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게 받은 교육
아빠! 친구들 있는데 창피하잖아.
"아빠! 친구들 있는데 창피하잖아"
딸의 친구가 가게에 놀러 왔다. 정확히 말하면 친구의 엄마가 밥을 먹으러 식당에 온 것이다. 동갑내기이고 같은 어린이집을 다니고 있어서 단짝처럼 지내는 친구가 놀러 오면 서로 좋아한다. 딸의 친구도 밥을 먹으러 식당에 온 것이 아니라 친구랑 놀기 위한 식당을 가는 걸 더 좋아한다.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음식은 계란찜뿐이니 가족 외식으론 적당하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우리 애들과 놀으라는 배려 차원에서 방문하는 것이다.
우리 남매와 놀러 온 삼 남매가 식당을 헤집고 다니기 시작한다. 어지럽다. 아이들은 즐거움 때문에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것 같다. 조용히 하란 말도, 방에 들어가서 놀으란 말도 듣지 않는다. 듣고 싶지 않을 것이다. 엄마 아빠 돈 버는 곳에서는 너희들이 조용히 있어줘야 손님들이 좋아하고 편하게 밥을 먹을 수 있다고 이야기했어도 오늘만큼은 듣고 싶지 않나 보다.
도시의 식당과 달리 시골에선 아이들을 데리고 장사하는 식당이 많다. 어린애들을 데리고 장사를 하는 젊은 부모들을 볼 때면 안쓰럽고 예쁜 마음에 한두 번 쓰다듬어 주던 손길이 감사하지만 쉽게 병원균에 노출되어 각종 병치레를 자주 했었다. 때 되면 아프고 병원신세를 지던 꼬맹이가 이제는 제법 컸다고 면역력이 좋아졌는지 아프지 않다. 신세계를 찾아왔던 외부인에게 원주민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던 낯선 질병처럼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들도 적응을 하기 시작했다.
심심하고 할 게 없다고 투정 부리던 아이들의 눈과 귀에는 식사를 하는 손님들은 즐거운 놀이 소재가 된다. 사람들을 보고 들으며 재미있게 노는데 늘 엄마, 아빠는 방에 들어가라고 이야기했으니 정말 싫었을 것이다. 공부도 혼자 노는 것도, 둘이 노는 것도 한계가 있는데 장사하는 시간 내내 '조용히 해' '방에 들어가'란 말만 하는 부모가 서운할 것이다. 같은 공간에 있지만 부모의 부재를 스스로 놀거리를 찾으며 외로움을 달래는 방법을 터득한 것인데 엄마, 아빠는 몰라주는 것이다.
우린 서로의 입장이 달랐다. 각종 질병을 손님들에게 다 받아서 병치레를 자주 했던 녀석들을 코로나로부터 보호하려는 부모의 맘과 우린 스스로 잘 놀고 있음을 알리는 아이들의 맘은 달랐다. "너희들 식당에서는 어떻게 해야 해?" 매일같이 주문을 외우듯 하원 하면 정신교육을 했었다. 손님들 식사하는 시간에는 조용히 해야 하고, 방에서 나오면 안 된다고 주입식 교육을 했지만 어떻게든 밖에 나올 궁리를 만들어내는 창의성에 혀를 내두른다.
그런 아이들에게 친구들이 놀러 왔다. 고삐 풀린 송아지가 되었고 통제는 벗어났다. 아빠도 엄마의 말도 듣지 않는다. 평소 일곱 살 된 딸아이는 "아빠 이거 음식만 나가고 나랑 산책하자" 엄마 몰래 조용히 주방에 들어와 이야기하던 아이인데 오늘만큼은 눈치를 보지 않는다.
덕분에 마감을 일찍 했다. 마감을 일찍 한 게 시끄러워서 손님이 끊긴 건지 아이들에게 하루쯤 식당에서 원 없이 시끄럽게 뛰어놀으란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결론은 너희들을 위함이라고 말했다. "진짜야? 우리 놀라고 가게 끝났어?" 좋아하는 딸의 모습을 보면서 생각이 들었다. 집에서는 아랫집 쿵쾅 거리니깐 조용히 해야 하고, 가게에서는 손님들 식사하는데 시끄럽게 하면 안 된다 했으니 이 놈들도 꽤나 억압된 생활을 했구나. 답답했겠다 싶었다. 시골에 살고 있다고 해도 결코 맘껏 뛰어놀 수 있는 게 아님을 알게 되었다. 환경이 중요하다. 어디에 사는 게 아니라 어떤 환경에 있느냐가 중요했다. 가게 바로 코 앞이 학교 운동장인데 그건 아빠의 게으름 때문이지 반성도 하게 되었다.
10시 넘었다. 늦은 시간이니 정리하고 집에 갈 준비를 하라고 했다. 아주 조금만 더 놀겠단다. 이제 집에 가자고 몇 차례 이야기했다. '조금만 더...'
한 참을 지나도 끝낼 기미를 보이지 않기에 큰 소리를 냈다. "정리하라고 했잖아. 집에 가야지" 대답을 하지 않는다. 놀러 온 삼 남매는 눈치껏 부모들을 찾아간다. "리아야! 왜 너만 그래? 정리하라고 했잖아"
우리는 싸웠어도 금세 화해하고 푼다. 가게에선 싸운 게 아니라 주의를 준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딸은 평소답지 않게 살갑게 대하지 않는다. 가게에 친구가 왔고 재미있었다고 연신 이야기해야 하는데 말이 없다. 정리하고 집에 가자고 했던 말이 서운할 거라고 생각도 하지 못했었다.
잠자리에 누웠다. "아빠! 친구도 있고 동생들도 있는데서 혼내면 내가 창피하잖아." 친구들 있는데서 혼내는 건 아니잖아라고 말한다. 난 할 말이 없었다. 아차 싶었다. 더 이상 어린애가 아니구나. 자기 존중이란 걸 아는 나이가 되었음을 깨달았다. 충분히 말로 해도 알아들을 수 있고 친한 친구 앞에서 혼나는 모습을 보여준 게 창피한 것이다. 딸에게 교육을 받게 되는 상황이 되었다. 그래, 아빠도 이젠 실수하지 않을게. 얼마나 창피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