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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샛별 Aug 01. 2023

[카페에서 즐기는 논제연구] 임우진<보이지 않는 도시>


 [카페에서 즐기는 논제연구](=카토스) 세 번째 모임을 '홍건익 가옥'에서 가졌습니다. 임우진 <보이지 않는 도시>여서 특별히 한옥을 선택했습니다. 홍건익 가옥은 서울시 민속문화재 제33호로 종로구 필운동에 있는 한옥입니다. (경복궁역 1번 출구/10분 거리)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행랑채, 사랑채, 안채, 별채, 우물이 있어요. 대여는 무료이고, 에어컨, 선풍기 사용가능해요. 간식은 먹을 수 없고, 음료반입 가능합니다. 영리목적 모임은 대관이 어렵습니다. 10시-12시까지 사용/ 총 6명이 모였습니다. 


홍건익 가옥


  논제를 만든 의도를 설명하고 짧은 토론을 했습니다. 조금 보완했으면 하는 것들을 나눴고, 갈등지점이 있는 논제는 토론이 흥미로웠습니다. <보이지 않는 도시>를 읽고 토론하면서 놓치지 말것들을 체크했습니다. 저자가 무엇을 염두해두고 프랑스와 한국을 비교했는지 인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책을 통해 익숙한 것들(보이지 않는 것)을 좀더 고민하고, 더 나은 대안이 있다면 해결할 수 있지않을까 고민해봅니다. 파리, 서울, 뉴욕, 상하이 등 각 도시마다 존재하는 고유한 특성과 문제점이 있으니까요. 한국의 경우 장례문화, 안방문화, OO방 문화, 간판 문화 등을 재인식 했어요. 한국 도시 이대로 괜찮은가?라는 질문과 의견을 나눴습니다. 


  만들어 오신 논제의 퀄리티가 상당했습니다. 점점 발전하는 카토스입니다. ㅎㅎ 두시간으로 충분하게 마무리를 못해 점심을 먹고 '필운재' 카페로 이동해 다시 2차 토론을 했어요(술도 아닌 책 2차라뇨). 별점을 나눴고, 인상적인 책 속 사진을 보면서 이어나갔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울기도 했어요. 아!!! 이 책 뭐죠. 우리 왜 다 울었죠?ㅜㅜ ㅎㅎ 한마디에 공감해주면서 '동시에' 눈가에 벌개졌습니다. 아... 뭉클한 시간이었습니다. 처음 만나신 분들도 계신데 책 하나로 타자의 아픔에 이토록 공감해줄 수 있다니요. 멋지신 분들이 모이셨네요. (울어주셔서 고마워요. 샘들... 아궁 감동) 



샘들의 질문들


 임우진 <보이지 않는 도시>를 읽고 논제를 만들었습니다. 가볍게 인사하고 논제 연구모임 신청이유/ 논제에 대한 짧은 단상을 나눴습니다. 열심히 만들어 오신 샘들의 논제 질문들입니다. 


-너무나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들에 대한 의문을 갖게 한 여행에 대해.

-'튈르리 의자'의 등장에 대해

-한국 거주 공급정책으로 영구임대주택, 국민임대주택, 행복주택 등에 대해.

-칠레의 건축가 알레한드로 아라베나가 제한한 '반쪽 집'에 대해

-'죽음'이 신성하면서도 혐오스러운 이중적 절대가치에 대해

-카페나 도서관에 핸드백을 두고 화장실에 가는 사람들에 대해

-'적정 거리'와 사회성에 대해

-한국 국회의사당 건물에 대해

-한국공간이 보여주는 특징과 문제점에 대해

-프랑스의 도시 계획에 대해(국회의사당, 묘지, 공원, 꽃 등) 

-'쐐기돌 장식'처럼 익숙한 한국건축에 대해(안방과 거실, 남향집, 온돌에 대한 집착 등)

-지역공동체의 와해에 대해

-프랑스 다문화 사회의 도시문화에 대해

-'수국 마을' 프로젝트에 대해 

-그 외 



카페  <필운재> 2차 논제 모임 


샘들의 발췌모음입니다.


OOO 님 발췌


여행은 자신이 가진 절대가치를 내려놓게 되는 여정이기도 하다. 일단 익숙한 환경을 떠나 언어도 문화도 다른 곳에 이르면, 전에는 당연하고 상식적이라고 여겼던 것들이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는 기괴한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 대면하게 되는 이해되지 않는 상황과 어색한 환경에 당황하고 힘들어하지만, 그것 또한 어느 순간 익숙해지고 결국 왜 그런지 이해할 때 즈음 비로소 진짜 신비한 경험을 하게 된다. 거짓말처럼 예전에 살던 익숙한 것들을 다시 돌아보게 되고 전에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에 놀라게 되는 것이다. 여행이 주는 최고의 선물은 그래서 자신의 원래 모습을 남처럼 타자화해 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지 않는가. (p.6~7) 


공공 공간과 사적 공간의 차이는 사람이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여기서 다시 한번 상기할 필요가 있다. 자기 집으로 훔쳐 가기는 ‘충분히’ 무겁고 눈에 띄지만, 자유롭게 옮겨 앉기는 ‘충분히’ 가볍고 편안한 4천 개의 철재 의자가 이 수공간 주변에 자유롭게 널려 있다. - 중략 – 자신이 선택할 수 있고 주도할 수 있는 곳에서는 감정과 애착이 생긴다. 이 넓은 곳에 자신이 좋아하는 구석 자리가 생기면 다시 들렀을 때 자기만의 장소에 빨리 자리 잡고 싶은 생각이 들 것이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이 생기면서 공공 공간이 사적 공간의 영역으로 치환되는 경험을 한다. - 중략 – 파리시 당국에 의해 1923년에 디자인되어 이곳과 뤽상부르 공원에 놓인 ‘튈르리 의자’는 이렇게 그 디자인이 함축하고 있는 사회적 의미 때문에 디자인 역사에 기록될 명작으로 남았다. 파리시 당국은 모든 관리자가 그렇듯 배열하고 정리하고 싶은 욕구를 참아 내고 시민들로 하여금 ‘어지를 수 있는’ 권리를 양도한 것이다 (p.269~270) 



OOO 님 발췌


시장 경제에서 낙오한 최하층 빈민이기 때문에 ‘자혜적’으로 무언가 해 줘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당국의 관점에는, 최소한의 면적으로 최대한 많은 집을 공급해, 될 수 있으면 많은 빈민을 수용하는 게 옳다고 여길 것이며 실제로도 그렇게 판을 짜기 마련이다. 한국의 정책 입안자나 정치인의 공약에서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는 “서민주택 (수)십만 호 공급”같은 구호에 그런 관점이 잘 녹아 있다. (p.284)


한국의 주택 당국자에게 중요한 것은 바로 공급 세대수다. 그다음이 건설비용, 관리의 편의성, 유지의 경제성 같은 하나 같이 공급자에게 중요한 측면들이다. 주택의 질, 거주민의 심리, 이웃과의 공동생활, 최소한의 자연과의 접촉 같은 가치는 고려 대상이 되지 못한다. ‘공급’을 다른 말로 바꾸면 전쟁 피난민이나 포로를 받아들일 때 사용하는 단어인 ‘수용acceptance’이다.(p.285)


 운이 좋아 기나긴 경쟁을 뚫고 임대 주택에 입주하게 된 사람은 처음에는 전에 살던 판잣집을 벗어난 사실에 안도하고 만족하나, 공급자와 건축가의 바람과는 다르게 많은 입주자가 무기력해지고 비관적으로 변해 가는 현실을 목격하면서 이런 자혜적인 방향의 정책에 무언가 중요한 것이 빠졌다는 것을 발견한다.(p.286) 


콘크리트와 번듯하게 지어진 그러나 자신이 아무것도 한 것 없는 아파트에 살게 되자 집을 가꾸기는커녕 집 앞에 쓰레기 하나 줍지 않을 정도로 자신이 사는 건물에 냉담해지는 것이 아닌가(p.286)



홍건익 가옥 


임대 주택에 살게 된 ‘선택받은’ 그들은 주어진 공간에 사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무기력증에 빠져들게 되었다. 더 비관적이고 투덜대기만 하며 점점 더 기초 생활비에만 의지하는 수동적 극빈층으로 전락해 갔다. 더 번듯한 집에 살게 됐지만 거짓말처럼 삶의 의지는 잃어버린 무기력한 입주자로 가득한 아파트에서 사람들은 서로 만나려 하지 않았으며, 이웃 공동체는 무의미해졌고, 동네는 점점 우범화되고 슬럼화되는 악순환 속에 빠져들었다(p.287)


주어진 예산으로 건설 가능한 40제곱미터의 공간뿐 아니라 차후에 증축할 수 있는 또 다른 40제곱미터의 빈 공간을 함께 분양하는 제안을 한다. 비어 있는 절반을 꼭 지어야 할 의무는 없었으나 자신이 노력만 하면 지금 집보다 두 배로 큰 집을 가질 수 있다 (p.288)



같은 단지 내의 다른 이의 집이 그럴듯한 모습으로 바뀌어 가자 이웃들은 약간의 안도감과 약간의 경쟁심으로 동기 부여 되었고, 이웃들끼리 자재를 공동 구매하거나 동마다 공통된 색으로 채색을 의논하는 등 서로 대화하고 모이기 시작했다. 자신이 노력하는 데 비례해 집이 변해 가고 자신이 채운 집의 반쪽이 동네 전체 분위기를 바꾸는 데 일조한다는 느낌을 받자, 사람들은 긍정적이고 밝아졌다. 몇 년 후 동네 입주민 대부분의 가족이 받던 기초 생활비를 받지 않아도 될 정도로 자신만의 힘으로 빈곤에서 벗어났다. (p.290)


 칠레 산티아고시 남쪽 외곽에 위치한 대표적인 반쪽의 좋은 집은 차후에 입주자가 자신이 직접 확장할 수 있는 빈 공간을 같은 지붕 아래 미리 마련해두었다. 지붕과 외벽을 미리 만들어 둬, 입주자가 비용을 많이 들이지 않고, 전문적인 기술이 필요한 방수나 단열 같은 문제에 봉착하지 않고 쉽게 증축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두었다. 이 비어 있는 집의 반쪽이 입주민과 마을에 가져온 변화는 그럴듯한 자기 집을 넘어선 그 ‘무엇’일 것이다. (p.289)


OO샘 사진


18세기 말 나폴레옹은 묘지 대개혁을 단행했다... 모든 시민이 인종이나 종교와 관계없이 묻힐 권리가 있다면서 서민, 귀족 상관없이 모든 유골을 대상으로 한 이장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낸 ‘까따꼼브(카타콤)catacomb’다.(p.71) 


1804년 세계 최초의 정원식 공동묘지 페르라세즈가 그의 손에서 탄생한다. 이 계획에 당시 모두를 놀라게 했던 세 가지 원칙이 발표되는데 ①자연 수림을 연상케 하는 자연 공원식 조경, ②개인 묘가 아닌 가족끼리 집단으로 매장되는 가족 합장묘, ③임대 기간을 정한 시한부 묘지 제도였다. (p.71)


OO샘 사진



서울보다 여섯 배 작은 프랑스 파리에는 20개의 공동묘지가 설치되었다. 지금도 파리에는 건물 창밖으로 묘지가 보이는 것이 흔한 일이고, 아예 묘지(이들에게는 공원)를 둘러싸고 건물이 지어지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p.73)  


도시 안으로 들어오자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집근처다 보니 기일이나 생일 같은 특별한 날뿐 아니라 매일 들르는 사람이 많아지고, 올 때마다 꽃이나 화분, 인형 같은 것을 놓아두고 자발적으로 묘소 주변 관리까지 하는 시민이 늘어났다. 묘지 특유의 우울하고 칙칙한 분위기는커녕 화원에 온 마냥 밝고 기분 좋은 공간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시 또한 다수의 관리인과 자원봉사자를 두어 가족들이 두고 간 오래된 꽃을 치우고 정원수를 가꾸는 등 이런 변화를 촉진시켰다. 그 덕에 지금도 페르라세즈에는 팔짱 끼고 데이트 즐기는 연인들이나 유모차를 끌고 산책 나온 가족들을 자주 볼 수 있다. (p.73)


송스키친


도시 속에 뿌리내리 공원묘지는 시민들의 죽음에 대한 태도마저 다르게 만들었다. 매일 마주하는 두려움은 더 이상 두려움이 아니다. 두려움은 보이지 않을 때 지속된다. 가족묘의 경우 가족의 유훈이나 전통을 기릴 수 있도록 묘 상부에 소규모 건축을 허가했다. 주로 미니 교회당이나 비석 같은 기념물을 설치할 수 있게 했는데, 바로 이점이 공동묘지가 녹지 공원을 너머 예술 공원이 되는 길을 열었다고 평가받는 숨겨진 비밀이다. 장례건축 미학 architecture funéraire이라 불리는 이 특별한 개념은 다양한 양식과 형태의 건물로 가득한 도심지처럼 묘지도 다양하고 활력 넘치는 살아있는 도시의 축소판처럼 보이게 한다. (p.76)



OOO 님 발췌


전통 한옥의 창문이나 방문에는 대체로 밖에서 문을 잠그는 장치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집을 나설 때 문을 잠글 필요가 없었다는 의미다. 오래된 한옥이나 산사의 담장은 고개를 들면 집 안이 다 들여다보일 정도로 낮다. 제주도 등에 아직도 남아 있는 옛 민가에는 대문에 나무 막대만 걸쳐 놓고 주인이 있고 없음을 알렸다. 이런 예들은 한국의 전통 사회가 얼마나 더불어 사는 이웃들을 신뢰하고 있었는지 잘 보여 준다. 그만큼 이방인의 유.출입이 빈번하지 않고, 집으로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은 혈연이나 지연 관계에 있는 공동체 내의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비록 내 집 문을 잠그지 않고 외출하더라도 누군가 집에 몰래 들어오거나, 어쩌다 누가 들어온다고 해도 해를 끼치지 않을 거라는 무한한 신뢰가 깔려 있다. (p.18)


카페나 도서관에서 노트북이나 핸드백으로 자리를 맡아 두고 마음 편하게 화장실에 가는 사람들이나, 아파트 현관 앞에서 온종일 주인을 기다리는 택배 상자 같은 한국의 흔한 일상은 서구에서 '세상에 이런 일이' 같은 신기한 일화로 종종 소개될 정도다. 서구의 관점에서는 믿기 어려운 이런 현상은 기본 적으로 이웃에 대한 무의식적인 신뢰가 바탕이 된 결과다. 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낙관적인 도시관'이라 부른다. (p.19)




학자들은 오랜 실험 끝에 이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분쟁 상태를 해결할 두 가지 방법을 찾아내는데, 첫 번째는 놀랍게도 전체 상자의 크기를 4분의 1로 줄여 주는 방법이었다. 서로 꽤 넓은 공간 속에서 여유롭게 살던 쥐들은 갑자기 줄어든 면적에 패닉 상태가 된다. 집단 간의 구분도 서열 체계도 뒤죽박죽되면서 마치 굶주린 상태에서 먹이가 주어진 상황마냥 난장판이 되고 만다. 그런데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거짓말처럼 일종의 평화 상태가 찾아온다. 집단 간의 서열 관계도 뚜렷하게 약화되고 편 구분도 모호해져 기묘한 안정기가 도래한 것이다. 공간이 너무 좁으니 할퀴고 싸워 봐야 서로 피곤해지기만 한다는 것을 깨우친 것처럼 물리적인 충돌은 줄어들고 서로 소통하는 듯 보이는 '찍찍' 소리가 뚜렷이 증가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굶주린 후 먹을 것이 주어졌을 때 넓은 공간에선 서로 싸웠던 것과 달리 좁은 공간에서는 치즈를 서로 나누어 먹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연구자들이 찾아낸 또 다른 해결책은 서로 칸막이를 해서 각자 독방 생활을 하게 한 것이다. 서로 눈 마주칠 일이 없으니 쥐들은 각자의 방에서 평화를 맞이한다. 몇 달이 지나고 동물학자는 상자 속 모든 쥐의 지능 검사를 했다. 전체 면적을 줄인 첫번째 경우, 모든 쥐가 놀랍게도 지능뿐 아니라 건강 지수도 상당히 증가했으며 스트레스 지수까지 뚜렷이 감소했다. 반면 각각의 독방에 수용한 후자의 실험용 쥐는 지능 지수 검출이 어려울 정도로 멍청해져 버렸다. (p.41-42)



OOO 님 발췌


전쟁의 폐허에서 급속한 경제 성장을 향한 무한 경주를 했던 1970~1980년대 개발 시기, 질 낮은 도시 환경과 빈약한 사회 안전망 속에서, 부족한 국가 차원의 대규모 투자 없이도 녹지, 놀이타, 주차장을 갖춘 현대적이고 위생적인 주택을 건설할 방법을 궁리했고, 아파트 단지라는 비책을 고안해 냈다. 집을 살 수요자에게 도로와 공원, 주차장, 편의시설 같은 도시의 인프라 시설의 비용까지 전가하면 되는 것이었다........국가는 도로를 만들고 공원을 꾸미고 택지 개발하느라 드는 비싼 비용과 골치 아픈 관리 책임 없이도 낙후된 지역을 쉽게 개발할 수 있는 편리함에 만족했고, 기업들은 건물을 짓기도 전에 도면과 모델 하우스만 보고 선금을 지불하는 맘씨 좋은 소비자 덕에 똑같은 아파트를 양산하기만 하면 돈을 버는 편안한 장사에 행복해 했다. 그리고 비싸도 일단 청약에만 성공하면 몇 년 후 몇 배는 오를 집값에 소비자 또한 환호하는, 모두가 즐거운 ‘마법의 잔치’를 즐겼다. (p.226)


송스키친


공공은 뒷짐 지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사이, 한 사람 한 사람의 끈질긴 이기심은 서로 힘을 합해 도시 속에 거대한 그들만의 성을 쌓았다. 이런 단지는 규모가 작고 그 수가 적었을 때는 눈에 띄지 않다가, 이미 도시를 불구로 만들기 시작하고서야 그 문제가 세상에 알려진다. 길은 끊어지고, 통행은 막히고, 교류는 사라지고는 도시적 ‘진공 상태’가 된 지역이 곳곳에 속출했다. 남을 못 들어오게 자기 단지를 막으면, 자신도 남의 단지에 못 들어가는 처지가 된다. 그렇게 도시가 진화하면 결국 자신이 도시에서 지낼 수 있는 곳은 자기 단지밖에 남지 않는다. 결국 모두가 자신의 단지 속에 ‘갇혀 버리는’ 것이다. (p.227)


.....각각은 잘 결속된 마을들이 상호 적대적으로 대립하는 도시가 아닌, 도시 전체가 수월하게 소통할 수 있는 길과 건물이 서로 열리고 연결된 도시. 이것이 공동체 붕괴라나 현대 거대 도시의 본질적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될 것이다. (p.232)



OOO 님 발췌


건설 방식과 건축 재료가 변하면서 쐐기돌의 존재 이유는 사라졌지만, 사람들의 인식에 일단 각인된 무의식과 기억은 ‘취향’이란 이름으로 아무런 이유 없이 지속됐다. 지금도 고풍스럽게 보이고 싶은 건물의 창문에는 이런 ‘쐐기돌 장식’이 흔하게 쓰이지만, 그런 장식이 왜 남게 되었는지에 대한 속사연에 관심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p.83)


어린 시절 각인된 기억들 때문에 집의 모든 방 중에 안방은 가장 크고, 집의 중심이란 사실을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내면화 한다. 그러니 아파트가 처음 소개됐을 때 안방이 거실과 함께 가장 좋은 향에 넓은 면적으로 자리 잡은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형식과 내용이 어긋나는 문화적 지체 현상은 그때부터 시작된다. (p.96)


현대에도 온돌은 장점만큼이나 많은 문제를 야기한다. 온수파이프를 깔아 바닥을 데우는 방식이라 기존 콘크리트 구조 바닥 위에 그 정도 두께의 별도 바닥을 더 깔아야 하니 과도한 자재를 써야하고 그래서 건물 전체가 무거워지는 것은 그렇다 치자. 습식 공법으로 콘크리트 바닥 속에 묻은 파이프를 교체하려면 바닥 전체를 뜯어내야 하므로, 지은지 20~30년이 지난 후 건물의 개 보수 주기가 돌아올 때 고쳐 쓰는 것이 어려우니 어쩔 수 없이 건물 전체의 철거와 재건축을 유도한다.(p.106~107)


 앞서 언급한 대로 한 번 체내화된 감각은 그것이 아무리 시대의 변화와 맞지 않고 비경제적이라고 해도 쉽게 바뀌지 않는다. 몇 페이지를 채울 수 있는 문제점과 단점에도 한국인의 온돌에 대한 집착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사는 문제에서 개인의 버릇과 선호는 ‘옳다, 그르다’로 따져지는 논리의 영역이 아니라, 유아 시절 가족생활에서 체화한 감각적 경험에서 자신도 모르게 만들어진다. 자신과 맞지 않는 공간은 머리가 아닌 몸이 먼저 반응하지만, 아무도 왜 그런지는 자문하지 않는다. 익숙함에 기인한 좋다, 싫다만 있을 뿐이다. (p.108)


OOO 님 발췌


-유럽의 도시 중에서도 특히 프랑스 파리는 이런 극단적인 다문화 환경을 수 세기 동안 격렬하게 겪어 온 곳이다. 외국인 거주자와 관광객의 비율이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이기도 하다. 기본적으로 라틴 민족 특유의 섬세한 프록세믹스공간 감각을 가진 곳인데다, 너무나 다양한 각국의 문화가 한곳에서 공존하기 때문에, 예측 불가능한 충돌 가능성을 줄이고 서로 안심할 수 있는 선제적인 ‘안전장치’가 필요했다. 이 장치는 도시 시스템이란 이름으로 발전한다. 함께 살지만 같은 생각을 하지 않는 시민들에게 받은 도시적 ‘상처’가 이 시스템의 거름이 되었다.(p.28)


백 명의 원생들을 여덟 채의 단독 주택에 십여 명씩 나누어 생활하게 하고, 매달 주어지는 생활비는 자신들이 직접 장보기도 하고 밥하고 빨래하고 관리비 챙기고 물품 사고(가끔 생활비 모자라서 쪼들리기도 하고)……. 엄마들은 뒤에서 지도와 멘토 역할만 하는 것으로 아이와 엄마의 삶의 방식을 완전히 바꾸기로 했다. 아이들은 그동안 ‘시설’에서 받아 왔던 엄마들의 헌신적 돌봄 혜택 대신, ‘자신의 집’에서 자신이 모든 것을 결정하고 또한 책임도 지는 새로운 삶의 방식에 처음에는 낯설어했지만, 생각보다 빨리 적응한다. 


내 집이라는 ‘소속감’, 내가 해야 한다는 ‘책임감’ 그리고 내가 결정하고 내가 바꿀 수 있다는 ‘의지’가 아이들을 놀랍도록 빨리 변화시킨 것이다. 각각의 집 마당에는 감, 석류, 포도, 매실, 사과, 자두, 대추, 모과 열매가 달리는 과일나무를 심어 아이들이 나무와 함께 자라고, 졸업 후에도 돌아오고 싶은 나의 집의 열매로 기억되게 했다. 나무 이름이 그대로 집 이름이 되었다. 나무가 모인 곳, ‘수국(樹國)마을’의 이름이 이렇게 지어졌다. (p.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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