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과 설거지만 하는 취사병
군대랑 사회의 난 다르지 않네.
"라면 끓여와라. 100인분이야."
근무 중이었다. 선임은 날 찾더니 라면을 끓이란다. 취사병도 아닌데 꼭 날 찾는 이유가 뭘까? 괴롭힘이다. 우리 중대원은 100명이 안 되는데 갈굼의 끝판왕이다. 음식을 남기더라도 한 솥에 모두 한 번에 취식할 수 있게 끊이지 못하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시뻘건 눈을 부라리고 간다.
주방에 갔다. 100인분 솥이 없다. 두 개로 끊일 수도 없다. 화구가 하나뿐이다. 안 되겠다고 보고를 하려 상황실에 찾아갔더니 "명령이야. 어떻게든 끓여" 욕만 뒈지게 먹고 왔다. 군인은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지만 주특기와 다른 업무를 시키는 건 날 전출 보내려는 게 아닌가 의심이 들었다. 전차병이고 조종수라는 직책이 있는데 대부분의 군 생활을 취사실에서 보내고 있다. 동기들은 전차포 훈련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서 포상 휴가를 갈 때 동기를 위해서 특식 라면을 만들어주는 신세가 되었다. 취사실을 벗어나고 싶다는 간절함을 부처님과 하나님께 기도하고 빌었다.
군대에서도 보직에 대한 꿈을 꿀 수 있을까. 원래 보직으로 돌려보내 달라고 소대장님께 애원해봤지만, 무엇 때문인지 취사실에서 꺼내 주지 않는다. 소속은 전차병이다. 본부 소대의 업무를 하고 있으니 우리 소대로 복귀 시켜 달라고 애걸복걸했어도 소용없다. "소대원을 버리는 겁니까? " 말해도 듣지 않는다. 자기는 명령에 따를 뿐이란다. "누구의 명령입니까?" 대차게 항의했더니 일급 비밀이란 말만 되풀이한다. "소질도 재능도 없는데 취사병으로 육성하지 마십시오. 부탁합니다." 지휘관에게 말해도 소용없다는 걸 깨달은 후 벽을 보고 기도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설거지와 라면만 끓이고 있는데 왜 날 이곳을 벗어나지 못하게 합니까? 새벽 4시면 일상이 시작된다. 부대원들의 밥을 하러 나오면 의식을 치른다. "날 꺼내 주시오. 날 꺼내 주시오." 삽으로 쌀을 씻으면서 노래를 부른다. 농악이 흥을 돋우기 위해 부르는 노래라면 난 버티기 위한 몸부림을 위한 음악이다.
"취사병이 웬 말입니까. 부처님 하나님 날 전차병으로 보내주세요. 탱크를 타고 훈련하고 싶습니다. 궤도 정비를 잘한다고 칭찬하지 않았습니까. 조종간을 잡으면 백전백승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전차장 투표에서 전쟁에 한 명의 조종수가 필요하다면 모두 절 선택하지 않았나요? " 신명 나게 밥을 해야 하는 시간에 난 장단에 맞추어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이곳에 갇혀있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이다.
흔히 군 생활을 사회와 비교하는데 그렇지 않다. 군대와 사회는 다르다. 난 전차병이었고 조종수 보직이었다. 취사병이 비번일 때 소대에서 지원자를 뽑는데 거의 내가 갔다. 지원이 아니라 지목이다. 처음엔 재미있었다. 비번 때마다 불려 가니 정체성을 잃는 것 같았다. 전차병인지 취사병인지 헷갈리는 것이다. 취사병은 본부 소속인데 신병들은 본부 소대로 착각할 정도였으니, 소속감도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면서 군인으로서 내 위치가 어디인지 분간을 하지 못할 정도였다. 그때 기억 때문인지 군대 꿈은 취사병 꿈을 많이 꾼다. 좋은 기억은 꿈에 나오지 않는다. 힘들고 어려웠던 꿈이 나올 때면 아침에 일어나면 멍하다. 얼른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꿈처럼 갇혀 있는 것 같다. 벗어나고 싶지만, 군대처럼 누군가를 복종하고 있는 것인가. 군대의 소대장은 없다. 사회는 내 의지로 벗어날 수 있다. 아직도 갈 길을 찾지 못해 갈팡 거리는 걸 꿈에서 보여준 것이다. 취사병으로 라면만 끓이는 모습은 식당에서 한 가지 음식만 반복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올가미에 갇혀서 울부짖는 현재의 내 모습을 보여준 어젯밤 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