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뒤면 한국이다. 말로 하면 단정한 미래형인데, 마음속에서는 아직 현재형이다. 우간다에서의 8년은 그렇게 쉽게 과거가 되지 않는다. 숫자로 세면 분명 8년인데, 감각으로는 여러 생을 겹쳐 산 시간 같다. 도망치듯 떠나고 싶었던 날과 여기서 뿌리내려도 좋겠다고 생각했던 날이 서로의 어깨를 겹쳐 안고 있다. 아팠고, 외로웠고, 그러면서도 웃었고, 자주 충만했다. 그 모든 장면이 뒤섞여 지금의 나를 밀어 올린다.
처음 이곳으로 향할 때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멋진 여행이 될 거라고. 그때의 멋짐은 어쩌면 얄팍했다. 즐겁고, 이국적이고, 사진으로 남기기 좋은 순간들만을 상상했으니까. 만약 그 약속대로라면, 슬픔과 아픔은 여행의 바깥에 두었을 것이다. 실패하거나 무너진 날들은 ‘여행답지 않다’라며 빠르게 정리해 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삶은 늘 약속을 배반한다. 우간다는 나에게 멋짐의 정의를 다시 쓰게 했다. 울고 싶어 화장실에 숨어 있던 오후, 이유 없이 몸이 무겁고 마음이 닳아 있던 계절,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채로 저녁이 오는 날들까지도 결국은 이 여행의 일부였다. 멋지다는 말은 반짝임이 아니라 밀도라는 것을, 살아낸 시간의 두께라는 것을 이곳에서 배웠다.
이곳에서는 시간을 많이 누렸다. 시계가 느려서가 아니라, 나 자신에게 허락하는 속도가 느렸기 때문이다. 일이 있어도, 약속이 있어도, 늘 그사이에 숨 쉴 틈이 있었다. 길 위에서 멈춰 서서 인사를 나누고, 비가 오면 비 오는 대로 하루의 리듬을 바꾸고, 계획이 어그러져도 삶이 무너진 것처럼 느끼지 않았다. 느릿함은 게으름이 아니라 관용에 가까웠다. 나에게도, 타인에게도, 사정이라는 이름의 여백을 남겨 두었다. 그래서일까.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생각 앞에서 마음이 조금 쪼그라든다. 더 빠른 걸음, 더 많은 손길, 더 촘촘한 일정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효율과 성취라는 언어가 일상의 문장들을 점령하고, 쉼은 다시 계획해야만 가능한 일이 되겠지. 괜찮을까 싶다. 나도 모르게 숨을 얕게 쉬며 살게 되지는 않을까, 정신없이 흘려보내다 중요한 감각들을 놓치지는 않을까. 갈팡질팡하는 나를 마주하게 될까 봐, 다시 도망치고 싶어질까 봐 솔직히 조금 무섭다.
하지만 나는 안다. 우간다에서의 8년이 나를 비워 보냈다는 것을. 도망치고 싶었던 순간에도 끝내 하루를 살아냈고, 아팠던 날들 속에서도 웃을 수 있는 이유를 찾았다는 것을. 그러니 한국에서의 빠름도, 정신없음도, 흔들림도 결국은 또 다른 삶의 결일 것이다. 껴안아야 할 대상은 상황이 아니라 나 자신이라는 것도 이제는 조금 안다. 괜찮지 않은 날을 괜찮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 즐겁지 않은 순간을 배제하지 않는 태도, 그것이 내가 이곳에서 챙겨 가는 가장 큰 짐이다.
우간다는 나에게 많은 것을 주었다. 무엇보다 삶을 하나의 서사로 바라보는 시선을. 장면마다 의미를 증명하려 애쓰지 않아도, 이어지고 겹치고 흔들리며 결국은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는 것을. 그래서 떠남이 끝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며칠 뒤면 한국이겠지. 이 문장을 다시 마음속에서 되뇌며, 나는 오늘도 이곳의 하늘을 본다. 떠난다는 사실이 아쉽고, 돌아간다는 사실이 설레며, 그 사이 어딘가에서 조용히 숨을 고른다. 멋졌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완벽했기 때문이 아니라, 허술한 채로 끝까지 살아냈기 때문이다. 그러니 다음 삶도 그렇게 살아가면 되리라. 느리게 배운 것들을 잊지 않은 채, 빠른 세계 안에서도 나의 속도를 찾아가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