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거지는 나의 것

언니의 집안일

by 별별


마침내 서울에 돌아왔다.


2년 동안 한국을 떠나 있다가 작년 11월에 다시 돌아왔다. 귀국한 뒤로 한동안 고향에 내려가 있었다. 부모님께서 해 주시는 집밥을 먹으면서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았지만 눈 딱 감고 서울에 올라와야만 했다.


고향집에 있어 보니 너무 편했던 게 문제다. 밥도 엄마가 해 주시고 월세 걱정을 할 필요도 없다. 처음 한두 달은 한국에 돌아온 기쁨에 겨워 부모님께서 먹여주고 재워주시고 나도 잘 지냈지만, 석 달이 되자 이제부턴 과년한 딸이 직장도 없이 눌러사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닌 느낌이었다.


계속 고향집에 있으면 나태해질 것만 같고 또 부모님 눈치가 보일 것이다. 힘들더라도 눈치 보지 않고 지내려면 고향집을 떠나야 했다. 서울에서 내 할 일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집을 구하기에는 아직 일렀다. 서울에서 살기로 한다는 건 서울에 사는 동생 집에서 얹혀 산다는 뜻이다.


예전에 동생과 내가 함께 살았던 집. 다시 돌아온 집은 꽤나 낯설게 느껴졌다. 어느새 책상도 하나만 남아 동생의 공간으로 가득 차 있었고, 의자도 새로 꺼내야만 했다. 동생 옷으로 가득 찬 옷장에 내 옷을 하나 둘 끼워넣기 시작했다. 동생의 공간에 불청객이 된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동생은 직장인이다.


집 안은 내가 보기에 좀 지저분했다. 냉장고 안에는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들을 묵혀놓고 있었다. 신발장은 여름 신발과 겨울 신발이 마구 섞여 있었다. 가방들은 집안 여기저기에서 한두 개씩 튀어나왔다. 옷장, 책장은 말할 것도 없이 중구난방이었다.


어느새 연차가 쌓여 꽤 그럴듯한 직장인이 된 동생은 야근이 잦았다. 월말에 결산을 앞두고는 일주일 내내 야근을 했다. 밤늦게 들어오고 새벽같이 나가는 날이 대부분이었다. 집안 꼴이 어지럽다고 동생을 탓할 수가 없었다. 동생은 제 할 일을 해내느라 바쁘고 힘들다. 내가 여기 온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욕심부리지 않고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냉장고도 치우고 신발장도 정리하고 화장대, 옷장, 화장실 서랍장까지. 완전히 대청소까지는 아니지만 며칠 동안 이곳저곳 손을 보니까 집이 한결 나아진 것 같았다. 동생은 언니 오니까 집이 너무 깨끗하다며 좋아했다. 나는 동생이 좋아해서 또 좋아했다.


나는 백수, 동생은 직장인.
나는 집안일, 동생은 직장일.


우리 자매의 역할 분담은 자연스럽게 정해졌다. 나는 출근하지 않으니까 시간이 남아돌아서 집안일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보다, 지금 내가 할 일이 집안일이라고 생각했다.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에 집안일을 함으로써 그런 내 역할을 소중하게 생각했다. 집안일이란 청소와 빨래와 설거지, 기타 정리하는 것이다.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내가 집안일을 너무 좋아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사실 외국에서 혼자 살 때는 집안일을 매일 미루기만 했다. 특히 설거지를 일주일 넘게 미루는 건 예사다. 왜냐하면 내가 살던 집은 주방에 따뜻한 물이 나오지 않았고 싱크대는 어깨넓이를 조금 넘길 정도로 좁았기 때문이다. 항상 설거지하는 것이 나에겐 고역이었다. 미루던 게 습관이 되었는지 서울에 와서도 가장 하기 싫은 집안일은 그래서 설거지였다.


하지만 매일 먹고 마시는 집에서 피할 수 없는 일이다. 나는 아침마다 동생에게 입버릇처럼 말했다. "언니가 나중에 설거지할게. 어서 가." 동생이 아침밥을 먹고 바쁘게 출근을 한다. 동생이 출근하면 나의 집안일은 그때부터 시작이다.


청소를 하고 이래저래 정리를 하고, 그리고 설거지를 한다. 집안일을 다 하고 나면 어느새 두세 시간은 훌쩍 가버린다. 그리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씻고 나갈 준비를 한다.


마침내 집을 나설 때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벌써부터 내 할 일을 다 해버렸기 때문이다. 집 안을 둘러보면서 조금은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아 집 깨끗하다~!" 동생이 돌아와서 말하는 목소리가 벌써부터 들리는 듯했다.





가장 미루던 설거지를 다 했다는 건 집안일의 끝.
49651350_814815678855082_988518926594514460_n.jpg 29.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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