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건은 생명줄 일 수도 있지만 쓸데없는 실력 부풀리기가 된다. 첫 홀에 들어서면 긴장되는 건 누구나 마찬가지다. 첫 홀부터 한 번만 더 치겠다는 동반자를 만나면 여간 불쾌한 게 아니다. 물론 피치 못할 실수? 가 있다면 이해가 되지만 실수는 자기로 인해 일어나는 게 다반사이다.
우리는 운전자에게 첫 홀에서만 멀리건을 준다. 허리 한 번 제대로 펴지 못했을 피곤함, 동반자를 책임지고 안전하게 골프장까지 데리고 온 책임감, 흔쾌히 자신의 차량에 4개의 캐디백을 실어주는 배려에 대한 답례 차원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운전자는 실수하지 않는다. 엉뚱한 사람이 실수하면서 가만히 쳐다본다. 고개를 갸웃거리고, 이런저런 핑계를 대기 시작한다. 실수는 누구나 있다면서 "첫 홀이니깐 한 번만..."
"멀리건 드릴게요"라고 말하지 않고 "한 번 더 치세요" OB가 난 동반자에게 배려하며 예쁜 말을 사용했을 때 뻘쭘해하지 않는다. 본인이 먼저 '멀리건' '멀리건' 외치면 정말 꼴사납고 미워지기까지 한다. 나도 사람인지라. 그 사람의 스윙 한 번이 우리뿐만 아니라 뒤 팀까지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안다면 쉽게 멀리건을 외칠 수 없다.
구력이 제법 된 골퍼들은 오히려 멀리건을 거부한다. 멀리건이 진짜 본인 플레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가끔 "한 번만 더 칠게" 말하곤 그 홀에서 버디를 기록하면 버디값을 안 받는 게 예의다. 근데 본인의 멀리건은 잊고 버디 생각에 기쁨을 감추지 않는다. 그랬던 사람이 초보가 멀리건으로 파3에서 니어를 했는데 이건 인정할 수 없다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일 때가 있다. 멀리건도 어쩌면 내로남불인지. 한 번 더 친다는 생각을 아예 갖지 않는 게 좋다.
멀리건은 쓰면 쓸수록 중독되고 만다. '이번에 못 쳐도 멀리건 줄 텐데' 생각하면서 골프를 쉽게 생각하는 게 문제다. 즐기고 집중하는 게 아니라 실력과 타수를 속이고 싶은 속삭임에 마음을 빼앗긴다. 그러다 보면 내 진짜 실력을 모르게 되고, 스윙에 대한 집중력이 떨어지며 오늘의 골프를 망치는 결과를 얻는다.
오비티를 받아들이는 자세를 바꾼다면 OB에 대한 두려움, 골프가 달라지게 될 것이다. 나를 구제해 주는 특별한 곳으로 간다. 기회는 있다고 생각한다면 최소 파 4에서 더블보기로 방어할 수 있지 않을까? 어쩌다 OB 버디라도 한다면 분위기는 바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