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 에세이
나는 누군가의 작업실을 보면 찍고 싶다. 작업실에 사람이 있으면 당연히 찍지 않을 텐데, 아무도 없으면 살짝 고민하다 결국 찍고 만다. 누군가의 작업실을 찍을 때는 용기가 필요하다. 허락받고 찍는 게 아니니까. 때로는 너무 찍고 싶어도 그냥 지나갈 때가 있다. 그래도 계속 마음이 흔들리면 발걸음을 되돌려 용기를 내서 후다닥 찍고 도망친다. 나는 왜 '누군가의 작업실'을 찍고 싶을까? 이유는 그들의 땀 때문이다. 어떤 일이건 모든 작업에는 수고가 동반된다. 작업실 모습에 따라 흘리는 땀방울도 달라진다. 그냥 그 다른 땀방울을 찍고 싶고, 쓰고 싶다. 그게 다다.
서울역 뒷골목을 걷다 '누군가의 작업실'을 만났다. 박하색으로 칠한 문이 활짝 열려 있었고, 하얀 천이 가림막으로 쳐져 있었다. 입구 앞 시멘트 바닥엔 장미잎들이 흩뿌려져 있다. 미싱은 멈췄고, 하얀 실패가 보인다. 지금 아무도 없다. 잠깐 쉬는 시간일까. 여기는 누가 와서 일을 할까. 하루 종일 어떤 작업을 할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이 작업실을 보자마자 엄마 생각이 났다.
기억해보면 저것보다 큰 미싱이 집에 있었다. 검은 발판을 발로 굴려 드르륵드르륵 박는 미싱. 전동이 아니어서 온몸을 사용해야 하는 수작업. 그러다 엄마는 미싱이 많은 공장으로 일을 나가기 시작했다. 어느 날 동생이 미끄럼틀 맨 꼭대기에서 떨어져 팔을 다쳤다. 연락할 길이 없던 나는 동생을 업고 집까지 왔고 다시 부랴부랴 엄마를 찾아갔던 공장. 아마도 나는 엄마를 보자마자 동생이 다쳤다며 울었을 것이고, 둘은 집으로 뛰어왔을 것이다. 유년시절 눈을 뜨면 엄마는 일터로 갔고, 동생과 나는 그 막연한 시간을 보내며 참 많이도 다쳤다. 특히 동생이.
엄마가 보고 싶을 때 엄마의 작업실을 찾아갔다. 엄마가 쪽가위를 주면 커다란 옷감에 붙어 있는 테두리 실밥을 잘랐다. 싹둑싹둑. 미싱과 원단 사이를 오가며 뛰어놀던 작은 놀이터. 마냥 엄마 옆에 있는 게 좋았다. 하루 종일 엄마를 집에서 기다리는 건 싫었고, 엄마가 일하는 공장에서 노는 게 든든했다. 미싱은 돌아가고, 먼지가 풀풀 나고, 엄마와 아주머니들의 수다는 끝도 없고, 원단은 꿈처럼 커다랗게 펼쳐졌다. 원단은 단색보다 체크무늬가 많았다. 겨울 옷감이라 밝은 톤보다 어두운 색상이 태반이었다. 그 먼지 구덩이 속에 내 유년의 한 조각도 돌아간다.
엄마는 그곳에서 행복했을까. 엄마가 흘린 땀방울은 어떤 모양이었을까. 자식들 둘을 집에 두고 일터로 향했을 엄마. 점심은 어떻게 해결했을지 궁금해졌다. 당시에 나는 어려서 몰랐지만 지금 커보니 밥 문제는 커다란 숙제였다는 걸 안다. 엄마는 아마도 도시락을 싸가지 않았을까 짐작된다. 당시는 배달음식도 지금처럼 활발하지 못했을 테고, 돈을 조금이라도 아끼려면 양은 도시락통에 김치랑 반찬 하나 꾹꾹 담아 보자기에 들고 갔을 것이다. 그럼 집에 남아 있던 동생과 나는 점심을 어떻게 먹었을까. 잘 기억나지 않는다.
누군가의 작업실을 몰래 찍는 건 위험하다. 다음번에는 허락을 받고 찍어야겠다. 어쨌거나 미싱이 돌아가는 공장을 보면 엄마 생각이 나 찍지 않고는 못 배기는 일이다. 그녀의 작업으로 나는 한뼘한뼘 컸다. 그녀의 땀으로 나의 꿈은 펼쳐졌다. 그녀의 시간으로 나는 미래를 얻었다. 그녀가 보고 싶다. 저문으로 들어가면 만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