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즐겨보는 재정관리와 투자 채널들이 있다. 뭐 오를 주식 종목이나 부동산입지 정보를 얻고자 하는건 아니다. 현명한 투자자들을 보다보니 특출한 투자 기술이전에 기본원칙을 지키는 성실한 삶의 자세가 더 두드러졌다. 그래서 이들의 영상을 보면 공감도 되고 종종 삶의 지혜도 얻는 재미가 있다.
그런데 그 중 한 채널에서 "다들 잘 모르는 비혼세대가 20년뒤 겪을 심각한 사회문제"라는 썸네일의 영상이 올라왔다. 사회초년생에게 건강한 경제관념을 심어주는 주제들은 자극적이라도 필요한 쓴소리라고 공감해 주는데 이 영상은 아무래도 그냥 좋게 좋게 편들 수 없었다. 영상보는 내내 미간에 힘이 잔뜩 들어가고 입꼬리는 한쪽으로 뭉쳤다.
기억에 남는 말들을 추려보면 이렇다.
"요즘 혼자사는 1인가구가 늘어나는데, 노인 1인가구도 빠르게 증가한다. 노인가구 500만 중 1인노인가구, 즉 독거노인은 37%. 나중에는 젊은 1인가구는 줄어들고 노인 1인가구만 증가할거다."
"2040년에 일본의 독거노인비율에 도달하고 우리나라는 노인의 나라가 된다. 2050년엔 1인가구가 905만이 되고 그 절반이 65세 이상일거다."
"젊은 비혼세대들 월세로 살고 저축하지 않아도 불편하지 않겠지만... 지금은 나혼자 산다 같은 프로가 유행하는데 20, 30년 후? 그때가면 나혼산에 노인 연예인이 나올거다."
"일본에서는 하류노인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노인들이 사회의 하층민이 된다는 뜻이다. 미래에는 혼자사는 노인은 집을 구하기도 어려울것이다. 혹시 고독사하면 집값떨어질테니 건물주가 독거노인을 기피하기 때문이다."
단지 독특한 개인의견이라 하기엔 너무나 익숙하다. 그러고보니 부모님, 친척들이 번갈아가며 해주신 '다 너를 위한 충고다' 시리즈, 친구들끼리 나누던 '독거노인의 최후' 시리즈에서 통계를 추가한 버전같다. 반복해서 들으면 둔감해질 법도 한데 매번 까슬거리는걸 보면 참 면역도 안 생기는 주제다.
요약하면 "노인은 제기능을 못해 누군가가 돌봐줘야하는데 결혼안해서 혼자 노인이 되면 말로가 비참해진다"라는 건데, 상대가 잘못된 길을 갈까 걱정해서하는 조언이라기엔 글쎄요... 겁을 주어 원하는 방향으로 몰고가려는 지능적인 공포 마케팅 혹은 가스라이팅으로 들리면 내가 너무 민감한걸까.
금방 노인이 될 인간, 1인가구의 인간이 들으면 뭐가 틀린지몰라도 우선 기분 나쁠것이다. 적어도 둘다에 해당하는 나는 매우 참기 어려웠다. 그래서 이참에 사회전반에 퍼져있는 이 공포 마케팅의 실체와 그 속에 녹아있는 오해와 비약을 전면으로 반박해보려 한다.
참고로 개인적인 글이고 누군가를 비난하는 의도는 없으니 혹시 불편한 부분이 있더라고 재미로 보고 이해해주시면 좋겠다.
1인 가구는 즐기는데 올인한 불나방?
위 영상에서 '집중적으로 돈을 벌어야할시기에 즐길거 즐기고 살면 나중에 독거노인의 삶을 피하기 힘들겠죠'라는 대목에서 이마에 핏줄이 빡하고 섰다. 1인가구는 탕진 잼을 즐기는베짱이고, 다인가구는 근검절약하는개미라고 너무 단정하고 있다.
생애주기를 크게 학생, 사회인, 은퇴후 세구간 나눌때 흑자구간은 사회인 시기 밖에 없다고 설명했고 길지않은 흑자 시기에 부부는 장래를 위해 합심하여열심히 돈을 모으고 맞벌이를 통한 규모의 경제를 일으키면 효율적이라는 말에 동의한다.
하지만 배우자와 자식이 있는 가구만 미래를 대비하는건 아니다. 1인가구도 현재의 수입을 지금의 나와 미래의 내가 나눠 쓰기 때문에 2명의 자산을 관리한다는 생각으로 치열하게 모으고 굴리려고 한다.
결혼과 자녀양육은 책임감이 필요한데 1인가구는 그 두가지 책임은면제받았다. 하지만 인생의 나머지 책임들은 회피할 수 없다. 물려줄 자식이 없어서 저축하지 않는다? 아니다. 지금보다 신체적으로 불리해질 미래의 나도 안심하고 살려면 지금의 내가 돈을 함부로 쓸 수 없다. 오히려 자식준다고 저축 더 하다간 숨도 못쉴정도로 꼭 필요한 부분만 소비하고 있고 총자산에서 월간 평균지출금액을 나눠 수입이 끊기고 나서 생존가능한 기간을 끊임없이 계산하며 소득대비지출 비율을 재조정한다.
사회, 국가가 유지되려면 후세대를 생산, 육성(자식)하는 것도 구성원의 의무라는 걸 안다. 그래서 그런 대의를 실천하는 가족단위의 인구집단에 늘 감사하고 필요하다면 싱글세를 낼 용의도 있다. 1인 가구라 후세를 공급할 순 없어도 건설적인 사회운영에 관심을 가지며 무임승차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의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걸 어필해본다.
노인은 모두 병원에 매인 환자?
노인에 대한 이미지를 물어보면 열에 아홉은 여러 만성병에 처방약을 약을 한주먹씩 먹는 모습을 떠올린다. 오랜 고혈압 당뇨에 합병증으로 거동은 불편해지고 여기저기 아파서 병원 방문이 잦아 아예 집을 종합병원 근처로알아본다는데... 그렇게 병원비가 커져서은퇴자금으로감당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도 엄습한다. 이 어두운 시나리오는 늙으면 모두 병든다라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그런데 늙으면 당연히 아픈걸까?
아무래도 나이가 들면 전반적인 신체의 기능은 젊은 시절보다 떨어지고 질병에 취약해진다. 실제 주위에 병으로 고생하는 노인들도 있다. 하지만 이것이 모든 노인의 보편적 모습이라 하기에는 정반대의 예도 충분히 많다.
TV에서 본 엄청 건강하고 활기있는 100세인간을 예로 들면 분명 희귀한 케이스라며 인정하지 않을거 같으니 내가 직접관찰한 사례를 들어본다. 바로 70 중반을 넘기신 우리 모친이다.
어머니는 고혈압, 당뇨같은 만성병이 없고 드시는 약은 그저 건강보조제뿐이다.(코엔자임Q10, 맥주효모, 클로렐라) 그렇게 타고났다고 보기기엔 외삼촌과 이모는 모두 고혈압, 당뇨에 심근경색, 뇌졸중 같은 중증 합병증으로 고생하셨다. 즉 물려받은 유전자가 좋진 않아서 40대에 과체중이 되고 고지혈증도 시작되었다.
하지만 언니 오빠의 만성병을 보며 관리하지않은 결과를 간접 체험하시고는 건강한 식생활과 신체활동을 실행하기 시작하셨다. 그렇게 가공식 줄이고 매일 운동하고 평생 다이어트(=과식안하기)로 관리한 결과로 20년 후 형제들이 마주한 운명을 피하신거다.
스스로 젊을때 보다 빨리 피곤해지고 기운도 예전만 못하다는 불평은 하셔도 아프거나 병원비로 고생않고 일상생활하는데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일이 없으시다.
참고로 난 엄마보다 더 유별나게 노년을 대비한다. 귀찮아도 자연식위주의 식사(=WFPB, MIND 혹은 저속노화식)를 챙겨먹고, 정크푸드가 고파도 주말까지 (눈물흘리며) 참고, 매일 (가기싫다는 몸을 억지로 끌고) 헬스장을 간다. 이런 별거아닌 작은 고행을 매일하는 것이 나의 노년 준비다. 그 결과, 엄마가 경험한 고지혈증이나 체중증가 없이 매년 건강검진에서 전과목 A다. (치과는 B?)
건강자랑이 아니라 현재의 생활과 매년 건강검진결과를 볼때 갑자기 노년에 만성병이 쏟아지기 참 어렵다는 얘기였다.공부 열심히하고 시험망칠 걱정은 쓸데없다면서 왜 건강하게 살아도 늙으면 암이나 중병은 피할 수 없다는 걱정은 당연한가.
신체기능이 젊은시절보다 감소되는 것은 병이 아닌 정상적인 노화다. 하지만 만성병과 합병증은 정상적인 노화가 아니라 매일하는 행동습관이 오래 누적되어 생긴 질병이다. 낙상이나 사고처럼 가끔 생기는 이벤트는 내가 조절할 수 없지만 노년의 내 모습은 일상에서 내 의지로 선택하여 조절할 수 있다.
노인은 기생충?
미래에 인구의 절반이 63세 이상이 될거라는 보고서를 보면 마치 노인이 마구 증식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아이들이 태어나지 않아 노인의 비중(%)이 높아지는것이지 없던 인간이 노인으로 공급되는게 아니다. 출산률저하와 초고령화는 다른 이슈이다. 출생률이 낮은데 노인까지 사라지면 나라의 소멸은 더 가속화될 뿐이다. 결국 있던 인간이 안죽어서 노인이 되고 아이들이 적어 노인 비율이 높아지는것 뿐인데 사회는 왜 이리 경기를 일으키는가.
그건 바로 노인은 생존에 다른이가 도와주어야할인간이라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노인1명을 부양하는데 필요한 젊은 인구를 계산해 보여주는 것은 노인들이 사회의 짐이 된다는 것을 강조한다.
즉 누군가를 돌봐줄 여유가 없는 현대 사회가 노인을 타인에 전적으로 의지해야하는 부류로 규정하고 손절하는 것이 바로 노인증가에 대한 공포형성이라고 본다.
분명 과거의 노인들은 65세가 되면 피부는 주름지고 허리는 구부정하여 말그대로 꼬부랑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어 자식들이 돌봐주어야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젠 상황이 달라졌다. 일단 노령의 몸이 예전만큼 그렇게 쇠약하지 않다.
같은 60대, 다른 신체상태
양자경은 62년생, 현재 62살이고 통계에서 노인이라 정한 65세까지는 고작 3년을 남겨두고 있다. 그녀가 3년후 누군가에게 돌봄이 필요한걸로 보이나?
스타배우라 더 철저하게 자기 몸을 관리해서 그렇겠지만 이시대의 다른 일반 고령자들 신체도 전반적으로 예전보다 향상되었다. 이제는 70세에도 허리가 반듯하고 독립적인 생활이 가능하고 필요하면 근로활동을 지속 하기도 한다. 하지만 노인의 공식나이는 여전히 65세여서 신체적으로 그리 노쇠하지 않은데 사회적 약자 취급을 받아 기분나쁜 '노인'도 생겼다.
이런 신체변화를 반영하여 노인에 대한 기준을 65세에서 70세 이상으로 옮려야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물론 공식 나이를 바꾸는 것도 의미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노인이 무조건 사회적 약자라는 우리의 인식이 변화는 것이다.
노인 스스로가 기대하는 사회 속 위치 역시 이런 변화를 따라가야 한다. 과거엔 일상에서 고령자의 지혜가 필요한 경우가 많았고 일상에서 집안살림이나 손자양육에 도움을 주는등 다른 가족원에게 기여한는 구성원으로 자발적인 공경과 돌봄을 받았다. (물론 노인수보다 젊은 자녀의 수가 많기도 했지만)
하지만 지금은 가족규모가 핵가족 단위로 쪼개졌다. 일상에서 고령자가 다른가족의 생활에 직접적 도움을 주거나 일상생활에서 고령자의 지혜에 의존하는 부분이 사라졌다. 새로운 가족내 역학변화를 무시하고 예전노인이 받았던 돌봄을 똑같이 요구하는 것은 부적절할 뿐더러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난 나이 들었다고 누군가가 수발을 들어주고 대접해주길 바라지 않는다. 스스로의 청결을 유지하고 식사를 준비하는 생존기본활동은 직접하는게 주체성의 유지라 생각한다.
옛날 남성 어르신 중에는 이런 생존활동이 단순집안일이라 직접하면 체면이 깍이고 나이답지 못하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뭐 요즘에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남에게 시킬 수도 있다. 다만 어떤 형태이든 그 수고만큼의 비용을 지불해야함을 잊으면 안된다. 가사일의 높은 고용단가를 생각하면 타인에게 집안일을 시키는 행위는 경제적인 여력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한 럭셔리한 생활방식이다. (그 타인에 가족도 포함이다.)
나 역시 기력이 많이 떨어지거나 죽기전에 청소나 식사준비에 가사 도우미를 쓸것 까지 포함해 은퇴자금을 설계하고 있다.
새로운 노년인간은 더이상 자녀에게 돌봄을 바라는 비련의 노인역할을 버리고 마지막까지 최대한 독립적인 삶을 유지하며 연령으로 얻은 지혜를 가족과 사회에 나눌 수 있는 성숙한 인간이 될것이다.
배우자와 자식은 '고독사대비보험'?
이제 1인가구와 고령화도 분리시켜서 보자. 가구형태가 1인이든 다인이든 인간은 결국 늙는다. 그런데 지금의 독거노인 괴담은 하류노인과 고독사의 원인을 비혼으로 배우자와 자식이 없어서라고 지목한다.그럼 반대로 결혼하고자식을 낳는 이유가 독거노인에 대비하기 위함인가?
내가 늙어 병들고 일상생활이 힘들어지면 배우자와 자식 덕이 보고 싶겠지만 그전에 배우자와 자식에게 그럴 의향이 있는지 먼저 물어봐야 하는게 아닌지. 혹시나 배우자와 자식의 심성이 착해 해줄 수도 있겠지만 당연하게 요구하거나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너무 이기적이다. 돌봄, 간병으로 인한 육체적 정신적 소모를 생각하면 운신하지 못하는 노인을 요양원에 보내는 그 가족을 마냥 비정하다고 비난할 수도 없다.
결혼해도 이른 나이에 움직이지 못하고 인지기능이 떨어지는 노인이 되면 가족에게 짐이 되는 하류노인이 될 수 밖에 없다. 하류노인과 고독사의 근본적인 솔루션은 결혼을 하고 자식을 갖추는 것이 아니라 평소 생활을 잘 관리하여 건강한 노화과정을 밟는 것이다.그런점에서 요즘 MZ세대들이 저속노화의 식생활과 운동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반가운 소식이다. 20대의 나이부터 노화속도를 줄이면 결국 달력 나이가 많아도 독립적으로 사는 기간이 길어질 것이다. 그런 노인이라면 비혼이라도 당당하고, 결혼해서 자식이 있다면 행복감은 더 커지지 않겠는가.
어떤 가족 형태를 가지든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는 노인이 되어야 한다. 결혼 유무와 상관없이 모든 인간은 건강하게 나이들어야하고 죽음에 가까워지는 날까지 삶의 주도권을 유지하는게 우리의미션이다.
마무리 말
챗GPT에 70세중반의 혼자사는 두 노인을 그려달라고 했다. 우선 노쇠로 스스로 거동하기 어렵고 집안일을 하기 어려워 누군가에게 의존하는 노인을 부탁했고 두번째는 신체적으로 자율적인 생활이 가능하고 경제적으로 독립적인 노인을 그려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아래처럼 그려주었다.
좌측 못마땅한 노인, 우측 기분좋은 노인
내가 제공한 키워드에 배경의 밝기나 인물의 표정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그런데 재밌게도 AI가 그려낸 두 그림은 분위기 부터 큰차이를 보였다. 왼쪽은 거동이 어렵고 누군가에게 의존한다는 설명에 우중충한 배경과 엄청난 주름을 가진 무표정한 노인으로 그렸다. 오른쪽은 독립적으로 생활한다고 했더니 화사한 집안톤에 활짝웃는 얼굴을 매치시켰다.
비록 치아는 라미네이트에 볼에는 필러, 눈썹은 반영구 하신듯한 양상이긴하지만....
어쨌든 높은 달력 나이에 개의치 않고 언제든 활짝 웃을 수 있는 노인이 되는게 나의 작은 바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