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부산 좀 다녀올게요_1

2019년 1월 11일 다녀온 온천장, 두실

by 볼리
책과 커피가 있는 곳을 좋아합니다. '요 며칠 어디 좀 다녀올게요' 시리즈는 그런 여행의 기록을 남겨볼까 합니다. 모든 기록은 주관적이며 때로는 실제보다 감상적일 수 있습니다. 필름카메라 효과를 볼 수 있는 'Huji' 앱으로 촬영했습니다.


오전 7시 56분 부산행 KTX를 탔다


1년 5개월 만의 부산행이었다. 아이를 낳고 처음 떨어져 있는 시간도 처음이었다. 마음 속 과제를 하기 위해 온 것이지만 혼자만의 시간도 필요했다. 책 한권을 다 읽고도 한 참 후에 부산역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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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 부산 냄새가 나지 않았다. 예전에는 코 끝 가득 비릿한 바다냄새가 났던 것 같은데, 여전한 건 비둘기 뿐이었다. 지하철 보관함 앞 지팡이를 짚고 구걸하는 한 할머니를 애써 외면하고 노포동행 지하철을 탔다. 열차를 기다리며 주머니 속 손가락으로 신용카드 IC칩을 만지작거렸다. 서울보다 폭이 좁은 지하철엔 꽤 사람이 많았다. 몇 구역 지나지 않아 자리가 났고 앉은 뒤 엄마에게 카톡을 보냈다.


엄마, 12시쯤 온천장역에서 보면 될 것 같아. 천천히 나와.


예상대로 엄마는 30분 일찍 나와 온천장역 3번 출입구에서 날 기다리고 있었다. 멀리서 엄마가 보였는데 걸려온 전화를 받느라 손짓만 건낼 뿐이었다. 곧 윤우의 어린이집 신청을 준비하라는 전화였다. 서둘러 통화를 마치고 엄마의 팔짱을 끼고 온천장 골목을 들어섰다.



손칼짜장면에 고추가루를 뿌려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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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중에도 온천장 칼국수 골목의 손칼짜장면은 생각이 났다. 되직한 짜장 소스를 비비면서 집어먹는 감자는 식욕을 돋구었다. 엄마는 투박하게 빻은 고추가루를 뿌려주었다. 한 그릇에 오 천원. 예전에 비해 가격이 많이 올랐다. 1979년부터 같은 자리에서 같은 메뉴로 오랫동안 영업을 한 곳. 비슷한 곳이 많이 생겨 그런 집도 어느새 20년 가까이 되었다. 그래도 늘 가는 집만 가게 되는 참 이상한 곳이다. 손칼짜장면 세 젓가락에 칼국수 국물이 딱 좋다. 사실 내게 칼국수 국물이 조금 짠 편이지만 온천을 하기 전엔 좀 짜게 먹어둬야 어지럽지 않다.


세신과 오이마사지의 호사를 누리며

어떤 목욕탕을 갈지는 엄마가 정한다. 나름의 기준이 있다. 요즘 이 목욕탕이 물이 더 좋더라. 사람은 어디가 더 많더라, 목욕값이 그새 또 올랐더라, 세신사 아줌마의 친절함까지도 고려 된다. 이번 엄마의 목욕탕픽은 '녹천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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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욕탕에 들어서자마자 세신사 할머니에게 서울에서 온 딸의 세신과 오이마사지 예약을 하신다. 30분은 기다려야 하지만 그 동안 따뜻한 아니 뜨거운 온천 물에 담그는 게 우선이다. 미뤄둔 집안의 이야기와 아주 오랜 기억에만 머무른 옛 친구들의 지금 사는 이야기까지 한참을 꺼내며 엄마와 수다를 떤다. 피크닉을 사러 잠시 나왔는데 이제 입고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하릴 없이 미에로 화이바를 사서 온탕에서 엄마와 나눠 마셨다.


고등학생 딸인가?


엄마의 단골 세신사 할머니께서 물을 끼얹으며 말하신다. 배꼽 아래 선명한 임신선을 못 보신게 아닐까 싶다. 애기 엄마라고 하시니 친정 엄마와 푹 쉬었다 가라며 오이마사지를 얼굴에 올리셨다. 세신을 하는 동안 축 쳐진 내 몸을 느껴본다. 베드 위에 세신사의 손길대로 휘청이는 내 몸은 얼마나 지쳐있는 것일까. 엄마의 세신까지 다 마칠 때까지 목욕탕 나무 의자에 앉아 거울 속 내 모습을 한참동안 바라본다. 예쁘지 않은 내 몸을 바라보는 일은 달갑지만은 않다. 트레이너에게 배운 날개뼈 운동을 해보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떡오뎅이 그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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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늘 목욕 후 식혜를 사 드신다. 난 부산에만 있는 떡오뎅이 너무 먹고 싶었다. 왜 서울에는 없을까란 아쉬움과 막상 서울에 있어서 안 사먹을것 같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간장소스를 발라서 먹는 작은 즐거움과 엄마가 남긴 식혜의 조합에 놀라움을 느껴본다.


목욕탕 골목에 이어진 온천시장은 또 다른 볼거리가 많다. 튀김냄새, 생선냄새, 반찬냄새 온갖 냄새가 가득한 조용한 시장골목을 들어선다. 외할머니가 자주 가셨던 그 시장을 이제 엄마가 가신다.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선 외할머니집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다. 먼 여행을 떠나기전 돌아가신 외할머니의 얼굴이 점점 기억이 나질 않는다. 외할머니도 이 곳에서 생선을 사고, 채소를 사고, 국수 한 그릇을 드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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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속에는 늘 할머니만 가득한 것 같다. 20년 전에도 할머니가 생선을 팔고 계셨던 것 같은데 지금도 할머니가 생선을 팔고 있는 느낌. 마트에서 반듯하게 다듬어진 생선만 사는 내게 꼬리 지느러미로 뚝뚝 떨어지는 바닷물이 정겹다.



학창시절 살아온 두실의 추억

중3때부터 두실에서 살았다. 고3때까지 살았으니 가장 불안하고 가장 치열했던 내 학창시절을 보낸 곳이다. 아주 좁은 방이란 뜻을 가진 두실이란 단어를 들을 때면 내 몸집보다 큰 교육을 입고 스쿨버스를 기다리던 17살의 내가 그려진다. 지금은 여동생의 오피스텔이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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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유기견을 입양하신 분의 이야기를 읽다가 그 강아지의 이름이 두실이란걸 알게 되었다. 두실역에서 배회하던 아이라서 그렇게 이름을 짓게 되었다고. 늘 가난하고 촌스러운 것 같았던 두실도 누군가에겐 소중한 인연을 만나게 해준 곳이 되었다.



모듬회일까 모둠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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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함께 남산역까지 걸었다. 자주 가던 남해횟집에서 모둠회를 시켰다. 순간 모둠회가 맞는 표현인지 모듬회가 맞는 표현인지 헷갈렸다. 둘 다 올바른 표현이 아니란 네이버 지식백과 사전의 설명이 더 혼란스럽게 했다. 그릇밖으로 나오려는 산낙지를, 싱싱하다 못해 생생한 느낌의 멍게도 먹었다. 식탁 위의 부산을 마주한 느낌이랄까. 소주 한 잔을 할까 하다 맥주를 시켰다. 같이 소주 한 잔할 아버지가 없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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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패딩을 입은 대학생 두 명이 횟집으로 들어왔다. 대선소주를 주문하면 숙취해소제를 주는 마케팅을 하고 있었다. 오늘은 소주를 못 먹는다고 하자 대선이라고 크게 쓰여진 핫팩을 건낸다. 보글거리는 매운탕이 나왔지만 이미 배가 불렀다. 여동생의 오피스텔로 걸으며 깜깜해진 밤하늘을 보았다. 너무 어두운 것 같았다. 보행기를 타고 있는 아들의 사진이 톡으로 도착했다. 아들아 미안, 엄마 요 며칠 부산 좀 다녀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