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샛별 Sep 08. 2023

프란츠 카프카<변신>연극 후기(feat.아구아구)

샛별BOOK연구소


연극 정보


극단 아구아구 제12회 공연

2023. 7. 27 -8.6 

원작: 프란츠 카프카

번역: 김철리

연출: 정재호

출연: 서광재 김명중 이은향 임은연 엄지용 정지환 정다은 정형렬 강운 

장소: 공간 아울





  나는 연극 <변신>을 무진장 좋아한다. 김중혁 작가는 영화 '미니볼'을 열 번도 넘게 봤다는데 나는 연극 변신을 그만큼 본 것 같다.  극단 아구아구에서 연출된 <변신>은 2018년을 시작으로 2019년, 2023년에 앙코르 공연을 했다. 연극 변신이 좋은 이유는 프란츠 카프카의 작품이고, 임은연 배우가 그레고르 잠자 부인을 맡았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가 나를 공연장으로 끌어당긴다. 


  실존주의의 대표작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처럼 연극에서도 원작을 그대로 살려 무대를 다크하고 차갑게 꾸몄다. 극장 안 조명도 컴컴하고, 무대도 검은색투성이며, 배우 의상도 블랙톤이 많았다. 그레고르의 바지도 검은색이다.  조명 빛에 눈에 띄는 건 오로지 그레고르 잠자 부인의 탈색된 금빛 머리카락뿐이었다. 무대에서는 소품도 거의 사용하지 않았고, 막대기 하나가 전부였다. 사과를 던지고 음식을 먹는 장면, 바이올린을 켜는 손동작은 마임으로 처리했다. 



  이번에는 그레고르에 집중해서 봤다. 그레고르는 시종일관 뒤쪽에서 고독하게 홀로 연기했다. 엎어졌다 누웠다 기어다녔고, 철봉 같은 봉에 매달렸다. 그레고르는 가족들이 있는 무대 앞으로 나오지 못하고 뒤쪽 감방 같은 공간에서 신음했다. 혼자 남은 생과 사투하며 가족들의 반응을 살피는 그레고르. 그는 사람 구실을 못한다. 이제 혼자서 음식을 먹을 수도 없다. 오로지할 수 있는 일이라곤 이상한 소리를 내며 거미처럼 여기저기를 기어다닐 뿐이다. 그레고르는 가족들의 도움이 절실하지만, 그들의 마음은 싸늘히 식어간다. 그레고르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자신이 인간이고 그레고르였음을 느끼지만, 현재는 한 마리의 괴상망측한 벌레일 뿐이다. 


  무대에서 그레고르는 가족들의 말과 행동에 집중하고 반응했다. 특히, 감자 한 알만 남아 서로 먹으라고 권할 때 그레고르는 처절하게 몸부림친다. 자신은 새벽부터 기차를 타고 옷감 원단을 세일즈 해서 팔러 다니는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아무것도 가족에게 도움이 될 수 없어 미치도록 괴롭다. 


  자본주의에서 돈은 가족을 지탱하는 힘이다. 감자도 바이올린도 신문도 모두 돈이 있어야 살 수 있다. 돈을 벌어왔던 그레고르가 벌레로 변신하자 이 가족은 붕괴된다.  왜/ 어떻게/ 변신했는지 작품은 알려주지 않는다. 삶의 답을 찾을 수 없듯이 어느 날 느닷없이 상황이 일어났을 뿐이다.  돈을 잘 버는 아들에서 천덕꾸러기 존재가 된 상황. 심지어 그토록 추앙받던 아들에서 똥벌레 취급을 받기까지. 가족이란 무엇인지 근원을 해부한다. 가족주의 안에서 각자의 역할과 능력은 가족을 이어주는 끈이다. 끈이 사라진 그레고르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프란츠 카프카에게 가족이란 무엇인지 냉철하고 싸늘하게 보여주는 <변신>이다.  


  이번 연극의 특이점은 그레고르를 맡은 배우의 복근이 상당히 좋아 갑충의 배를 보는 것처럼 느껴졌고, 쿵쿵 소리를 낼 때 등이 아프지 않을까 걱정됐다. 또, 지난번 연극과 달리 사과를 맞은 그레고르를 향한 엄마의 슬픈 대사가 삭제됐다. 임은연 배우의 명연기를 볼 수 있는 부분이었는데. 팬으로 아쉬웠다. 추후 임은연 배우님에게 여쭤보니 조금 과한 부분을 살짝 드러냈다고 말씀하셨다. 앙코르 공연이라  조금 슬림하게 각색한 거 같다. 엔딩에서 그레고르 엄마는 '자유'를 불러본다.  


  더운 여름날 변신을 보면서 인간의 부조리를 본다. 무대는 어둡고 습하고 긴 시간들 속에 잠깐의 행복, 잠깐의 춤, 잠깐의 음악이 흐른다. 그레고르의 인생은 어디서 위로받을 수 있을까. 가장 사랑했던 가족들에게 외면받고, 스스로 곡기를 끊어 죽음을 선택하는 그의 인생 서글프다. 무대는 끝나고 배우는 사라지고 무대에 남은 건 공허한 네온사인뿐이다. 관객은 하나둘 돌아가면서 '그레고르'를 생각할 것이다. 내가, 자식이, 부모가, 이웃이 그레고르인 사람들을 떠올릴 것이다.  연극을 본 이상 그레고르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를 희망하며 끊어진 줄을 붙잡아본다. 





작가의 이전글 [고전문학BOOK클럽]<변신>,<인형의 집>줌 독서토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