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같은 사람만 글을 쓰는 거야

by 천비단


저녁에 뜬금없이 아빠가 왔다. 아빠와 엄마가 심각한 얘기를 나눴다. 아빠가 갑자기 내게 다가오더니 시험 준비 열심히 하라고 했다. 임용고시 포기했다고 말하지 않았나. 아빠가 떠나고 엄마가 내게 물었다. 임용고시 더 안 볼 거냐고. 그렇다고 답했다. 1차라도 통과했다면 계속 했을 텐데, 완전히 포기했다고. 엄마는 내가 너무 빠르게 포기했다고 했다. 남들도 3, 4번 도전해서 붙는 시험인데, 대학까지 나왔는데, 그 5년이란 시간이 시간 낭비라고.


교육행정 시험 뭐 이런 얘기를 하더니 앞으로 뭐 하면서 살 거냐고 물었다. 그런 질문에 명쾌하게 답할 수 있는 자식이 얼마나 될까. 자신없게 답했다. 일단 글을 쓸 거라고. 엄마는 글 쓴다고 설치다가 저렇게 살고 있는 아빠를 보면서 글을 쓰고 싶냐, 한강 같은 사람만 글을 쓰는 거다라고 말하더니 한숨을 쉬었다. 노력만 하면, 죽도록 노력만 하면 할 수 있더라 하며 시험을 보라고 했던 것 같다. 나는 아무 말도 못 했다.


예전에도 이런 적 있다. 내가 처음 교사가 되고 싶다고 말했던 날, 엄마는 반대했다. 돈을 못 번다는 이유였나? 그랬던 엄마가 지금은 글을 쓰지 말라고 한다. 한강까지 들먹이며. 노벨상까지 받은 업계탑을 거론하며 반대하는 게 참 웃기다. 엄마가 저렇게 멍청하고 비논리적인 사람이었나. ‘자식의 꿈을 반대하는 멍청한 부모’의 모습을 엄마에게서 보게 되었다는 게 놀랍다.


고려대 입시를 준비할 때 엄마가 내게 말했다. 고려대 가지 말라고. 나는 네가 고려대에 가면 학비 못 내준다고. 감당할 수가 없다고. 나는 혼란스러웠다. 자식이 명문대 입학 준비를 하고 있는데, 응원해주진 못할망정 가지 말라고 하다니. 상상해본 적도 없다. 내 부모가 이런 식으로 나올 줄은.


죽도록 노력하면 할 수 있다라. 첫째, 예전에 내가 자기처럼 ‘실패한 인생’을 살까봐 두렵다고 말했던 사람이 할 소리는 아니다. 본인이 본인 인생이 실패했다고 시인했으면서 왠 노력 타령인가. 둘째, 지금 그리고 과거의 내 노력을 부정했다. 임용고시 재수할 때 그랬지. 내가 공부 안 하는 것 같다고, 나를 못 믿겠다고. 셋째, 왜 그 논리를 시험에만 적용하는가. 글을 쓰는 것도 죽도록 노력하면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엄마는 내 꿈과 노력을 지지해준 적이 한 번도 없다. 오히려 나를 부정하고, 비논리적인 주장까지 해가며 나를 막아섰다. 나는 엄마에게 믿음을 주지 못했다. 내가 더 능력 있고 의욕적이고 성취가 뛰어난 사람이었다면 그렇지 않았겠지. 내 실패를 부모 탓으로 돌리고 싶지는 않다. 그 정도로 나는 멍청하지도 이기적이지도 않다. 이 모든 문제의 원인은 나라는 건 너무나도 자명하다.


나는 이해되지 않는다. 난 내 자식이 학원도 안 다니고 인강도 안 보고 과외도 안 하고 EBS와 교과서만으로 전교 1등 찍어오면 너무나도 대견해서 하고 싶어하는 거 모두 응원해줄 것 같은데. 나는 당신들이 컴퓨터를 안 사줘도 불평하지 않았고, 스마트폰을 안 사줘도 떼쓰지 않았고, 인강을 안 끊어줘도 원망하지 않았다. 그저 감사해했다. 몇만 원짜리 문제집을 살 돈을 줘서. 그런데 어째서.


그 결과가 이것인가? 나는 당신에게 일말의 신뢰도 주지 못하는 것. 고등학생 때는 내가 가성비 좋은 자식이라고 생각했는데 틀렸나보다. 왜 나는 당신에게 믿음을 주지 못했을까. 왜 나는 내가 원하는 것, 바라는 것, 꿈꾸는 것 모두 반대당하고 거부당하고 무시당해야 하는가. 왜 나는 철저하게 실패했는가.


나는 말을 거의 하지 않았다. 나는 당신의 가슴에 말뚝을 박을 수 있었다.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힐 수 있었다. 가족이니까. 사랑할수록 어디가 아프고 더 잔인하게 상처를 후벼팔 수 있는지 아는 법이니까.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가만히 침묵했다. 살짝 후회한다. 공모전에 투고했다는 말은 했어야 했을까.


가끔 생각한다. 조금 멍청하게, 이기적이게 태어났더라면. 얼굴에 철면피를 깔고 무책임하게 내가 하고 싶은 거 막 하고 살았으면. 할 수 없을 거라 미리 겁먹지 않고 대가리부터 들이댔더라면. 그랬다면 인생이 그나마 행복했을까. 이렇게 새벽에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우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애매한 재능은 저주다. 분수에 맞지 않는 능력은 인간을 파멸로 이끈다. 나는 오만했고 겸손했다.


내가 거대한 종양 덩어리처럼 느껴진다. 부모님의 삶을 파먹는 악성종양. 차라리 죽는 게 훨 나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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