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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샛별 Aug 26. 2023

미셸 자우너 <H마트에서 울다>BOOK리뷰

샛별BOOK연구소


 에세이 <H마트에서 울다>, 미셸 자우너, 문학동네, 2022.(400쪽 분량)  


  미셸 자우너 에세이 <H마트에서 울다>는 엄마의 죽음을 애도하며 쓴 딸의 사모곡이자 추모곡이다. 엄마의 그림자가 남아 있는 H마트에서 미셸은 엄마의 숨결과 손결, 발걸음을 찾아 헤맨다.  미셸은 카트를 밀고 다니며 엄마가 샀던 식재료들을 계산하고 자신을 치유하는 요리를 한다. ‘엄마가 돌아가신 뒤로 나는 H마트에만 가면 운다.’로 시작하는 에세이는  여러 종류의 한국 음식이 담겼다. 저자는 H마트에 갈 때마다 엄마가 해준 음식들을 생각했고, 식당에서 밥을 먹었던 순간들을 떠올렸다. 그 기록들이 고스란히 담긴 책이다.  


  미셸의 엄마는 이십 대 때 한국에서 만난 미국 남자와 결혼해 미국에서 딸을 낳고 키웠다. 엄마는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고 애썼고 그 마음은 한국 음식으로 귀결됐다. 한국 사람은 국물을 먹어야 한다며 딸에게 정성껏 한국 음식을 알렸고, 차렸고, 먹였다. 


  한국음식을 먹고 자란 미셸은 생각지도 못한 엄마와의 이른 이별에 마음이 찢어진다. 딸은 사춘기 때 엄마를 속 썩였던 일들이 떠올라 괴롭다. 미셸은 코스트코에서 100달러짜리 야마하 어쿠스틱 기타를 사서 일주일에 한 번씩 레슨을 받았다. 미셸은 ‘몇 곡을 직접 쓰게 되었고, 그걸로 코즈믹 피자 식당에서 열리는 열린 무대의 밤에 출연’(p.101) 하기로 했고, 공연은 성공한다. 공연 다음날 엄마는 미셸을 데리고 한국인 부부가 운영하는 식당에 데려가 “이제 대학 갈 생각을 해야지. 그런 이상한 짓거리를 하고 앉아 있을 게 아니라.”(p.109)라며 말하자 미셸은 대학에 가고 싶지 않고 음악을 하고 싶다며 엄마와 다툰다. 전 과목낙제를 받은 딸의 성적표를 들고 엄마는 미친 듯이 서류를 준비해 대학에 보냈다. 


  책은 딸의 시점에서 조망하지만 한국인 엄마와 미국인 아빠의 삶은 어땠을까 상상의 각을 세워본다. 아빠는 한국인 아내와 딸을 돌봐야 하는 가장으로 일렬의 행동들은 미숙했고, 엄마는 낯선 땅에서 이방인으로 자식을 키우며 까다로웠다. 이는 외동딸 미셸에게 투영됐고, 혼혈아라는 정체성과 엮어 이중으로 외로웠다.  


 56세인 엄마가 겪는 암 투병을 보며 미셸은 슬펐다. 엄마는 투병 중 탈수증세가 와 병원에 입원한다. 미셸은 엄마 병상 옆 창가 벤치에 드러누워 어렸을 때 ‘차가운 발을 녹이려고 엄마 넓적다리 사이에 슬며시 발을 끼워넣던 일’(p.149)을 떠올렸다. 또, 엄마가 자신의 가죽부츠를 미리 신어 길들여놓은 일도. 엄마가 자신을 떠나려 하자 미셸은 이제야 엄마의 깊은 사랑을 느낀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2주 정도 되었을 때 아빠와 미셸은 베트남으로 여행을 갔다. 프랑스식 베트남 퓨전요리 식당에서 미셸이 망고 해산물 샐러드를 먹지 못하자 아빠는 종업원을 불러 “애가 안 좋아해요”(p.294)라며 엄지와 검지로 코를 잡고 손부채질을 하며 비린내가 난다는 시늉을 한다. 미셸이 괜찮다고 하자 아빠는 ‘현지 음식을 얕보는 행동까지’(p.295) 해 결국 미셸과 아빠는 말다툼을 하고 여행은 파장으로 끝난다. 엄마를 잃은 슬픔을 달래기 위해 온 여행에서 부녀는 상처를 받고 남은 일말의 연민까지 탈탈 털어버린다. 


   미셸은 피터와 결혼하고 뉴욕시에 거주하며 바쁜 생활을 한다. 그러나 엄마가 자꾸 생각나 상담을 받기 시작하지만 호전되지 않는다. 상담사에게 ‘내가 느끼는 감정을 설명하려고 노력했지만 번번이’(p.353) 실패했고, 치료 효과도 보지 못하자 상담비로 차라리 맛있는 걸 사 먹고 음식을 만들기로 한다. 미셸은 ‘망치여사’의 동영상을 보면서 총각김치와 배추김치를 만들어본다. 배추와 총각무 여섯 단을 사서 엄마를 생각하며 담가본다.  김치를 만들면서 ‘그 노동은 생각보다 간단했으며 마음을 편안하게 가라앉혀주었다’(p.360)고 미셸은 생각했다. 이때부터 한 달에 한 번씩 김치를 만들었고 ‘이것이 나의 새로운 치유법이었다.’(p.360)말하는 저자. 엄마의 음식. 한국음식에 대한 맛을 더듬고, 엄마를 기억하고 애도하는 방법으로 그녀가 선택한 치유법은 김치를 담그는 것이었다.


  저자는 엄마의 죽음을 엄마가 남긴 표식으로 기억하며 ‘엄마가 가르쳐준 교훈을, 내 안에 내 일거수일투족에 엄마가 살아 있다는 증거’(p.373)고 생각하며 최대한 기록으로 남겼다. 책은 엄마를 향한 추모곡이자 사모곡이다. 딸은 H마트에서 울면서 장을 보고, 김치를 담그고 작곡과 연주를 하며 지낸다. 김치를 버무리며 뚝뚝 흘리는 그녀의 눈물이 독자들의 마음에도 김칫국물처럼 자국을 남긴다. 



발췌



엄마가 돌아가신 뒤로 나는 H마트에만 가면 운다.

H마트는 아시아 식재료를 전문으로 파는 슈퍼마켓 체인이다. H는 한아름의 줄임말로, 대충 번역하자면 “두 팔로 감싸안을 만큼”이라는 뜻이다. 한국에서 조기 유학을 온 아이들은 고국에서 먹던 갖가지 인스턴트 라면을 사러, 한인 가족들을 설날에 해 먹을 떡국 떡을 사러 이곳에 온다. 큼직한 통에 담긴 깐 마늘도 여기서만 살 수 있다. 한국 음식을 해 먹는데 마늘이 얼마나 많이 필요한지를 제대로 알아주는 곳은 이곳뿐이라는 말이다. H마트는 일반 슈퍼마켓 매대 중 달랑 한 칸을 차지하는 ‘세계 전통 식품’ 코너에서 우리를 해방시켜준다. (p.9)(첫 문단)


이곳에서는 스리라차 소스 병 옆에 고야 통조림을 쌓아주지 않는다. 대신 오만 가지 반찬이 있는 냉장식품 코너도 있고, 만두피를 구비해놓은 냉동식품 코너도 있다. 그 앞에서 나는 엄마의 계란 장조림과 동치미 맛을 떠올리며 눈물을 훔치다가, 엄마와 둘이서 식탁에 앉아 얇은 만두피에 다진 돼지고기와 부추 소를 넣고 만두를 빚으며 보낸 그 모든 시간을 떠올리면서 만두피 한 덩이를 집어든다. 그러다가 건조식품 코너에서 훌쩍이며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제 전화를 걸어, 우리가 사 먹던 김이 어디 거였냐고 물어볼 사람도 없는데, 내가 여전히 한국인이긴 할까? 




  백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자란 나는 전적으로 어머니에게서 한국 문화를 접했다. 엄마는 내게 직접 요리하는 법은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한국인들은 똑 떨어지는 계량법 대신 “참기름은 엄마가 해주는 음식맛이 날 때까지 넣어라” 같은 아리송한 말로 설명하길 좋아한다) 내가 완벽한 한국인 식성을 갖도록 나를 키웠다. 말하자면 나도 훌륭한 음식 앞에서 경건해지고, 먹는 행위에서 정서적 의미를 찾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우리는 음식 하나하나에 대한 선호가 분명했다. 


   김치는 알맞게 익어서 적당히 새콤한 맛이 나야 했고, 삼겹살은 바짝 구운 것이어야 했으며, 찌개나 전골은 입안이 델 정도로 뜨겁지 않으면 차라리 안 먹느니만 못했다. 한 주 동안 먹을 음식을 미리 만들어둔다는 생각은 말도 안 되었고, 우리는 그날그날 당기는 음식을 바로바로 만들어 먹었다. 만약 3주 동안 김치찌개 말고는 다른 음식이 생각나지 않으면, 딴 음식이 생각날 때까지 허구한 날 김치찌개만 만들어 먹었다. 우리는 철철이 제철 음식을 해 먹었고, 꼬박꼬박 명절 음식을 챙겨 먹었다. 



안국역 어니언 빵집~ 드디어 방문.


봄이 되어 날이 따뜻해지면 마냥 테라스에 캠핑용 레인지를 들고 나가서 다 같이 둘러앉아 신선한 삼겹살을 구워먹었다. 내 생일날에는 미역국을 끓여먹었다. 미역국은 한국에서 산후조리중인 산모들에게 권장하는 영양소가 풍부한 해초 수프인데, 한국에서는 생일날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를 생각하며 이걸 먹는 전통이 있다. (p.11)


그런 내게 H마트는 도무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기억, 항암치료로 머리카락이 다 빠지고 뼈만 남은 엄마의 몸과 하이드로코돈(마약성 진통제) 복용량을 기록하던 기억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준다. 대신 두 분이 그전에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떠올리게 해준다. 아름답고 활기찬 모습, 고리 모양의 달콤한 짱구 과자를 열 손가락에 끼고 흔들어대던 모습, 한국 포도를 먹을 때 껍질에서 알맹이만 쪽 빨아먹고 씨를 훅 뱉는 법을 내게 가르쳐주던 모습을. (p.23) 


그때 나는 엄마의 인생의 주축이던, 나를 돌보는 일에 대해서는 잘 알지도 못했으면서 그저 엄마를 매도하기 바빴다. 그 보이지 않는 고된 노동을, 자신만의 열정에 헌신하지도 않고 실용적인 기술 개발도 소홀히 한 전업주부가 남 뒷바라지 하는 것이라고 폄하했다. 가정을 이룬다는게 무엇을 뜻하는지, 내가 그 속에 받은 보살핌을 그동안 얼마나 당연하게 여겼는지를 이해하기 시작한 때는 집을 떠나 대학에 가고서 몇 년이 지난 뒤였다. (p.92)


북촌문화센터 교육관1 


더 나은 판독 기술로, 의사는 엄마가 췌장암이 아니라 담관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이는 보기 드문 형태의 편평상피암 4기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의사들은 부모님에게, 만약 첫 번째 의사 말대로 수술을 했더라면 과다 출혈로 수술대에서 사망했을 거라고 했다. 의사들이 내린 처방은, 이제 집으로 돌아가 세 종류의 약을 섞어 만든 항암제 폭탄을 복용하고, 결과가 좋으면 이어서 방사선치료를 하는 것이었다. 당시 엄마는 나이가 쉰 여섯에 불과했기에 암에 걸렸어도 비교적 건강한 편이었다. 그래서 의사는 치료를 세게 들어가면 승산이 있다고 보였다. (p.118)



참기름, 물엿, 탄산소다에 재운 부드러운 갈비가 팬에서 지글지글 구워지면서 내뿜는 달큼한 냄새가 부엌에 가득했다. 엄마는 신선한 적상추를 깨끗이 씻어 내가 앉아 있는 거실 유리 탁자 위에 올려놓았고, 연이어 다른 반찬들도 가져다 놓았다. 먹기 좋게 반으로 자른 계란장조림, 파와 참기름으로 무친 아삭한 콩나물, 국물이 넉넉한 된장찌개, 딱 알맞게 익은 총각김치였다. (p.122)


-엄마는 차례가 오면 김밥을 쌌다. 내가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엄마가 밥을 한 솥 가득 해서는 거기에 노란 단무지, 당근, 시금치, 소고기, 계란을 넣고 얄브스름한 대나무 발도 돌돌 말고 또 말았다. 그러고는 모두 한입 크기로 도막도막 잘라 알록달록한 동전처럼 생긴 김밥을 완성했다. 수업에 가기 전에 엄마와 나는 채소들이 들쭉날쭉 튀어나온 꽁다리로 배를 채웠다. (p.140)

 


-조금 있다가 계란찜을 한번 만들어보자는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계란찜은 한국 식당에서 정성 들여 만드는 반찬으로, 향긋한 풍미가 식욕을 돋우는 계란 커스터드다. 영양도 풍부하지만 무엇보다 마음을 달래주는 듯한 부드러운 맛과 식감 때문에 어렸을 때 내가 가장 좋아하던 음식이다.(p.143)


 아빠는 술도 잘 마셨다. 일이 끝나면 자기 사무실 건너편에 있는 하일랜즈 바에서 왕 노릇을 했다. 테킬라 몇 잔과 맥주 여섯 병을 단숨에 들이켜는 것쯤은 일도 아니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 멀쩡하게 출근을 했다.(p.126)


아빠의 폭력적인 과거가 이제는 영웅적인 행위가 아니라 자기 약점에 대한 변명처럼 들렸다. 계속 맨정신이 아닌 상태로 있는 모습도 더는 정이 가지 않았다. 일이 끝나면 술을 마시고 직접 차를 몰아 집에 오는 것도 무책임해 보였다. (p.128) 




아빠는 큰 몸을 들썩거렸다. 쩍쩍 갈라진 입술 주름 사이사이에 짙은 보라색 와인이 스며들어 있었다. 아빠가 우는 모습은 드물지 않게 봐온 터였다. 아빠는 불굴의 투지를 가진 사나이였지만 상처도 잘 받았다. 아빠는 일말의 진실도 감출 줄 몰랐다. 엄마와 달리 10퍼센트를 따로 남겨주는 법을 몰랐다. (p.154) 


이 사람은 내 아빠였고 나는 아빠가 침착하게 나를 안심시켜 주기를 바랐다. 나를 들들 볶아대서 이 절망스러운 길을 외롭게 걸어가도록 하는게 아니라. 나는 아빠 앞에서 울 수조차 없었다. 그렇게 하는 순간 아빠는 분명 내 슬픔에 자기 슬픔을 얹을 터였다. (p.155) 


 나는 사랑은 행위이고, 본능이고, 계획하지 않은 순간들과 작은 몸짓들이 불러일으키는 반응이며, 타인에게 친절을 베풀기 위해 불편을 감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엄마가 아프다는 걸 알고 나서 혼자 브루클린 창고에 누워 있는 나의 손을 잡아주려고 이 남자가 일이 끝난 새벽 세시에 뉴욕까지 차를 몰고 달려왔을 때, 사랑이 바로 이런 거란 걸 더없이 절실히 느꼈노라고 말했다. 내가 필요할 때마다 이 남자는 몇 번이고 5천 킬로미터라는 거리를 날아 내게로 와주었고, 6월부터는 연일 하루에 다섯 번씩 해대는 전화를 받아 참을성 있게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p.243) 


 엄마의 죽음이라는 벌에 쏘이는 순간부터, 나란 존재가 무덤에 들어갈 때까지 남은 평생을 벌침이 박힌 채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내 얼굴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엄마도 울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 부둥켜안으며 서로 티셔츠에 얼굴을 파묻고 한바탕 서럽게 흐느꼈다.(p.248)

 

미셸 자우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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