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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꽃 Nov 07. 2023

반갑지만 불편한 순간들

비가 온다. 우기에서 건기로 넘어가는 길목에 내리는 비라 더 반갑다. 수돗물을 사용하는 곳도 있지만 대부분 빗물을 사용하는 우간다에서는 비만큼 반가운 손님도 없다. 우리도 1톤짜리 빗물탱크에 비를 저장하는데 오늘 내리는 비의 양이라면 차고도 넘칠 것 같다. 사실 이 빗물은 식수로 바로 사용할 수는 없다. 씻거나 빨래를 할 때 주로 사용하고 식수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빗물의 찌꺼기를 걸러낸 정수를 쓴다.


며칠 전 케냐에서 온 배추로 겉절이를 담갔다. 1차로 빗물에 절임배추를 여러 차례 씻는다. 그런 다음 두 번은 번거롭더라도 꼭 정수로 헹군다. 그렇지 않으면 설사, 구토 등 장티푸스 증상을 보일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양치질부터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에 정수를 쓰는 이유다.

그리고 비가 내리면 반갑지만 일전에도 소개한 것처럼 전기가 나갈 확률이 크다. AI 시대에 전기가 나간다는 게 말이 될까 싶지만, 비가 세차게 내리든 그렇지 않든 비의 양에 관계없이 ‘곧 전기가 나가겠지?’라고 늘 염두에 둔다. 그래서 오늘도 일찍이 세탁기와 청소기부터 돌렸다. 어떤 날은 세탁기에 물이 한가득 담겼는데 전기가 나가면서 그 상태 그대로 하루를 방치한 적도 있었다. 또 개미 때문에 과자 부스러기를 치우려 청소기 코드를 전원에 연결했는데 갑자기 정전-(아이가 있는 집에서는 무선 청소기를 대비한 가정도 있다.) 이런 난감함은 우간다에 살면서 감당해야 할, 아니 이제는 삶의 일부가 된 지 오래다. 여기에 스폿이 많은 도로의 경우도 비와 관련하여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인데, 배수로 시설이 엉망이어서 차가 다니는 모든 길은 웅덩이로 바뀐다. 제 속도로 운전할 수도, 또 차들이 쉬이 고장 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그래도 비가 내리니 더웠던 바깥 열기도 식고 좋다. 그리고 이렇게 앉아 라디오를 들으니 이 또한 좋다. 여기에 김치부침개가 있다면 딱인데, 아니다. 제발 오늘은 정전만은 피해 가기를……. 그거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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