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꽤 많은 부분에서 다르다. 하루를 받아들이는 방식도 다르고, 말을 꺼내는 속도도 다르고, 어떤 일에 마음이 오래 머무는지도 다르다. 그래서 가끔은 같은 집에 살고 있으면서도 서로 다른 방향을 보고 있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서로를 이해한다 생각하다가도, 결국은 다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 앞에 멈추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주 사소한 취향에서는 자주 겹친다. 의식해서 맞춘 적도 없는데, 돌아보면 비슷한 선택을 하는 순간들. 그중에서도 많이 겹치는 건, 온도에 대한 취향이다.
카페에 가면 우리는 메뉴판 앞에서 오래 서 있지 않는다. 나는 늘 따뜻한 커피를 고르고, 남편도 별말 없이 같은 쪽을 본다. 계절이 바뀌어도, 사람들이 얼어 죽어도 아이스를 찾는 날에도, 우리는 자연스럽게 따뜻한 쪽으로 손이 간다. “뜨거운 걸로 할까?”라고 묻는 말은 선택이라기보다 확인에 가깝고, 대답은 늘 예상할 수 있는 방향으로 돌아온다. 그건 서로를 배려해서 맞추는 것도 아니고, 취향을 공유하자고 약속한 적도 없다. 그냥 어느 순간부터, 비슷한 온도를 편안하게 느끼고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린 경우다.
집에서도 그렇다. 물을 마실 때도 굳이 차갑게 두지 않는다. 냉장고에서 바로 꺼낸 물보다, 한 번 끓였다가 식힌 물이나 미지근한 물을 더 자주 찾는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어 있다. 따뜻한 국이 있는 식사를 좋아하고, 속을 데우는 음식 앞에서 안심하는 것도 비슷하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늘 비슷한 온도의 것들 앞에서 조금 느슨해진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상태.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 온도, 굳이 긴장하지 않아도 되는 온도. 아마도 그게 우리가 편안하다고 느끼는 기준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가끔은 이런 생각을 한다. 이렇게 다른 우리가 어떻게 이런 사소한 취향에서는 닮았을까. 어쩌면 우리는 비슷한 방식으로 하루를 견디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오늘 아침에도 그랬다. 남편이 나를 학교에 데려다주던 길에, 우리는 자연스럽게 카페에 들렀다. 햇볕이 잘 드는 창가 자리에 앉아, 나는 따뜻한 라테를, 남편은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굳이 서로의 선택을 묻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별다른 말 없이 그렇게 정해졌다. 그러고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각자의 잔을 손에 쥐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창으로 들어오는 빛과 손끝으로 전해지는 온기, 그사이에 흐르는 조용한 시간. 특별한 이야기가 없어도, 그저 함께 앉아 있는 것만으로 매우 좋다고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여전히 많은 부분에서 다르고, 그 다름 때문에 어긋나기도 한다. 같은 말을 다르게 받아들이고, 같은 순간을 전혀 다른 감정으로 기억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서로를 조금 멀게 느낀다. 그런데도, 이렇게 사소한 취향에서 겹치는 순간들을 발견하면, 아주 작게 안심하게 된다. 완전히 다른 세계에 있는 건 아니라는 것, 어딘가에서는 같은 결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 따뜻한 커피를 앞에 두고 마주 앉아 있을 때면, 우리는 특별한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된다. 같은 온도를 선택한 사람들끼리 공유하는,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편안함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