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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ley Jun 17. 2016

초코칩 쿠키

바삭한 듯 부드러운 너가 자꾸만 생각난다.

자꾸만 생각나는 너, 초코칩 쿠키


오늘은 쿠키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제과 제품 중 우리와 가장 친근하다고 할 수 있는, 하지만 우리 할아버지에게는 그저 '과자'에 불과한 이 두 글자는 내겐 애증의 대상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부드러운 상태로 굳힌 브라운 버터

베이킹을 해보기로 결심한 후 가장 처음으로 도전한 것은 초코칩 쿠키였다. 크기부터 다른 케이크나 머핀 등에 비해 월등히 작고 왠지 섬세한 작업 따위는 필요치 않아 보이는 쿠키는 내게 가장 만만했던 대상이었고 나의 첫 타깃은 자연스레 쿠키가 되었다. 의욕에 불타며 마트로 달려간 내 장바구니에는 초코칩 쿠키믹스를 시작으로 버터, 우유, 계란이 줄지어 들어섰고 나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우리 집 식탁에 무사히 도달했다. 먼저 포장박스에 적힌 설명서를 읽었고 분주하게 쿠키를 만들기 시작했다. 만드는 과정은 순조로웠고 쿠키 도우는 나란히 줄지어 오븐 안으로 들어갔다. 이윽고 온 집안이 달콤한 향기로 가득 찼다. 방에 있던 플랫 메이트까지 거실로 나와 코를 킁킁대며 기대에 찬 눈빛을 보냈다.

하지만 모두의 기대 속에 쿠키를 꺼냈을 때, 나는 선뜻 그 트레이를 식탁에 올려놓지 못하고 있었다. 무언가 잘못되었는지 반죽이 익는 동안 너무 퍼져서 모양은 다 일그러졌고 쿠키 바닥도 군데군데 그을려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미 만들어진 프리믹스였기 때문에 맛은 그런대로 괜찮았지만 그 식감은 전혀 달랐다. 그 망가진 쿠키들이 내게 "나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아" 라며 소리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기대에 찬 눈빛을 한 플랫 메이트에게 일그러진 쿠키를 건네던 그 순간, 너무 속상했던 나였다.


재료를 분량에 맞게 준비한다.
원하는 크기의 초콜릿칩을 만든다.

이후, 나는 몇 번 더 쿠키를 구워냈고 나름대로 그와 가까워지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는 나를 다시 한번 밀쳐냈다. 한국에 돌아온 후 야심 차게 만든 첫 쿠키가 또다시 내 의욕을 상실하게 만들어버렸던 것이다. 늘 만들던 레시피대로 만든 쿠키는 퍼지다 못해 바닥에 납작 붙어있었고, 버터가 절절 끓는듯한 모양을 하고 나를 향해 흐느적대고 있었다. 베이킹을 하는 사람들은 알 수 있을 것이다. 온 신경을 다 바쳐 만들어 오븐에 넣고 기다리다가 이를 꺼냈는데 내가 기대했던 모습을 하고 있지 않을 때의 그 기분을. 그 이루 말하지 못할 상실감과 서글픔을 말이다. 처음엔 그렇게 만만해 보이던 쿠키는 내겐 가장 어려운 존재였고 내 사기를 떨어트리는 가장 큰 주범이었다. 지금은 수많은 레시피 수정과 시행착오 끝에 안정을 찾았지만 아직까지도 쿠키를 구울 때면 이따금 걱정 어린 눈길로 오븐 안을 지켜보곤 한다.


하지만 아무리 쿠키가 나를 기죽여도 나는 쿠키를 미워할 수가 없었다. 나와 밀당을 하는 그 고단수 때문인지 아니면 앙증맞은 그 모양 때문인지 쿠키는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가 않았다. 맛있게 밥을 먹고 났을 때 '입가심으로 쿠키 하나 먹을까?', 오후 세시쯤 배가 고파지면 '쿠키 하나만 먹을까?', 꼬르륵거리며 배가 요동치기 시작하는 늦은 밤, 책상 위의 쿠키 상자가 속삭인다. '하나만 먹어, 그건 괜찮을 거야.' 하고 말이다. 이렇게 하나씩 둘씩 먹다 보면 나 혼자 쿠키 한 판은 며칠 새에 해치우곤 한다. 어찌 보면 디저트 중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쿠키일지도 모른다. 내 냉장고 혹은 냉동고에 늘 항시 대하는 쿠키 도우를 보며 말이다.


초콜릿을 듬뿍~
완성된 도우, 상당히 퍽퍽한 느낌의 질감이다.

나는 쿠키 중에서도 바삭하고 진한 맛의 초코칩 쿠키를 가장 좋아한다. 이 진한 맛을 내기 위해 그냥 버터가 아닌 브라운 버터를 사용했다. 여기서 말하는 브라운 버터는 버터를 말 그대로 갈색이 될 때까지 가열한 것이다. 버터는 100% 지방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지방과 15%정도의 물, 2%정도의 단백질로 이루어져 있다. 버터를 가열하면 물이 증발하여 거품이 나게 되며 단백질 성분들이 갈색으로 변하게 된다. 버터를 계속해서 가열하게 되면 단백질이 잡다한 분자 상태로 부서지게 되며 갈색 점 같은 유고형분(milk solid)이 생겨난다. 이 적당한 호박색(갈색)을 띤 상태가 되면 버터가 nutty 하고 toasty 한 맛을 낸다. 프랑스인들은 이 복합적인 맛을 헤이즐넛의 맛이라고 생각해 프랑스어로 "beurre noisette" 즉 헤이즐넛 버터라고 부른다. 이 브라운 버터는 다양한 요리에 사용되는데 나는 이를 사용해 더 깊은 풍미의 초코칩 쿠키를 만들었다. 또한 브라운 버터 이외에도 비정제당을 사용해 카라멜향이 감도는 쿠키를 만들 수 있었다.


또한 쿠키를 만드는 과정을 보면 항상 반죽을 완성하고 난 후 냉장고에서 휴지 시간을 갖는다. 적어도 30분 이상 휴지시키는데 이 과정은 왜 필요한 것일까? 먼저, 이렇게 냉장고에 휴지시킨 쿠키 도우 안의 지방 성분은 실온 상태의 것보다 구울 때 녹는 시간이 더 오래 걸린다. 즉, 쿠키가 덜 퍼지게 되는 것이다. 또한 막 반죽한 상태보다 냉장고에 휴지시킨 도우는 모양을 내기도 훨씬 쉽다. 뿐만 아니라 이 휴지 시간은 맛과도 관련이 있는데 도우를 휴지시킬수록 그 맛도 깊어진다. 한 블로거의 글에 의하면 30분까지가 그 맛의 차이나 퍼짐의 변화가 가장 크고 그 이후로는 서서히 변화한다고 한다. 정리하자면 최소 30분이 권장되며 하루나 이틀 휴지시켰을 때 그 맛이 더 깊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과학적인 현상으로 계란 내의 액체 성분에서 비롯된다. 휴지 시간이 길어질수록 밀가루가 그 액체 성분을 더 많이 흡수하게 되어 도우가 견고해지게 된다. 또한 이 과정은 밀가루와 계란 노른자 내의 효소가 탄수화물에서 단당류인 과당과 포도당으로 분리되게 만든다. 이렇게 분리된 상태에서는 이전보다 더 단맛을 내며 구울 때 더 빨리 카라멜라이징 된다. 즉 보다 깊은 맛을 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쿠키를 굽기 전 휴지 시간은 매우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24시간 분량의 맛이 들여진 쿠키도우
거의 퍼지지 않는 쿠키이기 때문에 납작하게 눌러 구워준다.

이렇게 그 흔한 초코칩 쿠키를 만들 때에도 많은 것들이 고려되어야 하고 그 이유 또한 복잡하다. 많은 계산된 재료와 과정으로 그 맛의 최대를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이 나는 베이킹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베이킹은 과학이다.'라는 말도 있듯이.

아직도 나의 쿠키는 부족한 부분이 많다. 하지만 매번 쿠키를 만들 때마다 모자란 맛을 채워가며 완벽한 하나의 맛을 내려 노력하고 있다. 내게 쿠키는 좌절을 가장 많이 가져왔던 얄미운 상대이기도 하지만 가장 자주 먹고 싶어 지는 연인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나는 오늘도 이 애증의 쿠키를 또 한 번 구워냈다.


투박하게 줄을 선 쿠키들

RECIPE

(지름 6cm 정도의 쿠키 18~20개 분량)


밀가루 1컵

통밀가루 3/4컵

무염버터 100g

비정제당 1/3컵 (보다 조금 더 적게)

백설탕 2 Tbsp

계란 1개

베이킹소다 1/4 tsp

소금 1/8 tsp

다크 초콜릿 140g (혹은 취향껏)

바닐라 익스트렉트 1/4 tsp


1. 분량의 버터를 소스팬에 넣고 약불에서 천천히 녹여준다.

2. 갈색 점 같은 침전물이 생기고 색이 호박색(갈색) 정도로 변하면 다른 그릇에 옮겨 담는다.

3. 녹인 버터를 냉장고에 넣고 실온 버터 상태의 질감이 나올 때까지 굳힌다. 이때, 5분 정도마다 고르게 섞어주며 확인한다.

4. 초콜릿을 적당한 크기로 썰고 분량의 밀가루, 통밀가루, 베이킹소다, 소금을 준비한다.

5. 버터와 분량의 설탕을 거품기로 섞어 크림화한다.

6. 5에 실온 상태의 계란, 바닐라 익스트렉트 넣고 섞는다.

7. 준비해둔 가루류를 넣고 스패츌라를 사용해 접어올리듯 섞는다. 쿠키는 너무 많이 반죽하면 다소 tough 한 쿠키가 나올 수 있으니 주의한다.

8. 가루가 보이지 않으면 썰어둔 초콜릿을 넣고 마지막으로 섞어준다.

9. 반죽을 2 덩이로 나누어 랩으로 밀봉하고 냉장고에 휴지시켜준다. (최소 30분 이상)

10. 쿠키를 굽기 전에 미리 반죽을 실온에 꺼내 두어 약간 부드러운 상태로 만들어준다.

11. 오븐을 175도로 예열하고 쿠키를 만든다. 거의 퍼지지 않는 쿠키이므로 납작하게 눌러준다.

12.  예열된 오븐에서 약 8~10분 구워내면 완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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