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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샛별 Nov 29. 2023

최은영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중 <이모에게>리뷰

샛별BOOK연구소


단편집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중에서 <이모에게>, 최은영, 문학동네, 2023. 


 최은영 작가의 <이모>는 조카와 이모의 관계를 끈끈하게 담은 단편이다. 조카가 이모에게 보내는 또 다른 형태의 단편 '답신'이랄까. 엄마, 아빠보다 화자에게 가장 영향을 준 사람은 이모다. 이모는 조카를 양육하면서 어떤 심정이었을까. 자신은 여섯 번이나 유산을 했고, 더 이상 아이를 갖지 않겠다며 수술을 해 쫓겨났으면서... 이모는 조카를 키우면서 그 어떤 비애감이나 열패감이 없어 보였다. 그 점이 매력적이었다. 


  이모는 22살이나 터울 지는 여동생을 키웠고, 이제 동생이 낳은 딸을 키운다. 동생은 맞벌이로 언니에게 산후조리와 딸의 양육을 부탁한다. 언니는 동생 집에 입주해 조카를 씻기고 제부의 밥도 차린다. 이모는 이방인과 투명 인간처럼, 식모처럼, 이모님처럼...동생가족과 동거를 한다. 


  이모는 자신의 존재감을 최대한 내세우지 않고. 작은방에서 지내면 버버리 코트로 겨울을 났다. '이모는 싸구려를 여러 개 사느니 좋은 걸 하나 갖는 편이 낫다고 했'(p.216)다. 이런 이모를 조카는 허영심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모는 자신의 물건을 소유할 공간이 없다. 지금은 임시 거처일 뿐. 자신의 물건을 많이 소유하지 않으려는 깔끔함을 비쳤다. 이모가 싫어하는 것은 명확했다. '춤추는 사람, 연예인들이 웃고 떠드는 텔레비전 프로그램, 팔짱을 끼고 걸어가는 연인, 짧은 치마, 길에서 노래 부르기, 껌으로 풍선 불기, 강아지를 자식처럼 예뻐하는 사람, 헤픈 웃음,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다는 식의 태도, 술에 취한 사람, 경박한 사람...'(p.217) 이모가 좋아하는 것보다 싫어하는 걸 알고 있는 조카다. 그만큼 이모의 취향은 확실했다.


  넷이서 사는 가족구성원은 화자에게 익숙했다. 이모가 때론 엄마였고, 할머니였다. 아빠는 넷째 아들이며 형제들 중 유일하게 서울대를 나왔다. 그래서인지 중학교를 졸업한 이모는 아빠에게 존경심을 갖고 있었다. 아빠는 미스코리아 본선에 진출한 지역유지의 딸을 마다하고 서울여자인 엄마를 골랐다. 가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시댁에 가면 죄인이 된다. 자꾸 아이를 가져도 유산됐다. 시댁 식구들은 이런 엄마를 조심성이 없다고 했다. 아빠는 외식을 싫어했다. 집에서 먹으면 되지 돈이 아깝다며. 아빠는 집에서 음식을 하는 수고로움을 알기나 할까. 아빠가 출장을 가면 작은 파티가 열린다. 이모와 나는 엄마 회사가 있는 을지로에 가서 외식을 하고 돌아와 거실에 이불을 깔고 눕는다. 거실에 모기향을 피우고 선풍기도 켠다. 다 같이 자면서 알게 된 엄마의 비밀... 엄마는 유산을 힘들어했고, 이모도 여섯 번의 유산 경험이 있는 걸 알게 된다. 


[가을밤+낭독여행]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샘들~ 표지 감사합니다. 



   희진이 네가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는 사람이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넌 여자애야. 사람들을 기쁘게 하기보다는 사람들이 널 두려워하게 하는 편이 훨씬 좋은 거야.(219쪽)


  화자는 김포공항 근처에 살면서 이모와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모습을 자주 봤다. 시끄러운 걸 싫어하면서도 비행기 소음만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이모였다. 비행기를 바라보는 이모는 왠지 고독했다. 비행기의 자유로움을 동경했던 이모. 비행기는 미지의 세계. 다른 공간으로 갈 수 있는 꿈처럼 보였다. 화자는 이런 이모를 보며 알 수 없는 모호를 느낀다. 이모의 정확한 삶을 알 수는 없지만 행동, 말투에서 이모의 삶을 가늠해 본다. 외할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땅을 이모와 엄마는 나눠 가졌는데 이 상속 문제로 자매의 관계는 삐거덕거렸고, 이모는 집을 나갔다.


  이모와 7년 만에 재회. 팥칼국숫집에서 만나 그동안 지낸 이야기를 하는데 화자는 이런 이모와 잠깐 있는 게 기쁘지가 않다. 모처럼 만났지만 모래처럼 어석거리는 사이가 되어버린 사이... "이모는 왜 그렇게 싫은 게 많아?" 나이가 들수록 이모의 부정적인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다.


  이모의 영향인지, 이모의 욕망을 충족시켜 주고 싶어서였는지 모르지만 화자는 조종사가 됐다. 이모가 비행기를 보고 동경하듯 화자도 그랬다 "나는 수영을 할 때면 늘 내가 느리게 나는 새라고 상상했다."(p.230)  어린 시절 이모의 온기는 차가웠지만  그 차가운 체온을 기억한다. 이모가 죽어가면서 하는 말은 오직 조카를 생각하는 마음뿐. "너가. 추워."(p.261) 그러나 화자는 춥지 않다. 이모의 사랑을 충분히 받았고, 이모의 시간들이 소중하기에. 그 온기를 기억하며 남은 생을 자신이 조종하며 잘 살아가지 않을까. 이모의 품위를 생각하며... 이모의 몫까지...


[가을밤+낭독여행]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에 참석하신 샘들께 고마움 전합니다. 필사와 낭독, 토론 모두 수고 많으셨어요!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어요. 


-처형과 같이 사는 아빠의 입장에 대해. 

-언니와 남편, 딸과 함께 살아가는 엄마에 대해. 

-사업자금이 어려워지자 처형에게 보태달라는 아빠에 대해.

-이모의 삶에 대하여.

-아이가 없으면서 조카를 키우는 이모에 대해.

-이모가 못 배운 한이 있어 공부를 하는 상황에 대해.

-이모의 늙어가는 모습을 보는 화자에 대해. 

-비행기는 조정하지만 자기 마음은 조정하지 못하는 상황에 대해. 

-노년의 이모에 대해. 

-이모를 생각하는 조카의 태도에 대해.

-조카의 직업에 대해. 

-언니와 함께 사는 엄마의 삶에 대해.

-이모가 남대문에 데려간 에피소드에 대해.

-이모의 양육태도에 대해.

-이모가 하숙집을 운영하는 모습에 대해.

-7년 만에 만난 이모와 조카의 동선에 대해.

-이모가 품위를 지키는 방식에 대해. 



발췌 



이모는 장롱 때문에 겨우 누울 공간만 남은 작은 방에서 지냈다. 옷가지가 별로 없었는데도 장롱은 방의 크기에 비해 너무 커다랬다. 이모가 소유한 옷도 우리 수준에서는 모두 고가의 물건이었다. 이모가 가장 아끼는 겨울 코트는 무려 버버리 제품이었다. 이모는 싸구려를 여러 개 사느니 좋은 걸 하나 갖는 편이 낫다고 했고 엄마는 이모의 그런 태도를 허영심이라고 생각하며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이모의 차림새도 또래 여자들과는 달랐다. 이모는 무채색 옷을 입었고 짧은 단발머리를 유지했으며 늘 깨끗하게 세탁된 흰 운동화를 신었다. 왼쪽 손목에는 검은 가죽줄이 달린 사각형 손목시계를 차고 다녔다. 화장은 하지 않았다. 이모는 내 책가방과 외투도 싸구려를 사서는 안 된다며 엄마와 실랑이하기도 했다. 실제로 나를 키운 사람은 이모였기 때문에, 또 엄마가 이모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기에 어린 시절의 나는 이모의 취향이 반영된 단정한 무채색의 옷을 입고 다녔다. (p.216)



"가져가."

노란 바탕에 흰 물방울무늬가 그려진 우산이었다.

"우산이 참 요란도 하다."

이모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우산을 받았다.

"그리고 밤에 검은 우산은 쓰지 마, 이모, 보이지 않아서 차에 치일 수 있어."

"걱정도 쌨다."

"제발 따뜻하게 입고 다니고."

이모는 고개를 끄덕이고 내게 한 손을 내밀었다. 이모의 손은 여전히 차가웠다. 나는 이모가 버스에 올라타는 모습을 확인하고는 뒤돌아보지 않고 터미널 밖으로 나왔다. 주차장으로 걸어가는 동안 눈발이 점점 더 거세졌다. 커다란 눈송이가 쏟아져 내려서 시야가 온통 환했다. '이모.' 나는 마음속으로 이모를 불러보았다. 이모는 내가 자신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라고 말했지만 그날 나는 이모의 얼굴에서 나의 모습을 봤다. 까다롭고 기준이 높은, 그래 서 쉽게 만족하지 못하고 웃음에 인색한 얼굴을. (p.255)



이모의 얼굴을 보면서 나는 성인이 된 이후로 느꼈던 내 마음을 선선히 인정했다. 내가 거듭해서 이모와 비슷한 표정을 짓고, 결국 비슷한 주름을 얼굴에 새기면서 싫어하는 것들의 목록만 늘려가는 인간이 될까 봐, 자기 상처에 매몰되어 다른 사람의 상처는 무시하고 별것도 아니라고 얕잡아 보는 편협하고 어두운 인간이 될까 봐 겁이 났다는 사실을. 하지만 나는 이미 그런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마에 떨어진 차가운 눈송이가 곧 물방울이 되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p.255)



이모를 은근히 무시하고 하대하는 아빠의 모습에 분노하면서도 나는, 내 마음의 어떤 부분은 언제나 이모를 나보다 낮은 곳에 있는 사람으로 취급했다. 가진 것도 없으면서, 내세울 것도 없으면서 뭐라도 되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을 평가하고 자신이 더 나은 사람인 것처럼 군다고 삐딱하게 바라봤다. 그러면서도 나는 이모를 그런 식으로 취급하는 내 모습을 부정했다.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하지만 이모의 몇 벌 되지 않는 옷가지들을 만지면서 나는 그것 또한 나의 모습임을 인정했다. 그러한 판단이 이모라는 사람의 진실과는 무관하다는 사실도. 


엄마에게 이모는 책임감이 강하고 엄격한 언니였고 아빠에게 이모는 어려움을 겪는 가족을 도와주지 않는 냉정한 사람이었다. 데이케어 센터의 복지사는 이모가 평상시에는 조용하다가 한 번씩 화를 내는 충동적인 성격의 노인이라고 말했다. 그 모든 평가와 판단을 모두 모은다고 해도 그것이 이모라는 사람의 진실에 가닿을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부대로 돌아와 이모의 코트와 목도리를 소각장에 넣고 휘발유를 부었다. 검은 연기가 치솟는 동안 나는 내가 그곳에서 소리 없이 울도록 내버려두었다. (p.264)



[가을밤+낭독여행] 최은영 소설집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모집

https://blog.naver.com/bhhmother/2231945035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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