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 사진 @ 미국 시애틀공공도서관
남편은 도서관 관련된 일에 있어서는 신고 정신이 투철하다. 그런데 올바른 신고처를 모르는 건지 늘 나에게 신고를 한다. 내가 도서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알고 있지 못하므로 적당한 답을 해줄 수 없다는 걸 이제는 경험치로 알 때가 되었는데도 여전하다. 얼마 전에는 ‘이 책 분류 이상함’이라는 카톡을 보내왔다. 책은 미셸 자우너가 쓴 『H마트에서 울다』였다.
분류가 어떻게 이상한데?
이 책이 왜 음악 코너에 있어? 에세이 아니야?
저자가 인디 음악 보컬이라서 거기에 분류했나 보네.
여기서 끝내는 게 현명했다. 그러나 남편은
책 내용이 음악 관련된 게 아니잖아?
어쩌라고. 나더러 재정리라도 하라고?
아니 그게 아니라…
냅둬.
꼭 이렇게 핀잔을 듣고 나서야 말을 마친다.
이 책은 엄마를 상실한 딸이 엄마에 대한 추억과 그리움을 풀어내며 애도하는 에세이이다. 저자는 한국계 미국인으로 영미문학 또는 저자의 직업을 고려해 음악가의 에세이로 분류할 수 있다. 나도 이 책을 읽다 말아서 음악가로서의 이야기가 어느 정도 분량을 차지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도서관에서의 주제 분류와 관련하여 오래전부터 회자되는 대표적인 책은 『모비딕』이다. 이 책은 철학과 유머, 그리고 특히 고래에 대한 백과사전적 지식이 점철된 허먼 멜빌의 소설이다. 흰 고래 모비딕을 쫓는 에이허브 선장과 스타벅을 비롯한 다양한 인간 군상을 볼 수 있는 재미있는 소설. 도서관에서의 주제 분류와 관련하여 이 책을 거론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이 책을 소설이 아니라 고래학에 분류하는 게 사서들이라니까요. 호호호"라고. 내가 이 책 읽어봐서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데 이 책은 소설이기도 하지만 분명 고래학이라 부를만한 지점도 없지는 않다고 조심스레 말해본다.
도서관에서 책의 주제를 파악하기 위해 참고하는 것은 책의 제목과 목차이다. 그래도 파악이 안 되면 서문을 읽고 인용문헌과, 색인 등을 살피며 감을 잡아가는데, 그마저도 해결이 안 되면 온라인 서점 등지에 들어가 책 소개와 서평 등을 읽어보기도 한다. 똑딱 소리에 맞춰 움직이는 기계처럼 책을 정리하지 않으면 정리실에 책이 곧 홍수처럼 넘쳐날 것이므로 늘 시간에 쫓기는 우리는 주제를 파악하는 그 과정을 조금 더 단축시키기도 하는데 여기에서 오분류가 탄생한다. 하나의 주제를 가진 책이면 그래도 파악이 쉽다. 그러나 이런 주제는 어떨까?
담배와 폐암 – 담배에 해야 할까 폐암에 해야 할까?
기독교와 한국 문화 – 종교에? 아니면 한국 문화?
셰익스피어와 한국문학 – 영국 문학? 아님 한국 문학?
한국의 정치, 경제, 법률제도 분석 – 한국 사회? 아니면 각 주제에?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의 사회복지 현황 – 대체 어느 나라 사회복지에 하라는 거지?
답은 이렇다.
두 가지 주제에 인과관계가 있을 경우 영향받은 쪽에 분류해야 하므로 담배와 폐암은 폐암에 분류해야 한다. 두 개의 주제가 비교/대조 관계에 있는 경우 저자가 강조하거나 옹호하는 쪽에 분류해야 하므로 기독교와 한국문화는 한국문화에 분류하는 게 맞지만, 셰익스피어와 한국문화처럼, 특정 사상이나 업적이 다수에게 영향을 준 경우에는 개인의 업적에 분류하는 게 맞으므로 셰익스피어에 분류해야 한다. 3개의 주제가 동등하게 취급된 자료는 첫 번째 주제에 분류하므로 한국의 정치, 경제, 법률제도 분석은 한국의 정치에 분류하면 되고, 주제가 4가지 이상일 경우 이를 총괄하는 상위 주제에 분류하므로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의 사회복지 현황은 유럽의 사회복지 현황에 분류한다.
대략 이런 기준들을 고려하면서 주제를 파악하고 적당한 분류기호를 찾아서 넣다 보니, 그것도 아주 짧은 시간에, 『모비딕』 을 소설이 아니라 고래에 분류하기도 하고 『H마트에서 울다』 를 에세이가 아닌 음악가의 에세시에 분류하기도 하는 것이다. 후자의 경우 분류가 틀렸다고 볼 수는 없다. 개인의 생애, 행적, 언행 등이 기록된 전기서는 개인의 학문적 배경이나 주제에 분류하기에 이 책 역시 저자의 배경인 음악에 분류할 수 있다. 그러나 이용자의 유용성을 우선으로 생각한다면 음악가의 에세이보다는 미국문학(에세이)에 분류하는 게 더 맞을 것 같고, 이것 또한 조심스럽게 말해본다. 사서가 놓친 부분들은 이용자의 오류신고로 보완된다. 신고정신이 투철하고 올바른 신고처를 알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오분류뿐만 아니라 서지정보에서의 오탈자, 소장원문 등에서의 오류 등도 함께 잡아나가는 훌륭한 역할을 하고 있다.
얼마 뒤 다시 남편에게 카톡이 왔다.
이 책이 왜 여기에 있어?
무슨 책인데?
『펜화 기행』
그게 어디에 있었는데?
한국지리.
목차를 살펴보니 우리나라의 절, 궁, 고택, 정자, 서원 등 문화유산을 펜으로 그린 작품 모음집이다.
맞는데? 그럼 그게 어디 있어야 하는데?
미술. 회화? 펜드로잉?
아…. 분류의 세계란?! 애매하고 미묘하고 이상하고 요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