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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 터치 스위치 제작

손에 노이즈가 있다네요

by 강무결

제15화: 터치 스위치를 만들자

한결이 갓 연구실에 입학했을 때였다.

교수님께서 대형 유리 전시관을 만들어

각종 컴퓨터 전자 부품과 시대별 하드웨어 변화를 전시하자고 하셨다.

앞에 써니의 수난시대에 나온 것처럼,

오래된 컴퓨터 부품은 써니가 유리판에 하나하나 본드로 부착했다.


“손끝으로 불을 켜고 끌 수 있다고?”

전시관은 복도에 설치되어 있었지만, 복도 조명만으로는 전시물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전시관 위에 형광등을 설치하기로 했다.


다만 교수님은 평범하게 스위치를 눌러 형광등을 켜는 방식을 탐탁지 않아 하셨다.

“터치 스위치를 이용해서 손끝으로 불을 켜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꺼지도록 하자.”

그 말에 한결이는 당황했다. 터치 스위치를 사서 달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교수님은 터치 스위치의 원리를 친절히 설명해 주셨다.

“사람 손에는 전자파 노이즈가 있단다.”

“그 노이즈를 회로로 증폭해 릴레이를 통해 높은 전압을 흐르게 만들면 스위치처럼 작동하지.”

“형광등은 양쪽에 높은 전압을 걸어 전자가 이동하면서 형광 물질에 부딪혀 빛을 낸단다.”

“아... 네?” 필자는 무슨 말인지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형광등 안의 하얀 가루를 만지면 큰일 난다는 얘기만 어릴 적 들었던 기억이 떠오를 뿐이었다.

그런데 이제 그 형광등을 손끝으로 켜고 끄는 기기를 만들어야 하다니...


멘붕 속 첫 도전

당시 전산학과에 재학 중이던 필자는 컴퓨터 프로그래밍과 납땜 정도는 할 줄 알았지만,

전자 회로에는 문외한이었다.

완전 멘붕 상태에 빠진 필자에게 교수님이 책을 한 권 주시며 페이지를 펼쳐 보이셨다.

“이걸 참고해.”


그 책은 모토로라 전자 부품 레퍼런스 북이었다.

안에는 터치 스위치를 만드는 회로도가 실려 있었다.

무작정 회로도를 따라 스위치 제작에 돌입했다.


터치 스위치의 작동 원리

참고한 회로는 아날로그 타이머 기반이었는데,

교수님께서 설명해 주신 대로 작동 원리를 다시 이해해 봤다.


* 핸드 노이즈 전달: 손에서 발생하는 전기적 잡음을 선을 통해 회로로 전달.

* 증폭 과정: 트랜지스터를 여러 차례 거쳐 노이즈를 증폭.

* 릴레이 작동: 증폭된 신호로 출력 단자에 릴레이를 달아 220 볼트 전원을 스위치 역할로 연결.

* 자동 차단: 전류가 콘덴서에 응축되었다가 방전되며 스위칭 회로를 꺼지게 함.

마치 현관 센서 조명이 사람 움직임을 감지해 불을 켜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꺼지는 원리와 유사했다.

증폭을 몇 번을 해야 충분한 신호가 나오는지 오실로스코프로 열심히 측정했던 것 같다.

그리고, 콘덴서의 크기에 따라서 전원이 차단되는 시간이 결정되는데,

그것과 관련해서도 여러 번 실험을 했던 것 같다.


맞뚫기 공법의 전설

문제는 전원을 공급하기 위해 벽에 구멍을 뚫어야 했다는 점이었다.

요즘은 에어컨 설치등을 할 때 보면, 톱날이 달린 원형 드릴로 손쉽게 구멍을 뚫지만,

그때는 콘크리트 드릴을 사용했다.


하지만 벽이 너무 두껍고, 드릴 비트의 길이가 한계가 있어서 한쪽에서만 드릴질 해서는 관통할 수 없었다.

지금은 물론 인터넷 쇼핑을 해보거나 하면 길이가 긴 드릴 비트가 있지만, 당시는 있는 것만 사용해야만 했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은 맞뚫기 공법이었다.


한쪽에서 구멍을 뚫고, 동일하게 위치를 맞춰 반대쪽에서 다시 구멍을 뚫어 관통시키는 방식이다.

이 공법은 전설적인 작업으로 유명했다.

이전에 에어컨 물 배출을 위해서 연구실 외벽을 뚫을 때는 몸에 끈을 묶고 작업해야 했다는 전설 같은 일화도 있었다.


맞뚫기 공법(Breakthrough method)은 정밀한 측량이 중요하며,

대표적인 사례로는 영국과 프랑스를 잇는 해저 터널, GTX A노선 일부, 원주-강릉 철도 일부,

그리고, 스위스 고트하르트 베이스 터널 등이 이런 공법으로 시공되었다.


우리가 있던 연구실험동은 나름 당시 신축 건물이었는데,

교수님께서 입주하시면서 갖은 드릴링으로 구멍을 많이 내고,

굉장한 소음을 발생하는 바람에 주변의 교수님들과 경비하시는 분들이 찾아와서 항의하는 일들이 잦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전에 잠깐 언급했던 2미터 대형 위성 안테나를 옥상에 설치하고

돔을 설치하는 과정에서 연구실험동 옥상에 구멍을 내고 앵커볼트를 박았던 일화는 다음에 상세하게 적겠다.


교수님의 무한 업그레이드 요청

터치 스위치를 겨우 겨우 만들어 교수님께 보여드리자,

교수님은 만족하셨지만 곧바로 새로운 과제를 내주셨다.

“이번엔 무빙 센서를 이용해 사람이 지나가면 자동으로 켜지고 일정 시간 후 꺼지도록 해보자.”


교수님은 현관 센서 조명을 사다 주셨는데, 밝은 환경에서는 동작하지 않았고,

내부의 센서를 떼서 측정을 해봤지만, 구동 환경이 달라서인지 제대로 동작하지 않았다.

여러 번 연구했지만 끝내 완성하지 못한 채 무빙 센서는 미완성 프로젝트로 남게 되었다.

물론 수업 준비, 세미나, 논문 발표 등 해야 할 일도 많았고, 솔직히 귀찮아서 밀어뒀을지도 모른다.


전시관과 교수님의 마지막 인사

시간이 흘러 유리 전시관 위에는 연구실 졸업생들의 사진이 걸리기 시작했다.

2003년 6월, 교수님께서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셨을 때,

영정 사진을 들고 연구실을 한 바퀴 돌았다.

교수님은 유리 전시관과 졸업생들의 사진을 마지막으로 바라보며 떠나셨다.


이제 필자는 당시 교수님께서 돌아가실 때 보다 훨씬 나이가 들었다.

연구실 동료들을 만나면 우리는 여전히 교수님과의 일화들을 떠올리며 웃곤 한다.


영원한 스승님

교수님이 살아 계셨다면 나의 삶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

부모님께서는 내게 생명을 주셨지만,

배움의 자세와 학습의 방법, 각종 공구에 대한 모든 지식, 전자제품에 대한 많은 지식,

삶을 살아가는 지혜, 발표하는 방법 등등 많은 것을 교수님께서 나에게 주셨다.


지금 이 글을 쓰며 다시금 그리운 마음이 차오른다.

교수님,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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