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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샛별 Jul 31. 2023

[낭독&필사클럽]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진행후기

샛별BOOK연구소

에세이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 은유, 김영사, 2023.(303쪽 분량)

-계속 쓰려는 사람을 위한 48가지 이야기-


은유 작가는 글을 참 쉽게 잘 써요. 그만큼 독자를 배려해서 씁니다.  문장에 기교를 부리거나 은유가 덜 해 읽기가 수월합니다. 노동/ 인권현장에서 경험/본 것들을 '진정성' 있게 풀어씁니다. 저는 은유작가의 문체를 '경험문체'라고 말하고 싶어요. 책상에 앉아 상상한 문체가 아닌 직접 사람들을 만나고 경험한 것들을 쓴 문장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은유작가의 문장은 '노동문체'라고 부르고 싶네요. 글 쓰는 노동자로 글감이 있는 현장에 가고, 고통을 겪는 사람들을 만나고, 관찰하고 쓴 일상생활자의 기록입니다. 


  이번 글쓰기 책도 예외는 없었습니다.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를 읽고 [낭독&필사클럽] 8기 책으로 선정했고, 15분이 신청을 했습니다. 새로 오신 샘들도 세 분이나 계셨습니다. 매일 필사하고, 단상도 쓰고, 낭독녹음 미션도 했습니다. 매주 수요일 밤 9시-10시 30분까지 낭독을 했어요. 4주 동안 참석해 주신 샘들 감사해요. 여러 사정으로 못 오신 샘들~ 다음 낭독 때 만나요.



"버지니아 울프의 말대로 산다는 것은 힘든 사업이다."(p.7) 이 문장에 맥이 풀리네요. 산다는  게 힘든 사업이니 말이죠. 게다가 글 쓰는 삶은 이중으로 힘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은유 작가는 일상생활을 하면서 어떻게 그 많은 책들을 낼 수 있었는지 궁금하더군요. 인터뷰집을 비롯해 글쓰기 책까지 계속 출간하고 계십니다. 그 저력에 고개가 숙여져요. 매일 쓰는 시간을 확보해 집념을 갖고 책을 펴내는 은유 작가를 볼 때마다 궁금했는데, 그 노하우가 이번 책에 담겼더군요. 글쓰기 현장에서 쓰기에 고민이 있는 사람들은 작가에게 질문했을 겁니다. 그 질문을 안고 모아 일명 [글쓰기 상담소]를 차렸네요. 작가님은 상담사 역할을 톡톡히 해냈고, 책으로 묶었습니다. 


  목차는 1장 '혼자 쓰다가 주저한다면' 2장 '일단 써보고자 한다면'  3장 '섬세하게 쓰면'  4장 '계속 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면'입니다. 각 목차에 맞게 소제목이 있어요. 글쓰기에 고민이 있다면 소제목을 보고 그 챕터를 찾아 읽으면 답을 얻을 수 있을지 모릅니다. 예를 들어/  '재능이 없으면 글쓰기를 그만두어야 하나요?'라는 질문을 해요. 그럼 은유 작가는 자신이 글을 재능 없이 어떻게 썼는지 경험담을 알려줍니다. '글 쓰는 게 그냥 재밌었고, 취미처럼 쓰다가 직업이 돼서 꾸준히 썼고, 생의 어떤 시기에 쓰고 싶은 말이 차올랐고, 그래서 또 썼고, 이런 과정을 거쳤단 말이죠.'(p.43).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 고민하지 않고 쓴 거 같습니다. 솔직히 제 생각은 글 쓰는 게 재밌다면 그게 재능이었지 않을까 싶지만요.


 4장 '계속  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면'이 참 좋았습니다. 저는 계속 쓰는 사람을 살고 싶어서인지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어요. 또, '시를 읽으면 글쓰기에 도움이 되나요?' 부분은 실행해 볼 수 있는 챕터였습니다. 시집을 하나 사서 여러 번 읽고, 또 읽고, 이해될 때까지 읽으라는 말은 진리였습니다. 마지막 챕터 질문은 '작가님은 글쓰기가 재밌나요?' 였어요. 이 질문은 오래 제 마음에 머물렀습니다. 쓰기의 괴로움에서 즐거움으로 가야 할 여정 같았어요. 혼자라면 어렵겠지만, 함께 쓰고, 읽고, 손 잡아주는 글쓰기 친구가 있다면 랄랄라~ 하며 즐겁게 갈 수 있겠죠. 이번 에세이 책으로 함께 손잡고 4주를 걸어온 샘들께 고마움을 표합니다. 우리 계속 써요.^^



나를 쓰게 하는 것들


머리를 울리는 글을 만날 때. 누군가 올린 블로그 글 속에 삶의 잔잔한 울림을 만날 때. 내 삶을 바꾸고 싶다는 울컥한 순간을 만날 때. 누군가에게 꼭 소개해 주고 싶은 맛있는 음식을 만날 때. 눈부시게 파란 하늘을 만날 때. (OO님)


-뒤엉킨 감정들이 넘쳐흐르는 순간 우연히 내 상태를 써본 적이 있었습니다. 휴대폰의 메모장에 톡톡 써두었지요. 쓸 당시에는 지독하고도 쓰디쓴 감정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니 변색이 되더군요. 아... 그때 내 안에 있는 것들을 조금씩 써두면 나를 알 수 있겠다 싶어서 쓰고 있습니다. 물론 전업 작가처럼 쓰는 것은 아니고요. 

-나이가 들면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고, 편해지더군요. 심심함과 지루함을 어떻게 견디고 있는지 나를 봅니다. 그리고 써봅니다. -글을 처음에 쓸 때는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썼습니다. 물론 내가 옳다는 관점이고 상대는 틀렸다는 관점이었지요. 지금도 그렇지만요... 쓰다 보니 마음에 틈이 생기고 여유가 생기고 미워했던 감정들이 조금씩 납작해지는 경험을 합니다. -가끔 지나치는 아름다운 순간들이 있더군요. 그럴 때 끄적이기도 합니다. (OO님)


  막연하게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만 가지고 있다가 본격적으로 쓰기 위한 책 읽기를 시작한 시점이 2015년이다. 그때 읽었던 책이 김연수 작가의 <소설가의 일>이다. 그 시절 나는 열정만큼 글쓰기는 형편없었다. 가장 큰 문제는 어휘와 독서 편식이었다. 내 필력을 깨닫게 되면서 다양한 책을 읽고 매일 글쓰기를 실천했다. 은유가 진행하는 <감응의 글쓰기>도 참여했었고, 한겨레문화센터 소설 강좌도 들었다. 그럼에도 중요한 것은 내가 절실하게 써야 한다는 것을 인지하면서 지속성과 인내심을 가지고 써야 한다는 것이다. 


  직장 생활하는 내가 글을 쓰는 있는 환경을 설계하기란 새벽밖에 없다. 퇴근하고 오면 지친 몸과 마음이 흐트러져버린다. 3년 전부터 새벽글방인 블로그를 열어놓고 30분은 그냥 썼다. 그때 은유의 <쓰기의 말들> 한 꼭지 씩 필사하고 거기에 단상을 기록했다. 


  은유 작가 말대로 ‘글쓰기 강의나 모임에 참석하는 ’p35 해서 의무감으로 ‘강제 장치’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무엇보다 나는 마감이 있어야 쓰는 성향이고 절실함으로 그걸 감내해간다. 그리고 소설 모임에서 함께 읽어주고 격려해 주는 동인들이 있어 더 글을 쓰게 하는 것 같다. 합평은 어떤 형태로든 독이든 칭찬이 든 내 글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내가 설정하면 된다. 오늘 새벽도 글방에서 하루를 시작했다. ! (OO님)



▮들어가는 말

그대는 이미 나


언어는 무의식을 일깨운다. 그대는 이미 나. 이것의 결핍 혹은 추구가 나를 쓰게 한 동력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버지니아 울프의 말대로 산다는 것은 힘든 사업이다. 고통과 상실은 우리를 피해 가지 않고 혼자 남은 밤은 길다. 내 슬픔을 그대가 알아주기를 바라다가 제풀에 지치고, 그걸 말 안 하면 모르나 하고 서러워하다가, 말해도 모르는데 말 안 하면 더 모른다는 깨우침을 얻고서, 남이 알아주길 바라지 말고 내 마음 나부터 알아주자는 데 이른 어른스러운 해결책이 내겐 글쓰기다. (p.8)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


  안 보이던 사람이 보이는 일은 일상의 작은 혁명이다. 배달 노동자를 인터뷰한 책을 읽고 나면 건물 승강기에서 만난 배달 노동자를 이전과는 다른 눈길로 보게 된다. 어떤 대상을 표면적인 존재가 아닌 입체적인 인격으로 보는 감각이 시민 의식이다. 너도 나도 쓰고 말하고 듣고 생의 경험을 교환하다 보면 사적인 고민은 공적인 담론을 형성하고, 일상에 먼지처럼 숨어 있는 억압의 기제와 해방의 잠재성을 발견할 수도 있다. (p.16)



▮1장 혼자 쓰다가 주저한다면

‘재능이 없으면 글쓰기를 그만두어야 하나요?’


  글 쓰는 일은 지겹고 괴로운 반복 노동입니다.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를 묻기보다 찬란한 계절에 내가 꽃놀이나 단풍놀이를 안 가고 하루에 대여섯 시간 책상 앞에 앉아서 단어 하나, 문장 하나와 씨름할 수 있는지, 그 고통을 감내할 만한 동력이 있는지, 나는 왜 쓰(고자 하)는지를 물어야 하는 것 같습니다. (p.36)


‘글쓰기 수업을 듣는 게 도움이 될까요?’


 이 같은 경험으로 미루어 보건대 글쓰기 수업은 어떻게든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실용적인 글쓰기 기술을 배우지 않더라도 ‘읽고 쓰는 나’로 그리고 ‘배우는 존재’로 살아갈 동기 부여가 되기에 그렇습니다. 동기 부여는 좋은 스승이 줄 수 있는 전부라고 생각해요. 어차피 읽고 쓰는 건 자기 혼자의 몫이니까요. (p.52)


‘제 글보다 잘 쓴 글을 보면 기가 죽는데, 어떡하죠?’


그런데 가독성 좋은 글이 꼭 좋은 글일까요? 표현은 정갈하고 유려한데 결정적인 무언가가 빠진 듯 아쉬운 글이 있어요. 문장과 구성이 좀 거칠어도 진한 울림을 주는 글도 있고요. 어떤 글에선 간결한 문장으로 된 글의 미덕을 배우고 또 다른 글에선 자기 경험을 직시하는 글의 힘과 필자의 용기를 배우죠. 추상적인 문장을 쓰면 메시지를 잘 전달하지 못한다는 것을 반면교사로 배우기도 하고요. 배울 점이 없는 글은 세상에 없다는 게 제 지론입니다. 실패의 경험을 직간접적으로 많이 해봐야 좋은 글에 대한 균형감각을 얻겠죠. (p.60)


'솔직하고 정직한 글이 좋은 글인가요?’


자기 경험을 쓴다는 것은 아프기만 한 것 같은 일에 의미를 부여하고 재해석하는 일인데, 자기가 겪은 일을 있는 그대로 쓰지 못하고 어떤 시늉과 가식으로 문장을 채워서 가공한다면, 우리가 힘겹게 글을 써야 하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가.(p.77)



▮2장 일단 써보고자 한다면


‘글감을 어떻게 고르나요?’


 ‘엄마표 김치’라는 말이 그리운 말에서 징그러운 말이 되어간다. 엄마의 자기희생이 강요된 말, 넙죽 받아먹기만 하는 자들이 계속 받아먹기를 염원하는 말이다. (...) 어머니가 해주신 밥과 김치 먹고 굴러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절대 가시화되지 않는 이상한 노동. 피와 살로 스며서 똥으로 나가버리는 엄마의 땀. 부불 노동 upaid work으로서 가사노동의 불꽃인 김장. (p.91)


‘글쓰기에서 자료 찾기가 왜 중요한가요’


‘(...) 책으로 이들의 이야기를 써내자’라는 마음으로 집필을 결정했습니다. 계약서를 쓰고 집필 작업에 돌입했습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책 구매죠. 관련된 책을 검색해 보고 열 권가량 구매했습니다. 그러고는 읽어야죠. 관련 단체에서 발간한 자료집도 전달받아서 읽고요. 해당 이슈를 다룬 신문 기사도 스크랩해두고요. 미등록 이주아동에 관련된 사회적 맥락을 파악하고 관련 용어에 익숙해지며 인권에 감각을 키웠습니다. 그래야 인터뷰할 때 아이들의 목소리를 온전하게 알아듣고 맥락을 파악해서 왜곡 없이 전할 수 있으니까요.(p.102)




‘화자의 시점을 일인칭과 삼인칭으로 설정할 경우, 장단점은 각각 무엇인가요?’


모든 법칙과 상식을 의심해봐야 합니다. 그러니 일인칭과 삼인칭 각각의 장단점에 얽매이기보다 각각 써보고 어떤 시점이 이번 글에 맞을지 판단해 보세요. 우리는 무엇을 쓸 수 있고 무엇을 쓸 수 없을지 모르니까요. 한 편씩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진리를 찾아내고 그렇게 발견한 진리를 또 과감히 버리는 용기로 글쓰기에 임한다면, 혹여 남들이 보기엔 망했어도 최선을 다했기에 덜 부끄러운 글을 써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p.113)


‘퇴고를 꼭 해야 하나요?’ 퇴고는 어떤 방법으로 해야 좋은가요?


퇴고를 안 하는 건, 그림을 그리면서 밑그림만 그리고 채색을 안 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거든요. 글쓰기가 생각과 의견을 선명하고 또렷하게 표현하는 일인데 아무래도 처음 든 생각은 어설프고 흐릿하고 두서가 없을 수 있잖아요. 다 안다고 믿는 정보라도 정확하지 않을 수 있고요. 글 쓰는 사람은 자기 기억을 믿으면 안 돼요. 기억에서 왜곡된 경우가 의외로 많으니 고유명사나 날짜 같은 정보가 정확한지 다시 확인해야 하고요. (p.141)


▮3장 섬세하게 쓰고 싶다면 


‘타인의 이야기를 비중 있게 다룰 때, 주의할 점은 무엇인가요?’


글 쓰는 과정에서 한 인물을 입체적으로 보려는 노력을 의무적으로 해야지, 내 글 속 인물이 납작해지지 않고 말과 행동의 맥락을 살려낼 수 있어요. 그러다보면 그 사람과 연루된 나의 행위나 말, 감정이나 생각도 객관적으로 보게 되죠. 글쓰기로 특정 인물을 형상화하는 작업은 기존의 내 감정이나 판단을 내려놓고 그 사람을 최대한 공정하게 보려고 노력하는 일 같아요. 이스라엘 소설가 아모스 오즈는 이렇게 말했어요. “다른 사람의 처지와 입장이 되어보는 것. 그것이 작가의 일이다.” (p.160)


‘글 쓸 때 피해야 할 혐오 표현으로 어떤 것이 있나요?’


글쓰기는 나쁜 언어를 좋은 언어로 바꾸어내는 일입니다. 끊임없이 배워야만 가능한 일이고요. 저는 글 쓰는 사람으로 살면서 배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됐습니다. 어떤 단어를 쓸 때 타자에 대한 존중이 깃들어 있는지, 배제나 차별의 시선은 없는지, 살펴보고 쓸지 말지 판단해요. 좋은 언어는 적어도 타인을 마음 상하게 하거나 재단하지 않은 언어라고 생각해요. ‘먼지 차별’이라고 불릴 정도로 일상에 스민 차별과 혐오의 언어를 골라내기는 어렵지만 하나씩 배우면 되고, 헷갈리면 책을 찾아보거나 주변에 물어봐서 지혜를 구하면 됩니다. 누구나 실수하고 그렇게 실수하면서 배웁니다. 그러니까 올바르지 못한 표현을 쓴 사람에게 정색하지 말고 상대가 무안하지 않게 생각과 의견을 전달하고, 자신의 말이나 글에 그런 표현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반성하고 고쳐나가면 됩니다. 이것이 성숙한 시민의 모습 아닐까요. 우리가 이런 불편함과 부끄러움을 터놓고 수용하는 대화가 가능할 때라야 타인을 존중하는 법을 배울 수 있을 겁니다. (p.167)




'비유를 잘하는 방법은 무엇인가요?’ 


처음엔 후루룩 초고를 쓰시고 퇴고할 때 검토해보세요. ‘다른 존재를 폄하하거나 무시하는 단어나 비유가 있진 않은가?’ 성공적인 비유는 명철한 지성을 발휘해 “앎의 전달”에 기여한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했습니다. 비유가 자기 감정을 자연물에 대입하여 표현하는 한낱 낭만적인 문학적 장식물이 아니라는 겁니다. 글 쓰는 사람은 단어 하나, 문장 한 줄을 아름답게 만드는 게 일이니까요. 마음을 다잡고 고유하고 매력적인 나만의 비유를 찾아보시길 바랍니다. (p.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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