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점 말고
2026년 3월 6일, 금요일(날씨: 겨울이 갈랑말랑, 봄이 올랑말랑)
1. 딸이 수학 문제집을 풀었다.
2. 동그라미, 동그라미, 동그라미. 채점하니 100점을 맞았다.
3. 기뻐야 하는데, 느낌이 꺼림칙하다. 요놈!
[확장 글]
“윤하(딸), 오늘도 즐겁게 보냈어?”
“응. 엄마 오늘도 숙제 다 해놨어요.”
“잘했어, 스스로 잘 챙기니 기특하네!”
저녁 무렵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딸과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딸은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오늘 숙제를 다 했다고 먼저 말하면서 이제 놀자고 신호를 보낸다. 엊그제도, 어제도, 오늘도 그랬다. 숙제: 수학 문제집을 매일 한 장씩 푼다! 겨울방학을 나름 알차게(?) 보내기 위해 나와 약속했다. 사실, 딸은 공부를 정말 싫어한다. 그렇다고 내가 숙제를 매일 검사하고, 숙제를 안 했다고 딸을 쥐 잡듯 혼내지는 않는다. 그런데 딸이 매일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스스로 숙제를 해내다니! 나는 진심으로 딸이 기특하게 느껴졌다.
나는 저녁밥을 먹고, 집안일을 어느 정도 마치면 책상에 앉아 딸이 풀어 놓은 수학 문제지를 확인한다. 답안지를 보지 않고, 내가 직접 풀어서 채점해서 시간이 제법 걸린다. (나도 딸처럼) 어렸을 때는 공부가 너무 싫었는데, 어른이 돼서 다시 수학을 접하니 어쩐지 재미있게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무척 즐겁게 수학 문제와 씨름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뭔가 좀 이상했다. 동그라미, 동그라미, 동그라미. 채점했더니 백 점을 맞았다. 엊그제도, 어제도, 오늘도 그랬다. 한 문제도 틀리지 않고, 풀이 과정 하나 없이 너무 깨끗하게 정답만 적힌 문제지를 보면서, 정말 딸이 풀었을까 의심스러웠다. 딸을 슬쩍 떠볼라치면 자기를 못 믿는다며 난리를 쳐서 여러 번 그냥 넘어갔다. 하지만 오늘은 마음을 단단하게 다잡고, 딸을 방으로 불러냈다.
“오늘도 백 점이야. 잘 했어. 엄마가 잘 이해가 안 돼서 그러는데 이 문제 하나만 풀어줄래?”
딸은 아무 말 없이 주춤했다. 잠시 침묵. 한 시간 같은 몇 분이 흐르고, 딸 눈에서 눈물이 뚝뚝 흘렀다. ‘괜찮아. 네가 푼 방법대로 다시 풀어봐.’ 다시 말했다. 다시 침묵. 내가 단호하게 말하니까, 딸은 주섬주섬 핸드폰을 꺼내서 문제를 사진으로 찍더니 검색 AI(인공지능)로 사진을 전송했다. AI는 친절하게, 빠르게 풀이와 정답을 내어놓았다. 딸은 기다렸다가 정답만 쏙 빼내어 정답 칸에 옮겨 적었다. 세상에.
딸이 AI를 알게 된 지 고작 일 년이나 되었을까? 우리 가족은 아주 가끔 인공지능과 대화하며 놀았다. 그런데 참나, 이렇게까지 활용할 줄이야. 요즘 그야말로 세상이 AI로 떠들썩하다. 이전에 사람이 해 왔던 많은 일을 인공지능이 대체한다. 글쓰기, 그림 그리기, 영상, 음악 만들기 등. 너무 손쉽게, 그럴싸하게. 그래서 가끔은 너무 의존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나는 빛바랜 사진처럼 힘을 잃어간다. 이러다가 어쩌면 AI라는 커다란 그림자가 나를 삼키고, 우리를 삼켜서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고, 모두가 뻔해서 재미없게 세상을 살게 되지 않을까? 무섭다.
“윤하야, 앞으로 우리는 AI와 함께 살아갈 거야. 세상은 더, 더 빠르게 변하겠지. 그런데, 사람이 사고하는 힘을 기르지 않으면 어느 날, 인공지능이 사람을 지배하게 될지도 몰라. 무섭지 않아?”
“그러니까, 사람이 기계를 조작하듯이?”
“그렇다고 볼 수 있지. 엄마는, 윤하가 가진 예쁜 색을 잃지 않도록 윤하가 직접 생각하고, 윤하 스스로 지키면 좋겠어.”
나는 딸과 충분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딸은 잘못했다며 행동을 뉘우쳤다. 이렇게 또 딸은 하나를 배우고, 자라가겠지. 나도 자라면서 엄마에게 많이 거짓말하고, 속썩였는데 그대로 돌려받는가 싶어서 잠시 씁쓸했다. (엄마, 미안) 잠들기 전 딸에게 말해주었다. 엄마는 거짓으로 백 점을 받기보다 한 문제를 맞히더라도 정직하게 배워가는 딸이 천 배, 만 배 더 좋다고. 그리고 날 보며 배시시 웃는 딸을 꼬옥 안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