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퍼케이스> '초능력'과 '추리게임'의 완벽한 만남

게임 <스테퍼 케이스> 리뷰

by 천비단




<스테퍼 케이스>는 한국의 인디게임 개발사 ‘팀 테트라포드’에서 2023년에 출시한 텍스트 기반 어드벤처 추리 게임이다. 사건 현장을 조사하고, 추리하고, 범인을 밝히는, 정석적이고 전통적인 방식을 취한다. <역전재판>이나 <단간론파>와 비슷한 느낌이다.


한국의 무명 제작자가 개발한 인디 게임이 스팀 판매량 10만 장을 돌파하고, 압도적으로 긍정적 평가를 받고, 2025년에는 스위치에 풀더빙 버전이 이식되는 등 이례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이 게임은 어떻게 성공했을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컨셉이다. 이 게임은 평범한 추리 게임이 아니다. ‘초능력 추리 게임’이다. 이해했는가? 초능력이 존재하는 세계관에서 펼쳐지는 추리 게임이다!


‘초능력’과 ‘추리 게임’의 만남이라니. 추리물 매니아라면 천인공노할 짓을 벌이다니! 당장 추리계의 블랙 리스트로 올리고 제작진의 삼 대를 멸해야 마땅하지 않은가? 하지만 <스테퍼 케이스>는 면죄부를 받았다. ‘초능력’과 ‘추리 게임’을 멋지게, 맛있게, 재밌게 버무렸다.






추리 게임, 더 나아가 추리물의 세계관은 장르 특성상 현실적인 세계관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셜록 홈즈 시리즈와 역전재판 시리즈까지, 시대 차이는 있지만 모두 현실 세계관을 기반으로 한다. 추리 장르에서 판타지 요소는 금기사항이다.


왜 추리 게임의 세계관에는 판타지 요소가 없을까? 조금만 생각하면 답이 나온다. 추리의 격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밀실 살인이 일어났는데, 알고 보니 초능력자가 원격으로 죽인 거라면? 추리하는 재미가 있을 리 없다.


또 다른 이유로는 범인을 특정하기 너무 쉽다. 피해자가 불타 죽었는데, 용의자가 불 초능력자와 얼음 초능력자가 있으면 당연히 불 초능력자가 범인 아니겠는가. 얼음 초능력자가 초능력을 쓰지 않고 불태워 죽였을 수도 있지만, 그러면 초능력이 존재하는 의미가 없으니.


역전재핀 시리즈의 '영매'나, 단간론파 시리즈의 '초고교급 재능'처럼 판타지 요소가 있긴 했지만, 그게 게임의 핵심은 아니었다.


추리 게임과 판타지는 서로 다른 세계 얘기였다. 추리 소설의 격언 <녹스의 10계>에서 ‘중국인을 등장시키지 마라’라고 할 정도다. 그때 당시 중국인이 오리엔탈스러운 마술을 이용해 범행을 저질렀다는 개연성 말아먹은 추리 소설이 넘쳐났다. 빡친 녹스가 말도 안 되는 판타지를 추리 소설에 넣지 마라고 일침을 날린 것이다. 추리 장르에서 ‘초능력’은 오랜 금기였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초능력 추리 어드벤처’라는 장르를 들고 온 <스테퍼 케이스 >는 희귀종이다. ‘초능력’과 ‘추리’라니. 절대 섞일 수 없는 물과 기름을 동시에 가지고 자랑스럽게 이름에 내걸었다. 이 얼마나 자신감이 넘치는가. 과연 <스테퍼 케이스>는 어떻게 추리 게임에 초능력을 녹여냈을까?


게임의 배경은 1960년대 런던으로, 마나를 이용해 초자연적인 ‘마나현상’을 일으키는 ‘스테퍼’가 가장 많이 사는 도시다. 아무 초능력 없는 평범한 인간 ‘노트릭’은 마나사건전담반에 신입으로 들어가 다양한 사건을 해결하게 된다.


전통적인 텍스트 기반 추리 게임과 유사하다. 사건 현장을 조사해 단서를 모으고, 추리하고, 진범을 밝히는 것이 목표다. 다른 추리 게임과 차이점은 단 하나다. 이 사건들이 초능력에 의해 일어난 ‘마나사건’이라는 점.


스테퍼가 일으킨 범죄는 어떻게 수사할까? 여기서 제작진의 첫 번째 묘수가 등장한다. 수사관도 초능력을 쓰게 하는 것이다.



영역에 대항하는 가장 유효한 수단은 이쪽도 영역을 전개하는 것


노트릭은 일반인이지만, 동료들은 스테퍼다. ‘테나’는 사람의 심장박동을 감지해 거짓을 판별한다. ‘브리안’은 사건 현장에 남겨진 흔적과 그 흔적의 경과 시간을 볼 수 있다. ‘레드핀즈’는 사건 현장에 손만 갖다대면 사건 당시의 감각을 느낄 수 있는 사이코메트리 능력자다.


덕분에 범인과 주인공의 파워 밸런스는 얼추 맞는다. 노트릭은 세 동료의 초능력을 이용해 범인을 추리해간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탐정도 초능력을 쓴다고 해서 개연성이 폭발하는 것은 막을 수 없다.


여기서 제작진의 두 번째 묘수가 나타난다. 바로 초능력을 문서화하는 것이다. 초능력을 문서화하여 초능력의 특징, 범위, 한계를 명시한다. 노트릭은 용의자들의 증언과 초능력 관리문서, 수사팀이 수사한 진술서, 현장 사진 등을 비교하여 논리적인 모순을 발견하고 그것을 토대로 추리한다. 초능력 때문에 개연성이 무너지는 경우는 없다.


자칫 잘못하면 개연성을 날려먹을 수 있는 초능력을 ‘관리문서’로 엄격하게 제한함으로써, 공정한 룰 위에서 논리적으로 추리할 수 있는 게임이 되었다. 때문에 여타 추리 게임보다 개연성과 논리, 인과관계를 더 꼼꼼하게 따져야 한다.


생각보다 어려워서 머리 잘 써야한다


이 묘수 덕분에 추리 게임의 개연성과 논리성을 확보하면서, 초능력이라는 판타지 요소의 비현실성이라는 장점 또한 챙겼다. 이러한 설계가 정점에 달한 구간이 바로 챕터 4다. 추리물을 많이 즐겼지만, 이 게임의 챕터 4는 역대급으로 소름이 돋았다. ‘초능력 추리 게임’이어서 가능했던 트릭이었다.






‘초능력이 문서화되어 있다’라는 룰은 단순한 룰에 그치지 않는다. 팀 테트라포드는 이를 ‘스테퍼가 차별받는 세계관’으로 확장시켰다.


<스테퍼 케이스> 세계관에서 스테퍼는 걸어다니는 폭탄 취급을 받는다. 초능력자는 어릴 때 가족과 떨어져 강제로 기관에서 길러지고, 항상 팔찌를 차고 다녀야 하며, 위험도에 따라 위험등급이 매겨지고, 공공기관 이용이 제한되는 등 일상생활을 맘대로 하지 못한다.


위험등급이 초능력의 위험도에 따라 정해지는 점이나, 그 위험등급의 명칭이 보위, 콜트, 에스티엔느 등 무기와 관련된 단어라는 점에서 스테퍼가 위험분자 내지는 군사 도구로 취급받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스테퍼의 인권은 박탈당했다. 세상을 위협하는 능력이라면, 스테퍼가 선한 인물이라 하더라도 평생 격리시키거나, 제거하기까지 한다.


스테퍼에 대한 차별과 억압은 작품 내내 이어진다. 이 게임에 나오는 범인들은 단순한 악인이 아니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비윤리적인 사회를 폭로하기 위해서, 평생 수감되어 살아가야 하는 시스템에 분노해서 살인을 저지른다.


판타지 요소가 존재하는 추리 게임의 개연성과 논리성을 확보하기 위한 장치가 게임의 세계관과 범행동기, 주제의식까지 이어졌다.


작품 내내 이어진 주제의식은 자연스럽게 <스테퍼 시리즈>로 확장되었다. 통제당하는 스테퍼, 거대한 계획을 세우는 마나관리국, 안전하고 평화로운 ‘이상’과 괴롭고 냉혹한 ‘진실’ 사이의 딜레마. 이 이야기를 가지고 다음에는 어떤 작품이 탄생할지 기대된다.






올해에는 스테퍼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 <스테퍼 레트로>, 2027년에는 스테퍼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 <스테퍼 딜레마>가 예정되어 있다. 1편에서 보여준 초능력과 추리 게임의 결합과 흥미로운 세계관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기대된다.


빨리 문 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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