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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한결 Jan 06. 2025

제13화 - 공중배선

또 천장을 뜯어? 

제13화 - 공중 배선

연구실은 수많은 선들이 우글우글 있는 정글이었다. 

랜선, 전화선, GPS 안테나선, 27메가 단파 무전기 안테나선, 

그리고 나중에 추가된 2미터 해상 위성 안테나 제어선까지...

각자의 자리까지 가야 하는 선들이었기 때문에,  

이런 모든 선들이 바닥을 차지하며 엉켜 있었다. 


이 선들은 우리 연구실의 역사를 한 줄 한 줄 새기듯 바닥을 따라 깔려 있었다.

덮개를 씌워 놓았지만, 좁은 연구실에서 의자의 바퀴가 오르락내리락하고, 

걸어 다니면 발에 그 덮개가 걸렸다.


교수님께서 드디어 미간을 찌푸리셨다.

“바닥 배선은 이제 안 돼! 공중으로 선들을 올리자!”

교수님의 단호한 외침과 함께 공중 배선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석고 보드와의 재회

공중 배선을 위해서는 천장을 뜯어야 했다. 

지난번 청소 전투에서 익숙해진 작업이었지만, 이번엔 전략이 달랐다. 

석고보드를 모두 다 뜯는 대신, 일정 간격마다 보드를 떼어내고 

펜치에 랜선을 묶어 던지기 작전을 수행했다. 


마치 릴레이 경주처럼 선을 던지고 받으며 연결해 나갔다.

“던진다!”

“받았다!”

공구를 들고 작업하는 우리는 잠시 배선 릴레이 체육대회를 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천장 프레임의 날카로운 모서리와 갑자기 등장하는 공구들은 방심을 용납하지 않았다. 


천장에서 발견한 잃어버린 플래시라이트는 

“어~ 네가 거기 어떻게 올라가 있지?!”라는 말에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리피터와 배전반의 탄생

선들은 장거리로 이어질수록 신호가 약해지고, 각자의 자리까지 배선을 해야 하기 때문에, 

우리는 연구실 벽에 리피터 겸 배전반을 설치했다. 

GPS 안테나, 위성 안테나 제어선, 그리고 교수님의 차량과 연결된 27메가 무전기 안테나까지 

모두 배전반에 깔끔하게 연결되었다.


배전반을 고정하기 위해 우리는 드릴로 벽을 뚫고, 

플라스틱 앵커와 나사로 튼튼히 고정했다. 

드릴이 돌아가며 내는 “콰롸롸롸롸!” 소리는 

이미 우리 연구실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소리였다. 


강한결의 창의력?

강한결은 초등학교 때 구구단을 반만 외웠다고 한다. 어차피 대각선 반은 뒤집으면 똑같으니깐.

1부터 9까지 더하기가 싫어서, 1과 9를 더해서 10이 다섯 개, 나머지 5가 한 개 이런 식으로 문제를 풀고,

일종의 게으름이 그를 창의력으로 이끈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연구실에는 전화가 세대인가 있었다. 

사람들이 없을 때, 전화를 받으러 일어나서 가기 싫었던 그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오디오 잭을 써보자!”


그는 배선반에서 들어오는 전화선을 빵판(브래드 보드)에 연결하고,

오디오 잭으로 여러 개를 납땜해 손바닥만 한 미니 전화기에 꽂았다.


전화선을 다른 오디오 잭에 연결하면 어디서든 전화를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수동으로 이전에 교환원이 교환을 하듯 그걸 책상옆에 붙여서 전화를 다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그래서 배는 더 커졌지만.. 


작업 기사단의 탄생

우리 1년 차들은 그 뒤 '작업 기사단'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배선과 조립에 익숙해진 우리는 전문가 못지않은 실력을 갖추게 되었다. 

드릴링과 그라인드, 줄질, 앵커 볼트 작업, 페인트 칠하기, 청소하기 등등.. 

전문 용역 업체를 차려도 될 정도로 숙련도가 높아져 갔다.


회사 생활에서 이어진 경험

취업해서 한참 뒤에  고객사 프로젝트를 맡아서 

랜선과 광케이블 배선을 해야 하는 경우가 있었다. 

랜선은 DMC에서 바닥으로 배선을 하고, 광케이블은 공중으로 배선을 해야 했다.

배선을 외주로 주기에는 수량이 적어서 연구실의 경험을 살려 직접 수행했고, 

덕분에 프로젝트는 성공했다.


지금도 가끔 어디에 가서 바닥에 늘어진 배선을 볼 때면 이런 생각이 든다.

“왜 공중으로 배선을 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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