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대건고등학교 사진반, 대건 사우회 6대, 일곱 명. 1977년~1979년 까지.
일곱 명이 남았다는 게 정확한 표현이다. 3년을 즐겁게 보낸 건가, 견뎌낸 건가 아무튼 온전히 3년을 함께 한 동기는 일곱 명이다. 1980년 1월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뿔뿔이 흩어졌으니까 45년이 지났구나.
학교 안 성당 가운데 암실, 이중 문, 현탁액, 정착액, 인화지 냄새, 가운데 자리를 차지한 확대기 형님. 우리가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어제 그 애들과 밥을 먹었다. 이제 한국 나이로 65세가 된 우리.
아련한 그 시절 우리들 이야기를 이제 시작해보고자 한다.
나는 왜 사진반이 들었을까. 이제 고백할게. 아마도 문턱이 제일 낮았다는 이유, 약간의 진지함이 있는 분위기 때문이었다.
미술반이나 문예반은 솔직히 받아줄 것 같지 않아서 가보지도 않았고 다른 곳은 관심 자체가 없었다.
(아무데도 안 들어가도 되는데 왜 꼭 서클에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아무데도 안 들어가는 애들이 훨씬 많았는데 말이다.)
1학년의 사진반은 재미도 있었지만 무섭고 고통스러운 곳이었다.
그 시절 선후배 관계는 군대, 그 이상이었다. 선배는 가급적 마주치지 않는 게 좋았는데 우리 서클 아이들은 항상 선배들에게 노출되어 있었으니 얼마나 힘들었겠어.
(아니다, 다른 선배들에게 억울하게 당할 때 막아주는 면도 좀 있었다.)
운 좋게 마음씨 좋은 형들이라도 만나면 다행이겠지만 세상사 어디 마음대로 되나. 좋은 형도 있지만 극악무도(?)한 형까지 성질머리도 숫자만큼 다양했다.
왜 서클은 가입해서 사서 고생하나 생각한 적도 아주~~ 많았다. 그렇게 힘든데도 서클을 탈퇴하지 않은 것은(못한 것은?)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그 놈의 10계명이 제일 무서웠다.
사진반 암실 한복판에 떡하니 붙어 있던 10계명. 시간이 지나 지금 기억할 수 없지만 주로 죄(?)를 지으면 맞아야하는 매의 숫자의 나열인데 10계명 1조가 탈퇴 시 100대인가 그랬다. 그 매를 맞고 사진반을 나갈 용기가 없었다.
그렇게 무서운 이유도 있었지만 재미있는 출사도 우리를 붙잡는 이유가 되었다. 까만 교복, 까까머리, 폐쇄된 70년대 분위기에 이런 재미를 느끼며 사는 고등학교 1학년이 당시에 어디 많을까.
형들과 함께 나가는 출사는 항상 흥미진진했다.
카메라가 두 사람 당 한 대 이거나 말거나 사진이 고급 취미였던 시절, 출사는 대단한 호사였다.
당시는 흑백 사진이 대세였고, 카메라가 최고급 사치품이던 시절이었다. 카메라 가진 집은 부자도 부자이거니와 아주 고상한 취미를 가진 집으로 여겨지던 시절이었다.
아무튼, 무서웠다가, 재미있었다가 한 1학년 시절이었다.
(오늘은 1편, 요만큼만 쓰겠습니다.
출사 이야기, 전시회 이야기, 밤샘 작업 이야기, 학교 내에서 우리의 위치, 대권 잡은 이야기, 돈벌이 이야기 등등 앞으로 늘어놓을 이야기가 많습니다. 추억할수록 쓰고 싶은 내용이 많아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