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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 대형스크린 제작 기법

물명주 휘날리며~

by 강무결

제14화-대형 스크린 제작 기법

앞에서 잠깐 언급했던 물명주 천을 활용한 대형 스크린 제작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펼칠 시간이 왔다.

멀티미디어에 대한 열정이 남다르셨던 교수님은 미국에서 교환교수로 계시는 동안 다양한 DVD를 수집해 오셨다.

덕분에 한국 영화 DVD도 연구실에 있었고, 고품질의 음악 감상 기회도 제공해 주셨다.

물론, 필자는 '저렴한 귀' 덕에 미세한 음질 차이를 잘 구분하지 못했지만,

영화 속 돌비 서라운드로 비행기가 좌측에서 우측으로 지나가는 소리의 입체감을 경험하며 멀티미디어의 매력을 느꼈다.


우리 연구실은 이러한 멀티미디어의 경험을 학부생들에게도 전파하기 위해 프로젝트를 준비했다.

전문 용어로 ‘노가다’를 동반한 작업은 대학원생들의 몫이었다.


"16:9 대형 스크린 제작" 프로젝트 시작

대형 강의실에서 멀티미디어 시연을 진행하려던 교수님은 기존 상용 프로젝터 스크린이 강의실에 비해 너무 작다고 판단했다.

이에 "16:9 대형 스크린 제작"을 지시하셨고, 멀티미디어 전담맨인 건환이가 프로젝트를 맡았다.

당시 학교에서는 대형 걸개그림 제작 방식으로 천을 이어 붙이고 무반사 흰색 페인트를 칠할 수도 있었으나,

이 방법은 너무 무겁고 설치 및 보관이 불편했다.

따라서 가볍게 감아서 보관할 수 있으면서도 프로젝터 빛을 눈부시지 않게 잘 반사하는 소재를 찾기로 했다.


물명주 천의 발견

건환이는 대형 천을 찾기 위해 진시장의 포목점을 찾아 헤맸다.

“광택 있는 흰색의 튼튼한 천”을 찾는 데 여러 시간이 걸렸고,

결국 찬란한 이름을 가진 "물명주" 천을 발견했다.


만약 물명주가 없었다면, 플랜 B로 천에 하이그로시 페인트를 칠할 예정이었다.

이를 위해 써니가 노루표 페인트 직영점을 방문해 "무광택 비반사 페인트"를 확인해 둔 상태였다.

하지만 직영점 직원들은 직물에 페인트를 바르면 굳은 후 접히거나 말려지는 환경을 견디기 어렵다고 조언해 플랜 B는 폐기됐다.


스크린 제작의 여정

건환이가 포목점에서 사 온 물명주 천을 대형 스크린 크기로 재봉해야 했다.

한편, 건환이는 당시 오토바이를 타고 학교를 다녔는데,

물명주 천을 사 오던 그날, 써니가 물명주 천을 잡고 교내를 달리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건환이는 핼맷을 쓰고 있었고, 달리는 오토바이에 물명주 천이 풀리면서 길게 휘날리기 시작했다.

바람에 날리면서 펄럭이는 물명주 천을 잡은 소녀와 울부짖으며 세우라고 했는데 못 듣고 달리는 건환이..

펄럭이는 물명주 천에 태극기라도 있었으면 마치 독립운동 퍼포먼스가 될 뻔했다.


천을 이어서 박음질해 대형 스크린이 완성된 후, 교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스크린이 버튼을 누르면 자동으로 말려서 올라가도록 하게”

통상 프로젝터 스크린은 당기면 내려오고, 한 번 더 당기면 감겨서 말려오는 것이었는데,

여기에서 더 나가서 버튼을 누르면 감아서 올리는 것을 요구하신 것이었다.


기술적 난관과 창의적 해결

스텝 모터를 사용해 스크린을 감아올리려 했으나, 스크린이 너무 커서 모터의 힘이 부족했다.

양쪽에 모터를 설치했으나 동기화 문제가 발생했다.


결국 자동 스크린 시스템은 포기하고 "와이어 걸고리를 이용한 스크린 고정 방식"을 채택했다.

한결이가 전담이었던 콘크리트 드릴링 작업으로 강의실 벽에 앵커 볼트를 세 곳에 설치했다.

물명주 천을 감은 봉에 와이어를 연결해 고리에 걸어 양쪽에서 당기면 스크린이 올라가는 형태로 마무리됐다.


그 뒤의 일들

멀티미디어 시연회는 성황리에 마무리되었고, 교수님 수업에도 종종 사용됐다.

하지만 한 번은 수업 중에 말려 있던 대형 스크린이 "자유 낙하"를 일으켜 강의하던 유동현 박사가 간이 떨어질 뻔한 해프닝도 있었다. (당시 임신 중이었는데 큰일 날 뻔했다.)


프로젝트 완료 후, 교수님은 건환이에게 “멀티미디어 시연을 위한 대형 스크린 제작 기법”에 대한 TR(Technical Report) 작성 미션을 주셨다.

건환이는 또 열심히 연구실의 멀티미디어 프로젝트 노하우를 앞에 나온 프로젝트-K 부터 대형 스크린 제작까지 문서화했다.


멀티미디어 시스템에 대한 관심과 열정

우리 연구실 사람들은 이런 환경 덕분인지 5.1 채널, 돌비 서라운드, 원음 오디오 등 다양한 멀티미디어 시스템에 관심이 많았다.

당시에 소리가 스피커에 동시에 전달되게 하기 위해 스피커 선의 길이까지도 동일하게 맞추는 꼼꼼함을 발휘했었다.

필자도 오래전 텔레비전과 5.1 채널 시스템을 연결해 집에 설치해 두었고, 물론 설치할 때 필자도 동일한 선의 길이에 신경을 썼다.


이제는 아마 모두 각자의 집에 크고 작은 멀티미디어 시스템을 갖추고 있을 것이다.

요즘은 다중 무선 스피커 연결로 편리하게 연결을 하는 경우가 더 많아진 것 같기는 하다.


미래의 꿈

요즘은 잘 갖춰진 DVD방 같은 곳도 많이 생겼지만, 우리 연구실 사람들은 DVD 방과 같은 것이 출현하기 이전부터 나중에 조용한 공간을 빌려 공동 출자하여 방음 처리를 하고 멋진 멀티미디어 시스템을 갖춘 가족 극장을 만들자는 논의도 했던 것도 생각난다.

멀티미디어 환경에 빨리 노출되고, 그 시스템을 만끽한 연구실 사람들은 아직도 멀티미디어에 대한 관심이 높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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