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가 맑았다. 해가 지면 금세 서늘해졌고, 낮에는 햇살이 살에 닿을 만큼 강했다. 스와질란드는 생각보다 조용했다. 차가 매끄럽게 달리는 아스팔트 도로 위로 바람이 한 줄기씩 스쳤고, 창밖에는 붉은 지붕들이 간격을 두고 앉아 있었다. 결혼하자마자 떨어져 지냈던 시간 끝에 남편과 다시 만나 그 땅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그를 마주 본 순간, 오래 참아왔던 그리움이 한꺼번에 터질 줄 알았다. 하지만 마음은 금세 닿지 않았다. 서로의 숨소리를 듣는 일조차 낯설었다.
한국에서 상상만으로 싸우던 날들이 있었다. 서로의 불평을 메신저로 쏟아내고, 보이지 않는 거리 속에서 오해가 자랐다. 그래서 다시 만나면 모든 게 괜찮아질 거라 믿었다. 같은 공간에 함께 있으면 외로움이 다 풀릴 줄 알았다. 그러나 가까이 있어도 마음이 맞닿지 않는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도착하고 한 달쯤 지나 임신했다. 몸 안에 아주 작은 무언가가 자라고 있다는 사실이 낯설었다. 그 낯섦이 말투에도 표정에도 묻어났다. 아침마다 속이 울렁거렸고, 냄새 하나에도 표정이 달라졌다. 밥 짓는 냄새가 특히 힘들었다. 밥솥 뚜껑을 여는 순간 퍼지는 뜨거운 밥 냄새에 목구멍이 막히듯 울렁거렸다. 남편은 이해하려 애썼지만, 당황한 기색이 먼저였다. 그가 내게 물 한 잔을 건네는 손길이 조금만 느려도 서운했다. 냉장고 문 여는 소리, 싱크대 물 흐르는 소리에도 신경이 곤두섰다. 공기 사이에 묘한 온도가 생겼다. 싸움의 이유는 늘 사소했다. 저녁 메뉴, 말투, 집안일. 다툼 뒤엔 긴 침묵이 남았고, 그 침묵이 오래 머물렀다.
남편은 스와질란드 기독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아침마다 서둘러 나갔다. 교복처럼 입던 하얀 티셔츠에 청바지를 매만지고, 책가방을 메고 나가면 집 안이 금세 조용해졌다.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 뒤로 햇살이 밀려들었고, 그때부터 하루가 길게 시작됐다. 그가 나간 뒤엔 창가로 가서 하얀 커튼을 닫았다. 바깥이 보이지 않으면 마음이 조금 편했다. 컴파운드에는 세 집이 나란히 붙어 있었고, 그중 하나가 우리였다. 벽 너머로 아이들 웃음소리가 들려오기도 했지만, 쉽게 창문을 열지 못했다. 누군가 눈을 마주칠까 봐 손끝이 움츠러들었다. 한국에서 온 사람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여긴 조심해야 해. 괜히 나가지 말고, 사람들 너무 믿지 말고.” 그 말이 귀에 맴돌았다. 그 말 이후로 하루는 더 느려졌다. 부엌과 거실을 오가며 물을 끓이고, 불을 끄고, 커튼 사이로 빛을 살짝 훔쳐보는 시간. 남편의 발소리가 들릴 때까지가 하루였다.
멀리 떨어져 있을 땐 그리움이 전부였는데, 막상 함께 있으니 외로움이 다른 얼굴로 찾아왔다. 이제는 거리가 아니라 하루의 온도, 서로의 침묵 속에서 외로움을 느꼈다. 분명 같은 집에 있는데, 마치 서로 다른 나라에 사는 사람처럼.
결혼하면 남편이 나에게만 집중해 줄 거로 생각했다. 그가 나가는 학교가 궁금했다. 어떤 곳에서, 어떤 얼굴로 하루를 보내는지 보고 싶었다. 그래서 어떤 날은 남편을 따라 학교에 갔다. 하지만 빈 강의실에 혼자 앉아 남편을 기다리는 일은 임신 초기의 몸으로는 버거웠다. 머리가 어지럽고 속이 뒤틀렸다. 강의가 끝나길 기다리며 의자에 앉아 있으면 먼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어지럽게 흔들렸다. 교수진 몇몇이 말했다. “임신 초기엔 쉬는 게 좋아요. 너무 무리하지 말고, 집에서 푹 쉬세요.” 남편에게도 같은 말을 건넸다.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마음 한쪽이 시렸다. 신혼의 시작을 함께하지 못한 세월이 있었기에 이제는 곁에 있고 싶었다. 함께 밥을 먹고, 같은 하늘을 바라보는 일조차 보상처럼 느껴졌는데, 몸은 그 단순한 바람마저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주말이 되면 안도했다. 남편이 손을 내밀면 잠시 망설이다가 커튼을 살짝 걷었다. 잔디 위로 햇살이 번지고, 아이들이 웃으며 인사했다. 천천히 컴파운드 안을 걸었다. 손끝이 닿아 있었지만 그 온기마저 낯설었다. 그래도 좋았다. 웃다가도 괜히 주위를 살폈다. 낯선 땅에서의 첫 해외살이는 여전히 긴장이 반복되는 매일이었지만, 그 사람의 손을 잡고 걷는 그 순간만큼은 조금 괜찮았다. 그 온기가, 버틸 수 있게 했다.
가끔은 생각했다. 차라리 한국이었다면 어땠을까. 친구 얼굴도, 부모님 목소리도, 익숙한 공기 하나만 있어도 덜 외로웠을까. 하지만 그리움이 닿는 곳마다 또 다른 외로움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니 지금 이곳에서 내가 붙잡을 수 있는 건 결국 이 작은 온기뿐이었다. 그것마저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며, 괜찮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나는 멀쩡하지 않았지만, 그때는 그렇게라도 버티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