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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샛별 Aug 24. 2023

권여선 <각각의 계절> 중 '무구' BOOK리뷰

샛별BOOK연구소


<각각의 계절> 중 '무구', 권여선, 문학동네, 2023.  


무구 (無垢)

1. 때가 묻지 않고 맑고 깨끗함.

2. 꾸밈없이 자연 그대로 순박함. 


  은퇴 생활자의 부부 이야기. 그리고 '무구'에 관해. 소미는 U 시에 건물이 있고, 세를 받아 생활한다. 아침에 소미는 마사지숍으로 남편은 골프연습장으로 향한다. 소미는 마사지를 받으며 이렇게 윤택한 생활을 하게 된 게 현수의 덕이라고 생각하며 16년 전 그 시절로 들어간다. 


  친구 현수를 향한 소미의 감정은 세 가지다. '원망 때문인지, 그리움 때문인지, 아니면 일말의 불안감 때문인지'(p.119). 미묘와 복합이 섞인 감정들이 소미 곁에 맴돈다. 고현수는 소미의 독문과 대학 동기였는데 20년 만에 페이스북에서 알게 됐다. 현수를 만나러 가는 길이 멀다. 스무 살 인문대 깃발을 흔들고 늘씬했던 현수는 소미의 예상과 달리 '이혼하고 혼자 딸 둘을 키우는 뚱뚱한 중년 여자가 되어 피곤에 전 모습으로 부동산 사무실에 앉아'(p.145) 있었다. 소미는 현수의 낡은 차를 타고 '샘골 식당'으로 향한다. 소미는 만둣국을 먹으러 온 사람들의 작은 '소동'을 보며 U 시의  사람들을 느낀다.   


  소설에는 소미가 샘골식당에 간 장면이 두 번 나온다.  그때마다 옆 테이블의 사람들을 관찰한다. 첫 번째는 현수와 함께 갔다. 그 옆 테이블에는 아이 둘을 데리고 온 부부가 큰 아들을 폭력적으로 대하더니 부부끼리 투닥거리고 만둣국을 어수선하게 먹고 나간다. 현수는 저 부부가 샘골 쪽 아파트를 덥석 사서 들어왔을 거란다. 하루가 다르게 오르던 아파트였지만 지금은 몰락의 시간을 겪고 있다며... 


  그리고 두 번째 식당에 소미 혼자 간다. 현수가 잠적하자  혼자 끙끙 앓던 땅을 팔기 위해 U 시로 내려가 만둣국을 먹는데 젊은 연인들이 들어와 만둣국을 시킨다. 밥이 공짜라서 두 공기나 시켜 만두 국물에 말아먹고, 국에 든 만두 네 알을 식혀 비닐봉지에 담아 가는 연인들. 곧이어 늙은 남자가 들어와 만둣국과 밥 한 그릇을 시킨다. 직원이 밥이 다 떨어졌다고 하자 동네 장사를 이런 식으로 하냐며 혀를 차는 늙은 남자. 


  만둣국 집에서 본 사람들의 알 수 없는 블랙코미디, 은근한 욕심, 다투는 상황들이 소미를 진저리 치게 했다. 가난은 이토록 사람들을 치사하게 다소 악(?)하게도 만든다. 소미는 이 도시의 사람들에게 무서움을 느끼며 계약만 성사되면 더 이상 이 식당에 올 일도 없겠다 생각했다.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하기 어려울 정도로 호황이었던 부동산 사장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U 시의 몰락이 임박했고, 자취를 감쳤다. 땅은 무구한데 사람들은 그 땅을 들쑤시며 온갖 투기와 욕심을 투영해 사기를 친다. 


  그러거나 말거나 소미는 2시간 30분 거리를 오가며 찬란하게 행복했다. 마흔다섯의 소미는 20년 만에 만난 친구 현수랑 얘기를 하고, 만둣국, 칼국수를 먹으러 다니고 담배를 피우고, 현수가 이혼하게 된 '휴지논쟁'을 듣는다. 현수는 자신이 이혼한 게 '아무래도 휴지 때문인 거'(p.142)같다고 말하자 현수와 소미는 '담배를 든 채 미친 여자들처럼 몸을 비틀며 얼굴이 빨개지도록 웃었다'(p.142) 이 무구한 웃음... 소미는 현수를 만나서 많이 웃었다. 소미는 남편에게 현수 이야기를 하며 늘 웃었다. 지나고 보니 그 시절 웃음만큼은 무구했다. 무구한 웃음... 


 반면, 현수의 삶은 늘 불안했다. 4학년 1학기에 학교를 그만두고 현장에 투입되어 노동운동을 하더니 결혼과 이혼. 딸 둘을 키우며 생활고에 전전긍긍했다. "그때 우리는 젊었으며...... 두렵고 또 두려웠지."(p.144) 현수는 20대의 젊은 시절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지만, 마흔다섯인 현수의 상황도 그때와 별반 달라 보이지 않았다. 친구에게 땅을 소개하고, 땅을 팔고, 연락을 끊고, 전화번호까지 없애버린 상황. 현수는 또 어디로 갔을까. 환갑이 돼가는 소미가 그 마흔다섯의 시절을 생각하며 우리는 "젊었으며...... 두렵고 또 두려웠"지로 점철된다. 이십 대나 사십 대나 젊었지만 두려움은 매한가지. 삶은 두려움의 연속인가. 지금 환갑인 소미는 두렵지 않을까. 그래도 현수와 소미는 그때 함께였다. 미래는 알 수 없지만 같이 나눌 수 있었다. 현수가 있었기에 소미는 겁도 없이 남편 몰래 땅을 샀다. 소문이 흉흉한 땅을 사고 현수는 사라지고, 10년 동안 원금과 이자를 갚으며 두려웠다. 


 세신사는 소미에게 사모님은 "참 때가 없으시다고요."(p.145) 한다. 때가 없는 소미. 때가 없으면 좋은 건가. 더럽지 않으니 좋은 건가. 깨끗한 건 좋은 건가. 깨끗한 건 무구한 것인가. '소미는 벌거벗은 채 세신용 침대에 모로 누워 웃음인지 눈물인지를 참느라 신생아처럼 눈을 꾹 감고 입을 앙 다물었다.'(p.146). 인간의 생애 중 가장 무구한 상태. 신생아. 소미는 벌거벗고 몸을 웅크려보지만 절대 무구해질 수 없다. 현수가 자기를 찾아와 땅을 공동명의 하자고 하면 어떡하지. 땅값의 반을 내겠다고 한다면 어떡하자. 현수를 찾으려면 찾겠지만 그러고 싶지 않다. 땅은 무구하지만 '사람은 절대 무구하지 않다'(p.145)고 생각하는 소미. 자신이 얼마나 속물인지, 더러운지를 느끼며 소미는 세신용 침대에 누워 몸을 웅크리며 눈물짓는다. 그럼에도 소미는 현수가 그립다. 현수와 U 시에서 무구하게 웃었던 젊음이 그립다. 


  소미의 하루 일과는 다음과 같다. 아침에 일어나 마사지숍에 오고, 쑥뜸을 뜨고, 네일을 관리받고, 헤어숍에 가고, 뷰티숍에 가고, 시간이 남으면 한의원으로 가 침을 맞고, 점심 모임에 나가고, 혼자 영화를 보거나 쇼핑을 한다. 소미는 '어딜 가도 흠 잡힐 것 없는 산뜻한 상태'(p.138)로 자기관리를 하며 하루를 보낸다. 소미는 건물주가 됐고, 임대료를 받으며, 남편과 각각 시간을 보내며 은퇴생활자로 윤택하게 지내지만 공허했다. 무료했다. 웃음이 없어졌다.  지금도 이렇게 외로운데 앞으론 얼마나 외로울지. 소미는 노후가 아득하다. 그래서인지 '절대 그럴 리는 없지만 언젠가 현수가 자기를 찾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몰랐다.'(p.146). 인간도 땅도 변하고 절대 무구할리 없겠지만... 거칠어진 현수가 찾아와도 다시 마흔다섯의 젊은 시절로 돌아가 현수와 한바탕 무구한 웃음을 웃고 싶다. 



<각각의 계절> 낭독 

https://blog.naver.com/bhhmother/223131807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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