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백개 깨기
5년 전인가? 시간은 가물한데 캐디가 내게 했던 이야기는 정확히 기억난다.
"우리나라 골퍼들은 평균 백 개가 넘습니다. 보기 플레이어라고 말하는 사람들 대부분도 정확한 룰을 적용하면 다 백 개입니다. 백 개 친다고 기죽을 필요가 없어요."
내 말을 듣고 답해준 것이다.
"전반전 54개를 쳤으니 후반 45개를 치면 99개구나. 집중해야지."
골프의 스코어의 기준은 왜 백 개일까. 구력 2년 차인 친구가 늘 하는 말이 있다. "오늘은 깨백해' 공을 치러 갈 때 항상 응원하던 말이었는데. 생각해 보면 상당히 논리적 것 같아 감동을 받았다.
보통 골프인들은 첫 깨백을 하면 백돌이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한다. 백 개를 뚫었으니 당연히 다음은 90개를 바라보고 연습에 들어간다. 그러나 골프가 어디 마음대로 되는가. 다음에 그다음에도 백 개는 마의 벽이 되고 만다. 그러니 100개쯤에서 제자리걸음이다.
"깨백해." 그 말은 오늘 백 개 안으로 들어가. 넌 아직 백 개 수준이라는 말인 것이다. 한 번 뚫었다고, 세 자릿수를 꺾었다고 자만하지 말라는 깊은 뜻이다.
"깨백해." 깨끗하게 백돌이 인정하고 배우는 자세로 겸손하라는 말이다. 그랬다. 어쩌다 우연히 백 개 안짝으로 들어가고 자만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대한민국 골프인들 평균 100. 백 개는 부끄러운 숫자가 아니다.
스코어 반땅
너무 멀리 떨어진 볼
한 번에 넣을 거라 생각한 건
아니지만
홀컵과 내 볼만 상극
18 × 2 = 36, 서른여섯 번
너에게 갔지만
꼭 튕기는 내숭쟁이
결국 나한 더
넌 나의 반이다
54
우리 골프 동호회 이름은 18 언더, 54타를 의미하는 숫자다. 얼마 전 캐디가 물었었다.
"왜 장 54인가요?"
나는 대답했었다.
"전반 54개, 후반 54 개만 치자고요."
의미를 무색하게 만드는 현실적인 답변을 얘기했더니 캐디는 가만히 웃는다.
골프엔 잔디 밥이란 말이 있다. 얼마나 많이 잔디를 밟았냐를 일컫는데 보통 주말골퍼들이 한 달 평균 필드에 나가는 횟수가 얼마나 될까? 비수기인 겨울, 뜨거운 여름을 빼면 그 숫자는 확연히 줄어들 것이다. 줄어든 숫자만큼 골프 실력도 줄기 마련인데 오히려 과감하게도 스코어도 줄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스코어는 구력과 동일하지 않다.
가끔 구력으로 밀어붙인다고 하는데 알맹이 없는 구력은 소용없다. 구력자 역시 잔디 밥을 꽤나 먹은 골프인 것이다. 찐 구력자가 잔디 밥을 먹으면 그린 주변 숏게임이 좋아진다. 통상 드라이버는 백 개, 아이언 90, 어프로치 80이란 말이 있다. 낮은 숫자로 갈수록 그린 주변 게임에 승부가 달려있다.
어프로치와 퍼터를 얼마나 잘하느냐는 결국 잔디 밥을 먹는 경험이 만들어낸다. 우리가 말하는 백돌이들은 그린 주변이 무섭다. 그렇기 때문에 어프로치에서 로켓볼을 쏘고, 터덕되며 땅굴을 판다. 가장 쉬운 어프로치는 퍼터라지만 퍼터 역시 쓰리 퍼트를 남발한다.
스코어의 대부분은 사실 그린 주변에서 까먹고 만다. 그린 주변 어슬렁거리며 느긋한 실력자들의 발걸음은 가볍지만 눈과 감각은 살기가 느껴진다.
아직도 내 스코어의 반을 까먹는 그린 게임, 숏게임은 어렵다. 호쾌하고 시원하게 때리는 드라이버, 착착 감기듯 날아가는 아이언도 중요하지만 날 백돌이로 만드는 숏게임 때문에 늘 괴롭다.
대한민국 평균이 5년 전보단 올라갔을 것이다. 그러나 내 평균은 아직도 그대로다. 만년 백돌이지만 그래도 즐겁다. 골프란 게 격투기처럼 바로 승부가 끝나는 스포츠가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과거의 내 스코어 때문에 슬퍼하지 말자.
미래의 내 스코어를 두려워하지도 말자.
깨백해 응원해 주는 그 마음 깊게 받아들여 언젠가는 듣지 않는 날이 오겠지. 얼마 전 백제 cc에서 103개를 치고 괴로워하던 선배가 생각난다.
맹연습을 하더니 다시 필드에 나가선 금강 cc에서 84개를 치고는"내가 103개 치고 그런 사람이 아니야. 그때 그건 내가 아니야. 잊어줘" 잊어주란 말이 왜 더 뇌리에 박힐까.
격투기 KO처럼 구력자에게 백 개가 넘는 건 치욕스러운 스코어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