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아픔에 공감을 져버리지 않으려던 투쟁의 기록
한 시대를 대표한 대배우 윤정희 선생의 알츠하이머 투병 소식을 듣자마자 영화 ‘시’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사실 윤정희 선생님은 내가 태어나기 전은 당연하고 부모님이 갓 태어났을 때인 60~70년대 한국영화 1세대 트로이카 중의 한 분이었기에, 선생님의 수많은 작품 중 극장에서 제대로 볼 수 있었던 것은 가장 최근작인 영화 ‘시’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최근작이라 하더라도 9년 전 개봉한 작품이다)
2010년 개봉 당시 영화를 본 이유 역시 전설적 여배우의 16년 만의 복귀작이라는 이유보다 이창동 감독의 작품이자 그해 칸 영화제 각본상을 수상했기 때문이었음을 고백한다. 하지만 분명히 말하자면, 영화 ‘시’는 배우 윤정희의 영화였고 그가 열연한 아름다운 사람 ‘미자’의 영화였다. 이창동 감독 역시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주인공으로 윤정희 선생을 생각했고, 주인공의 이름이 ‘미자’인 이유 역시 윤정희 선생의 본명이었기 때문이다.
이혼한 딸을 대신해 간병인 생활을 하며 외손자를 홀로 키우고 있는 주인공 미자(윤정희 분)는 문화원의 시 강좌를 수강하며 끊임없이 '아름다운 것'을 찾아 나서고 있는 중이다. 수업 첫날, 시 강좌 선생님은 미자와 수강생들에게 과정이 끝날 때까지 시 한 편을 써서 내라는 과제를 내주었고, 미자는 이번에야 말로 평생 꿈으로만 머물러 있었던 '시 쓰기'를 자신의 삶에 구체화시키고 싶기 때문이다. 첫 수업 이후부터 미자는 과제를 완수하기 위해 자신의 일상을 하나하나 돌아보며 시의 소재로 삼을 수 있는 '아름다움'에 대해 고민한다.
문제는 미자가 하나하나 돌아봐야 하는 미자의 일상 혹은 미자가 처한 현실이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이나 멀다는 점이다. 평소 자신이 사용하던 단어가 잘 생각나지 않았던 이유는 미자가 알츠하이머에 걸렸기 때문이고, 입에 밥만 들어가는 것만 봐도 행복함을 느끼게 해 주었던 손자는 친구들과 같은 학교 여학생을 성적으로 유린하는 범죄를 저질렀다. 범죄 자체로도 끔찍한데, 피해학생은 일기를 남겨두고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차마 입에도 담을 수도 없는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손자로 인해 미자는 깊은 절망에 빠지지만 그렇다고 절망의 늪에서만 허우적거릴 수는 없고, 하루빨리 피해자 가족에게 건네줄 합의금 500만 원을 마련해야 한다. 특히 피해자에 대한 진정한 반성과 애도보다는 현재의 상황을 벗어나기 바쁜 가해학생의 부모들의 이기적인 모습이나 재미를 앞세워 음담패설로 시를 폄훼하는 동호회 사람들, 죽기 전 마지막으로 남자 구실을 할 수 있게 해 달라 뻔뻔하게 요구하는 미자의 담당 할아버지까지. 미자의 일상에는 아름다움의 존재에 대한 미자의 확신에 강하게 흠집을 내는 것들이 곳곳에 존재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시를 위해 '아름다움'을 찾으려 애쓰는 미자. 길가에 펴있는 꽃이나 나무에 떨어진 밤송이 등 그동안 자신이 무심히 지나쳐 온 것들을 하나하나 다시 보고 느끼며 끊임없이 탐구한다. 그렇게 영화 <시>는 참혹하고도 끔찍한 미자의 현실과 시를 쓰겠다는 미자의 이상의 교차를 통해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한다. 그 과정에서 미자는 끊임없이 절망하고 또 절망한다. 애써 모른척하려 했지만 우연히 참석하게 된 피해학생의 위령미사와 성당 문 앞에서 훔치듯 들고 나온 피해학생의 사진을 보며 미자는 시간이 갈수록 커지는 죄책감과 안타까움에 몸서리를 친다. 과연 미자는 자신의 '시'를 쓸 수 있을까?
시를 쓰는 것보다 시를 쓰는 마음을 갖는 게 더 어렵다는 문화원 선생님의 말처럼 단순히 영화 말미 <아녜스의 노래>라는 시를 남긴 사실보다, 깊은 절망 속에서도 시 쓰기를 포기하지 않고 피해학생에 대한 미안함과 안타까움을 시로 승화시킨 미자의 행동에 더 주목해야 한다.
평소에도 정갈하게 자기 자신을 가꿀 줄 알아 많은 사람들에게 '예쁘다'라는 말을 자주 들었던 미자가 진심으로 아름다운 이유는, 아름답지 않은 현실 속에서도 최선을 다해 타인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는 '시 쓰기'가 하나의 목표일 수 있고 혹은 목표로 삼을만한 가치가 없는 하찮은 행위일 수 있지만 미자는 자신이 평생을 사랑하고 동경했던 '시 쓰기'를 수단으로 타인의 아픔을 진심으로 헤아린다.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해지고 가늠할 수 없는 분노가 일상화된 오늘날. 지난 주말 또 한 명의 젊은이가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다는 뉴스에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어쩌면 영화 <시> 속의 '미자'처럼 타인의 아픔을 진심으로 헤아리고 공감할 수 있는 자세를 가진 어른 혹은 친구 혹은 사람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덧붙여, 투병 중이신 윤정희 선생님께 감히 위로와 응원을 보낸다. 배우로서 마지막 역할인 '미자'역시 선생과 같이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다는 사실이 더 마음을 울컥하게 한다. 맡은 역할에 진심으로 공감하고 동화되어 표현함으로써 오랜 시간 관객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위로했던 윤정희 선생님이 어쩌면 절망의 순간에도 타인의 아픔을 나 몰라라 하지 않았던 순수했고 아름다웠던 '미자' 그 자체이지 않았을까라는 생각 역시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