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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별 Aug 01. 2024

시어머니께서 말씀하셨지, 반찬은 사 먹으라고

우당탕탕 며느리 일기


햇반 드시는 시어머니


결혼하기 전, 무심코 남자친구(현 신랑) 본가에서 부모님이 햇반을 사 드신다고 했을 때 깜짝 놀랐다. 우리 집은 곧 죽어도 집에서 밥을 해 먹고 인스턴트 음식은 별로 사질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자취할 때도 햇반을 먹으면 괜한 죄책감이 들곤 했다. 그런데 어머님께선 밥을 거의 해 드시지도 않으신다니. 처음엔 어머님께서 음식을 못 하시는 줄 알았다.


알고 보니, 어머님은 36년 동안 시집살이 하시며 본인의 시부모님을 봉양하셨다고 한다. 거대한 명절 상을 차리는 것은 물론이고 매 끼니 지긋지긋하게 밥상을 차리셨다고 어머님께선 씁쓸한 영웅담처럼 말씀하셨다. 그래서 어머님은 시할머님이 돌아가신 뒤로 밥 하길 그만두셨다. 그렇다고 지금은 아예 요리를 하지 않는 건 아니시지만, 반찬은 대부분 사 드시고 밥은 햇반으로 드신다.


그 사실을 결혼하고 나중에서야 알았다. 처음에 세상 쿨해 보이던 어머님 모습 뒤로 그렇게 고생하던 시절이 있으셨단 사실이, 같은 여자로서 어머님께 괜히 안쓰러운 마음도 들었다.



반찬 사 먹어라


어머님은 요리라면 해볼 만큼 다 해보셨기에 미련 없는 분이셨다. 내게도 반찬을 사 먹으라고 신신당부하셨다. 해 먹는 노력과 정성을 들이기보다 차라리 간편하게 사 먹으면서 너희 둘 신혼을 즐기라고 하셨다. 하지만 역시 나는 말을 듣지 않는 며느리가 아닌가...  '요리가 얼마나 무서운지 몰라서' 요리를 해보고 싶다는, 우리 착하지만 요리는 못하는 며느리.


내가 말을 듣지 않자 어머님은 이제 반찬을 사다 주신다. 가끔씩 한 봉지 가득, 모둠전이니 밑반찬을 종류별로 사 오셔서 우리에게 주고 가신 적이 한 세 번은 되는 것 같다. 그 밖에도 시댁에 들를 때마다 사두신 반찬이나 고기 등을 싸 주셔서 가끔은 고맙다 못해 숨이 막힐 정도로 감사하다.


물론... 반찬 양이 많아서 먹어내느라 고생(?)하는 고충이 있기도 하다. 게다가 요즘 반찬들이 얼마나 비싼지 모둠전 한 팩에 1만 원이 넘고, 그저 그런 밑반찬이 기본 5천 원이라니... 반찬마다 붙은 가격표를 보면 내 손으로 사 먹을 엄두가 나질 않는다.



어머님께서 사서 보내주신 반찬들...!!


엄마가 아는 시어머니 마음


어머님께서는 이렇게 반찬을 자주 사 주실까. 당연하지만 우리끼리 해 먹는 게 부실할까 봐 걱정하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괜히 민망해져서 대놓고 말씀드린 적도 있다.


"어머님 저희가 잘 못 차려먹을까봐 걱정되시죠?"

"쟤 어릴 때도 많이 사다 맥였어. 포장배달 많이 했지. 반찬 없으면 사 먹어."


엄마께서 매번 음식을 해다가 택배로 보내주신 우리집이랑은 결이 다르지만, 다른 한 편으로 어머님도 신랑을 참 귀하게 키우셨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밥 잘 먹고 사는지 신경을 안 쓰신다고 해도 신경이 쓰이실 것이다.


그러고 보면 남편은 결혼하고 나서 살이 빠졌다. 물론 건강 상의 이유가 있기도 하다. 하지만 어머님의 아드님(남편)이 갈수록 말라가는 것이 많이 걱정되시는 것 같다. 나도 그래서 요리를 직접 하려고 노력하는 것인데, 요리실력이 나아지기까지 기다리시기엔 조금 답답하실 수도 있겠다.


아무튼 이런 얘기를 하면 엄마는 내가 부럽다고 하신다. 팔자 편한 며느리라고 말이다. 엄마도 시집살이를 하시며 주부로 오랜 기간 밥을 해오셨다. 집밥에 대한 부담감과 책임감을 평생 안고 살아오신 엄마는 그래서 어머님을 더욱더 이해하시는 것 같았다. 항상 나보고 시어머니 잘 만났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엄마 말씀을 들으니 한가득 반찬을 받아올 때마다 ㅡ반찬이 없어보여서 주시는 건가 ㅡ 이렇게 맘속으로 어머님의 마음을 곡해한 내가 부끄러워진다. 어머님께선 며느리 마음을 십분 헤아리고 반찬을 사 주시는데, 그런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며느리인가 나는.


"그냥 맛있게 잘 먹고 인사드려라."


그래 그래야겠다. 내가 할 일은 자알 먹는 것이다. 그리고 문자 드리기.


어머님께. 오늘도 보내주신 반찬 잘 먹었습니다. LA갈비는 소분해서 조금씩 꺼내먹고 있구요. 훈제연어는 샐러드를 더해서 곁들여주신 양념이랑 같이 먹으니 정말 맛있더라구요. 김치는 어디 껀가요? 신김치가 되어도 시원하고 맛있는 것 같아요. 남은 반찬도 부지런히 잘 먹을게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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