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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g My Children

다시 태어나도 엄마의 삶

by 비꽃

우간다에서는 생후 36개월이 지나 대소변을 가릴 수 있을 때 유치원에 갈 수 있다. 그렇기에 기저귀를 빨리 떼었다 해도 36개월이 되기까지는 가정 보육을 해야 한다.


해야 하는 일을 하기로 결정하고 아이들이 잠에 든 시간서부터는 다음날 준비물을 준비하거나 필요시에는 일부 만들어놓곤 했는데 어떤 날은 새벽 3시에 마치기도 했다. 무엇을 위해 그렇게까지 했을까. 지금에서 돌이켜보면 그때의 마음은 ‘그래야 내가 사는 것 같아서’였던 것 같다.


엄마표 놀이 홈스쿨링 이름은 <Sing My Children>, 이 학교는 이름과 같이 “허락된 매일을 즐겁게 노래하자!”는 의미를 담았고 아이들이 마음껏 웃고 재잘거린다면, 생각과 감정을 마음껏 표현한다면- 그것이 교육 목표였다. 아침 9시면 말씀을 읽고 기도로 시작해 만들기, 미술, 음악 등 우간다에서 취할 수 있는 도구와 재료들로 매일을 그리고 둘째가 36개월을 훌쩍 넘겨 만 5세가 되던 해까지 이어갔다. 사실 유치원에 입학에 14일을 다니기도 했다. 그러나 코로나 바이러스가 확산되면서 모든 학교는 문을 닫게 됐고, 급기야 지역별 록다운(Lockdown) 조치가 내려져 고민 없이 홈스쿨링을 이어갈 수 있었다.


아이들의 호기심 가득한 눈은 내 마음을 설레게 했고,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나를 사춤 치게 했다. 밤샘 작업이 지치지 않았던 원동력도 이에 있었던 것이 맞다. 이 글의 시작에서 ‘그래야 사는 것 같아서 시작했다.’했지만, 하다 보니 어느새 아이들로 내가 살고 있는 것이 맞았고, ‘다시 태어나도 나는 엄마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할 정도로 아이들이 그 힘을 준 것이 맞았다.


우간다 도심 속 시골에 들어와 홀로 육아를 맡는 시간마다 ‘독박육아’라는 말을 얼마나 내뱉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나는 그 단어와 멀어지고 있었고 비슷한 처지에 놓인 엄마들에게는 “우리, 독박 육아라는 말은 쓰지 말아요!”라며 전도자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아이들은 선물이에요.”, “아이에게 꼭 맞는 엄마는 나밖에 없더라고요. 그래서 이왕이면 좋은 엄마 하려고요.”라고 더하기까지 했다. 그만큼 아이들이 나에게 준 힘은 강했고 우간다에서의 삶을 더욱 단단하게 했다. ‘이제 좀 살겠다.’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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