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내가 말을 다루는 방식은 지금 생각해 보면 처음부터 꽤 달랐다. 그런데 이 차이가 아주 큰 사건을 만든다기보다는, 작은 돌부리가 자꾸 발끝에 걸리듯 일상을 어지럽히곤 했다. 가까이 있을수록, 어긋남이 더 빨리 감지되는 이상한 아이러니도 있다.
나는 상대가 지금 내 마음에 묻은 먼지만 가볍게 털어주면 그걸로 충분한 사람이다. 사과도 한 번이면 된다. “미안해.” 그 말을 듣는 순간 안개처럼 엉켜 있던 감정이 스르르 풀리곤 한다. 아주 단순한 구조다. 나도 그걸 안다. 하지만 남편은 다르다. 그는 언제나 시작점으로 돌아가는 사람이다. 어떤 일이 생기면 그걸 오늘 하루의 문제로만 보지 않는다. 반드시 앞쪽으로 시간을 확장해, 맥락을 살피고, 어디에서 단추가 잘못 꿰어졌는지를 확인한다. 그러다 보면 지난달의 대화가 소환되기도 하고, 그때의 내 표정이 페이지를 넘겨 다시 등장하기도 한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나는 그 과정을 거의 기억 못 한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자신 있게 기억한다고 말할 수 없는 사람이다. 결과만 어렴풋이 남고, 그 결과까지 도달한 과정은 희미하게 지워지는 편이다. 그래서 싸움이 벌어지면, 남편은 차근차근 그때의 말을 복기하는데, 나는 “그랬었나…?” 하며 뒤늦게 허둥대는 모양이 된다. 기억에 자신이 없으니 말로 방어도 어렵고, 결국엔 남편 말에 설득당하듯 밀리는 구도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 그러나 남편 말이 틀렸던 적은 거의 없다. 그 사실이 기묘하게 얄밉다. 맞는 말이라는 게 때때로 이렇게 사람 마음을 구석까지 몰아넣을 수 있는지 결혼하고 나서 처음 알았다. 얼마 전에도 그랬다. 아이들 얘기로 작은 오해가 생겼고, 나는 그 자리에서 바로 감정만 정리하고 싶었다. 빨리 풀고 싶은 마음이 앞섰다. 그런데 남편은 그 오해의 기원을 따라갔다. “그때도 비슷했잖아?”라고 조심스레 말을 꺼내는 순간, 나는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페이지를 그는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 그 서랍을 열면 나는 아무것도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 그 불안이 갑자기 밀려왔다.
그래서 나는 “그 얘길 꼭 해야 해…?” 하고 중얼거리듯 말했다. 내 말투의 온도를 남편도 바로 읽었던 것 같다. 순간 그의 입술이 닫히고, 방 안에 짧은 침묵이 만들어졌다. 그 침묵은 싸우는 분위기의 침묵이 아니라, 대화를 조심스레 접으려는 침묵이었다. 그게 더 아팠다. 남편이 말을 아끼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우리가 대화를 시작하면, 결국 이렇게 서로 다른 결의 이야기들을 오래 늘어놓게 된다는 걸 그는 이미 예감한다. 그리고 나는 그걸 또 미처 소화하지 못한다. 그러니 어떤 날은 아예 입을 열지 않는 선택을 하기도 한다. 그건 나를 위한 조심일지 모르지만, 나로서는 또 다른 거리감으로 느껴지곤 했다. 하지만 참 이상한 게, 우리는 이렇다고 해서 서로를 오해하거나 멀어지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어긋남이 우리 관계의 가장 큰 숙제이자, 동시에 우리가 꼭 풀어가야 할 방식이라는 걸 둘 다 알고 있다.
요즘 들어 조금 달라진 건, 그 어긋남을 눈치채는 속도가 빨라졌다는 점이다. 남편은 내가 기억을 더듬지 못하면 그걸 ‘의도적 무시’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가 긴 이야기로 돌아가려 할 때, 나는 그걸 ‘나에게 뭔가를 따지려는 마음’이 아니라 ‘우리 사이의 원인을 찾으려는 시도’로 이해해보려 한다.
말의 방향은 여전히 서로 다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그 방향이 다른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의 방향을 억지로 맞추려 하면 더 멀어지더라. 대신, 각자의 방향으로 말해도 상대가 그 말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조금은 헤아려보는 것. 그 작은 배려가 진짜 변화를 가져온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쩌면 관계라는 건 이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말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사이가 되는 게 아니라, 어긋나는 방향을 굳이 바로잡지 않아도 넘어갈 수 있는 사이가 되는 것. 그리고 그 사이를 유지하는 마음의 힘이 조금씩 자라나는 과정이 바로 사랑의 또 다른 얼굴이 아닐까-라고. 생각해보면 우리가 함께 살아온 시간은 늘 그런 식이었다. 불쑥 어긋난 말 한 조각이 하루를 무겁게 하기도 했고, 더 이상 풀 수 없을 것 같던 거리감이 어느 날 갑자기 사소한 눈맞춤 하나로 녹아버리기도 했다. 말의 방향은 여전히 종종 다르지만, 그 방향이 다르다고 해서 마음까지 멀어진 건 아니었다. 오히려 서로가 가진 고유한 방식 때문에 나란히 걷는 법을 더 배우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비틀렸던 말들이 지나간 자리에 남는 건 결국 서로를 향한 시선이다. 그 시선은 때때로 흔들리고, 어떤 날엔 제대로 닿지 않기도 하지만, 몇 번이고 다시 맞추려는 마음만큼은 분명히 존재한다. 우리는 그 마음을 믿고, 아주 천천히, 때로는 멈추어 서서, 다시 서로를 바라본다. 그리고 그런 반복 속에서 조금씩 단단해지는 것이, 아마도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는 ‘우리의 방식’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