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화려한 축제 히나마츠리
그리고 변화

- 재미진 일본문화 이야기 11 -

by 일 시 작

제야의 종을 들으며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는 덕담을 주고받은 것이 엊그제 같은데 며칠 후면 벌써 3월이다. 해마다 맞이하는 3월이건만 늘 설레는 건 겨우내 미뤄두었던 생각과 행동들이 찬바람을 뚫고 나오는 새싹처럼 움트기 때문일 것이다.


어디 이것뿐이겠나.

코끝에 스치는 따스한 공기, 노랗고 하얀 꽃, 엄마 손을 잡고 가는 아이의 모습에 괜스레 설레고 고맙기까지 하다. 한 여자아이가 자기보다 큰 가방을 메고 기분 좋게 걸어간다. 아마도 이번에 초등학교에 입학하나 보다. 이 친구 역시 새로운 시작에 기대와 설렘을 잔뜩 안고 있겠지.

이 아이를 보니 일본의 한 축제가 생각난다.

그래서 오늘은 여자아이들을 위한 3월 축제인 히나마츠리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히나마츠리(雛祭(ひなまつ)り)는 매년 3월 3일 열리는 일본의 전통의식으로 인형들을 단상에 올려놓고 여자아이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는 행사이다. 복숭아꽃이 피는 시기라는 의미로 모모노 셋쿠(桃(もも)の節句(せっく))라고도 한다.

원래는 인형을 만들어 강물에 띄워 보내며 나쁜 기운을 씻어내는 나가시비나(流(なが)しびな) 풍습에서 유래했는데 시간이 지나며 화려한 히나인형을 집안에 장식해 축하하는 형태로 바뀌었다. 인형을 장식하는 것은 여자아이가 건강하게 자라 좋은 인연을 만나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과 인형에 안 좋은 기운이 옮겨져 아이가 그것을 피할 수 있게 액막이를 한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히나인형 장식은 보통 3단, 5단, 7단의 단으로 꾸며져 있어 단카자리(段飾(だんかざ)り)라 한다.

붉은 천을 깐 계단 모양의 선반에 인형을 진열하는데

가장 위에는 천황과 황후 인형이 자리 잡고 있고 아래 단으로 갈수록 신하와 궁녀 악사 인형이 앉아 있다. 마치 작은 왕궁을 보는 느낌이랄까. 가격도 천차만별이라 인형 옷감의 종류, 자수의 정교함, 고도의 수작업 등에 따라 몇 만 원부터 천만 원 이상인 것도 있다. 아무래도 7단의 대형장식은 백화점이나 쇼핑몰에서 구경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히나마츠리 인형장식

과거엔 시댁에 있는 딸과 손녀를 보기 위해 친정 부모님이 히나인형을 가지고 갔기 때문에 보통은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선물하는 경우가 많았다. 요즘은 양가에서 비용을 반씩 부담하거나 파스텔톤과 미니멀한 크기 등 현대적인 감각을 살린 젊은 부부의 취향을 존중해 조부모가 현금으로 주는 가정도 많다고 한다.


그럼 장식은 언제 시작할까?

일반적인 가정에선 보통 2월 중순쯤 히나인형을 꺼내 단에 장식하기 시작해 3월 3일 온 가족이 모여 음식을 먹고 딸이나 손녀의 행복을 기원하는 시간을 갖는다.

특이한 건 축제가 끝나면 인형을 바로 치워야 한다는 것이다. 인형을 늦게 치우면 딸이 늦게 결혼한다는 설이 있기 때문이다. 미신이라고는 하지만 딸과 손녀를 위한 것이라면 꼭 지켜내는 건 우리나 일본이나 아니 세계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히나마츠리 때에는 시각적으로도 예쁜 음식들을 나눠 먹는다.

메인 요리는 치라시즈시(ちらし寿司(ずし)). 흩뿌린 초밥이란 뜻으로 밥 위에 장수를 의미하는 새우와 지혜를 상징하는 연근을 화려하게 올린 음식이다. 달걀지단과 완두콩 등도 함께 놓는다.


여기에 하마구리 스이모노(蛤(はまぐり)吸(す)い物(もの))라는 맑은 대합조갯국을 곁들인다.

이는 조개껍질이 딱 맞는 것처럼 좋은 인연과 좋은 배우자를 만나기 바란다는 의미가 있다.

치라시즈시와 하마구리 스이모노

히시모치(菱餅(ひしもち))라는 삼색 떡도 있는데 복숭아꽃을 나타내는 분홍색은 액운을 없애고

흰색은 순수함을, 초록은 새싹을 의미한다. 즉 봄의 시작과 더불어 아이의 건강을 기원하는 것이다.

히시모치

히나아라레(雛(ひな)あられ)는 작은 쌀과자로 관동지방(도교 중심)은 달콤하고 관서지방(오사카, 교토 중심)은 짭짤한 맛을 띤다. 지역별로 맛은 조금 다르지만 일 년 내내 아이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자라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건 마찬가지이다.

히나아라레

시로자케白酒(しろざけ)는 쌀로 만든 달콤하고 하얀 술로 정화와 축복을 상징한다. 약하지만 알콜이 있어 아이들은 甘酒(あまざけ)라는 무알콜의 단 음료를 마신다.

시로자케와 아마자케

이런 전통 속에서 현재의 히나마츠리는 트렌드가 조금 바뀌고 있다.

우선 히나인형이 과거 7단 장식 대신 슬림화된 형태로 거실 인테리어로 자리 잡고 있다. 천황과 황후 두 개의 인형만 놓거나 케이스형이 인기를 끌면서 미니멀리즘을 선도하고 있다. 칼라 역시 전통적인 붉은색보다는 봄을 알리는 분홍색이나 베이지, 아이보리 같은 파스텔톤으로 집안 인테리어와 어우러지는 색감을 선호한다.


또한 아이의 성장을 축하하는 단계를 넘어 나에게 인형을 선물하는 문화가 정착되고 있다.

인형은 곧 행운을 빌어주는 부적이자 힐링 아이템이며 나만의 공간을 꾸미는 예술품으로 유리 공예나 도자기 명장들이 만든 작고 세련된 작품들이 마이 히나(マイ雛(ひな))라는 이름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마이 히나

축제의 경계도 색이 옅어져 성별이나 보는 것에 국한되지 않고 누구나 즐기는 문화로 바뀌어 가고 있다. 아이의 행복엔 성별이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어 남자아이도 함께 즐기거나 중성적인 디자인의 인형이 출시되고 직접 만지며 놀 수 있는 체험형 히나인형도 등장해 전통과 현대적인 요소가 어우러진 모습을 보여준다.


이렇듯 전통을 지키면서도 개인 취향에 맞게 즐기는 것이 2026년의 변화된 히나마츠리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형식은 바뀌어가지만 예나 지금이나 어린 아이 더 나아가 자신의 건강과 행복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만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축제의 가장 아름다운 본질이자 의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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