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벚꽃 축제 하나미가 갖는 의미

- 재미진 일본문화 이야기 12 -

by 일 시 작

분명 아침바람은 쌀쌀했는데 낮이 되니 쌀랑함은 온 데 간 데 없고 따스한 기운이 코끝을 스친다. 커피를 마시며 걷다 옆을 보니 꽃망울을 맺은 산수유가 눈에 띈다. 올해 처음 느껴보는 귀엽고 따뜻한 노란색이다. 지나가는 사람들 역시 어린 친구에게 다가가 봄 인사를 건넨다.


봄은 부드러운 미소로 겨울에게 인사를 건네고 자신의 계절을 펼친다. 이를 환영하기 위해 여러 꽃들이 축하파티를 열고 초대받은 우리는 그 속에서 덩달아 즐긴다. 봄이 더 활기차게 느껴지는 이유다. 여름꽃도 가을꽃도 있으나 신기하게 봄꽃은 겨우내 덜 움직였던 머릿속 생각과 행동을 움트게 하는 힘이 있는 것 같다. 아마도 이 친구는 외유내강형인가 보다. 굳이 MBTI로 따지자면 INFP느낌이다. 샤이한데 감성적이고 남의 이야기를 흘려듣지 않으며 아무 때나 너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말해주는 친구 같다. 꽃에 별로 관심 없는 ‘나’이지만 이때만큼은 주변을 두리번거리게 된다.


목련, 산수유, 개나리, 진달래~이제 이 친구들을 오롯이 받아들일 시간이다. 이중 벚꽃을 빼놓을 수 없는데 낮에 보는 순수한 분홍빛도 밤에 마주하는 몽환적인 분홍빛도 우리를 설레게 한다. 이러한 감정을 느끼는 건 옆 나라 일본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오늘은 일본의 하나미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보려 한다.


하나미(花見(はなみ))는 말 그대로 ‘꽃을 본다’는 뜻으로 이때의 꽃은 벚꽃을 말한다.

나라시대(奈良時代 8세기경) 중국의 영향을 받아 시작되었으며 헤이안시대(平安時代 9세기경)에는 귀족의 행사였던 것이 에도시대(江戸時代 1603~1868)에 들어서 서민들에게 퍼지며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여기엔 벚꽃을 구경한다기보다 일본인의 자연관과 삶의 철학이 담겨 있다.

벚꽃 사쿠라(さくら)사(さ)논의 신, 쿠라(くら)신이 있는 자리라는 뜻으로, 농민들에게 벚꽃은 농사의 신이 내려오는 신호였다. 꽃이 활짝 피면 그해 풍년이 들 것으로 믿고 제사를 지내며 술과 음식을 나눈 것에서 유래된 것으로 이는 단순한 꽃놀이가 아닌 농경 의식이었다.


오늘날의 하나미는 꽃 감상과 더불어 사람들과 함께 봄을 나누는 하나의 행사로 자리 잡았다. 벚꽃이 만개한 공원에 돗자리를 펴고 앉아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도시락을 나눠먹거나 사케나 맥주를 곁들인 작은 모임이 더해져 여유로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해가 지면 또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조명이 비춘 밤 벚꽃을 요자쿠라(夜桜(よざくら)라 하며 낮과는 다른 몽환적이면서도 낭만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밤벚꽃 풍경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이 하나미 명소의 자리 잡기 문화이다.

드라마나 애니메이션에서 젊은이들이 새벽부터 돗자리를 들고 공원에 앉아 있는 모습이 나오곤 했는데 이는 일종의 기업문화로 신입사원의 중요한 업무 중 하나였다. 어떤 자리를 맡느냐에 따라 사회생활 능력을 가늠한다는 말도 있었다. 가볍지만 분명한 조직 문화를 보여주는 일례다. 지금도 큰 공원에서는 이런 풍경을 마주할 수 있기는 하지만 워라밸을 중시하는 직장문화의 변화, 강압적인 관행에 대한 거부감 증가 등으로 예전 신입사원의 고생(?) 이미지는 약해지고 자발적이고 가벼운 역할 분담으로 바뀌었다.


하나미는 일본인들에게 중요한 행사인 만큼 벚꽃이 필 때가 되면 일기예보에서는 지역별 개화시기를 연결한 지도상의 선을 알려주는데 이를 사쿠라 전선(桜前線(さくらぜんせん) 사쿠라젠센)이라 한다. 장마전선처럼 벚꽃이 피는 지점이 남쪽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는 모습이 전선과 비슷해 붙여진 이름이다. 보통 3월 규슈와 시코쿠에서 시작해 3월 말~4월 초 도쿄, 오사카를 거쳐 5월 초 홋카이도로 이어진다. 일본인들에게 사쿠라 전선은 단순한 날씨 뉴스가 아닌 봄의 시작을 의미한다. 전선이 북상함에 따라 편의점 메뉴가 핑크빛으로 바뀌고 사람들의 옷차림이 가벼워지는 과정인 것이다. 시간의 흐름에 맞춰 분홍빛으로 물든 그 순간을 함께 즐기는 재미 또한 하나미의 묘미다.


사쿠라전선

벚꽃을 감상하는데 장소가 따로 있을까 만은 그래도 몇 군데를 짚고 넘어가 보자면~

우선 도쿄의 우에노 공원(上野公園(うえのこうえん) 우에노고~엥))을 들 수 있다.

도쿄에서 가장 유명한 하나미 명소로 약 1,000그루 이상의 벚꽃이 공원길을 따라 이어져 여유롭게 즐기기 좋은 곳이다. 낮에는 활기찬 분위기를 밤에는 밤벚꽃(夜桜(よざくら) 요자쿠라)의 낭만을 느낄 수 있다.

도쿄의 우에노 공원

다음 나라현의 요시노야마(吉野山(よしのやま)다.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벚꽃 명소 중 하나로 약 3만 그루 이상의 벚꽃이 산 전체를 뒤덮는다. 아래에서 위로 피는 층층의 벚꽃 풍경은 다른 곳에서는 보기 힘든 장관이다.

나라현의 요시노야마

아오모리연의 히로사키 공원(弘前公園(ひろさきこうえん) 히로사키고~엥)도 유명한데 이는 일본 북부 최고의 벚꽃 명소로 꼽힌다. 특히 꽃잎이 떨어져 물길을 덮는 벚꽃 카펫 풍경이 아주 유명하다.

아오모리현의 히로사키공원

일본인에게 하나미는~

꽃구경을 넘어 삶을 바라보는 태도와 감정이 담긴 시간이다.

벚꽃은 소박하면서도 화려하게 피었다 이내 질 것을 알기에 그 순간을 더 깊이 느끼고 즐기려는 마음이 담겨 있다. 가족, 친구, 동료와 함께 같은 풍경을 즐기며 일상에서 놓치기 쉬운 관계의 여유와 따뜻함을 되찾고 싶어 한다. 그러니 사람과의 관계를 이어주는 시간이기도 하다.

한편으론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신호이다. 벚꽃이 피는 시기가 입학, 입사 등 새로운 출발과 겹치기 때문에 기대와 설렘 그리고 기분 좋은 긴장감이 봄 풍경과 잘 어우러진다.


벚꽃이 눈처럼 흩날린다는 뜻의 사쿠라후부키(桜吹雪(さくらふぶき)라는 단어가 있다. 꽃비가 내리는 풍경 속에서 소중한 사람들과 봄의 정취를 만끽하고 찰나의 귀한 시간을 함께 나누며 살아가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미의 진정한 의미가 아닐까 생각한다.




글을 쓰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노란 산수유 꽃 뒤에 어린 분홍빛이 살짝 얼굴을 내밀고 있다. 누구라도 불러내고 싶은 따뜻한 봄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