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야 주타누간 우드 티샷
"멀리 치는 사람이 승자야."
나는 멀리 치려다 매번 죽는다.
태국의 골프 영웅 주타누간 자매를 소재로 한 영화 <티샷 골프여제 에리야>에선 아버지는 멀리 쳐야 한다고 드라이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어릴 때부터 혹독한 훈련을 견뎌낸 자매를 보면서 쉽게 정상에 선 사람은 없다는 교훈을 얻었다. 어린 자매는 정신력을 강화를 위해 새벽마다 발에 모래주머니를 차고 공동묘지를 달렸다. 신체의 고른 발달과 영향의 균형을 위해 아이스크림조차 본인의 의지대로 먹지 못했다. 또래 아이들이 즐길 수 있는 모든 걸, 골프 하나만 바라보고 배제한 아버지의 행동이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승자는 드라이버 샷을 가장 멀리 친다는 거 기억하지?" 훈련 그리고 또 고된 훈련을 반복하며 아버지 골프 철학대로 성장한 자매는 좁은 태국을 벗어나 미국에 진출하며 멀리 친다는 개념이 흔들린다.
흔히 티샷은 드라이버로 멀리 쳐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잡혀있다. 입문자에게 우선 멀리 치고 두 번째 샷을 편하게 쳐야 골프가 쉬워진다고 일방통행법부터 가르친다. 과연 그럴까? 100타는 드라이버, 90타는 아이언, 80타는 어프로치라는 공식이 있다. 그럼 드라이버는 18홀 72타에서 중요도는 얼마나 되고 몇 번이나 손에 쥐게 될까? 18번의 티샷 중 14번이면 77 %로 비중이 높지만, 티샷은 드라이버다 라는 공식을 깬다면 골프가 더 쉬워지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쉬우면서도 어렵게 생각하는 드라이버를 굳이 고집할 필요가 있을까?
매 홀 티샷 때문에 매일 연습장에선 드라이버를 죽도록 패는 골퍼가 바로 나였다. 장작을 패듯 하루에 몇 백개의 드라이버를 치고 올 때면 '내가 뭐 하는 짓이지, 무슨 연습을 한 것일까' 자괴감에 빠진다. 연습장 기계에 공이 올라오면 한 몸처럼 움직였다. 째깍째깍 기계 소리를 들어야 만족스러웠다. 때리고 또 때리고 미친 듯이 때리고 나면 거친 숨을 몰아쉬며 공의 숫자를 보고 흐뭇해했다. 드라이버가 과연 효율적인가? 묻지도 따지지 않고 무조건 티샷은 드라이버라는 공식에 의심을 가지지 않았다. 레슨을 통해 드라이버가 가장 약하다는 단점을 지적받은 후엔 더 연습만이 살 길이라고 외치고 때렸다.
생각하는 골프를 한다면. 드라이버를 무조건 멀리 치고 보자는 막무가내식으로 경기를 운영하면 안 된다. 다음 샷을 생각하고 한 수, 두 수 멀리 봐야 한다. 멀리 치는 게 아니라 멀리 봐야 한다. 두 번째 샷을 내가 연습이 잘 되어있고, 확률적으로 그린에 잘 올릴 수 있는 거리에 갖다 놓는 티샷을 때려야 한다. 쉽지 않다. 티잉 그라운드에 올라가면 욕망이 앞을 가린다. 화려하고 파워풀한 스윙을 보여주고 박수갈채를 받고 돌아서는 모습은 흡사 영화 속 주인공의 한 장면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아리야 주타누간은 우드로 티샷을 날린다. 누구보다 멀리 칠 수 있는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우드를 챙겨서 티잉그라운드에 올라선다. 영화에선 주타누간에게 LPGA 캐디가 슬쩍 우드를 건네는 장면이 나온다. 뭘까? 정확도가 떨어져서 그런 걸까? 굳이 드라이버가 필요 없는 것이다. 또래보다 멀리 치지만 드라이버는 방향 제어력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우드를 건네주었다.
영화를 보고 실제 주타누간의 경기를 찾아서 봤다. 주타누간의 거침없으며 생크림같이 부드러운 스윙을 보면서 알았다. '나는 왜 가장 약점인 드라이버를 손에 놓지 못할까?" 그녀의 인상적인 인터뷰를 듣고 결심이 섰다. 드라이버를 몇 번이나 쳤냐는 질문에 " 드라이버를 가지고 오지 않았다. 내 골프 백에는 단지 우드 3번과 2번 아이언만 있다."
"내 골프 백에는 드라이버가 없다." 아리야 주타누간의 말에 자신감을 얻었다. 물론 그녀는 훌륭한 매니저들의 도움을 받아서 코스 분석과 전략을 이용하는 유리한 점도 있을 것이다. 드라이버가 가장 쉬운 클럽이라고 말하는 골퍼는 상관없지만, 나처럼 어렵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당장 버리자. 드라이버만 들고 티잉그라운드에 오르면 덜덜 떨고, 연습 스윙도 없는데 티샷 시간이 상당히 길어진다. 불안과 초조가 손에 힘을 꽉 쥐며 어깨는 경직되어 마치 곱새처럼 보인다.
티샷의 공포는 18홀 내내 영향을 미치고 좋은 스윙, 좋은 스코어로 연결되지 않는다. 버리자. 버리자. 매번 주문을 외우고 골프장에 가지만 캐디가 건네주는 드라이버를 동반자 눈치를 보며 잡고 만다. "남자가 시원하게 드라이버 쳐야지" "골프는 드라이버 치는 맛이지" 드라이버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당신들은 모른다. 프로 선수도 입스가 오면 은퇴까지 고려한다고 했다. 아마추어인 나도 입스 아닌 입스가 골프를 때려치우고 싶게 만든다
주타누간 그녀는 나의 영웅이다. 드라이버가 백에 없다는 말에 용기를 낸다. 잘하는 것에 집중하고 과감하게 우드와 아이언 티샷을 할 것이다. 스코어가 좋았을 때를 생각해 보면 내 손엔 드라이버가 없을 때였다. 나는 드라이버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처방전을 받았다. 드라이버를 버리자. 우드 티샷을 부끄러워하지 말자.
명언을 떠올리자. <드라이버는 쇼, 퍼팅은 돈> 멋진 티샷 노노노. 페어웨이에 갖다 놓자. 코스는 티샷이 처음과 끝이 아니다. 끝은 홀컵에 있다. 맑게 떨어지는 소리 땡그랑 소리가 귓가에 아름답게 울리길 바라면 멀리 치겠다는 드라이버 욕심을 내려놓자. 효율적인 연습에 방해만 주었던 드라이버 과감히 버리자. 즐거운 라운드를 방해했던 드라이버 안녕.
버릴 수만 있다면
어깨를 내려라
더욱 어깨를 내려라
머릿속에 든 게 있다면
그것부터 버려라
스스로 두려워해라
너 자신을 경계하고
비우고 기꺼이 받아들여라
지난겨울은
칼을 갈았지만
또다시 죽을 판
이제 코스 깊숙이
불타는 심장을 내어줘라
우리 몸도 덩달아
두드릴 때
겨울은
삭막한 겨울은
너에게 햇살을 비춘다
심장을 녹여준다
<나태주 가을 햇살 앞에 모방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