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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샛별 Aug 03. 2023

[고전문학BOOK클럽] 미시마 유키오 <가면의 고백>

샛별BOOK연구소


<가면의 고백>, 미시마 유키오, 문학동네. (263쪽 분량)


  작가의 문학적 능력과 삶이 어긋날 때


   이 책은 작가 이력을 알고 읽으면 혼란스럽고,  모르고 읽으면 공감되는 책이다. 요상한 책 <가면의 고백>을 토론했다.  누구나 가면을 쓰고 산다. 가면을 쓰고 살아야 소위 '일상생활'을 할 수 있다. 코짱이라 불리는 화자도 마찬가지다. 화자가 가면을 철저하게 썼던 부분은 '성정체성'이다. 성인이 되기 전까지 인간은 자신의 몸에 관심이 많다. 급격하게 변하는 신체성장 때문일지도. 화자는 왜 동성에게 끌리는지 혼란스럽다. 병사들의 땀냄새와 똥지게꾼의 균형 잡힌 몸매에 매료되는 알 수 없는 성적취향. 


  코짱은 아버지 방에서 본 화집의 그리스 나체 조각에 정신이 팔린다. 그중 '구이도 레니의 <성 세바스티아누스>'(p.46)를 보며 화자는 최초의 사정을 한다. 중학교 때는 동급생 오미를 보고 관능적인 욕구가 올라온다. 고교친구 구사노의 여동생 소노코를 소개받아 키스를 해보지만, 아무런 감정이 없다. 화자는 여성과 성관계를 시도하는데 불가능하다는 걸 깨닫는다. 남성은 여성을 여성은 남성을 좋아해야 한다는 '상식'에 벗어난 자신이 고민스럽다. 소노코와 결혼 얘기가 오가지만 거절의사를 밝힌다. 


  화자는 전쟁 중(2차 세계대전)에 학교를 다니고, 공습 사이렌이 울리면 반공호로 숨었다. 가해국인 국민들도 미래가 암담하기는 매한가지. 1944년 아버지의 우격다짐으로 법대에 들어가 공부를 하며 자신은 곧 징집되어 전사하리라 예견한다. 전쟁중 누군가의 죽음은 일상이었다. B29는 도쿄 하늘을 날았고 공중전이 벌어지더니 비행기가 추락했다. 화자는 '비행기가 적의 것이든 우리 것이든 본질적으로 큰 차이가 없었다'(p.169)생각했다. 가족들은 불난리가 나면 반공에 숨어있다 나왔다. '지하에서 통조림 양갱을 꺼내와 함께 먹'으며 살아남았음을 자축했다. 


  미시마 유키오는 금수저, 도쿄대 법대를 거쳐 고등문관 수석 합격, 공무원 생활과 문학활동 병행, 1949년 <가면의 고백>으로 작가 입문, 극우성향, 탐미주의 대표작가, 다섯 차례의 노벨문학상 후보 등의 수식어가 붙는다. 그만큼 이력이 화려하다.  어린 시절 병약했던 작가는 육체에 관심을 두더니 결국 할복자살로 최후를 맞았다.


  미시마 유키오는 오에 겐자부로와 함께 천재작가로 불렸다. 29세에 쓴 <가면의 고백>은 섬세한 감정을 솔직하고 정확하게 표현한 작품이며 미학적 아름다움이 뛰어나다. 그러나 일제의 침략을 받았던 한국인은 이 소설이 불편하다. 가면을 쓰고 성체성을 고민하는 화자를 볼 때마다 자꾸 일제강점기 시대가 오버랩되어 분노가 인다. 가해국가의 고백을 듣는 것 같아 씁쓸하다. 더구나 미시마 유키오의 삶을 알게 되면 감정을 분리해 읽기가 어렵다. 그가 일본인이 아니었다면 작품은  다르게 읽혔을지 모른다. 극우 성향으로 할복자살만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읽혔을까. 문학은 작가의 삶과는 별개이며 작품만 평가하라고 말한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작품은 작가 삶이 투영되기 때문에 동떨어질 수 없다. 우리가 그토록 좋아했던 신경숙 <엄마를 부탁해> 작품이 지금은 어떤 평가를 받고 있나. 신경숙 작가와 연결되어 작품조차 사장되고 있는 형편이다. 신경숙 작가가 표절한 작품은 아이러니하게도 미시마 유키오 <우국>이었다. 


   문학적 능력과 작가의 삶이 어긋남에도 이 작품을 왜 읽어야 할까. <가면의 고백>은 미시마 유키오가 29세 때 쓴 작품이다. 45세 할복 자살할 즈음의 작품이 아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며 고군분투하며 쓴 젊은 작가의 자기고백이다. 고백은 쉽지 않다. 더욱이 성적고백을 모티브로 성장기 시절, 전쟁중의 혼란을 세밀하게 서사했다. 이후 미시마 유키오의 작품은 <금각사>에서 빛을 발한다. 그래서 그를 두고 '탐미주의'작가라고 분류한다. 


  작가를 알고 작품을 읽었더니 온전히 작품만 분류하기 어려웠다는 언급들이 많았다.  작가의 삶이 작품에 영향을 받는 이유다. 그렇다면 작품은 좋은데 작가의 윤리성이 문제될 때 어떨까. 현시대에는 작가와 작품이 함께 영향을 받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작품은 작가와 별개로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작가의 삶은 비하인드 스토리가 될 뿐이다. 작품만이 시간과 승부해 오롯하게 살아남을 것이다. 그렇게 살아남은 예술품들은 수두룩하다. 그렇다면 동시대도 작가를 참고는 하지만 작품은 별개로 볼 시선이 조금은 필요하다고 보인다. 


  '고백'에는 일정부분 진실이 내포되어 있다. 누군가에게 고백할 때 그 순간은 진실했을 것이다. 미시마 유키오의 <가면의 고백>은 확장되어 해석된다. 지금 쓰고 있는 가면들, 사회가 쓴 가면들, 역사가 속인 가면들을 가늠해 본다. 어쩜 작가의 진실이 소설이라는 가면으로 탄생했을지 모른다. 허구를 빌려 진실을 말하고 싶을 때 우리는 문학을 쓴다. 



별점과 소감



3.5/ 3.5/ 3/ 4.5/ 3.2/ 2.5/ ? (토론후 3.0)/ 4/ 4/ 3.5/ 3/ 5.0/ 3.8/ 4/ 2.95/ 4/ 3


-한 남자의 내면의 고백을 봤다.

-작가의 극우성향을 걷어내고 이 책만을 얘기하고 싶었다.

-정체성의 혼란을 보게 된다.

-전쟁 한가운데 불안의 심리를 쾌락으로 풀었다.

-날카롭고 부드러운 문체의 조합이 좋다.

-표현이 상당히 예민하다.

-암울한 심리묘사를 따라가기 힘들었다.

-그렇게 재밌지는 않았지만, 고백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이런 문장들을 쓰고 싶다. 사실적 묘사가 아름다웠다. 



-<제 5도살장>은 보편적인 문장이 <가면의 고백>은 관념적인 문장이 많았다. 

-문장에 은유, 비유가 많았다. 

-가면을 쓰고 진실을 말하는 행위였다.

-문장이 화려하다. 

-나르시시즘이 최고인 주인공이었다.

-탐미주의 문체로 성정체성을 고백하는 작가가 보였다.

-문장이 이해가 안 된다.

-아웃사이더의 방황과 고독이 보였다.

-단어와 단어의 조합이 멋졌다.

-남자들의 성혼란을 엿볼 수 있었다.

-본능적인 감각이 잘 묘사됐다.

-흡입력 있게 읽었다. 

-식민지 국민이 읽기는 어려운 책이었다. 

-읽으면서 분노가 올라왔다. 

-일본국민은 작가의 할복을 추앙하고 있을까.

-문장에 힘이 느껴져서 잘 읽혔다.

-잘 쓴 작품이다. 

-토론을 해도 불편한 마음이 가시지 않는다.

-동성애자들의 가면을 알게 되었다.

-탐미주의에 관심이 간다. 

-정상성은 누가 만들었으며 무엇이 정상인지 고민하게 된다.

-함부로 판단하는 건 위험하다. 

-문학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고민된다. 

-관능적 고백이다.

-오감을 모두 사용한 작가의 능력이 보였다.

-내가 느끼는 것에 대한 옳고 그름을 고민해야 한다. 

-어릴 적 한옥마루를 기어 다녔던 기억이 있다. 

-숟가락을 던졌던 기억도 있다. 

-화자가 태어난 순간을 기억하는 게 이상하지 않았다. 

-화자는 MBTI 중 F이지 않을까. 

-할머니 밑에서 키워져서 나르시시즘이 더욱 강화됐다. 

-어릴 적 기억이 정말 날까? 크면서 자신이 바라는 바를 왜곡한 기억은 아닐까.

-소노코에게 연민이 간다.



(출처: 지O 님 <가면의 고독> 서평) 


  ‘가면의 고백’이란 제목은 의미심장하다. 가면을 쓰고 하는 고백을 곧이 곧대로 믿을 수 있을까. 이 소설의 앞부문을 읽을 때 나는 화자가 말하는 내용의 진위를 가늠하고자 애썼다. 얼마쯤 읽어 내려간 시점에서는 허언도 이렇게 아름답게 늘어놓는다면 들어볼 만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야기의 중심을 지날 무렵에는 ‘고백’이란 단어에 더 마음이 갔다. 이런 이상한 자신을 제 입으로 말하는 인간을 본 적이 없다. 화자가 품고 있는 진실이 이런 추한 모양이라면, 그것을 고백하기 위해 가면이건 그 비슷한 무엇이건 뒤집어 쓰긴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세상과 불화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기 자신으로 온전히 살아가는 노력이 자신을 편견과 불이익 앞으로 이끈다는 것을 반복적으로 경험해온 사람들. 사회가 나의 존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눈치채면 이들은 자기를 지키기 위해 모종의 대책을 강구한다. 우선은 남들과 같아지려고 애써볼 것이고,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적어도 남들과 비슷해 보이려는 노력을 할 것이다. 이 지점에서 이들의 자아는 분리된다. 이런 자기 인식의 부조화를 극복하려는 안간힘이 자기기만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 아닐까. 눈물 자국이 배어있는 이 자기기만 앞에 옳고 그름의 잣대를 들이밀고 싶지는 않다.


  이런 일은 스스로 소수자가 아니라고 여기는 이들에게 도 일상적으로, 소소하게 일어난다. 시댁 식구들과 함께 있을 때 며느리인 내 모습은 원가족과 함께 있을 때의 그것과는 제법 다를 것이다. 몇 년 전 김민희가 홍상수 감독과 사랑의 도피를 했을 때 나는 두 사람이 제법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불륜’을 말하는 다수 앞에서 이런 생각을 감히 밝힐 수는 없었다. 다행히 나에게는 내가 편안하게 여기는  원가족이 있고, 비슷한 생각을 하는 친구가 있어 존재 자체가 부정되는 비참을 경험하지는 않았다. 이 작은 인정은 소중하다. 미시마 유키오에게 이런 버팀목이 되어준 것이 문학이겠다는 생각을 했다. 문학이라는 가면에 기대어 ‘기이한’ 자기를 견디는 것이다.


  ‘그때 내가 좀 그랬어(예민하게 굴었지. 철이 없었지 등등)’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그러한 문제를 해결했거나, 적어도 대면할 준비가 된 사람일 것이다. 화자는 마지막 장면에 이르기까지 솔직한 모습을 보이지 않지만, 그 지점을 기술하면서 스스로가 자기기만적이었음을 인정하고 있다. 자신의 잘못이나 부족함을 인식하고 인정하는 것은 다른 단계로 도약할 준비가 되었음을 알려주는 방증 아닐까. 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면 작가의 목소리는 인정과 수용이 아니라 변명이나 분노의 방향으로 뻗어 나갔을 것이다. 


  이런 면에서 이 소설은 물음표나 느낌표가 아닌 마침표이다. 내가 남들처럼 살 수 있을까, 무수히 질문을 던지고 시험해 본 결과 불가능함을 확인하게 되는 지점이 소설의 마지막 장면이다. 소노코 없이는 불가능한 확인이었다. 둘의 관계는 사랑이라고 하기에 기형적인 면이 있지만, 화자가 소노코라는 거울을 통해 스스로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는 점에서 - 적어도 그에게만큼은 - 중요한 관계임에 틀림없다. 그는 소노코를 이용했나? 그랬다. 소노코를 사랑했나? 모르겠다. 그는 죄의식을 느꼈니? 물론. 그는 소노코를 처음 만났을 때 느낀 감정을 ‘죄에 앞서는 회한’이라고 표현했다. 화자는 소노코를 통해 하나를 얻고 하나를 잃었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되었지만, 스스로를 볼 때마다 그 안에서 소노코 아닌 것(이를테면 순수한 사랑)을 발견하고 미워할 것이다. 소노코는 그에게 축복이면서 저주이다. 


  이 책의 도입부에는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에 나오는 ‘아름다움’에 관한 글이 적혀 있다. 아름다움은 일정한 잣대로는 정할 수가 없으며 그 안에 모든 모순이 함께 살고 있다는 내용인데, 이 소설은 인용된 문구에서 말하고자 하는 ‘아름다움이 지닌 모순’을 길게 늘여서 쓴 이야기 버전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닿을 수 없는 것들에 대한 갈망의 순도가 높았던 만큼 이것을 결코 이룰 수 없으리라는 절망까지의 낙차는 크게 느껴졌다. 그 깊이가 쓸쓸한 울림으로 다가왔다. 내면의 혼란을 기술하면서 사용한 정연한 문장은 이율배반적이고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이 모순을 허용하는 소설이란 세계가 아름답게 느껴졌다. 나는 의심을 거두어들이고 작가의 이야기를 그대로 믿기로 한다. 세상에서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한 작가는 이렇게 자기가 창조한 작품 안에서 영원히 사는 것 아닐까 싶다. 



나탈리 카르푸셴코 작가 스티커 감사해요. 




  가면의 고백을 읽는데 있어서 갈등이 많았던 책이였던 것 같아요.  극우 성향으로 생을 마무리한 작가를 알고 나니 한일관계를 걷어내고 읽어 나가기 참 어려운 점이 많았고, 화자랑 작가를 분리해서 객관화 시켜 읽어야 하는데 작가의 삶을 너무 닮아있는 화자를 떼어내어 읽기가 참 어려웠던 것 같아요.  작가의 의도였으면 성공한 듯 해요.  언제나 느끼지만 토론하시는 샘들께 많은 화두를 얻어오고, 생각의 폭을 넓혀오는 시간들이기에 늘 소중함을 가슴에 앉고 뿌듯함을 가져오는 날의 연속인 듯 해요. 벌써부터 <나나>의 토론시간이 기다려지네요ㅎ(OO 님)


  오늘 선생님 말씀 듣고 생각했어요. 한 분야에서 뛰어난 성취를 이룬 사람이 다른 부분에서 너무나 실망스러운 면모를 드러내 보일 때, 그 불균형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이 작품에서 가엾은 한 인간을 볼 수도 있지만 일본제국주의가 지닌 추악한 면이 드러나보이는 것도 사실이니까요. 그때그때 다른 방향으로 기우는 제 맘을 보면서 저도 혼란스러움을 느낍니다. (OO 님)


  '닿을 수 없는 것들에 대한 갈망'~ 샘님, 저는 이 표현이 참 좋습니다.비록 닿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런 갈망 하나쯤은 가슴에 담고 산다면 생이 더 풍요로워질것 같아요.꼭 사랑이 아니라 다른 어떤 것이라도요. 좋은글 잘읽었습니다^~^(OO 님)


 엄청난 서평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가면의 고백> 한층 깊이있게 해석됩니다. 샘이 쓴 문장 전부 밑줄 치고 싶지만, 특히 더 와닿은 부분 밑줄 쳤습니다. 우리가 쓰고 있는 가면의 종류가 참 많은데요, 화자가 쓴 가면을 생각해보게 됩니다. 문학이라는 가면에 기대어~~ 자기를 끝까지 파헤친 작가/화자에게 옳고 그름의 잣대를 들이밀고 싶지 않다는 부분 인상적입니다. 고백을 한다는 건 이미 자신도 엄청난 일인걸 인지하고 있고, 부끄럽다는 게 전제되어 있지 않을까 싶네요. 문장마다 타자를 이해하려는 마음이 맺혀있어 좋았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OO 님)  


  2번째 문단 전부가 가슴을 울립니다. 제가 세상과 비타협하는 사람들에게 애정이 있어서 그럴까요... 저도 이런 자발적인 감상문 쓰고 싶은데 잘 안되네요 ㅜ 글 너무 좋았습니다. 오늘 낮에 말씀들었던 것 이상의 내용이 담겨있네요 (제발)(굿)(OO 님)


  소중한 글 언제나 투척하시면 받겠습니다~ 맞습니다. 우리가 시선을 어디에 맞추고 작품을 읽어내고 감상을 하느냐에 달린 것 같습니다. 가면의 고백은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가감없이 드러낸 작품입니다. 작가의 너무나 화려한 배경 때문에 자기기만으로 읽혀서 자꾸 걸렸던겁니다. 하지만 누구나 자기만의 가면을 드러낼 수 있느냐 없느냐는 용기만 있으면 될까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아무튼 오늘은 생각하면 할수록 수렁에 빠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정리된 생각을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OO 님)


  제 감상문 읽어주시고 피드백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제가 10을 던졌는데 20으로 받아주셔서 몸둘바를 모르겠어요. 책을 읽을 때마다 글을 쓸 수는 없지만 이 책은 뭔가 진하게 짠한 것이, 나라도 크게 편들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것 같아요. 또 뭔가 앙금이 남으면 써서 투척해볼께요. 저 하트 너무 좋아하나봐요�(OO 님)


  다니자키 준이치로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슌킨이야기랑 미친 노인의 일기 찾아서 읽어볼게요 ^^(OO 님)


발췌



오래도록 나는 내가 태어났을 때의 광경을 보았노라고 우겼다. 그말을 꺼낼 때마다 어른들은 웃었고, 나중에는 얘가 나를 놀리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드는지 이 창백하고 어린애답지 않은 아이의 얼굴을 가벼운 미움이 담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어쩌다 별로 가깝지 않은 손님 앞에서 그런 말을 꺼내기라도 하면 자칫 백치인 줄로 오해할까 걱정하신 할머니는 다소 엄한 목소리로 내 말을 가로막으며 저쪽에 가서 놀라고 하셨다. (p.11)


-언덕길을 내려온 이는 한 젊은이였다. 그는 분뇨 통을 앞뒤로 짊어지고 더러운 수건을 머리에 질끈 묶고, 혈색 좋은 아름다운 뺨과 반짝이는 눈을 하고 발로 앞뒤 무게에 균형을 잡아가며 언덕길을 내려왔다. 그는 분뇨 수거인—똥지게꾼—이었다. 작업화를 신고 몸에 착붙는 감색 작업복을 입고 있었다. 다섯 살의 나는 이상할 만큼 그 모습을 뚫어지게 지켜보았다. 아직 그 의미는 정확하지 않았지만 어떤 힘의 최초의 계시, 혹은 어둡고 신비한 부름이 내게 말을 걸어온 것이었다. (p.23)


-병사들의 땀 냄새, 그 바닷바람 같은, 황금으로 달궈진 해안의 공기 같은 냄새, 그 냄새가 내 콧구멍을 사로잡고 나를 취하게 했다. 내 생애 최초의 냄새에 대한 기억은 바로 이것인지도 모른다. 그 냄새는 물론 바로 성적인 쾌감으로 연결되지는 않았으나, 병사들의 운명과 그 직업이 품은 비극성, 그들의 죽음, 그들이 보게 될 머나먼 나라들, 그런 것에 대한 관능적인 욕구를 내 안에 서서히, 그리고 뿌리 깊게 눈뜨게 하였다. (p.23)



그 비할 데 없이 흰 나체는 엷은 어둠이 깔린 배경 앞에서 빛나고 있었다. 친위병으로서 활을 당기고 검을 휘둘렀던 그 늠름한 팔뚝이 아무런 무리 없는 각도를 쳐들려, 머리칼 바로 위에서 꽁꽁 묶인 손목이 십자로 엇갈렸다. 얼굴을 아주 조금 들어 하늘의 영광을 바라보는 듯한 눈이 깊고 평안하게 뜨여 있었다. 불룩 튀어나온 가슴에도, 팽팽한 복부에도, 약간 비틀린 허리 주위에도 감돌고 있는 것은 고통이 아니라 어딘가 음악과도 같은 나른한 일락(逸樂)*의 술렁거림이었다. 왼편 겨드랑이에서 오른편 옆구리로 깊숙이 박힌 화살이 없다면, 그것은 어쩌면 로마의 경기자가 저녁 어스름이 내리는 정원수에 기대어 피곤한 몸을 달래는 모습처럼 보였다.(p.47)


화살은 팽팽하고 향기로운 청춘의 살 속으로 파고들어, 더할 수 없는 고통과 환희의 불길로 그의 육체를 내부에서부터 태워버리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흐르는 피는 그려지지 않았고 다른 세바스티아누스 그림에서 볼 수 있는 무수한 화살도 그려지지 않은 채, 그저 두 개의 화살이 흡사 돌계단에 떨어진 나뭇가지의 그림자처럼 고요하고 단련한 그림자를 그의 대리석 같은 살갗 위에 떨어뜨리고 있었다. (p.48)


 

구이도 레니의 [성 세바스티아누스] 제노바의 팔라초 로소에 소장

Guido_Reni_-_Saint_Sebastian


[히르슈펠트*가 성도착자들이 특히 좋아하는 회화 및 조각 1위로 ‘성 세바스티아누스 그림’을 꼽은 것은 나의 경우 흥미로운 우연이었다. 이것은 성도착자, 특히 선천적인 성도착자에게는 도착적 충동과 사디스틱한 충동이 구별하기 어렵게 착종되어 있는 경우가 압도적이라는 사실을 추측하기에 아주 적합한 예다. (p.49)


-그러면서 나는 내가 누카다의 누나를 사랑하고 있다고 믿어버렸다. 나는 또래의 순진해빠진 대학생들이 하는 것처럼 그녀의 집 주위를 어슬렁거리기도 하고, 그녀의 집 근처 서점에 오래도록 서 있으면서 그 앞을 지나가는 그녀를 만날 기회를 엿보기도 하고, 쿠션을 품에 안고 여자를 끌어안는 공상을 하기도 하고, 그녀의 입술 그림을 수없이 그려보기도 하고, 절망에 찬 자문자답을 해보기도 했다. (p.114)


-1944년, 그러니까 종전 한 해 전 9월에 나는 유년시절부터 다니던 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들어갔다. 매사에 우격다짐인 아버지의 강권으로 법률 전공을 선택했다. 하지만 머지않아 나도 군대에 징집되어 전사하고 우리 일가도 공습으로 한 사람도 남김없이 죽어주리라고 확신했기 때문에 그리 고통스러울 것은 없었다. (p.119)

안드레 만테냐 <성 세바스티아누스>



-공습을 남들보다 훨씬 무서워하면서 동시에 나는 어떤 달콤한 기대로 죽음을 기다려 마지않았다. 몇 번이나 말했듯이 내게는 미래가 너무나 버거웠던 것이다. 인생은 처음부터 의무관념으로 나를 조여왔다. 내가 의무를 이행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잘 알면서도 인생은 나를 의무 불이행이라는 이유로 마구 힐책하는 것이었다. 이런 인생을 죽음으로 골탕 먹인다면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하고 나는 생각했다. 전쟁중에 유행하던 죽음의 교의(敎義)*에 나는 관능적으로 공감했다. 내가 만일 ‘명예로운 전사’를 하게 된다면(그건 참으로 어울리지 않는 일이었지만) 그야말로 풍자적으로 생애를 마감한 것이 되고, 무덤 안에서 내가 지을 미소의 씨앗은 영원히 시들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런 내가 사이렌이 울리면 누구보다도 빨리 방공호로 도망치는 것이었다.(p.120)


-그렇게 멀리서 도쿄 상공에서 일어나는 공중전을 보았으니 어떻게 적과 우리 편을 구별할 수 있을까. 그런데도 벌건 하늘을 배경으로 격추되는 비행기의 자취를 보면 구경하던 이들은 일제히 갈채를 보냈다. 그중에서도 떠들썩한 것은 소년공들이었다. 방공호 여기저기에서 극장처럼 박수와 환성이 울려펴졌다. 이렇게 멀리서 구경할 때는 떨어지는 비행기가 적의 것이든 우리 것이든 본질적으로 큰 차이가 없었다고 나는 생각했다. 전쟁이란 그런 것이었다. (p.169)


-한밤중에 푸른 하늘이 언뜻 드러나는 것이다. 힘을 잃은 탐조등이 마치 적기를 반갑게 맞이하는 서치라이트처럼 활활 타오르는 빛의 십자무늬 가운데로 적기 날개에서 번득이는 빛을 언뜻 비추고는, 느릿느릿 도쿄 쪽에 가까운 탐조 등에 빛의 바통을 전해주며 은근한 안내자 역할을 맡고 있었다. 고사포의 포격도 근래에는 뜸했다. B29*는 아무 거리낌 없이 도쿄 하늘에 들어섰다. (p.169) *제2차 세계대전에 사용된 미국의 폭격기 



-다음날 아침 나는 아직도 연기가 피어오르는 침목을 밟으며 절반은 거뭇거뭇 타버린 좁은 판자를 걸쳐놓은 철교를 건너 불통된 철도선의 거의 절반을 걸어서 집에 돌아왔고, 우리집 근처만 타지 않고 멀쩡하게 남아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따금 이쪽에 와서 머물던 어머니와 동생들도 어젯밤의 불난리를 보고 다급하게 돌아와 기뻐하고 있었다. 불난리 속에서 멀쩡하게 살아남은 것은 축하하기 위해 지하에서 통조림 양갱을 꺼내 와 모두 함께 먹고 있었다. (p.169)


*어떤 종교에서 진리라고 믿고 가르침. 


-“다음에는 언제 또 만날 수 있을까요?” 그녀가 말했다. “글쎄, 나 있는 곳에 아메리카가 상륙하지만 않는다면.” 나는 대답했다. “한 달쯤 뒤에 다시 휴가를 얻을 수 있어.”—나는 원했다. 원하는 것뿐만 아니라 미신적인 확신까지 하고 있었다. 앞으로 한 달 사이에 미군이 S만을 통해 상륙하고, 우리 학도병으로 차출되어 한 사람도 남김없이 전사하리라는 것을, 그렇지 않으면 아직 그 누구도 생각한 적 없는 거대한 폭탄이 내가 어디에 있건 따라와 바로 이 나를 깨끗이 죽여주리라는 것을.—나도 모르는 사이 원자폭탄을 예견한 셈이라고나 할까.(p.177)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던 일이 일어난 것이다. 전쟁이라는 상황에 대한 느낌과 생각에서 나와 소노코 일가 사이에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점을 계산에 넣지 않았던 것이다. 아직 스물한 살이고 학생이고 비행기 공장에 나가고 있고, 게다가 전쟁이 계속되는 가운데 성장한 나는 전쟁의 힘을 지나치게 로마네스크한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이토록 거센 전쟁의 파국 속에서도 인간이 영위하는 자침(磁針)은 의연히 한 방향으로만 향하고 있다. 나 또한 지금까지 사랑을 할 작정이었으면서 어째서 그것을 깨닫지 못했을까. 나는 어설픈 웃음을 입가에 띤 채 편지를 다시 읽었다. (p.188)


-그날 밤 내가 생각해도 참으로 부자연스럽게 보이는 완곡한 거절의 편지를 썼다. 너무 갑작스러운 일인 데다 지금 단계에서는 거기까지 마음이 나아가지 않는다고 썼다. 다음날 아침 공장에 돌아가자마자 우체국에 편지를 부치러 갔을 때, 속달계의 여직원이 내 떨리는 손을 의아한 듯 쳐다보았다.(p.191)


 -전쟁에서 이기든 지든, 그런 건 어찌되든 상관이 없었다. 나는 단지 다시 태어나고 싶을 뿐이었다. (...) 이윽고 자리에서 일어날 즈음, 히로시마 전멸의 뉴스를 들었다.(p.192)


 -마지막 기회였다. 다음 차례는 도쿄라고 사람들 사이에 소문이 파다했다. 나는 하얀 셔츠에 반바지 차림으로 거리를 돌아다녔다. 자포자기의 절정에 이른 사람들은 오히려 명랑한 얼굴로 활보했다. 일 초 일 초, 아무 일도 없었다. 부풀어오른 고무풍선이 이제 곧 터지겠지, 터질 거야, 하고 압력을 더해갈 때처럼 명랑한 두근거림이 모든 곳에서 느껴졌다. 그러면서도 일 초 일 초, 여전히 아무 일도 없었다. 그런 날이 열흘이 넘도록 계속되자 남은 건 미쳐버리는 일밖에 없을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어느 날, 얼뜨기 같은 고사포 포격을 뚫고 맵시 좋은 비행기가 여름 하늘에전단을 쏟았다. 항복했다는 뉴스였다. (p.192)





-“저기요.” 그녀가 조용히 말문을 열었다. “한번 물어봐야지 하면서도 지금까지 묻지 못한 게 있어요. 어째서 우리는 결혼을 하지 못했을까요? 나는 오빠를 통해 답장을 받았을 때부터 세상일이 뭐가 뭔지 알 수 없게 되었어요. 날마다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서 지냈죠. 그래도 알 수가 없더군요. 지금도 나는 어째서 당신과 결혼하지 못했는지 알 수가 없어요…”(p.211)


-코카콜라의 단맛이 끈끈하게 입 안에 들러붙었다. 내가 온갖 것으로부터 느끼는 모욕의 아픔이 소노코의 입까지 닫아걸게 했다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서서히 지나가는 침묵의 시간을 더는 견딜 수 없어 시선을 우리 주위로 옮겼다. (p.224)


 -또 한 젊은 사내에게로 내 눈길이 가 닿았다. 스물두세 살의 거칠기 짝이 없지만 거무스레한 빛으로 정돈된 얼굴의 젊은이였다. 그는 반라의 모습으로 땀에 젖어 엷은 쥐색을 띠는 빛바랜 하라마키를 풀어 다시 배에 두르는 중이었다. (...) 벗은 가슴은 충실하고 탄탄한 근육으로 불룩거리고, 깊고 육체적인 근육이 만들어내는 음푹 팬 도랑이 가슴팍 한가운데에서부터 배 쪽으로 흘러갔다. (...)내 시선은 열렬히 그 천박하고 야만적인, 그러나 비할 데 없이 아름다운 육체로 달려가 꽂혔다. 그는 태양아래에서 웃고 있었다. 가슴을 뒤로 젖힐 때마다 볼록 튀어나온 목울대가 보였다. 심상치 않은 두근거림이 내 가슴의 밑바닥을 스치고 내달렸다. 나는 그 모습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p.236)


 -나는 소노코라는 존재를 잊어버렸다. 오로지 한 가지만 생각했다. 그가 저렇게 웃통을 벗은 모습으로 여름이 한창인 거리로 뛰어나가 야쿠자들과 한판 싸움을 벌이고, 날카로운 비수가 저 하라마키를 뚫고 그의 몸통에 꽂히고, 저 더러운 하라마키가 피범벅으로 아름답게 물들고, 그리고 그 피투성이 시신이 들것에 실려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고……(p.236)


-그 순간 내 마음속에서 무엇인가가 잔혹한 힘에 의해 두 쪽으로 갈라졌다. 번개가 떨어져 생나무가 쪼개지듯이. 내가 지금까지 온 영혼을 기울여 쌓아올린 건축물이 참혹하게 무너져내리는 소리를 나는 들었다. 나라는 존재가 뭔가 무시무시한 ‘부재(不在)’로 바뀌는 바로 그 순간을 본 것 같았다. 나는 눈을 감고 아주 짧은 순간에 내 가면으로 다시 돌아와, 얼어붙을 듯한 의무관념에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p.226) 



고전문학BOOK클럽 모집 참고

https://blog.naver.com/bhhmother/22307077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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