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H Nov 18. 2024

유전자로 보는 건강 운명

내가 치매에 걸릴 상인가

 흑백요리사는 네임드냐 아니냐로 요리사의 계급을 나누고 서로 대진시켜 최후 1인까지 대진시키는 리얼리티프로그램이다. 나도 재미있게 보았지만 이제 오락프로에도 즐길정도로 우리가 계급간 경쟁에 익숙해졌나 싶어 씁쓸하다.

보통 사회적 계급을 결정하는데는 부모에게 받은 수저가 큰 역할을 한다고 본다. 자주 공정성의 시비가 붙는  금 은 동... 흙 그 수저말이다. 그런데 수저만큼 강력하고 불공정의 잠재력을 가진 계급결정요소가 있다. 그건 바로 유전자다. 모든 인간은 양 부모로 부터 한쌍씩  받아 조합한 염색체 도면(blue print)을 물려받고 그걸 바탕으로 신체가 형성되어 태어난다. 신체능력과 사고능력이 여기서 나온다면 유전자도면의 영향력은 어마어마한것이다.  

 

수정은 안되고 오로지 주는대로 받아야 하는 불공정한 유전자를 일상에서 자주 거론하지 않는것은 눈에 보이지 않고 작동 원리나 결과가 모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끔 유전자를 언급될 경우는 인과관계가 너무 명확할때뿐이다.  예를 들면 누군가  중병에 걸렸는데 알고보니 집안 내력인 유전병일때처럼 아무리 애써도 피하지 못하는 유전자에 대한 두려움 원망 정도는 표현한다.   


 그런데 이제 그 미지의 유전자를 들여다 보고 내 몸의 취약한 점과 앞으로의 생길지 모르는 건강문제를 알려주겠다는 이들이 나타났다.

 예전에는 유전병이 염려될때만 하던 유전자 검사는 이제 내 건강의 비밀상자를 열어주는 열쇠가 되겠다는 어필을 하며 우리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다.   



유전자에 쓰인 건강운명  

 어느날 나도 내 유전자가 궁금해졌다.

그래서 건강검진에서 유전자 검사를 추가하기로 했는데 홍보문구가 이랬다.


유전자를  분석하여 최적의 건강관리  솔루션을 제공하는 질병예측검사


유전자를 분석해 질병을 '예측' 하는 검사라고 하니 웬지 검사를 하면 앞으로의 내컨디션과 걸리게 될 병에 대해 대비책을 귀뜸해줄 것같다.


유전자의 의도는 질병에서만 중요한게 아니다. 만약 유전자가 80키로의 몸으로 날 설계했는데 50키로를 추구한다면 이길 수 없는 판에 베팅하는 꼴일것이다.  내 몸을 사용할때는 신이 유전자에 동봉한 매뉴얼을 따르는게 오래쓰는 길인데 유전자 검사는 그걸 알려줄지도 모른다.




   

 피뽑고 결과나오는데 한달이나 걸렸다. 한참을 기다렸는데 잊혀질만 할쯤 택배가 도착해다.  두툼한 서류가 담긴 봉투에는 고가의 가전에 딸려오는 카탈로그같이 빳빳한 종이에 고급지게 출력된 결과지가 담겨있었다.  평소 건강에 엄청난 자신감이 있지만 유전자검사지 앞에서는  흡사 열심히 다이어트 한 사람이 체중계에 올라가듯 겸손해졌다.  


조마조마한 맘으로 조심스럽게 비밀의 상자를 열었다.  내게 닥칠 질병은 과연 무엇!

유전자가 주의하라는 질환들

 붉은색으로 강조한 유의 질환은 다름아닌 간암, 대장암, 다발성 골수종, 고혈압 ... 알츠하이머 였다

이럴수가 미래의 내가  걱정해야할 병이 이렇게 한무더기라니...  호기심에 해본 유전자 검사지만 결과지는 뒷목을 잡게 만들었다.

고혈압?  비록 평생 혈압 90/40을 넘기지 않았는데 결과지를 보자마자 140/90으로 솟구친다. 고혈압운명부터 실현되는 것인가.


간암, 대장암, 다발성 골수종... 다들 중대질환이지만 우선 그럴수 있다고 넘길 수 있다. 

다른건 다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알츠하이머, 치매는 도저히 못참겠다.


84살까지 어떻게든  내발로 뛰어다니며 살겠다는 나에게 유전자가 치매를 던저 주다니.  

결과를 알기전에는 마치 운명에 순응해 살것처럼 굴었지만 막상 나쁜 패를 뽑고 나니 맘이 싹 바뀌었다.

운명에 맞서기로 말이다.  

 

대체 뭘 보고 치매래? 

물론 결과지가 알츠하이머 반드시 걸린다고 써놓지는 않았다. 하지만 질병예측 검사라고 홍보해놓고 검사결과에 알츠하이머를 주의하라면 자연스레 '치매에 걸린다'로 해석할 수 밖에.   

분명 난 결과를 감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고 일단 흥분을 가라앉힐겸 내 치매운명의 실체가 뭔지 파해쳐보기로 한다.   

결과지를 차근차근 보니 내 나이때 치매의 평균 발병률이 0.045%인데 담배를 안피우면 내 발병률이 0.144%고 이걸로 남들보다 3.2배의 치매위험주의하라는 것이었다.  

치매 위험이 3배, 10배??

여기서 왜 내가  0.144%에 해당하는지가 궁금해 진다.

 하지만 "xx유전자'가 확인되어 넌 위험해"와 같은 딱 떨어지는 설명은 찾을 수 없었다. 대신  2700명 치매 환자와 14700명의 일반인을 대상으로한 연구논문이 근거자료였다.  


복잡한 연구논문을 근거로 유체이탈화법을 하는 결과지

설명이 구구절절 복잡하지만 한줄로 요약하면 rs157582유전자 돌연변이가 여부가 교차비(OR) 0.37 정도로 연관이 있다는 것. 나의 치매 운명은 이걸로 결정된 것이다.  


질병예측 vs 일반상식

제시한 연구는 특정 유전자를 가진 사람에서 치매가 얼마나 발생했는지를 관찰한 결과가 아니다.  그저 치매가 있는 사람 2천명, 그리고 만4천명의 치매가 없는 사람의 피를 뽑아서 어떤 유전자가 있고 없고만 조사했다.

교차비가 0.36이라는 것은 이 유전자 변이가 있는 것이 없는 것보다 치매발생이 64%(1-0.36) 낮아진 경향(확률)을 말한다. 하지만 이런 경향은 그 유전자와 치매의 연관성을  확률적으로 말하는 것이지 그 유전자를 가진 사람이 치매에 36% 덜 걸린다라고 절대적으로 해석할 수는 없다.  


해당 연구에서도 치매를  예방 유전자가 있어도 치매걸리는 사람이 있었고 그 유전자 도움없이 치매 안걸리는 사람도 모두 존재했다.  이런 예외가 왜 생기는지도 모르면서 유전자가 없는 나한테 넌 큰일이다 하며 호들갑스럽게 경고하다니.  검사에서 인용한 유전자가 치매발생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한번의 통계 숫자만가지고  일반인보다 몇배 차이가 난다고 말하는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재미난게 하나 더 있었다. 유전자때문에 내 치매 위험은 3배올라갔는데 내가 만약 담배를 피울때 치매 위험도 3배 올라 같다고 했다. 그런데 담배피우면 나 뿐 아니라 모두가  치매위험이 올라간다. 거기에 폐암, 방광암, 췌장암, 뇌졸중 등 여러 질환 위험도 동시에 올라간다.  길에서 담배를 피우는 분에게 다가가 담배때문에 당신이 치매걸릴 가능성이 세배나 올랐다고 넌지시 알려주면 어떨까. 그러지 않는편이 좋다.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을 말하는 것은 정보가 아니라 모욕이기 때문이다. (바보에게 바보라고 할때도 마찬가지)


적어도 담배피우는 사람에겐 금연이라는 완벽한 해결책이라도 있다. 그런데 없다고 꼭 치매 걸리지도 않고 있어도 치매 걸릴 수 도 있는 이 유전자를 두고  대책없이 내 치매 위험을 배수로 알려 주면 어쩌자는 걸까. 어짜피 건강하게 먹고 운동하고 규칙적인 생활하고 담배도 안피는 나인데 말이다.     

이런 정보를 들으려고 내 피와 돈을  들였단 말인가.


그럼 나는 살찔 상인가

말나온 김에 나의 유전 정보를 하나 더  공개하겠다.

바로  비만 성향

과연 난 살찔 운명인가 아님 마를 운명인가


뚜겅을 열어보니

...

알고보니 난 쉽게 살찔 운명이었던것

나는 살이 쉽게 살찌는 체질, 요요 잘되는 성향, 에너지 소모가 잘안되고 간식충동 성향있다고 유전자는 말하고 있었다.   


왜 슬픈예감은 틀린적이없나.  사실 예전부터 짐작은 하고 있었다.

정크푸드, 과자 한봉을 열면 끝날때 까지 멈출 수 가 없었고 예전에 극단적 다이어트하고 나서 한 2년 동안 가시지 않는 식욕으로 고생한 적도 있다.  그래서 결과가 놀랍지 않다.


이미 수십년간 알고 있었던 내 은밀한 특성을 공개적으로 확정시킨 그 근거가 무었인가 궁금하다.


설명에는 요요 유전자가 ADIPOQ rs17300539이며 나는  요요위험이 높은 GG타입이라고 한다.

여기까지는 수긍했는데 그 다음이 압권이었다.

난 요요를 부르는 몸

 나처럼 불운한 GG타입은 전체인구에서 무려 94.67%나 되었다. 헐, 100명중 95명은 오랜기간 다이어트로 살빼면 폭식으로 체중을 원상회복시키는 유전자 타입이었던 것. 이쯤되면 이 요요타입 유전자가 인간이 기본 유전타입이고 5%의 보통 요요타입(AA)이 오히려 돌연변이 소수자들이다. 심지어 요요가 적은 유전자는 존재하지 않으니 모든 인간은 억지로 굶으면 요요를 겪는다고 해야한다.


그 다음 간식충동성향을 보자

난 식탐도 있고 간식도 엄청 좋아한다. 그런 내가 높은 간식 충동성향 유전자타입(GG)을 가진게 그리 놀랄일은 아니다. 역시나 이런 성향도 나뿐만이 아니었다.    


인구집단의  75%, 4명중 3명이 나와같은 유전형을 가지고 있었다.

결국 호모사피엔스는 유전적으로 억지로 굶으면 더 먹는 습성을 가지고 달달하고 짭짤한 간식은 눈앞에 펼쳐놓으면 억제를 못하는 성향을 보인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보편적인 인간습성을 마치 엄청난 유전정보인것처럼 포장하고 꾸준한 운동 및 관리라는 상식을 엄청난 해결책처럼 알려주고 있다.

 

이런 일반적 건강정보를 알려주는데  굳이 최신의 DNA염기분석까지 해야했을까?





왜 정교한 DNA기술로 사주풀이를 하고 있나

내가 유전자의 잠재력을 부정하거나 현대의 DNA염기 분석기술을 평가절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지금의 기술은 DNA의 ATGC 염기서열을 알아내는 수준이지 DNA로 이루어진 유전자가 서로 복잡하게 상호작용해 우리의 의사결정, 건강, 질병에 영향을 주는 과정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바가 없다.

 

특정 유전자 하나가 돌연변이가 원인인 병은 전체 질환에서 차지하는 빈도가 아주 드물고 희귀병이 많다. 일상에 자주 노출되는 과체중, 고혈압, 당뇨, 심근경색, 뇌경색, 치매.. 이런 질환들은 특정 유전자 하나가 잘못이라기 보다 여러가지 유전자의 복합플레이 결과다.  


 DNA  염기서열에서 질병까지 이어지는 길고긴 과정에는 수십 수백가지 유전자의 서로 상호작용에 더불어 후천적인 영향도 받는다. 그러니 유전자를 전체지놈수준으로 모든염기서열을 분석해도 이 유전자가 만성병까지 이르는  관련성, 기여도, 인과관계는 설명할 수 없다.  


이렇게 아는건 정말 없는데 질병을 예측한다고 호언하니 결국 DNA로 사주풀이를 하게 되었다.

'AA, GG타입을 가졌으니 살이 찔수 있고, 치매를 조심해야하고....'


예전에 사주볼때도 비슷한 표현을 많이 들었었다.  '금의 기운을 가졌으니 이걸하면 안되고 배우자는 무슨기운을 가져야하고 어디에서 살아야하고...' 이런 사주는 생년월일시를 입력하면 운명 결과가 튀어나온다.  물론 사주는 결과가 어떻게 나오는지 굳이 설명을 바라지도, 해주지도 않는 결정론적 세계관이다.  사주는 옳고 그름이 중요하다기보다는 결과를 바탕으로 위험에 조심하고 살피용도로도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럼 DNA검사도 알고보면 미리미리 경계하라는 의미로 그랬던 걸까? 치매, 대장암 미리 대비해서 나쁠건 없다는 의미였다면 DNA분석으로 하는 질병예측검사라고 스스로를 부르기엔 많이 부끄러울거 같다.  


난 사실 운명을 믿지 않는다.  또한 유전자가 내 삶을 미리 정해놓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질병이나 체형이 유전적 영향을 받긴 하지만 그보다는 내 의사결정(환경, 식생활, 움직임, 생활패턴)에  더욱 지대한 영향을 받는다.  요요유전자가 암만 강력하다해도 내가 굳이 무리하게 굶지 않으면 요요 유전자가 발현할 여지가 없고, 건강한 음식으로 배를 채워놓으면 간식충동유전자를 깨울 필요가 없어진다.

이렇게 후천적인 영향을 발휘하면 매우 열등한 유전자를 가지고도 건강한 신체를 유지할 수 있고 역으로 우월한 유전자가 힘을 쓸 수 없게 위험한 환경에 지속적으로 머물면 중대질환이 생길 수도 있는 것이다.


결국 난 유전자 검사로 인생을 바꿀 엄청난 정보를 얻는데는 실패했다. 다만 지금의 분석기술과 예측의 수준이 어디까지 왔는지 대략 확인했다는데 의의를 둔다. 그리고 혹시 건강과 질병의 빅픽쳐를 얻으려 유전자 검사를 생각하는 분에게 현명한 선택을 도와주정보가 된다면 뭐  값어치는 충분히 한거 아닌가 싶다.





 



                    



작가의 이전글 혼자 늙으면 얼마나 비참한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