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 날, 하얀 천장 아래로 햇살이 쏟아지는 듯했다. 사람들의 웃음과 플래시가 뒤섞인 그 순간, 세상은 잠시 멈춘 듯 보였다. 그의 손을 잡은 채, 앞으로 걷는 모든 길이 함께일 거라 믿었다. 손끝이 닿을 때마다 심장이 뛰었고, 그 떨림이 사랑의 모양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날의 눈부심은 오래가지 않았다. 결혼식이 끝난 지 한 달도 안 되어, 그는 스와질란드로 떠났다.
이미 정해진 일정이었다. 나는 남았다. 선교 훈련을 마쳐야 했으니까. 이유는 분명했지만, 마음은 이해보다 그리움 쪽으로 기울었다. 공항에서 손을 흔드는 그의 뒷모습은 생각보다 빨랐다. 그가 사라진 게이트 문이 닫히는 순간, 공기가 휑하게 비어버렸다. 결혼이 시작이 아니라, 이별의 첫 장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그제야 스쳤다.
한국의 여름은 유난히 뜨거웠다. 매일 새벽, 훈련원 기숙사의 종소리가 울리면 눈을 떴다. 함께 모여 찬송을 부르고 기도문을 읽었다. 그러나 머릿속에는 늘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하나님보다 더 또렷하게. 그 먼 곳에서 그는 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전화를 걸면 시차가 사랑을 늦추었다. 그는 저녁을 먹은 뒤였고, 나는 이제 막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거기 날씨 어때?”
“벌써 겨울이야. 아침엔 서리도 내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 멀리서 지나가는 차의 굉음, 바람이 나뭇잎을 긁는 소리. 그 낯선 소리들이 마치 그의 목소리를 감싸 안았다. 서울은 땀에 젖은 여름이었고, 그곳은 하얀 입김이 피어오르는 겨울이었다. 같은 달력을 넘기고 있는데, 우리는 서로 다른 계절에 살았다. 전화를 끊고 나면 귀에 남는 건 그가 아닌 소리들이었다. 혹시 그가 만들어낸 풍경은 아닐까. 그가 진짜로 거기에 있는 걸까. 신호가 끊길 때마다 마음도 흔들렸다. 한 줄의 문자, 짧은 답장 하나에도 감정이 요동쳤다. 사랑은 여전했지만, 불안이 더 빨랐다.
“왜 전화를 안 받았어?”
“전기가 나갔어. 신호가 약해.”
“매번 그렇잖아.”
사랑해서 묻는 말이었지만, 사랑 때문에 더 아프게 했다. 전화를 끊고 나면 후회가 밀려왔고, 다음 날이면 같은 말들이 반복됐다. 믿음보다 외로움이, 신앙보다 의심이 앞섰다.
그해 여름, 나는 여전히 더위 속에 있었고, 그는 겨울을 살았다. 계절이 엇갈리는 만큼 마음도 어긋났다. 서로를 사랑하지만 닿지 않는 시간, 그 사이에서 마음이 닳아갔다. 그래도 전화를 끊기 전엔 꼭 말했다. “잘 자.” 그 말 하나가 전부였다. 그 짧은 인사 속에 모든 다짐이 들어 있었다.
그리고 2014년 10월, 나는 그에게로 떠났다. 공항의 공기가 낯설게 차가웠다. 비행기 창문 너머로 구름이 흘러가고, 마음속에서는 눈이 내렸다. 손에 쥔 여권이 낯설었다. ‘이제 그와 함께 산다’는 설렘보다 ‘이제 정말 낯선 세계로 들어간다’는 두려움이 더 컸다. 결혼은 약속이 아니라 연습이었다. 서로 다른 시간, 다른 언어, 다른 하늘 아래서도 믿음을 잃지 않는 법을 배우는 일. 그제야 알았다. 사랑은 함께 있는 날보다, 떨어져 있는 날에 더 깊어진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