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다른 이야기를 하다 싸우게 될까

by 비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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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싸움은 대부분 우리 이야기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정치 이야기를 하다가, 뉴스 속 한 장면을 두고 각자의 생각을 말하다가, 혹은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다른 가정의 이야기를 하다가 어느 순간 방향을 틀어 우리에게로 온다. 처음에는 그저 의견을 나누는 대화였다. 누구를 설득할 생각도, 다투겠다는 예감도 없었다. 그런데 말이 몇 번 오가는 사이, 설명은 길어지고 듣는 쪽의 얼굴이 조금씩 닫힌다. 그때쯤이면 이미 우리는 처음의 주제를 놓친 상태다.


정치 이야기를 하다 싸웠던 날이 있다. 나는 어떤 정책이 왜 불편하게 느껴졌는지 말하고 있었고, 그는 그 정책이 만들어진 맥락을 설명하고 있었다. 나는 마음으로 반응했고, 그는 구조로 답했다. 그는 최대한 같은 톤을 유지하며 말했고, 나는 그 톤이 나의 감정을 비껴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결국 내가 말한 것은 정치가 아니라, 왜 내 말은 늘 이렇게 가볍게 지나가느냐는 것이었고, 그가 들은 것은 왜 논리를 무시하느냐는 항의였을 것이다. 이야기의 출발점은 분명 밖에 있었는데, 끝은 언제나 우리 사이였다.


아이들 방학 이야기를 하다 비슷한 일이 또 있었다. 주변 가정들은 방학마다 여행을 간다고 했다. 멀지 않은 곳이라도 며칠씩 자리를 옮겨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이야기였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부러웠고, 우리도 한 번쯤은 그러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주 조심스럽게, 가능하면 좋겠다는 정도로- 그러자 남편은 곧바로 우리의 재정 상황을 이야기했다. 이번 달과 다음 달의 지출, 고정비, 남겨두어야 할 여유. 틀린 말은 아니었다. 오히려 아주 정확한 말이었다. 나는 그가 현실적인 대안을 주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라는 판단도 이해했다. 그래서 더 말하기가 어려워졌다. 반박할 말이 없다는 것과, 마음이 닿지 않았다는 감정은 전혀 다른데, 그 둘이 자꾸 같은 자리에 놓였다. 여행을 가자는 말이 계획의 문제가 아니라, 잠시 다른 공기를 마시고 싶다는 신호였다는 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때 마음 안에서 무언가가 툭 하고 튀어나왔다. 분명 큰 감정은 아니었다. 서운함이라고 부르기엔 애매했고, 억울함이라고 하기엔 너무 사소했다. 다만 지금은 계산 말고, 한 번쯤은 같이 상상해 보고 싶었다는 마음이 말이 되지 못한 채 남아 있었다. 남편은 이미 다음 문장으로 넘어가 있었고, 나는 그 문장에 따라가지 못한 사람이 되었다. 그 순간부터 대화는 조금씩 어긋났다. 나는 점점 말이 짧아졌고, 그는 왜 갑자기 분위기가 달라졌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결국 우리는 돈 이야기를 하다,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누가 더 현실적인지, 누가 더 무책임한 지 같은 질문들로. 하지만 사실 그날의 시작은 그런 게 아니었다. 나는 여행이 아니라, 우리도 그렇게 한 번쯤은 해볼 수 있지 않느냐는 마음을 말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싸움에서 나는 화를 낸다. 감정을 쏟아내야만 내가 어디까지 밀려왔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남편은 화를 내지 않는다. 목소리가 잠시 높아질 뿐, 곧 늘 같은 톤으로 돌아간다. 그는 상황을 더 키우지 않으려 애쓰고, 나는 그 애씀 속에서 혼자 과열된 사람이 된다. 감정을 다 쏟은 쪽도, 거의 쓰지 않은 쪽도 이상하게 같은 자리에 남는다. 풀리지 않는 감정 앞에서 둘 다 말이 적어진다. 싸움이 끝나면 해결보다 침묵이 먼저 온다. 왜 이렇게까지 되었는지는 흐릿해지고, 대신 그날의 말투와 표정이 오래 남는다. 나는 내가 너무 과했던 건 아닌지 돌아보고, 그는 자기가 너무 멀리 물러선 건 아닌지 생각한다. 사과를 해도, 고개를 끄덕여도 그날의 대화는 완전히 닫히지 않는다. 마치 아직 다 정리되지 않은 문장을 책상 위에 올려둔 채 하루를 마치는 기분이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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