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월 13일에 다녀온 기장, 서면
책과 커피가 있는 곳을 좋아합니다. '요 며칠 어디 좀 다녀올게요' 시리즈는 그런 여행의 기록을 남겨볼까 합니다. 모든 기록은 주관적이며 때로는 실제보다 감상적일 수 있습니다. 필름카메라 효과를 볼 수 있는 'Huji' 앱으로 촬영했습니다.
해운대 온천은 온천장 온천과 물이 다르다
쏘카로 코나를 렌트했다. 두실과 남산동에서 해운대를 가는 길은 차가 아니면 좀 먼 편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1시간 30분이 걸려서 시간이 더 소중한 내겐 쏘카로 해운대/기장 일대를 드라이브 할 생각이었다. 여동생과 해운대 온천센터에 도착했다. 휴일이라 그런지 목욕탕엔 이미 많은 사람이 있었다.
오늘은 때를 밀 목적이 아니었기에 매끌거리는 물맛의 해운대 온천을 즐기고 싶었다. 통증이나 염증에 탁월한 해운대 온천물로 여행의 피로로 헐어버린 코 밑 뾰루지를 달래기 위함도 있다. 홈트레이너께서 가르쳐 주신 허리 곧추 세우는 자세를 하며 반신욕을 즐겨 본다. 머리 속 복잡했던 생각이 차분히 가라앉는다. 온천이 발달한 일본인이 장수하는 건 온천 자체도 좋지만 온천을 통해 마음관리가 되기 때문이 아닐까.
부산의 진짜 해산물은 기장 대변항 연화리
사실 서울에선 해산물을 많이 먹은 적이 없다. 왠지 해산물만은 바다가 가까운 곳에서 먹어야 제 맛일 것 같은 막연한 감상이다. 온천을 끝내고 막히는 도로를 출발해 기장 대변항의 연화리 포장마차촌으로 향했다. 사실 여동생은 아나고회가 유명한 무진장횟집에 가고 싶어 했지만 그 곳은 오직 부지런히 일찍 온 사람들만 갈 수 있는 곳임을 알기에 차는 포장마차촌 주차장을 향했다. 역시나 외식을 하러 온 사람들로 가득했고 겨우 주차를 하고 은주엄마네 집으로 들어섰다.
20~30개의 포장마차가 늘어선 이곳은 한 포장마차당 2~3명의 줌마 및 할매가 한 팀이 되어 움직인다. 주로 할매는 해산물을 손질하고 줌마1은 요리를 줌마2는 서빙과 계산을 하는 구조다. 대부분 해산물 퀄리티는 좋고 서비스는 불친절하니 아무 곳이나 들어가도 된다. 예전에는 창가 자리가 있는 곳을 선호했는데 안전가드 때문에 잘 보이지 않으니 굳이 그럴 필요도 없다.
해삼 한 접시와 전복죽 2인분을 시켰다. 목욕을 했더니 허기가 져서 쌀로 된 음식이 좀 먹고 싶었다. 평소엔 모듬해산물 소나 중을 시키면 정말 알차게 잘 나온다. 부산말로 찌께다시(스키다시, 츠키다시)가 엄청 나온다. 조개찜, 담치탕(홍합탕), 생미역나물, 미역국 등... 시원한 담치탕이 속을 달려준다. 전복죽은 한참이 지나서야 겨우 먹을 수 있었다. 아마 다음번엔 그렇게 기다리면서까지 먹을 것 같진 않다.
소화도 시킬 겸 대변항 산책을 했다. 햇살이 비친 초록빛 바닷물이 예뻐 보였다. 갈매기도 자유롭게 날아다시며 바다를 만끽했다. 요즘 부산의 기장은 핫플레이스 되어 가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조금 걸으니 데이트 장소로 올 것 같은 에쁜 카페가 눈에 들어왔다. 1960~70년대 경성빈티지 느낌의 카페는 사람이 너무 많아 앉을 곳이 없었다. 하릴없이 커피 두 잔과 스콘을 테이크아웃 해서 이동 중에 먹기로 했다.
부산의 츠타야서점을 만나다
이번 부산 여행에서 가장 기대했던 곳이 바로 힐튼호텔 아난티코브 안의 책방, 이터널저니다. 츠타야서점이라고 별명이 붙을만큼 책의 분류가 흥미롭고 무엇보다 바다가 보이는 럭셔리책방이라니 기대가 되었다. 지하 2층에 있는 이터널저니의 첫 인상은 호텔이 만든 책방답게 인테리어 디자인과 공간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한 흔적이 보였다.
책을 고르고 읽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책을 선물하고 싶은 사람을 위해 탄색석처럼 월별 탄생책을 전시해 둔 공간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2019년 돼지해를 맞아 돼지와 관련한 큐레이션 코너도 재밌었다. 널따란 테이블이 곳곳에 있어 편하게 앉아서 볼 수 있고 책방 내부에 카페가 있어 커피 한잔을 하며 책 구경을 할 수 있다는 점도 좋았다. 아난티코브 앱을 다운받으면 10% 할인도 가능했다. 윤우의 동화책을 하나 골라 책방을 나왔다.
그래도 서면은 아직 죽지 않았어
저녁에는 약속 있어 쏘카를 반납하고 잠시 여동생 집에서 휴식을 취했다. 오랜만에 서면을 나서는 거라 좀 긴장되었다. 중고등학교 때 정말로 제대로 놀거나 쇼핑을 위해서 갔던 서면. 그 만큼 부산의 번화가로 상징되는 지역 중 한 곳이다. 점점 해운대, 광안리 쪽에 밀려 예전만 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지하철을 내리니 사람들로 가득했다.
2년 전 친구와 함께 신년운세 본 게 기억나서 재미삼아 철학관 골목에 들어가봤다. 이미 많은 사람이 줄을 서있었다. 가장 사람이 없는 철학관을 골라 1평도 되지 않는 작은 공간에 세 사람이 마주했다. 생년월일과 태어난 시간을 말해주면 줄줄이 나오는 나의 사주팔자. 이렇게 정해진대로 살 것을 미리 알았다면 조금 더 영민하게 살 수 있었을까. 그리고 앞으로 내 삶도 순리대로 살 수 있는 걸까? 그저 피할 수 있는 것은 피하고 싶은 소시민적 마음을 가득 안고 철학관에서의 대화가 끝났다.
타 지역에서 오랜 시간 일하던 친구가 이제 부산에 정착을 했다. 발령을 기다리며 부모님집에서 독립을 할 것인가 고민을 하고 있다 했다. 내가 만약 다시 내 부모와 같이 산다면 살 수 있을까? 아무래도 난 힘들 것 같았다. 숟가락 하나 씻는 방법조차 다른 엄마와 내가 만날 때마다 좋을 수 있는 이유는 따로 살기 때문이리라.
전포동 카페거리 쪽으로 친구와 이동했다. 일요일 저녁 시간이라 그런지 다소 한산했다. 데이트를 마치고 월요일을 맞이하러 들어가는 사람과 주중과 주말의 경계가 모호해진 나랑 대조되었다. 골목을 한참 돌아도 마음에 드는 카페는 없었다. 더이상 걷기 싫어 프랜차이즈 카페에 들어갈까 고민하다 눈에 들어온 카페로 들어섰다.
17살에 만나 35살이 된 나와 친구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할지 토로했다. 그녀는 안정된 직장을 얻었지만 결혼과 배우자란 고민에 빠졌고 나는 안정된 가정을 꾸렸지만 다시 잃을 일었다. 절대적인 안정과 행복이 있을 수 없음을 알면서도 우리는 식어가는 커피를 비우며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눴다. 아마 다시 돌아가도 나는 가난을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안주를 버리게 될 것이다. 그게 나였고 나고 나일 것이다.
이젠 너무도 많이 사라진 사람과 공간
이번 부산여행에서 가장 많이 본 단어가 '임대', '점포세'다. 점점 가게를 버리고 떠난 사람이 많아졌다. 상권이 죽어간 거리엔 사람이 있을리 만무하다. 천원이라도 더 깎기 위해 부지런히 발품을 팔았던 서면 지하상가의 공간도 마찬가지였다.
늘 부딪히며 '죄송합니다'를 외쳐야만 했던 공간이 점점 사라지고 있구나. 그 곳에 머물렀던 나의 학창시절의 추억의 장면도 곧 사라질 수도 있겠구나란 아쉬움이 몰려왔다. 한참 어려보이는 직원에서 '언니'라 칭하며 털방울이 달린 모자를 한 번 써본다. 언니가 조금만 더 웃어줬다면 사줬을텐데 무표정함에 민망해 서둘러 내려놓고 나와버렸다. 그것으로 나이 들어버린 친구와의 쇼핑을 끝내고 집으로가는 지하철에 탑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