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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우 에디터 Oct 06. 2022

세계 3대 경매 회사가 한국 미술시장을 정조준하다

소더비, 크리스티, 필립스까지

© Wallpaper


최근 프리즈 서울의 개막과 함께, 한국에서 다양한 미술 행사가 진행됐습니다. 미술시장의 3대 권력인 미술관, 경매 회사, 갤러리 중에서는 경매 회사와 갤러리의 참여가 두드러졌는데요. 경매 회사 중에선 소더비 sotheby’s와 크리스티 christie’s가 눈길을 끌었죠. 소더비는 소더비 예술경영 대학원의 수업을 한국에서 진행했고, 크리스티는 분더숍 청담에서 프란시스 베이컨과 아드리안 게니의 전시를 열었습니다.


이 두 회사는 세계 경매사의 양대 산맥이라 불리는데요. 이들을 쫓는 무서운 경매 회사가 또 있습니다. 바로 필립스 Phillips. (면도기 등을 판매하는 가전제품 회사 필립스 PHILIPS와 다른 곳입니다.) 최근에는 필립스까지 함께 묶어 세계 3대 경매 회사라 부르죠. 필립스도 최근, 한국에서 기획전을 열었습니다. 제목은 <뉴 로맨틱스 New Romantics>.


뉴 로맨틱스 출품작: 캐서린 번허드 Katherine Bernhardt, Papaya 2020 © Phillips


이 전시는 필립스가 서울에서 개최한 첫 번째 기획전이었는데요. 이 전시에서는 ‘동시대의 낭만주의’를 다뤘습니다. 여기서 ‘동시대'는 ‘현대미술' 할 때 ‘현대'보다 더 최신의 작업들을 의미해요. 우리와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예술가들이 동시대 예술가죠. ‘낭만주의'는 18세기 말-19세기 성행한 사조로, 화가가 대상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게 아닌 자신의 감성과 감정을 담아 그려낸 사조를 뜻합니다. 즉, 필립스가 이번에 한국에서 진행한 전시는 우리와 같은 세대를 살아가는 예술가들이 어떤 감성과 관점을 가지고 대상을 그려냈는지 볼 수 있는 전시였죠.


그런데, 필립스가 낭만주의에 집중한 건 굉장히 독특합니다. 미술시장에서 잘 팔리는 장르는 대부분 팝아트, 미니멀리즘 등이거든요. 필립스는 이런 흐름 속에서 오히려 한 발짝 떨어져, 감수성을 자극하는 작품에 주목했어요. 유행은 흘러가고 바뀌지만, 예술가의 감성은 영원하니까요. 이렇듯 필립스는 기존 경매시장에서 조금은 다른 전략으로 시장점유율을 높여나갔습니다.


© Phillips


물론 그렇다고 해서 타깃까지 다른 건 아니에요. 유망한 시장이 있으면 따라서 뛰어들죠. 그렇게 발을 넓힌 것이 이번 한국 시장이었습니다. 필립스는 한국을 아시아 미술시장의 종착지라 보고 있어요. 그리고 이유를 수치적으로 제시합니다. 그간 필립스는 아시아 지역에 투자를 확대하고 있었는데요. 2021년 한국 컬렉터들의 수집 활동이 전년대비 258%나 증가하는 걸 목격했다고 해요. 한국 미술시장이 가장 가파른 상승세에 있는 시점에 서울에서 이번 기획전을 열며, 한국 컬렉터들에게 필립스를 소개한 것이죠. 추후에는 한국 작가들의 작품을 필립스를 통해 발굴해 전 세계에 소개할 계획도 있다고 하니, 한국 작가들의 세계시장 진출 발판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렇다면 왜 세계 3대 경매 회사는 한국에 주목했을까요? 사실 한국의 경매시장 상황은 썩 좋지 않은 편이에요. 서울옥션의 올 상반기 평균 낙찰률은 81%로 10%가량 하락했죠. 케이옥션도 마찬가지로 81%였고요. 이를 해외 경매 회사에서도 잘 알고 있지만, 아시아에서 미술시장 맹주를 꼽자면 단연 한국이라 이야기합니다.


뉴 로맨틱스 출품작: 록가쿠 아야코, ARP19-073, 2019 © Phillips


아시아 미술시장의 역사를 살펴보면, 1980년까지는 일본이 선두주자였어요. 당시 세계 3위 경제대국답게, 당시 일본 컬렉터들은 막강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세계 최고 명작들을 사들였죠. 서구 미술계에서는 ‘일본인들이 그림값을 다 올려놓는다"라고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호황도 버블 붕괴로 금세 저물었죠. 이후에는 일본 내 해외 작가보다 국내 작가 선호 현상이 두드러지며, 서구 미술계는 다른 시장을 모색합니다.


그 후 권좌를 잡은 건 싱가포르였습니다. 싱가포르는 세금이 낮고, 행정 절차가 간단하며, 영어와 중국어를 공용어로 쓰기에 서구권 미술시장이 넘어가기 제격이었죠. 하지만 2007년, 싱가포르 정부가 미술품에 7%의 부가가치세를 부과하는 법을 통과시켜요. 이를 계기로 크리스티와 소더비 등 경매 회사와 해외 갤러리는 또 다른 시장을 찾는데요. 당시 눈길을 끈 건 중국이었습니다.


중국 예술가 장 샤오강 zhang xiaogang, Bid Family, 2006 © composition gallery


중국은 국가 차원에서 자국 예술가를 전폭 지원했습니다. 덕분에 세계 미술시장 규모 순위가 빠르게 높아지며 2위까지 달성했죠. 하지만, 지나치게 내수시장에 치중한다는 점이 문제가 되었어요. 또, 미술품 거래세율이 30%라는 점도 해외시장에서는 부담스러웠죠.


이후 서구 미술권은 세금이 없는 홍콩으로 진출합니다. 홍콩은 싱가포르와 마찬가지로 사치품에 대한 세금이 없거나 0.5% 수준으로 낮았거든요. 하지만 이 역시, 오래가지 못합니다. 홍콩 민주화 운동으로 정치적 불안감이 퍼지고 치안이 악화된 것이죠. 중국을 비롯, 홍콩에서 벌이는 사업은 언제 망해도 이상하지 않다는 불안감이 퍼지며, 또 다른 시장을 모색해야 했습니다.


Frieze Seoul Viewing Room © Frieze


그렇게 주목한 곳이 바로 한국. 그간 한국은 아시아 미술시장의 중심이었던 적은 없지만, 최근 해외 유명 갤러리가 진출하고, 프리즈가 서울에 진출하며 한국 미술시장의 매력은 급상승했어요. 이전의 일본처럼 구매력 있는 컬렉터도 많고, 해외 작가를 선호하며, 세금 제도도 단순한 편입니다. 치안 상황도 매우 좋고요.


물론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첫째로는 위치적 한계. 빠르게 떠오르는 아시아 시장인 인도와 인도네시아의 접근성이 매우 떨어집니다. 인도는 자카르타를 중심으로 미술시장을 형성하며, 구보드 굽타 등의 예술가를 배출했고, 인도네시아는 신진작가 중심으로 매우 빠르게 성장세를 보이고 있어요. 하지만 이들 나라와 한국은 너무 멉니다. 기존 아시아 예술 중심지였던 싱가포르나 홍콩과도 거리가 꽤 되고요. 둘째로는 세금 이슈가 있어요. 중국에 비하면 대단히 낮은 조세 제도를 갖췄지만, 사치품 거래 세금이 거의 없다시피한 싱가포르와 홍콩에 비하면 한국의 세금 비율은 높은 편입니다. 마지막으로는 눈에 띄게 시장을 이끄는 스타 작가가 없는 점도 단점이고요.


뉴 로맨틱스 출품작: 애니 모리스 Annie Morris, Stack 8, Cobalt Blue, 2016 © Phillips

아시아 미술시장의 경합에서 주목받는 건 한국이라지만, 쟁쟁한 경쟁 국가와 예측 불가능한 시장 상황을 고려하면 변수는 많아 보입니다. 한국이 아시아 아트씬의 중심으로 나아가는 모습이 어떻게 펼쳐지게 될지, 더 장기적으로 지켜보아야 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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