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으로 가는 길

에세이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을 읽고

by 책벌레 잠잠이

한 달간 쓸 용돈을 받으면 동네 책방으로 쪼르르 달려가던 시절이 있었다. 답답하고 꽉 막혀 출구가 보이지 않던 고교 시절. 그 끝이 보이지 않는 긴 터널을 버티게 해 준 것은 다름 아닌 책이었다. 교과서가 아닌 그냥 책! 그리고 그 책들이 꽉꽉 들어차 있던 동네 책방은 내겐 오아시스였다.


사막을 걷는 낙타처럼 뜨거운 태양을 온몸으로 들이마시고 걷고 또 걷는 것처럼 반복되었던 일상을 견딜 수 있게 만들어 주었던 작은 책방. 꽂혀있는 책들만큼이나 바닥에 쌓여있는 책들이 많아 그 책들로 만들어진 오솔길을 조심조심 걸어서 들어서야 했던 곳. 그곳에서 나는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의 전혜린을 만났고, 알베르 까뮈의 <이방인>에 빠져들었으며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찾아들었다. 그의 연인 루 살로메를 함께 사랑했고 전혜린을 함께 좋아하던 친구와 ‘회색 노트’를 교환하자고 약속하던 날. 아직 <회색 노트>라는 책을 읽지 않는 나는 또 용돈 전부를 들고 그 작은 책방을 찾았다.


주인아저씨는 사다리를 타고 천장이 맞붙은 책장에서
그 책을 찾아서 꺼내 주었다.

풀풀 날리는 먼지를 정성껏 닦아주는 주인을 보며
나도 이런 작은 책방의 주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됐던 것 같다.


아무런 정보도 없이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이라는 책 제목만 보고 나는 단번에 이 책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인터넷 서점에서 검색을 하다가 실제로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이라는 이름의 헌책방이 있고 이 책의 저자가 그 헌책방의 주인이라는 걸 알게 되는 순간, 나는 전율하고 말았다. 잊고 있었던 그때의 내 꿈이 불현듯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그 시절이, 그때 읽었던 책들이, 그 책 속의 주인공과 저자 이야기를 나누던 책벌레 친구가, 또 책벌레였던 국어 선생님이 떠올랐다.


그때만 해도 지금처럼 사람들이 강박처럼 독서를 하지도 독서를 강요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여는 글에 초등학교 고학년이 1년에 780권을 읽고 다독상을 받은 아이를 보고 저자가 놀랐듯이 나도 요즘 아이들이 지나치게 많은 책을 읽고 있다고 생각한다. 독서가 모든 공부의 기본이 된다는 것을 여기저기서 입증한 뒤로 아이들은 너무 어린 시절부터 너무 많은 책을 읽고 있다. 아니 많은 책을 읽어 치우고 있다. 그리고 아이러닉 하게도 어른들은 점점 더 독서를 하지 않고 있다. 이제는 마치 책이 마음을 살찌우고 생각을 단단하게 하는 역할에서 머리의 지식을 넓히는 수단으로 전락한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가 들기도 한다.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감정적으로 느끼기 전에 눈으로 읽고 머리로 기억하고 마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좋은 책이 넘쳐나고 좋은 책을 많이 읽는 것은 분명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마음에 드는 책 한 권을 읽고 그 흥분이 가실까 봐 다른 책을 읽지 못하고 몇 날을 친구와 주변의 누군가에게 그 책 이야기를 하는 시간이 더 소중한 건 아닐까. 어렵게 모은 용돈으로 어렵게 산 이 책을 한꺼번에 다 읽게 될까 봐 두려워 아껴가며 읽었던 마음. 그래서 읽고 또 읽으면서도 닳을까 봐 차마 누군가에게 빌려주지 못하고 아껴두었던 책. 그러다가도 꼭 권해주고 싶은 친구에게는 선뜻 빌려주었던 기억들. 난 이렇게 켜켜이 쌓인 추억과 애틋함을 일 년에 책을 몇 백 권씩 읽어대는 것과 맞바꾸고 싶지 않다.


그래서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이 실재한다는 것이 더 반가웠다. 내가 헌책방을 처음 찾게 된 것도 고등학교 시절이었다. 당시 책벌레였던 국어 선생님은 소설가 지망생이기도 했다. 그는 시험에 지쳐있는 우리들에게 이런저런 책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었다.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책벌레였던 나는 선생님이 어려운 책 얘기를 해주면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아마 너희는 아직 읽지 않았겠지만 하는 선생님의 말투를 느끼며 난 이미 읽었어요, 하는 아주 건방진 태도로 듣기도 했다.


국어 선생님은 대학시절 점심값을 놓고 늘 고민했다고 한다.
문고판 책 한 권을 살 돈인데 밥을 먹을 것인가, 책을 살 것인가.

결국 언제나 책이 승자였고 선생님은 점심시간
문고판 책 한 권으로 배를 채웠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들으며 마음 어딘가 찌르르 울리는 느낌이 들었더랬다.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지기를 자처하는 저자도 말한다. 책이란 ‘밥’과 같다고. 사람이 밥을 먹지 않고 살 수 없듯 책을 읽지 않으면 그 영혼이 죽은 거나 마찬가지라고. 또 책은 소유하려고만 들기보다 ‘읽고 느끼고 마음에 담아 둘 때 좋은 책 한 권이 된다.’고. 당시 선생님이 가장 좋아한다는 법정 스님의 <무소유> 책 이야기를 듣자마자 난 무작정으로 청계천 헌책방으로 달려갔다. 새 책을 사기엔 용돈이 부족한 상황이었는데 당장 그 책을 읽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무소유>를 소유하려 했던 아이러니.


그러나 말로만 듣던 헌책방에 처음 갔던 나도 첫날은 그냥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저자가 땀 비질 거리며 세 시간을 걸어갔던 종로서적에 갔던 날, 그냥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그 후 그가 줄기차게 갔던 것처럼 나 역시 동네 서점에서 책을 사지 못하는 날에는 미친 듯이 청계천으로 달려가곤 했다. 우리 집에서 차를 타고도 1시간 반이 걸리던 먼 거리였다.


그가 당시의 어린 자신에게 말한다. “넌 정말 미친놈이다! 다른 게 아니라 책에 미쳤지!”

나도 이 책을 읽으며 어리지도 않고 아직 다 자라지도 않은 나를 만났다. 그 어중간한 나이의 아이에게 말한다.


“너도 정말 뜨거웠다.
그 시절을 그렇게 버티어 준 네가 기특하다.
네가 부르면 언제라도 달려와주던 법정 스님, 앙드레 지드, 루이제 린저,
이상, 그리고 작은 책방의 주인장들, 나와 함께 그 책을 나누었던 책벌레 친구,
배고픈 시간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는 지를 알려주신 책벌레 선생님,
모두 고맙습니다.”

가을이 올 때쯤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에 가봐야 할 것 같다. 그때의 우리 집에서 청계천만큼이나 먼 그 길을 찾아서라고 말이다. 구불구불한 계단을 내려가면 또 잊고 있었던 누군가가 내 어깨를 툭 칠 것 같은 그 이상한 나라로.


#2010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15회 ‘우수문학도서 독서감상문 대회’ 장려상 수상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감상문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리뷰


책 뒷 여백에 붙인 포스트잇 메모

책 뒷표지가 흐릿하게 찍혔다.

책 제목: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작가: 윤성근

출판사: 이매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