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월 14일에 다녀온 영도, 광안
책과 커피가 있는 곳을 좋아합니다. '요 며칠 어디 좀 다녀올게요' 시리즈는 그런 여행의 기록을 남겨볼까 합니다. 모든 기록은 주관적이며 때로는 실제보다 감상적일 수 있습니다. 필름카메라 효과를 볼 수 있는 'Huji' 앱으로 촬영했습니다.
부산의 뜨는 곳, 영아일랜드
예전에 영도 출신이라면 좀 무시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만큼 가난하고 힘겨웠던 동네였다. 지역아동센터 담당을 할 때 방문했던 영도의 분위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 영도가 젊은 사업가가 들어오면서 새로운 분위기가 있다고 했다. 이번 부산 여행 중 가장 기대가 되었던 곳도 바로 영도였다. 엄마와 쏘카를 타고 영도를 들어섰다.
해산물을 좋아하는 나는 회도 좋아하고 숙회도 좋아한다. 엄마에게 통문어숙회를 보여드리고 싶어 영도의 한 허름한 식당에 들어갔다. 손님은 아침부터 소주와 함께 식사를 하고 계신 두 어르신과 우리 테이블 둘 뿐이었다. 3만원짜리 문어숙회를 시키니 푸짐한 한 상이 금새 차려진다. 미역국은 기본, 맑은 매운탕도 서비스로 주었다. 두툼한 문어 두 마리가 통째로 익힌 숙회가 나타났다.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돌고 기분이 좋아졌다.
익숙한 솜씨로 문어의 몸통과 다리를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주셨다. 다양한 양념장과 함께 먹는 즐거움이 느껴졌다. 어릴 때 명절이면 문어를 차례상에 올리는 일이 제일 기대가 되었다. 그만큼 비싸고 귀한 문어졌다. 큰어머니는 문어조림을 잘 하셨는데, 명절 후 도시락 반찬으로 이 문어조림을 들고 가는 날은 괜시리 어깨가 한껏 올라가곤 했다. 어쩌면 나의 힐링푸드인 문어숙회를 깔끔히 비우고 바다를 향했다.
영화 <변호인> 촬영지, 흰여울마을
흰여울마을은 주차할 곳이 없다. 주변 빌라에 사는 분께 주차비 명목으로 삼천원을 쥐어 드리고 양해를 구했다. 다행히 평일이라 입주민 차가 거의 없어서 가능한 일인 것 같았다. 엄마와 함께 좁은 계단길을 내려오니 영도 바다가 한 눈에 보인다. 그리고 발견한 영화 <변호인> 촬영지. 영화의 명대사가 입구부터 적혀있다. 변호사'님'과 '내' 쫌 도와도에 자식을 찾고 싶은 엄마의 간절함이 느껴졌다.
이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유난히 맑은 날에 영도를 와서인지 바닷바람이 상쾌했다. 좁은 길을 따라 손목서가를 찾아 나섰다. 어쩌면 내가 가장 가고 싶었던 곳은 여기였을 것이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바다를 바라보는 작은 책방이 눈에 들어왔다. 작은 앞마당에 놓인 테이블과 의자로 발걸음을 향하게 했다.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많은 사람이 책방의 곳곳에 자리했다. 책방으로 들어서니 커피향이 났다. 윤우에게 줄 동화책 한 권과 커피 두 잔을 주문하며 물었다.
"왜 책방 이름이 손목서가에요?"
"아.. 저 부부가 운영하는 책방인데 이름에 손과 목이 들어간대요."
계산을 하던 알바생은 바 자리에 앉은 두 분을 가리키며 말했다. 엄마와 자리에 앉아 커피를 기다렸다. 그 날따라 햇살이 눈부셨다. 드립커피와 카푸치노, 그리고 초콜렛 두 조각을 내어주셨다.
"엄마, 이렇게 살고 싶은 것 같아 난..."
"이렇게 가 뭔데?"
"바다가 보이는 책방에서 손님에게 책과 커피를 내어주는 일. 그게 하고 싶은 것 같아."
한 번도 엄마에게 말한 적 없던 나의 속 마음이 파도소리와 함께 내뱉어졌다. 바다가 보이는 작은 마을에서 책방을 하고 싶다는 꿈이 있었다. 그런 모습이 손목서가와 같은 풍경이었고 오늘 그걸 실제로 본 기분이었다. 그리고 아주 오랫동안 바다를 바라보며 엄마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행복하고 따뜻한 꿈의 시간을 걷는 기분이었다.
영도의 핫플, 신기산업
한참을 바다를 보고 나니 출출해졌다. 왠지 모르게 분식이 땡겨서 급하게 검색해보니 요즘 영도에서 가장 유명한 분식집인 <식도분영>이 근처에 있었다. 식도분영은 영도분식을 거꾸로 한 곳인데 트렌디하게 분식을 해석한 곳이래서 한 번 경험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주변에 부산의 젊은 사람들의 핫플레이스인 신기산업도 볼 수 있었다. 아쉽게도 월요일이라 식도분영은 문을 닫았고 신기잡화점을 구경했다.
윤우의 동화책 한 권을 골라서 신기산업 카페로 향했다. 배가 좀 고팠기 때문에 먹을거리가 있었다면 요기를 하면서 부산항을 감상하려 했는데 음료만 있어서 아쉬운 마음을 접고 검색을 했다. 떡볶이에 꽂혀서일까 괜시리 분식집을 검색해본다. 남포동을 갈까하다 광안리의 유명한 분식집이 있어 그 곳을 목표로 하고 운전을 다시 시작했다.
가래떡으로 만든 떡볶이, 다리집
광안리로 향하는 길은 더 즐거웠다. 부산항대교를 타고 갔어야 했는데 공사차량이 매우 천천히 가고 있어 덕분에 롤러코스터를 타는 재미로 부산항대교에 들어섰다. 골목길에 있는 다리집은 주차가 가능해서 편하게 먹을 수 있었다. 세트B를 주문하고 잠시 기다리니 푸짐한 분식이 차려졌다. 가래떡 떡볶이 4개, 오징어 튀김 2개, 군마두 2개, 그리고 어묵탕. 환상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세트상품이다.
서울은 가래떡 떡볶이를 하는 곳이 잘 없어 이 맛이 너무 그리웠다. 그리고 다리집의 상징인 오징어 튀김은 떡볶이 소스를 찍어 먹어야 한다. 이 집처럼 탱탱한 오징어 살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곳은 없다. 그리고 매운 걸 못 먹는 내게 달달한 떡볶이 소스의 적절함이 좋았다. 이 곳은 2개만 먹어도 배부른 곳이니 식사를 위해 오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덕후의 과학실험실, 책방 동주
다리집 부근에도 작은 책방이 있어서 가보려했는데 월요일은 정기 휴무였다. 아쉬운 마음에 검색을 해보니 망미동 쪽에 자연과학 전문 책방이 새로 생겼다. 한 때 과학도였던 내게 호기심을 주는 곳이었다. 신라대 생물학과 교수님이 운영하는 곳이래서 더욱 기대가 되었다.
파란색 출입문이 인상적인 책방동주의 로고는 공룡이었다. 자그마한 공간에 들어선 다양한 과학책은 식물, 동물, 우주, 자연철학 등 다양한 주제로 큐레이션 되어 있었다. 책방이름에 걸맞는 윤동주의 책도 있었다. 나는 윤우에게 줄 동화책을 살펴보다 공룡이 많이 나오는 책을 하나 골랐다. 틀림없이 윤우의 최애책이 될 것이다. 책방주인 동주교수님과 잠시 이야길 나누었다. 동주샘의 자리는 자그마한 실험실 같았다. 서울에 왔다고 하니 자그마한 노트도 기념품으로 넣어 주셨다.
이 곳에 자연과학과 관련한 독서모임이 있다면 꼭 들어보고 싶었다. 서울엔 삼청동에 꽤 큰 과학전문 책방이 있다는데 한 번 가봐야 할 것 같다. 그리고 기회가 되면 윤우와 과학캠프도 함께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학이 인기 없지만 책방 동주가 잘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다음에 윤우가 더 크면 꼭 다시 오고 싶다. 이 책방에서 산 공룡책을 보고 자란 아이라면서 말이다.
광안대교를 바라보며
오늘은 서울로 돌아가는 날이어서 광안리에서 커피 한 잔을 만끽하고 싶었다. 엄마와 광안대교가 보이는 카페의 루프탑으로 갔다. 생각보다 춥지 않아서 베드에 누워 호텔처럼 밤바다를 바라 보았다. 엄마와 많은 고민을 서로 털어놓았다. 엄마와 딸은 평생 그런 친구이자 원수 같은 존재니까. 엄마와 함께 온천을 하면서 드라이브를 하면서, 분식을 먹으면서 당분간 엄마 카톡 프사에는 한 동안 함께 다닌 곳의 사진이 올라올 것을 예감했다. 그렇게 미소를 지으며 부산역 플랫폼으로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