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애증의 시작
수십년 몸을 쓰고 나서야 내가 알게된 것은 이 육신이 그다지 특출하지도 딱히 의지력이 뛰어나지도 않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커피, 과자, 술처럼 도처에 널린 유혹들에 바로바로 걸려드는 호구였다. 그래도 담배나 마약, 마리화나는 안하는게 어디냐 싶지만 그건 내 도덕심이나 강한의지력 덕분이 아니라 사회적인 잣대나 법적 재제가 무서워서다. 이런 최약체 몸뚱이가 끊임없이 낚이는 합법적 마약에서 벗어나려고 갖가지 방법을 시도했다. (내몸 대상 1인 연구) 그 결과 중독에서 벗어나는 최고의 방법은 위험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는 것을 깨달았다. 눈앞에 두고 조금씩 즐긴다는 것은 의지력을 야곰야곰 파먹어 결국엔 이성을 잃을 것을 각오한다는 의미다. 애초에 의지력이 닳지않는 청정환경을 조성하는 것은 중독치료의 기본이다.
그래서 "지금 나는 술, 커피, 과자를 싹 치워버리고 더이상 물질에 끌려다니지 않게 되었다"... 라는 해피엔딩으로 끝났으면 좋겠지만...(애초에 그렇게 쉬웠으면 중독이 안됬겠지) 결과는 초라하다.
술은 성공했지만 커피는 여러번의 만남과 이별 끝에 결국 홍차라는 또 다른 카페인을 밀어넣고서야 빠져나왔다. (결국 카페인 중독자)
그렇다면 ...과자는?
참고로 여기에서 과자란 자연재료(곡물, 과일)을 분쇄하고 설탕과 기름을 섞어 얼리고, 굽고 튀긴 모든 음식을 말한다. 칩, 스낵, 쿠키, 디저트빵, 머핀 시리얼 그리고 아이스크림까지 모두 포함하며 다른말로 간식 혹은 디저트라고도 부른다.
훗, 요즘 포스트에 연달아 간식얘기만 하고 있는데 숨기기엔 늦었다. 과자병, aka 과자중독이 다시 돌아와서 내 머릿속은 온통 지금 먹는과자와 다음에 먹을 과자로 꽉 차있다.
우선 이전 글을 읽어본 사람은 왜인지는 모르더라도 일단 내가 완전 채식을 한다는건 알 것이다. 혹시나 비정상적인 과자에 대한 집착이 완전채식 때문이라 여기진 않으면 좋겠다. 난 채식하기 훨씬 전 어린이 때부터 과자를 좋아했다. 다만 어린이의 몸은 과자좀 많이 먹는다고 크게 이상이 오지 않았고 언제든지 먹을 수 있으니 지금 안먹으면 안된다는 초조함도 없었다. 그런데 이제 과자를 많이 먹으면 몸이 눈앞에서 바로 나빠지는게 보여 원하는 만큼 먹을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조절한답시고 양을 정해 먹거나, 날을 잡아서 먹으니 오히려 먹고싶다는 갈망이 더욱 미쳐 날뛰는 것이다.
이걸 해결하고자 주변에 과자류를 모조리 치우고 생각에서도 지워버린 인위적인 환경은 분명 단기간엔 성공했다. 게다가 대형과자회사는 비건과자를 만들어주지 않아 과자끊는데 매우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사고는 예상치 못하게 찾아왔다. 피곤하다며 칭얼대는 몸에 짜릿한 도파민을 선물한다며 날잡아서 채식 디저트샵을 털어먹었던게 끝내 사달을 냈다. (구하기 어려운 채식과자를 어떻해든 구해오는 인간의 집착이란...) 과자맛을 아는 몸이 이정도로 광적인 집착을 보일 줄이야. 여튼 그날부터 다시 과자 중독 Day 1이 되었다.
매일 과자 좀 먹으며 살면 되지 그게 뭐가 문제야 라고 생각할수도 있다. 하지만 내 병증을 그렇게 가볍지 않다. 난 과자를 열면 바닥을 볼때 까지 멈추지 못하고 봉인이 열리면 이과자 저과자 모두 먹어야하는 중증레벨이라 매일 적당히 먹는 것은 상상할 수가 없다. 과자값을 대려면 근로와 사회생활을 해야해서 어쩔 수 없이 주말에만 먹고 있다.
그러니 갈망이 더 증폭해서 평일, 주말 모두 머릿속이 온통 간식으로 꽉차서 다른 생각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결코 건강하지 않은 이 아슬아슬한 생활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겠지만 커피의 경험을 참고로 할때 이번 광기도 한 일년은 가지 않을까 싶다.
과자광증이 재발한 초기에는 뭘 먹어도 (밀가루반죽을 튀겨 설탕만 발라도) 다 맛났다. 그리고 내가 먹을 수 있는 간식을 만들어준 모두에게 감사했다. 파티쉐가 비건이던 아니던 내가 그들의 비건옵션만 먹으면 상관없다며 모두에게 관대했다. 그리다 이제 한 3개월이 흘렀고 ... 먹을 만큼 먹으니 슬슬 까탈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맛이 좀 단순하면 아니 이건 나도 만들 수 있지 않나하고 잘난척하고, 이정도에 이가격이면 너무 비싼데 하며 투덜거리기도 했다. 물론 직접 만들어본 결과 대부분의 가게가 나보다 더 잘만들었고.. 내가 재료를 사면 사먹는 것보다 돈이 더나갔다.
가급적 채식인지 아닌지로 불평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이제... 배가 부른지... 불평이 생겼다. 특히 잡식 디저트샵이 내 공격대상이었다. 비건 옵션을 만들어주는 것만으로도 고맙다고 할때는 언제고 하나둘씩 늘어나는 비채식(넌비건,NV) 메뉴를 보며.. 결국 일반 디저트 샵인건가 하며 송곳니를 드러내는가 하면, 비건 넌비건 표시가 없을때는 기본 수칙도 안지킨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다행히 분통은 혼자말로...)
완전채식하기로 한것은 내 결정이고 불편해지는 상황은 누가 일부러 만든것이 아니다. 게다가 대부분 잡식디저트 샵은 소수의 비건인이 아닌 다수의 잡식인이 주요 고객이라 이들이 나에게 빚진 것도 없다. 가려서 먹는 책임이 나에게 있고 정보가 없으면 내가 못먹는 거라 바로 물러서면 된다.
이렇게 다시 마음의 안정은 찾았는데 가만히 보니 이 개인 디저트 샵의 세계가 재미나게 돌아가는게 보인다. 이런 독특한 상황을 보니 나의 똥간섭쟁이 꼰대력이 마구 발동하게 되었다.
어떻게 비건디저트가 인기를 얻게 되는지, 왜 일반 파티쉐가 비건 디저트 샵으로 출발해 넌비건 옵션으로 확장하게 되는지, 왜 다이어트식단에 비건디저트가 포함되는지 알아보자.
다음 이야기 - 과자와 죄책감
직접먹어본 과자가게들을 소개해본다. 3월 부터 거의 매주 주문을 했더니 생각보다 엄청 많다. 일단 비건디저트만 파는 가게를 먼저 소개한다. (비건디저트도 파는 과자점은 다음에)
참고로 각각의 가계는 스스로를 비건빵집, 건강베이커리 혹은 디저트샵등 다양하게 부르지만 여기서는 편의상 모두 과자점이라 부르겠다.
비빵이는 온라인판매만 하고 주력종목은 스콘키(스콘+쿠키), 납짝스콘키이다.
설명에 저당이 강조되어 있어 맛이 없으면 어쩌지 했는데 한입먹고나니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일단 납짝라인은 바삭하고, 뚠뚠한 라인은 포슬해서 다양한 식감을 만족시킨다. 또한 달다는 개념이 없는 달달ㅊ돌이 임에도 여기 저당라인은 적당히 달았다. 저당이라고 대체당을 쓰지 않아 더 내 취향.
삐토역시 온라인샵으로 주력종목은 비스코티와 볼쿠키(콩볼) 이다.
비스코티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다녔는데 여기 삐스코티를 먹고나니 그냥 맛을 몰라서 한 소리구나 하고 깨달았다.
볼쿠키중에서 현미퍼핑볼은 여기 시그니쳐인데 다른 과자집에서 식감과 맛이 유사한 대체품을 본적은 없다. 독보적인 맛이다.
크림푸딩과 쿠키, 크래커 맛집으로 온라인 오프라인 채널을 다가지고 있다. 인스타에 올라온 크림푸딩사진에 낚여서 토요일 방문하여 구매했다.
바닐라초코크림푸딩은 얼려먹으니 입안에 월드콘이 소환되었고 뽀또 콩알쿠키는 말그대로 그냥 뽀또를 씹는 맛. (둘 다 안먹은지 8년도 더 되어 진짜 그맛인지는 가물가물하다)
사장님은 완전채식을 하지는 않지만 빵어니스타는 비건라인만 나오는 과자점이다. 빵어니의 모회사는 '미니마이즈', '댄스댄스댄스' 등 다양한 디저트와 샌드위치 가게들을 거느리고 있어 거의 중견기업이라 할 수 있다.
빵어니스타의 라미쿠키니는 비건 쿠키에 대한 인식이 없던 시절 맛의 원형을 세워 대중화시킨 이 구역의 시조새이다. 온라인으로 라미쿠키를 주문해서 처음 먹었을땐 쿠키, 스콘 그리고 빵 트라이앵글의 중간 어디쯤의 새로운 디저트 종인가 생각했다. 그덕에 다이어트하는 친구들은 식사대용으로 (나는 과자로) 즐겨 먹는다.
최근 대왕납짝스콘이 출시되어 오프라인으로 방문구매해 먹어보았다. 요즘은 스콘과 쿠키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추세라 내입에는 달달하고 깔끔한 소프트 쿠키로 느껴졌다. 라미쿠키만큼 임팩트가 크지는 않았다.
친구와 망원에서 점심을 먹고나서 여기 온김에 꼭가야한다고 꼬셔서 처음 방문해 보았다.
여기는 케잌과 커피만 파는 곳이니 과자점이라 할수없는 케잌 전문샵이다.
친구는 배부르다고 했지만 내가 먹고 싶어서 조각케잌 2개를 시켜 거의 1.8개 정도 먹고 바로 위험한 가게임을 직감했다.
에스프레소피넛가또는 커피맛에서 피넛맛으로 이어지는 매력적인 크림과 바닥의 꾸덕한 브라우니 스타일의 시트가 인상적인 SEXY 케잌이었다. 황치즈갸또는 샐러드나 파스타소스를 연상시키는데 평소 먹기 어려운 황치즈맛을 느낄 수 있어 나는 '호'였다.
여기가 집에서 거의 한시간 거리인데 이런 케잌샵이 나같은 중독자의 집근처에 없다는 것이 오히려 다행이다. (강력한 유혹과는 가급적 거리를 두어야)
부산 놀러갈때 가보려다 실패했는데 신세계 강남 스위트파크에 팝업 덕분에 맛을 보게 되었다.
뭉구점이 크림푸딩으로 유명하다 해서 두개를 골랐는데 그중에서 피스타치오는 과자맛은 초코밖에 없는줄아는 초딩입맛을 으른입맛으로 업그레이드 시켜주는 요물이었다. 견과의 고소함과 라즈베리의 상큼함이 어우러저 내 최애 크림푸딩으로 등극
뭉구점의 볼쿠키는 파삭하기 보다는 단단히 뭉쳐진 식감으로 얼려먹을때 더 맛있다. 보통 쿠키에 없는 단호박맛, 삶은 땅콩맛 그리고 떡볶이 맛을 경험할 수 있다.
인스타 과자리뷰어 시녕님의 월간 콩볼에서 콜라보한 가치과자
여기 콩볼은 크게 호불호가 없을 것 같은 볼쿠키의 정석이라 생각한다.
토마토 바질, 코코넛, 바닐라르뱅, 호지피초 모두 나에게 합격점을 받았다. 그리고 비스코티도 콩볼만큼 흡족했는데 땅콩크럼블은 소보로 껍질을 단단하게 쿠키로 구운듯하고, 헤이코코커피는 내가 라떼를 오독오독씹어먹는 듯해서 매력적이다.
대구를 근거지로 둔 온라인 과자점이다. 네이버+스토어가 아니라 자체 온라인 몰이라 주문을 망설이다가 하도 후기가 좋길래 눈가모 질러버렸다.
치즈감자빵, 그리고 크림빵 모두 감동적이고, 파운드케잌도 정석적인 맛이었다.
온라인 오프라인 모두 접근이 가능한 비건과자점이다.
벼르고 벼르다가 근처 갈 일이 생기자 잽싸게 오프라인 샵에 방문했다. 용기내 할인과 후기 서비스를 같이 받아 더 기분좋아진 곳이다.
두두리두팡의 비전은 내가 평소에 생각하는 푸드피라미드와 철학과 공통점이 많아 가기전부터 애착이 생겼던 곳이다. 아몬드나 피스타치오, 캐슈 등 견과를 크림화해서 디저트를 만드는 것이 섭취 에너지나 환경적 측면에서 지속가능하기 어려우니 두유, 두부를 베이스로한 크림과 치즈를 만든다는 아이디어는 금방 납득이되고 응원한다.
다 맛있었지만 그중에 플레인 뚜눌레(까눌레)와 두라미스(티라미수떠먹케)가 맛과 개성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온라인 전문 과자점인데 성수동 팝업때 잽싸게 튀어갔다
파이지 위에 크럼블쿠키 올린 바 스타일인 크럼블이 주력 라인이지만 솜스틱이나 칙피크래커와 같은 바삭과자류 그리고 떠먹는 케잌도 있다.
답례품으로도 마케팅하는 곳이라 그런지 낱개 포장이 세련된게 눈에 띈다.
(종이포장과 플라스틱케이스가 과하게 여겨질 수도 있다)
맘모스 크럼블이 시그니처.
ps. 참고로 이 후기들은 내 입맛에 의한 평가이며 순위의 개념은 없습니다. 위의 모든 과자들은 만드느라 고생하신 사장님들께 감사드리며 먹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