해야 후회하지 않겠냐고 물었을 때 네가 그랬지. 스쿠버다이빙을 꼭 해보라고. 또 돌고래를 보러 떠나는 것도 정말 특별한 경험이 될 거라고 했어. 돌고래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타는 듯한 노을을 보는 것과 샌드뱅크를 가는 일도 빼먹지 말아야 한다고 말해 주었지.
우리는 착한 학생들처럼 네가 내준 숙제를 정말 충실히 해나갔어. 네 말대로 몰디브에서 한 스쿠버다이빙은 정말 최고였어. 물고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우리였지만 그림 같은 바닷속에서 산호초 사이를 헤엄치는 물고기를 바라보는 일은 정말 환상적이었지.
샌드뱅크로 가는 길 일부러 먼 길을 돌아갔음에도 불구하고 돌고래는 만나지 못했지만 그래서 더 좋았어. 돌고래를 만나기 위해서라도 꼭 다시 몰디브에 오자고 매튜와 이야기했어. 돌고래 덕분에 그곳에 다시 가야 할 핑계를 얻게된 셈이었지.
바람에 움직인 작은 모래들이 쌓여 만들어진 육지, 샌드뱅크는 정말 엄청났어. 미구엘을 따라 작은 요트를 타고 바다 한가운데로 계속해서 들어가 30여분을 달렸을까. "여기야" 담담하게 말하는 미구엘의 목소리에 샌드뱅크에 대한 자부심이 잔뜩 실려있었어. 바다 한가운데 거짓말처럼 모래로 만들어진 작은 땅이 있었어. 발이 닿으면 꼭 푹 꺼질 것만 같아서 몇 번이나 물어보았어. "정말 내려도 돼?" 한 발로 먼저 땅을 몇 번이고 디뎌본 후에야 두 발을 내릴 수 있었지.
우리가 바다 위에 서 있었어. 네 말을 듣길 잘했다고 생각했어. 바다와 하늘이 만날 듯 푸른 배경 위로 펼쳐진 화이트 비치. 바다로 둘러싸인 아주 작은 모래섬에서 꿈같은 풍경에 셔터를 계속해서 눌렀지만 그림 같은 풍경을 다 담을 순 없었어. 그래서 결국 카메라를 내려두고 열심히 눈으로 풍경을 기억하려 애썼지.
몰디브를 무어라 정의할 수 있을까? 넌 몰디브를 쉼이라 정의하고 싶다고 했지. 중국은 너무 바쁘고 어딜 가든 사람들이 북적거려 서로를 돌볼 시간이 없다면서 말이야. 그러면서 덧붙였어. 몰디브는 그런 분주한 일상을 잊기에 최적의 장소라고. 그러고 보니 우리도 쉼을 위한 여행지로 몰디브를 찾은거였어. 그래 네 말처럼 몰디브에서의 쉼은 완벽했어.
앞으로 무얼 할 계획이냐고 묻던 내게 넌 확신에 찬 눈으로 이야기했지. 올후밸리에서 승진을 하게 된다면 여기 남아 계속 일하며 그곳을 좀 더 나은 리조트로 만드는 데 도움을 주고 싶다고. 하지만 네가 그곳에서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고 느끼거나 다른 더 흥미 있는 일을 발견하게 되면 그곳으로 갈 거라고 했지. 미국이 될 수도 있고, 유럽이 될 수도 있겠다고 말이야. 적어도 스물다섯이 되기 전엔 더 많은 나라에서 더 많이 보고, 듣고, 느끼며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고 했어.
이제 너는 스물일곱이 되었겠구나. 페이스북을 통해 전해오는 너의 안부를 보면 넌 몰디브에서 여전히 성장하고 있음을 느껴. 네가 여전히 몰디브를 사랑하고 그곳에서의 일에 확신을 느끼고 있다는 걸 너의 표정에서 알 수 있었어.
우리? 우린 그동안 정말 많은 변화들을 맞이했어. 가장 큰 변화는 매튜와 나를 닮은 아이가 태어난 일이겠지. 처음 페이스북에 아이 사진을 올렸을 때 네가 제일 먼저 댓글을 달았었잖아. 그때 텍스트 안에 담긴 너의 놀라움이 여기까지 전해져서 매튜랑 한참을 웃었었어. 그 아이가 벌써 다섯 살이 되었으니 시간 정말 빠르지?
난 언제라도 일상을 뒤로하고 낯선 곳으로 떠나는 것을 꿈꿔왔어. 정말 영원히 말이야. 그런데 그러진 못했어. 아이가 태어나곤 더욱 그랬던 것 같아. 그렇지만 일상을 살아간다는 것 또한 삶의 한 부분임을 인정하게 되었지. 그리고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소소한 행복을 찾으려고 노력해왔어. 그리고 그런 일상에서 이따금 낯선 곳으로 떠나는 잠깐의 여행을 즐겼어.
넌 여행을 ‘새로운 발견’이라고 했지. 여행을 가서, 그곳의 낯선 풍경들과 그 지역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을 발견할 수도 있고, 그들이 어떻게 일하고, 어떻게 사람들을 대하는지, 어떻게 미소 짓는지를 볼 수 있어 흥미롭다고 했어. 그런 여행 속에서 스스로를 재발견할 수 있는 사색의 시간을 가질 수 있기에 여행은 늘 매력적인 것 같다고 말했지. 그리고 덧붙이던 한마디를 기억해. “See more, and then you can know more”
나는 너를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었어. 그래서 네 삶의 메시지는 무엇이냐고 물었었지. 그때 네가 한 말 기억나? “Enjoy everyday like this” 지금처럼, 늘, 매일매일을 즐기자! 이게 네 삶의 모토라고 했어. 네 말이 맞았어. 삶은 늘 흐르고 그때 몰디브에서의 시간처럼 우리는 매일의 행복을 놓치지 않게 꼭 붙잡아야만 했어. 그건 어쩌면 앞으로도 계속해나가야 할 우리 삶의 가장 어려운 숙제일지도 몰라.
피오나, 넌 지금 행복하니? 네 자신을 위해 너는 좀 더 깊은 생각을 하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했었지. 경제력도 갖추어야 엄마와 여동생을 비롯한 가족들을 돌볼 수 있다며 어른다운 모습을 보였던 스물두 살의 너.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생의 꿈들을 하나씩 이루어 가는 것이라고 말하던 그때 너의 눈빛을 기억해.
스물두 살의 너는 지금 생각해도 참 멋있었어. 우리 언제 또다시 마주할 수 있을까? 겨우 5년 이란 시간 동안 많은 것이 변했지만 다시 너를 만난다면 꿈같았던 몰디브에서 우리가 함께 나눈 대화처럼 지난온 시간과 내일에 대해 또 많은 이야길 나누고 싶어.
여행을 갈 때마다 이 여행의 끝은 어디일까 생각해. 이 곳은 우리에게 무엇으로 남을까. 생각해보니 몰디브는 우리에게 참 많은 것을 알려준 곳이었어. 앞만 보고 달리면 주변을 돌아보지 못한다는 걸. 때로는 쉼이 필요하다는 걸 몰디브가 알려주었지.
여행을 마치고 몰디브를 떠올리면 아름다운 인도양과 그림 같은 수상가옥 고요한 바람이 떠올랐지만 무엇보다 이따금 네가 보고싶었어. 다시 돌아가 그동안 어떻게 지냈느냐며 지나온 일상을 나눌 기회가 있을까. 다시 몰디브를 찾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언젠가 널 다시 만나면 몰디브를 떠올리면 네가 생각났다고 그래서 고마웠다고 꼭 이야기해주고 싶어.
몰디브에서 남긴 기억 속에 네가 있다는 것에 감사해. 짧은 시간이었지만 아침 저녁으로 너와 나누었던 인사가 그 곳에서의 시간을 일상의 한 부분처럼 편안하게 해주었어. 언젠가 한국을 찾을 기회가 있다면 그 때 꼭 연락해 달라고 했던 것 기억해? 네가 우리에게 그랬듯 우리 또한 네게 가끔 떠올리고 싶은 즐거운 추억이었길 바래. 언제나 너의 행복과 건강을 바라며. 그리운 마음 담아 인사해. 안녕. 피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