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처럼 어른이 되면 나도 술 마시고 싶어
브런치를 시작할 수 있었던 계기
"한 잔 이잖아. 뭘 그렇게 비비 꼬고 그러냐?"
우리는 서로 타이밍이 틀리다. 술이 생각나는 시간의 차이가 항상 싸움의 원인이 된다.
"너도 내가 마시고 있으면 얼마나 뭐라고 하는데..."
눈에서 레이저를 쏜다고 한다. 꼴 보기 싫다고 했단다. 그렇게까지는 아니었는데 오해가 있었구나.
결혼 10년 차 술을 좋아하는 부부.
결혼 당시보다 우리 부부는 15kg 이상 살이 쪘다. 아내는 출산과 산후조리를 못해서 그렇다고 변명을 하지만 원인은 술이란 걸 알고 있다. 매일 밤마다 마셨던 술은 옆구리엔 소주, 배는 맥주, 엉덩이는 양주, 허벅지는 막걸리가 되어 함께 숨 쉬고 있는 것 같다.
날씬했던 아내는 결혼 전 술을 즐겨했지만 좋아하게 만든 건 습관적으로 마셨던 나 때문이다. 어떤 이유도 없이 퇴근하면 술! 누구를 만나더라도 술! 때와 상황을 가리지 않고 마셨기에 부창부수가 되는 건 당연했다.
함께 술을 먹는 건 외롭지 않다. 이해를 해주고, 어떤 안주가 좋은지, 한 잔 생각날 때면 같은 장소를 가고 술자리를 즐기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렇게 술이 일상이 되어 10년을 보냈다.
결혼 초에는 나를 이해하지 않았었다.
" 나중에 더 좋은 술이 많을 텐데 조금만 마셔요. 지금 보다 맛있게 먹을 수 있어요"
귀가 닳도록 이야기했었다.
'나중에 마시라고? 난 지금 마시고 싶은 거야. 지금 감정을 소비하고 마시면 하루가 잊어지거든'
속으로만 대답했다.
말이 안 타는 나를 보고 지쳤고 자연스럽게 아내도 내 삶에 녹아들었다. 결혼하면 부부는 닮아간다고 했던가.
우리는 같이 술을 마셨고 덩치도 비슷해져 갔다.
아이들이 크면서 술자리도 함께하게 됐다. 어느 날처럼 밥을 먹으며 술을 마셨다.
"아빠 나도 빨리 크고 싶어. 아빠처럼 이거 술 마시고 싶어"
작은 아이가 불쑥 던졌던 한 마디는 머리를 쾅 때렸다. 부부는 닮아갔지만 아이들도 부모를 보고 자란다고 했는데 뭔가 심각하구나 생각이 들었다.
'아빠처럼 술을 마시고 싶어'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고 말하는 아이는 술을 마시고 싶어서 어른이 되고 싶은 것이다. 가정교육이 엉망이구나. 아니지 아빠의 삶이 엉망이구나를 깨달았다. 아내가 좋은 술은 나이 먹어서 얼마든지 먹을 수 있다고 했던 말들도 생각이 났다. 지금은 우리가 술을 마실 때가 아니란 걸 아빠에게 아이가 이야기해주는 것이었다. 아이를 낳기 전 아내의 말은 귓등으로 흘려버렸는데 자식 놈의 말은 비수로 꽂혔던 것이다.
우린 1년 전부터 술자리를 피했고 함께 건배하지 않는다. 혹시나 술이 생각날 땐 아이들이 자고 혼술을 한다.
서로 술자리가 교차되면서 좋은 점은 닮았던 부부가 각자의 개성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뚱뚱했던 모습이 사라지고 있다. 술을 적게 마시면 다이어트가 된다.
아빠의 삶이 엉망이라고 알려준 아이 덕분에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브런치라는 곳에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술 마시고 들어올 때 맡았던 새벽 공기를 이제는 하루를 맞이하기 위해 마신다.
가끔 한 잔씩 마실 때 서로를 꼴 보기 싫어한다고?
"여보 아니야. 같이 마시고 싶어서 그런 거야. 오해하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