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시간 속에서 나를 마주하다
이렇게 나를 마주하고 시간을 흘러 보냈던 적이 있었던가!
스페인 피레네 산맥에 위치한 피스코 데 유로파 국립공원(Parque Nacional de los Pisco de Europa)의 “Parador de Fuente de” 호텔에서 흐르는 시간을 본다.
약 한 달 가까이 이베리아반도의 포르투에서 시작한 가족여행은 리스본, 라고스 그리고 스페인 남부 휴양도시 네르하를 지나 두 딸들은 일상을 살기 위해 서울로 돌아갔다. 남은 우리 두 사람은 안달루시아 지방을 둘러보고 마드리드를 지나 스페인 북부도시 빌바오로 가는 길목에서 남은 한 달을 준비하기 위해 잠시 나그네의 봇짐을 내려두고 쉬어가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Parador de Fuente de에 도착할 때부터 이슬비가 내리더니 오늘은 종일 비가 내린다. 숙소 베란다 테이블에 앉아 해발 1,070M의 고원에 자란 풀을 뜯는 소와 말들의 워낭소리가 빗줄기 소리와 어우러지고, 해발 1,823M의 깎아지른 절벽이 구름으로 덮였다가 열리고 그 사이사이 빗물은 폭포가 되어 하나가 둘이 되고 셋이 된다.
이렇게 나를 마주하고 시간을 흘러 보냈던 적이 있었던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대학에 입학하던 19살 청년에서 이제 60이 넘어 연말이면 33년 다니던 직장에서 정년퇴직을 하게 되기까지 40여 년의 세월 동안 얼마나 진솔하게 시간과 마주하고 시간을 느끼며 살았던가? 늘 주어진 일상에서 아빠로, 남편으로, 때로는 아들로 그리고 밥벌이의 지겨움을 이겨내고 여기까지 오느라 내게 시간은 자녀의 성장, 가정의 지킴이, 때로는 부모님의 보호자 그리고 일이 전부였던 시절이 지금까지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노후준비라는 단어를 생각했던 때가 두 딸들이 고등학교에 입학하던 시기였으니 그래도 남들보다는 노후준비를 위한 계획과 실행이 빨랐기에 내게 오늘이 있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오늘 이렇게 나를 마주하고 시간을 돌이켜 생각할 수 있음에 감사할 따름이다.
40대에 접어들면서 “나이 40이 넘어서는 밥벌이를 위해 공부하지 않는다”라는 나름의 생활신조를 가지고 세상과 마주했다. 즉, 삶은 더 많이 갖기 위해 시간을 투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 가진 것으로 욕심내지 않으면 큰 어려움 없이 생활에 만족하고 시간을 잘 즐길 수 있으면 더 멋진 인생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가족에게는 세계여행을 끊임없이 권해왔고, 나는 밥벌이의 고단한 일상 속에서 클래식, 미술, 인문학과 서양사에 관심을 갖고 공부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늘 시간과 마주하고 시간의 소중함만을 앞세웠기에 시간을 보지 못하고 살아왔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나를 마주하고 시간을 흘러 보낼 수 있는 삶이란 어떤 것일까?
때때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시간을 벗 삼아 좋아하는 책과 음악 만을 가까이하며 유유히 시간을 흘러 보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상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다르다면 세상과 시간을 다르게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살 수 있다면 그때 나는 더 멋진 인생을 살아가고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